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사>
노동자 계급은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논란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살자"고 수십 년 동안 산아제한 정책을 써 왔던 남한 자본가 국가가 최근에는 출산율 저하가 심각하다고 호들갑 떨고 있다. 정부에서는 '출산 장려책'을 법제화 하면서 아이를 더 낳으면 2-30만원의 출산 장려금을 줄 것이라는 '인센티브'도 발표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인구가 많으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국가의 산아제한 정책을 익숙하게 받아들여 왔다. 그런데 왜 학교교육, 행정지침(심지어는 예비군 훈련장에서조차), 언론매체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산아제한 정책을 역설해 왔던 남한 자본가 국가가 출산 장려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는가?
인구정책= 노동력 관리정책
자본가 국가는 '사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출산의 문제까지도 깊이 개입하고 있다.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가는 흔히들 '인구정책'이라고 하는 '노동력 관리 정책'에 사활을 건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원희 보건복지부 인구정책 과장은 지난 8월 25일 KBS뉴스에 나와 변화된 출산정책을 설명하면서 "이제 앞으로는 국가나 사회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면서 저희가 함께 공동으로 그 아이를 양육해낸다는 그런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 데 힘써 나갈 예정입니다"라고 했다.
자본은 "가임 여성의 감소 문제는 낮은 출산율보다 '국가 재생산 능력'에 위협적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의 재생산 능력'을 높이는 영웅적인 '출산행위'는 개인과 가정의 기쁨에 앞서는 '국가나 사회의 기쁨'인 것이다.
남한에서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는 자녀수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은 1960년대 6.3명에서 2002년 1.17명으로 급격히 떨어졌다. 그런데 출산율의 객관적인 감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재생산 능력을 위협할 정도로 절대적으로 인구가 부족하지는 않다. 남한 자본가 국가는 전쟁 이후 50-60년대를 거치면서 산업을 급속하게 발전시키고 60년대부터 산아제한 정책을 써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력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사력을 다해왔다. 산업초기에 자본을 위한 안정적인 노동력 공급은 피폐화된 농촌으로부터 나왔다. 80년대 후반부터 자본가 국가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로부터도 '산업연수생' 명목으로 수십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을 받
아들이면서 노동력 관리 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다.
출산율 저하와 실업의 공존
자본주의에서 인구법칙은 절대적으로 인구가 많다거나 적은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호황과 공황이라는 경기변동에 따라서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하고 넘쳐나기도 한다. 자본주의는 '산업예비군'이라는 형태의 과잉인구를 항상적으로 필요로 한다. 호황기에 자본은 '노동력 공급의 마르지 않는 저수지'인 산업예비군으로부터 값싼 노동력을 공급받는다. 공황기에는 산업에 충원된 노동력들은 또 다시 자본으로부터 축출 당하여 산업예비군을 형성한다.
자본의 축적 규모에 비하여 과잉인구인 산업예비군들로 인해 자본주의는 산업순환에 따라 노동력의 진입과 퇴출을 자유롭게 하면서 자본을 축적한다. 또한 노동자 대오 내부를 취업 노동자와 실업노동자로 분열시키면서 실업(반실업) 노동자들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취업 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조건을 하락시키고 단결력을 약화시킨다.
"인구가 급속도로 팽창하면 식량증가가 이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인구증가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오늘날 산아제한 정책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멜더스 조차도 "공업과 상업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나라의 노동계급 사이에서 결혼억제가 상당한 정도로 실시된다면, 그 나라에 해로울 수 있다"라고 출산감소에 대해 우려했다.
그런데 50년대 전쟁 직후를 제외하면 남한에서는 노동력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는 않았다. 자본에게 있어서 노동력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말의 의미는 시장상황에 따라 노동력의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출산율 저하로 인한 노동력 공급의 감소라는 자본의 우려 뒤에는 실업(특히 청년실업)이라는 정반대되는 현상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적 현상은 출산율 저하에도 불구하고 노동력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다만 자본은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착취하고 언제든지 내다 버릴 수 있는 노동력의 부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과 국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지급한다는 2-30만원 정도의 출산장려 수당 지급 정책은 한마디로 위선이다. 먼저 자본과 국가는 출산장려 정책과 모순 되게 여성 노동자의 생리휴가 폐지와 산전·산후 휴가 축소 등 노동법 개악을 통해 모성을 공격하고 있다. 또한 결혼여성 차별 및 구조조정 시 부부사원 중 여성의 우선 정리해고, 탁아시설의 미확충,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가사노동에 대한 보상 거부, 사교육비 인상 등을 통해 자신들의 출산 정책을 배신하고 있다.
고령화와 연금제도 개악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취임 직후 "급속도로 연금이 고갈될 위험성이 있다"면서 출산률 저하와 고령화 논란을 통해 국민연금 제도를 개악하려 하고 있다. 정부와 자본은 퇴직 노동자에 대한 국민연금 지급이 후세대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세대간 갈등을 유발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역 노동자와 퇴직 노동자 사이의 세대간 갈등이 아니라 명백히 자본과 노동의 갈등이다. 자본과 정부가 노인공경과 가족애를 강조하는 이유도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 경제적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돌리고 노동자 계급을 공격하기 위함이다. 지난 10월 7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숨기지 않았다.
임금피크제 같은 것이 적용돼서 가령 40대 후반 - 50대 초반에 천장을 치고 그 다음에는 조금 임금이 내려와도 그때쯤 되면 아들 딸들 결혼이라는 대사도 대충 하게 되고 그렇지 않나? 그 이후에는 비용도 좀 줄고 그러니까 다시 임금이 내려가는 사회, 경제적 제도도 국민적 합의를 통해서 이뤄내면 이런 연세 드신 분들을 생산성 있게 쓸 수 있는 사회적 조건과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자본은 고령화를 핑계로 현역 노동자의 연금부담을 늘리고 공무원연금제, 퇴직연금제 등 연금제를 개악하여 퇴역 노동자의 연금 수급을 줄이려 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지급하는 사회보장비를 억제하여 자본을 위해 쓰려는데 목적이 있다. 또한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 경제활력을 떨어뜨리고 생산성을 낮출 것"이라는 이유로 현역 장기 근속 노동자의 임금삭감과 복리후생을 줄여서 이윤을 높이려고 한다.
자본은 장기근속 노동자들이 오랜 경험과 숙련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측면이 있는데도 고령 노동자의 생산성 하락을 이유로 임금삭감을 주장한다. 장기 근속 노동자들의 노동력 재생산비가 높아지면 자본의 이윤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논란 뒤에도 어김없이 자본의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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