노정협


	제목 : [펌-레이버투데이] 현중노조 임원선거, 검열·삭제로 파행

어용	2005-10-20 19:33:58, 조회:1,266, 추천:376

현중노조 임원선거, 검열·삭제로 파행

[레이버투데이 2005-10-20 18:56]

민주노총 탈퇴 후 처음 치러진 현대중공업노동조합 16대 임원선거가 20일 투·개표를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선거기간 내내 회사측 개입 의혹이 불거지고 특정후보에 대한 노조선관위의 노골적인 선전물·유세문 문구 삭제로 파행으로 얼룩졌다.

이번 임원선거는 회사측 개입 정황이 포착되었음에도 노조선관위가 이를 묵인 또는 옹호했고, 더구나 현 노사관계에 비판적인 특정후보의 입을 막기 위해 노조선관위가 검열과 가위질을 서슴지 않았다는 점에서,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를 통제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현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현중노조 임원선거에서 노조선관위의 사전검열로 김종철 후보조의 유세문이 삭제되는 일이 발생했다. 사진은 전체 2/3 이상이 삭제된 최시화 수석부위원장 후보 유세문 일부.

16대 임원선거는 분과동지회연합에서 김종철 후보조(기호 1번)를, 노민투에서 김성호 후보조(기호 2번)를 출마시켜 2파전으로 치러졌다.

김종철 후보조는 “확 바꾸겠다”는 슬로건 아래 △대등한 노사관계 회복 △노동자 정치활동 및 사회개혁 투쟁 강화에 초점을 맞췄고, 김성호 후보조는 “안정 속의 미래보장”이라는 슬로건으로 △생활임금 쟁취 △복지노조 실현에 중점을 뒀다. 슬로건과 정책에서도 드러나듯 김종철 후보는 ‘민주노조 부활’을 추구하고, 김성호 후보는 현 탁학수 집행부의 맥을 잇고 있다. 이러다 보니 회사측 개입은 김성호 후보 당선으로, 노조선관위의 가위질은 김종철 후보 선전물에 집중됐다.

먼저 회사측 개입 의혹. 김종철 후보 선대본은 “거의 모든 부서의 단합대회나 회식이 선거일 직전에 집중됐고, 현장에서는 팀장들이 교육을 통해 기호2번을 찍을 것을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한 부서 회식자리에서는 회사의 중역이 참석해 “건배를 두번 할 것이 아니라, 2번 하자”라고 말했고, 이에 참석한 조합원이 “선거운동 하는 것 아닙니까”라며 문제를 제기하자 중역은 “어떻게 알았어”라고 했다는 것. 김종철 후보 선대본은 “회사가 회식 자리를 빌어 기호2번 김성호 후보 지지를 유도하는 노골적인 불법행위는 물론 투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까지 지시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선관위는 술자리 농담일 뿐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노조선관위 설상율 사무국장은 “선관위에서 술자리를 조사 했더니 그런 말은 있었는데,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겠냐”며 “중역도 농담으로 했고 분위기도 좋게 끝났는데 이것을 불법이라고 하는 것이 이상한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 설 사무국장은 “부서 회식은 매년 10월과 11월 개인당 예산까지 배정돼 하는 것이고, 현장에서 조합원 면담은 수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김종철 후보 선전물과 유세문에 대한 노조선관위의 무차별적인 사전검열과 가위질도 도를 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8일 오후 공장내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합동유세에서 김종철 후보는 회사측의 부당한 선거 개입과 선관위의 편파성을 비난하고 “선관위의 검열로 정상적인 유세를 하기 어렵다”며 단상에서 내려와 부위원장 후보들과 함께 퇴장해 버렸다.

유세문을 확인한 결과 김종철 후보 유세문은 1/3이 형광펜으로 지워져 있었고, 최시화 수석부위원장 후보의 유세문은 2/3가 지워져 있었다. 나머지 부위원장 후보와 사무국장 후보의 연설문도 지워지기는 마찬가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선관위 세부지침은 ‘유세문은 합동유세 하루 전 선관위에 사전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고, 이에 따라 김종철 호보측이 17일 유세문을 선관위에 제출했지만 많은 부분이 삭제 당했다. 그러나 선관위 세부지침에도 제출의무는 있지만 선관위의 삭제권한은 없다. 김종철 후보 선대본 김형균 선대본부장은 “그야말로 선관위 입맛대로 형광펜으로 죽죽 그어 도저히 이대로는 연설을 할 수 없는 상태여서 항의의 뜻으로 유세를 포기했다”며 “박정희, 전두환 시대도 아니고 사전 검열과 삭제가 말이 되느냐”고 어이없어 했다.

삭제된 내용도 현 집행부의 노사관계 비판은 물론 사측이나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것도 삭제됐다. 심지어는 “현장에 근골격계 질환이 많은 이유는 회사가 노동강도를 무리하게 강화하기 때문입니다”라는 표현까지 줄이 그어졌다.

노조선관위는 “삭제 권한이 명시된 것은 없지만 그동안 선거에서의 관례대로 선관위가 삭제를 요청했다”며 “회사와 관련된 사항은 2002년부터 진행된 사안인데 지금 와서 비판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고, 조합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내용이나 누군가를 떠오르게 만들 수 있는 내용도 마찬가지였다”라고 해명했다.

유세문뿐 아니라 김종철 후보 선전물도 검열로 삭제된 채 온통 누더기가 된 채 발행됐다. 삽화가 통째로 날아가고, 사진과 문단 중간이 삭제돼 홍보물로 보기 어려울 정도인 것도 있었다. 이에 따라 김종철 후보 선대본은 18일 발행한 홍보물 3호를 선관위 직인 없이 발행하기도 했다.

선거가 이렇게 파행으로 치러진 것은 우선은 선관위 구성의 문제 때문이다. 대의원들이 선관위원장을 선출하고, 그 선관위원장이 15명의 선관위원 전체를 임명할 권한을 갖기 때문에 지금처럼 대의원들 대부분이 특정 성향인 상태에서는 뻔한 결론이라는 것이다.

김형균 선대본부장은 “197명의 대의원 중 그나마 회사에서 자유로운 대의원이 3명에 지나지 않아 평상시 선전물도 발행하지 못할 정도로 현장이 무너졌다”며 “머리띠 묶고 투쟁하는 것이 낯선, 노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현장이 오늘을 만들었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대호 ho@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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