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 :
Category |
 |
![]() |
 |
![]() |
제목 : [창간 14호] 레닌은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가? |
![]() |
 |
![]() |
 |
|
노정협
|
2006-03-29 00:12:59, 조회:2,481, 추천:268
|
![]() |
|
|
![]() |
레닌은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가?
“악마도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성경을 인용할 수 있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우리 운동진영 내에서도 레닌의 이름과 주장을 빌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거나 개량주의적 실천의 근거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레닌만큼 원칙적이면서도 그 원칙을 구체적 현실 속에서 관철시킨 혁명가는 없다. 레닌 스스로도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레닌의 주장과 실천한 내용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과 구체적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운동 진영 내에서 레닌의 이름을 빌어 어떻게 레닌을 죽이고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레닌을 혁명적 실천 지침으로 다시 살려내야 한다.
왜곡 1 ‘모든 계급 속으로’를 노동자 중심성의 폐기로
사회당도 레닌을 읽고 있다! 과연 사회당은 왜 레닌을 읽고 있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놀라움과 호기심을 가지고 사회당 식의 레닌 해석을 살펴보았다. 사회당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이 주장한 사회민주주의자(오늘날의 개량주의를 의미하는 사민주의가 아님)들은 “모든 계급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맑스주의’나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노동자계급’ 또는 ‘노동문제’를 특권적 지위에 놓았던 것에 대한 반성적 고찰은 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상식에 속한다. 레닌 시절에 민주주의, 곧 정치가 노동자가 아닌 ‘다른 계층’의 문제들로 구성되었다면, 이제는 특정한 계층과만 관계되는 것이 아닌 보편적인(‘몰계급적인’!) 영역들, 예컨대 생태, 평화, 소수자에 대한 차별 철폐 등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정치 활동의 영역을 구성하고 있다. 사회 변화의 주역이고자 하는 집단이라면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투쟁에서 ‘전위’이어야 할 것이다. 가장 많은 억압과 고통을 받는다는 사정만으로 문제 해결의 선봉에 서게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김태호의 레닌 읽기, ‘2005년 한국에서 레닌을 읽는다’)
사회당의 정치적 뻔뻔함과 교활함에 기가 막힐 뿐이다. 사회당은 레닌이 제기한 ‘모든 계급 속으로’라는 말이 제기된 정치적 배경과 의도를 거두절미하여 자신들의 개량주의, 부문주의 활동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사회당은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계급 중심성, 현장 중심성을 가지고 조직사업, 실천사업을 하는 세력들을 ‘현장주의’, ‘노동자주의’, ‘노동자 이기주의’라고 비난하고 있다.
레닌은 당시 분출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경제주의적 실천-요즘말로 하면 조합주의적 실천-에 가두면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의식 발전을 가로막고 협소하게 하는 경제주의자들을 비판하기 위해서 ‘모든 계급 속으로’라는 말을 ‘이러한 퉁명스러운 정식을 의도적으로 선택해서’ 강조했다.
레닌의 이 주장은 노동자계급 중심의 활동을 버리고 다른 주민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었다. 이는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계급적 해방의 기치를 전면에 내걸어야 할뿐만 아니라 당시 러시아의 농민, 소수민족, 소수종교 등 억압받는 모든 인민들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선두에 서야 한다는 말이다.
레닌에게 활동의 가장 중심적인 기초는 여전히 노동자계급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레닌은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의 거대한 전진으로 말미암아 전체 인민들에게 사회주의를 선전, 선동하고자 했다. 특히 레닌은 당시 러시아 인구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여전히 봉건제적 토지관계 속에서 대토지 소유자들에게 착취를 당하고 있는 농민에게 해방의 전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농민은 수적으로도 압도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해방을 위한 가장 중요한 동맹자였기 때문이다.
인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활동의 거점을 확대해야 한다는 말을 넘어선다. 단순히 현장문제만을 협소하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사회, 정치적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과학적인 인식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노동자계급 중심성, 현장 중심성은 노동자만의 이기적인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자본주의에서 고통 받고 있는 다른 주민들의 이해에 눈감는다는 것이 아니다. 레닌은 맑스의 말을 인용해서 “공산주의자는 모든 혁명운동을 지지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자는 현재의 사회체제에 반대하는 모든 혁명운동을 지지하며, 동등한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피억압 민족, 박해받는 종교, 유린된 사회계급 등을 지지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은 “잠시라도 사회주의적 신념을 숨기지 않고 전체 인민들 앞에서 일반적인 민주주의 과제를 설명하고 강조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회당은 노동자 중심성을 노동자계급, 노동문제를 특권적 지위로 놓는 문제 정도로 왜곡하면서 생태, 평화, 소수자 문제 등 ‘보편적인 문제’에 활동을 강화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당은 노동자계급 운동을 버려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노동자계급 중심성을 배타적인 특권적 지위로 보기 때문에 생태, 평화, 소수자 문제 등 ‘보편적인 문제’를 위해 부문적인 지위로 끌어내려지고 있다.
사회당의 말처럼, 노동자계급은 단순히 가장 많은 억압과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문제 해결의 선봉에 서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부르주아지에 대항하고 있는 모든 계급들 가운데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참으로 혁명적인 계급”(칼 맑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주의 선언)이기 때문에 노동자계급 중심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아닌 소자본가나 소상인, 농민 등은 자신의 존재가 몰락하지 않기 위해 싸운다면 노동자계급은 노동자계급의 지위를 없애야만 해방될 수 있기 때문에 역사발전의 선두에 선다. 더군다나 노동자계급은 소수운동이 아니라 엄청난 다수자 운동이다. 또한 “대규모 생산에서 담당하게 되는 경제적인 역할 덕분에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모든 노동대중과 피착취 대중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레닌, 국가와 혁명)
환경의 파괴, 전쟁에 의한 학살, 소수자에 대한 억압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자본주의는 이윤이 된다면 환경파괴나 오염, 무분별한 개발을 서슴지 않는다. 미국 석유, 군수독점자본의 이해와 중동에 대한 정치적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오늘날 이라크 침공 같은 제국주의 전쟁이 발생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다수자인 노동자계급뿐만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통해 자본주의 지배질서를 유지, 강화한다. 이렇게 생태, 전쟁, 소수자 등의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깊이 연관돼 있다.
레닌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임무’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지도하고, 그 투쟁을 이것의 두 가지 표현, 즉 사회주의적 투쟁(자본가계급에 대항하여 계급제도를 파괴하고 사회주의사회를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투쟁)과 민주주의적 투쟁(절대주의에 대항하여 러시아에서 정치적 자유를 획득하여 러시아의 정치 ․ 사회체제를 민주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투쟁)으로 조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레닌에게 사회주의적 투쟁과 민주주의적 투쟁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연결돼 있는 것이다.
사회당의 현장 중심성, 노동자 중심성의 폐기는 사회당과 결합해 있는 새흐름의 ‘공장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사회로!’라는 사회적 노동운동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노동운동론은 “지역을 거점으로, 일상을 이슈로 하는 운동체를 만들 필요가 있다”(이종탁, 사회적 노동운동에 대하여)고 하면서 노동자의 고용과 생존권을 지키는 투쟁을 편협한 경제적 전투주의로 비판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활동가들은 최근에는 악명 높은 어용 사업장 내에서의 활동을 피해가기 위해서 지역운동과 불우이웃돕기를 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사회당은 최근 ‘새로운 연대운동체’인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향한 연대’(약칭 ‘사람연대’)를 꾸려서 ‘나눔운동’을 펼치고 있다. 사회당은 이 ‘나눔운동’을 반자본주의 운동이라고 하고 있다. 이 나눔운동의 바탕에는 역시 노동자계급운동 중심성에 대한 반대가 깔려 있다. 사회당은 노동자계급운동을 “마치 성골, 진골과 같이 노동운동이 그 자체로 ‘선한신분’의 운동이라는 의식이 잠재해 있는 것”(박용덕 사회당 중앙당기위원장, 「‘새로운 연대운동’에 대한 우리들의 초상」,『사회당 당보 복간 19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사회당의 나눔운동은 친자본진영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월간 ‘참여와 혁신’은 대대적으로 나눔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 나눔운동은 ‘새로운 노동문화’로 포장되면서 노사가 손잡고 지역사회에 봉사활동을 같이 펼쳐내자는 노사협조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노동운동론을 핵심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금속산업연맹 조직국장인 조건준은 “<참여와 혁신>에서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는 ‘나눔’에 대해서도 노동조합의 더불어 살고자 하는 여러 가지 활동들, 단체나 개별적인 활동들까지 알차게 담아내길 바랍니다.”라고 하여 나눔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지난 해 노동조합의 사회공헌기금이 올해에는 노사가 함께하는 ‘나눔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사회당에게 “비정규직 문제, 이주노동자 문제 등도 중요하지만 노동자와 자본가의 갈등은 여러 사회문제 중 하나일 뿐”이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화폐(돈)에의 종속성이 너무 심화되어 진정한 의미의 ‘나눔’과 ‘배려’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하고 있다. 이 주장은 물론 초록정치연대 서형원간사와의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지만 사회당의 입장과 동일하다.
사회당의 나눔운동은 현장 내에서 자본의 착취와 억압을 외면하고 분배문제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려고 하는 사민주의자들보다 한참 더 우경화된 주장이다. 나눔운동은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미화되고 있지만 자본을 이롭게 하는 운동이다. 최근 삼성, 현대, LG 등 독점자본은 사회공헌기금으로 노동자 착취를 은폐하고 기업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자본에게 기업광고는 불가피한 손실인데 자본은 사회공헌기금으로 간접광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당의 나눔은 비정규직,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여러 사회 문제의 하나쯤으로 격하시키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를 ‘나눔’과 ‘배려’를 하지 않고 돈에 종속된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자본의 정규직 고임금론 주장과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사회당의 나눔운동은 자본주의 사회의 억압과 착취를 은폐하고 대중들의 빈곤과 고통을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함으로써 해결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선운동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지극히 반동적인 운동이다. 레닌의 ‘모든 주민 속으로’를 노동자 중심성의 폐기에서 나눔운동으로 노사협조주의적 운동으로 만들어내는 사회당의 술수가 놀랍지 않은가?
레닌은 “오직 독립적인 노동자계급정당만이 전제에 대항한 투쟁에서 강력한 요새로 기여할 수 있다”(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항의)고 하고 있다. 레닌의 이 말은 마치 남한의 사회당에 대한 강력한 항의인 것처럼 들린다. 사회당은 레닌의 다음과 같은 말도 악마가 성경을 인용하듯이 자의적으로 해석해보라!
우리의 활동은 일차적으로 또 주요하게 공장, 도시 노동자들을 지향한다.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는 자신의 힘을 분산시켜서는 안된다. 사회민주주의적 사상을 가장 잘 받아들이고,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장 발달되어 있고, 또 나라의 정치적 중심지에서 그 숫자나 집중도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산업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신의 활동을 집중시켜야 한다.(같은 글)
물론 레닌은 힘을 집중하는 것이 다른 계층을 무시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해방을 통해서 자본주의 착취질서를 타도해나가고 자본주의 하에서 억압과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근로인민, 소수자(장애인, 동성애자 등)의 해방을 위해 가장 선두에서 투쟁하는 혁명적 계급이다. 이것이 민주주의 투사로서의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임무이다.
왜곡2 경제주의 비판을 생존권 투쟁의 격하로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는 이밖에 경제투쟁 정치투쟁을 인위적으로 분리시키고 경제투쟁을 낮은 수준의 투쟁, 정치투쟁을 높은 수준의 투쟁으로 도식적으로 분리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사회당은 “노동자계급은 자신들과 직접 닿아 있는 영역 ‘현장문제’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주의자들’의 사상이었다.”라며 경제투쟁만 집중하자는 경제주의자들을 비판한 레닌의 원문에서 교묘하게 만을 빼서 자기 뜻대로 왜곡한다. 레닌은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선동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경제주의자들을 공격한 것이다. 경제주의자들은 ‘오로지(아니면 주로) 이 투쟁만을 기반으로’하려했기 때문이다.
레닌은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을 제1기 학습 써클의 시기, 제2기 대중운동과의 결합의 시기, 제3기 동요와 해체를 넘어 당건설의 시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당시의 경제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의 분출하는 경제투쟁을 정치투쟁과 결합시켜 의식적인 사회주의운동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인 경제투쟁 그 자체에 몸 대주면서 조합주의적 투쟁 수준으로 가뒀다.
레닌은 1902년 당시 광활한 러시아에 고립분산적으로 존재하면서 경제투쟁에만 매몰되는 세력들을 경제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전국적인 당 건설을 위해 투쟁할 것을 촉구했다. 레닌은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적 정치의식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경제투쟁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정치선동의 필요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이 정치선동의 강력한 무기가 전국적인 정치신문이었다. 레닌은 노동자들의 경제문제에 관심이 없이 정치선동만을 강조한다는 경제주의자들의 비판에 대해 정치선동만이 아니라 경제투쟁도 그들 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수치를 들어 해명하기도 했다.
레닌의 다른 글들을 보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에 대한 레닌의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경제적 선동과 정치적 선동 양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이 성장하는데 똑같이 필수적이다.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인 까닭에, 경제 선동과 정치적 선동은 러시의 노동자들을 계급투쟁으로 인도하는 데에 둘 다 똑같이 필수적인 것이다.(레닌, 러시아사회민주주의자의 임무)
경제파업과 정치파업은 서로를 지탱하며, 각각은 다른 하나의 힘의 원천이 된다. 파업의 이러한 형태들이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진정으로 광대한 대중 운동, 더욱이 전국적 의미의 운동은 불가능하다. 운동이 초기 단계에 있을 때 경제파업은 종종 후진 대중을 일깨우고 분발시키며, 운동을 전체적인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 경제파업과 정치파업 사이의 연관은 항상 존재했다. 반복해서 말하는데, 그러한 연관이 없다면 위대한 목표를 쟁취하려는 진정 거대한 운동은 불가능하다.(레닌, 경제파업과 정치파업)
레닌의 이러한 주장은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1905년 혁명을 보고 로자 룩셈부르크가 쓴 ‘대중파업론’에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에 대한 주장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로자는 경제투쟁과 정치파업의 상호작용을 말하면서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에 언제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노동자계급 역량의 마르지 않는 저수지이다. … 이 두 요소의 통일이 바로 대중파업인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로자의 대중파업론과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비교하면서 로자는 대중의 자생성을 강조하고 레닌은 목적의식성을 강조한 것을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두 글은 쓰여진 조건과 강조점이 다르다. 로자는 1905년 러시아 혁명 시기에 벌어졌던 혁명적인 대중투쟁, 대중파업을 염두에 두면서 이와 비교하여 독일 사민당의 관료주의, 대중파업에 대한 경시를 비판하고자 대중파업론을 썼다. 반면 레닌은 러시아노동자들의 자생적이고 역동적인 투쟁의 분출은 이미 존재하는 반면에 이를 조합주의 수준에 가두는 경제주의자들이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비판을 집중했다.
로자는 “만약 거짓된 이론이 ‘순수하게 정치적인 대중파업’을 추출해내려고 대중파업을 고상한 논리로 해부한다면, 모든 해부가 그렇듯이 이러한 해부를 통해 현상을 생생한 본질 속에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상을 죽이게 될 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로자의 이러한 주장은 관료주의적으로 왜곡된 파업이 판치는 남한 노동운동에서 시사점이 많다. 남한의 관료들은 로자의 비판처럼 민주노총 차원의 정치 총파업을 남발한다. 민주노총 관료들은 ‘세상을 바꾸는 총파업’이라는 명분하에 한 날 한시에 위로부터의 계획된 일정에 따라 전국적인 총파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거짓 선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현실 투쟁을 사회적 합의주의, 타협주의 노선에 의해 회피하고 있다.
최근의 대공장 내에서의 파업은 추석 전, 휴가 전 타결이라는 짜여진 공식에 따라 관료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압박용, 교섭용으로 전락하여 파업돌입 전에 양보교섭으로 파업을 종료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민주노총 차원의 정치 총파업 동참은 하루 총파업으로 시한부로 진행되고 있고, 단협에 보장된 교육시간과 총회시간을 할애하여 형식적인 총파업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조차도 이후 자본과의 특근 합의로 생산에 전혀 타격을 가하지 못한다.
이렇게 총파업 사상이 무너진 이유에는 경제주의와도 관련이 깊다. 남한에서 경제주의는 조합주의, 실리주의로 표현되고 있다. 남한의 노동조합 관료들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적인 절박한 요구를 교섭과 사회적 합의로 높여낼 수 있다고 사고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분쇄라는 목표와 결합되지 않는 실리주의적 투쟁은 결국 경제적 개량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자본에 노동자의 생존권을 팔아먹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한노사연, 영남노동운동연구소 등을 이론적 기반으로 하는 대중운동 내의 개량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단협쟁취, 구조조정 반대투쟁, 비정규직 투쟁 등 사활이 걸린 생존권적 요구를 위한 투쟁을 경제주의로 몰아붙이면서 정치투쟁인 사회개혁투쟁, 사회 공공성 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현실에서는 노동자의 사활이 걸린 생존권적 요구를 사회개혁과 사회 공공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양보하는 데 사용되는 단골메뉴가 되고 있다.
지금 남한 자본주의는 대중들의 가장 기초적인 생존권을 공격하면서 비정규직 확산, 구조조정 등의 공격을 가하고 있다. 자본으로서는 전세계 자본과의 경쟁의 격화와 불안정성의 심화로 인해 살기 위해서 노동자계급을 공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생존권적 투쟁을 비타협적으로 전개하고 대중들의 가장 기초적인 생활상의 요구조차도 폭력적으로 탄압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폭로해내야 한다. 대중의 광범위한 경제투쟁을 정치투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의 문제를 공장 내부에 갇힌 문제로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총체적 관점으로 분석해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아니면 전투적 조합주의의 시야에 갇히게 될 것이다. 레닌이 제기한 경제주의에 대한 비판과 폭로를 노동자의 경제적 요구투쟁을 회피하는 것으로 왜곡하는 개량주의에 대한 반발로 생존권 투쟁에 집중하자고 하면서 강령적 수준의 이론투쟁을 경시한다면 조합주의와 실리주의를 극복해낼 수 없을 것이다.
왜곡3 의회 활용과 제도개선 요구투쟁을 민노당 식으로
레닌과 볼셰비키는 자본주의 의회를 활용하고 제도개선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노신(현 사회주의 노동자)은 레닌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노신은 레닌도 8시간 노동일법안 등 제도개선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하면서 “민노당이 제출하는 ‘비정규직보호입법’에 그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개입의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은 부분적 요구투쟁이라는 측면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사회주의노동자신문 특별6호, 다시 한번 ‘비정규직 권리입법’에 대하여)고 했다. 사노신은 “권리보장 입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열악한 생활조건을 부분적으로나마 개선시켜주고 비정규직의 무한확대를 저지한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다 … 현재의 권리보장 입법은 부분적 요구투쟁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라고 한다.
사노신의 주장대로 민노당의 권리보장입법은 그 자체로만 본다면 유의미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하나마나한 주장이다. 아니 주장을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민노당의 권리보장입법 요구안은 혁명정당에 의해서 대중투쟁을 조직하여 개량을 성취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정규직 완전 철폐, 착취질서 폐지 요구로 나아가기 위한 게 아니다. 민노당의 권리보장입법은 의회 내에서의 교섭과 타협, 절충, 양보라는 개량주의적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민노당은 권리보장입법을 통해 의회 내에서 민노당의 존재 이유를 대중들에게 보여주려 한다. 민노당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와 자본이 일방적으로 개악하려고 하는 비정규직 법안이 최악의 수준으로 개악되는 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을 의회주의의 성과로 가져가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과 정권의 개악이 뻔한데도 연내 입법화를 주장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사노신은 “대중의 압박과 요구에 의해” “한 노쇠한 노동자 의원의 먼지 쌓은 서류뭉치로 전락할 뻔한 권리보장 입법안은 비정규직 투사들의 결사적인 투쟁을 통해 살아 숨쉬는 대중투쟁의 깃발로 되살아났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민노당의 권리보장입법은 대중투쟁의 압박으로 제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회주의 정당 본연의 모습에 의해 의회주의적 요구로 만들어진 것이고 의회주의적 방식으로 절충과 타협을 거치면서 수정안, 양보안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도 사노신은 “현재의 투쟁은 분명하게도 단순히 정부의 노동법 개악을 막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동안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다 준 제반 유연화 악법을 무력화시키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법을 제도화시켜내는 것으로까지 확대,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사노신은 이 요구가 모든 임금노동자한테 적용되지 않고 있고, 대중투쟁이 빠져 있다는 점을 비판하지만 “비정규직 권리보장입법이 가지는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재 권리보장 입법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전혀 무의미한 투쟁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주변의 노동자들은 “도대체 비정규직 법안 개악 저지가 안되는데 입법화를 쟁취한다는 게 가능한가?”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민노당과 민주노총은 ‘저지를 넘어서 연내 입법화’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하물며 민노당 내에서도 해방연대 중심으로 중앙위에 입법화 쟁취라는 허구적인 요구가 아니라 저지를 명확히 하자는 안을 제출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정부여당과 한나라당이 비정규직 개악법안을 강행 통과시키려는 마당에 현재 민주노총의 힘으로 개악을 저지하고, 나아가 권리보장입법을 쟁취할 수 있단 말인가!(정윤광, 년내 입법 주장을 공식적, 공개적으로 명확하게 포기하라!)
사노신은 이렇게 민노당이 제출한 권리보장입법의 유의미성을 강조함으로써 의도와 다르게 민주노총과 민노당의 주장과 비슷해져 버렸다. 그것은 사노신의 정세 인식의 빈곤함과 개량주의 정당이 수행하는 제도개선 투쟁이 의회주의적 방식과 의회 공간을 거치면서 어떻게 왜곡될 지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됐다.
민노당의 권리보장입법안은 개량을 성취하는 수단이 아니라 이미 수정안과 양보안을 제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 민주노총과 민노당은 비정규직 개악안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날치기 통과 반대’를 구호로 내걸고 있다. 이들에게는 개악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민노당의 존재를 무시하고 합의통과가 아닌 일방적으로 통과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민노당의 권리보장입법안은 이미 정권과 자본의 안을 수용한 누더기 악법이 돼버렸다. 이러한 민노당 안의 합의처리는 되려 악법에 대한 저항의 길도 막아버린다. 민노당은 의회에서 계급투쟁의 완충장치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연대는 여기서 한술 더 뜨고 있다. 해방연대는 볼셰비키의 의회활용을 민노당에 그대로 적용하면서 “볼셰비키와 다를 바 없이 10명(이제는 9명)의 국회의원을 가지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원내에서 운용할 수 있는 전술의 폭은 매우 좁다. 원칙까지 져버리면서 유연하게(?) 전술을 펼치기 보다는, 아무리 <프라우다>가 없다지만 여전히 대중투쟁이 대안이고, 원내전술은 그 대중투쟁에 복무해야 한다.”(해방연대 정치신문 ‘해방’ 7호, ‘볼셰비키 의회 전술의 교훈을 되새기며’)면서 볼셰비키의 의회전술의 교훈을 배울 것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볼셰비키처럼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말을 뒤집어보면 민주노동당이 볼셰비키처럼 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과 같다. 이는 마치 돼지를 보고 사슴이 될 것을 촉구하면서 이것이 될 거라고 믿는 것과 같다.
볼셰비키는 레닌의 사상적, 조직적 지도 아래 정치적 통일성과 엄격한 조직적 규율을 갖추고 학살과 유형을 당하면서도 혁명을 위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한 혁명정당이다. 이러한 볼셰비키당은 철저하게 훈련되고 검증된 믿을 수 있는 혁명가를 의회에 파견했다. 의회활동은 혁명활동에 도움을 주기 위해 활용됐을 뿐이다. 의회는 활용의 대상이자 파괴의 대상이었다. 볼셰비키의원단은 수백 명의 의원들의 포위 압박과 짜르의 총칼과 유형,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불굴의 신념으로 이를 수행했다. 볼셰비키는 조직적 지침에 따르지 않을 의원을 소환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다.
먼저 단병호 의원은 의회 내에서 무장봉기를 촉구한 독일의 혁명가 칼 리프크네이트나 볼셰비키의원이 아니다. 민노당은 러시아의 볼셰비키가 아니다. 철저하게 의회주의 노선과 의회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정당이다. 그런데 레닌의 의회전술과 제도개선 요구를 들이밀면서 “레닌도 그랬다”라는 식으로 현실의 구체적 분석을 외면하기 때문에 이러한 전술적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레닌주의는 교조도 아니고 수정의 대상도 아니다. 오로지 현실에서 더욱 풍부해져야할 과학이자 원칙일 뿐이다. <노/정/협>
|
|
|
![]() |
![]() |
 |
|
![]() |
|
전국노동자정치협회
(150-898)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4동 215-3 301호
노동자정치신문 Tel. 070-8254-1917 / E-mail labor04@jinbo.net
copyleft by 노정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