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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창간16호] 프랑스 투쟁이 남긴 것(성과와 정치적 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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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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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3 20:02:42, 조회:2,263, 추천: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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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투쟁이 남긴 것
1. 한 번의 큰 싸움의 승리
4월 10일 결국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최초고용계약’ 법안을 철회했다. 프랑스의 노동자와 학생들은 승리했다.
이 승리는 아주 소중하다!
프랑스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투쟁은 프랑스, 한국, 세계 자본주의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미친 듯한 착취강화를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노동자의 강력한 직접적 정치행동, 단결된 투쟁만이 자본의 공세를 격퇴시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었다. 자본과 자본가 국가의 광폭한 공격과 탄압에 맞서서 노동자가 취해야 할 자세는 체념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단결투쟁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노동자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것이 프랑스 투쟁의 소중한 선물이다!
이 소중한 투쟁의 선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가 이제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의 노동자 앞에 남겨진 과제이다. 프랑스 투쟁의 승리는 아주 소중하지만 하나의 투쟁이고 한 번의 투쟁의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노정신 창간 15호 <격화되는 프랑스 투쟁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글에서 프랑스 투쟁은 자본의 공격으로 누적된 노동자의 불만과 분노의 표출이자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의 폭력투쟁의 연장선이라고 말했다. 직접적인 투쟁의 도화선이 된 끝없이 높아만 가는 청년 실업률과 암흑의 미래는 저성장, 저이윤율, 고실업으로 요약되는 자본의 위기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실업, 고용문제는 어떤 자본의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전체의 문제이다. 청년 노동자나 예비 청년 노동자의 문제․어떤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문제이다.
투쟁은 이제 시작이다. 투쟁의 승리를 새로운 노자 역학관계를 만드는 투쟁으로, 전체 노동자 계급과 전체 자본가 계급의 투쟁으로, 세계 노동자 계급과 세계 자본가 계급의 투쟁으로, 노동자의 권력과 노동자가 해방된 사회를 향한 미래의 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 프랑스 투쟁을 하나의 완결된, 정지된 승리의 투쟁으로만 국한시키면 프랑스 투쟁은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이 되고 나아가서는 자본의 보다 치밀한 도발 앞에서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이 될 것이다.
이런 위험성은 이미 프랑스 투쟁 자체에 들어있다. 프랑스노동총동맹, 민주노동자연합, 프랑스 그리스도교노동자동맹은 “학생들이 이러한 반대의 중심에 서야 한다.”며 투쟁의 추이를 지켜만 보다가 투쟁이 확산되고 프랑스 여론의 63%가 최초고용입법에 반대하자 투쟁에 참가했다. 투쟁은 전면적인 투쟁을 통하여 역동적인 대중파업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날을 정해 놓고 압박을 가하는 파업을 하였다. 그리고 시라크가 최초고용입법을 철회하자 4월 11일의 시위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최초고용입법을 최초고용입법으로만 그것도 직접적인 당사자인 청년대학생들의 문제로만 본 것이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2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신규고용계약의 철회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렸다. 이것은 현재 노조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는 노동조합주의이자 소규모 사업장의 문제를 외면하는 대공장 이기주의이다. 남한 사회의 노동조합주의․관료주의와 한통속이다.
이 노동조합주의가 극복되지 못하면 실업자와 노동자,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와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는 분열되고 노조는 집단이기주의 세력으로 내몰리고 고립될 것이다. 자본과 정권은 좀 더 치밀하게 준비해서 치고 들어올 것이고 이것은 효과적으로 먹혀들 것이다. 매사추세츠대학 교수인 프렉시안 릭 울프의 말을 보자.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들은 자신들의 오랜 숙원인 노동법과 여러 조건들을 기업의 이익에 맞게 재정비하기 위해 이번과는 또 다른 방법을 시도할 것이다. … 그들은 자신들이 하려는 일이 모든 프랑스인들에게 ‘국가적’ 혹은 ‘경제적’, ‘안보상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일이라고 위장하려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치 경제 ‘컨설턴트’, ‘싱크탱크’ 그리고 학문적인 ‘조언자’들을 엄청난 돈으로 매수해 프랑스 우파들의 프로그램으로 재포장하도록 만들 것이다.”
SUD(쉬드) 연대노조 국내 책임자 앙젤리는 관료화되고 고령화된 프랑스 노동운동에 대해 우려를 표현한다.
“프랑스의 노동운동은 다른 유럽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위기에 처해있다. 프랑스에선 대부분 공기업과 대기업 중심이고, 노조가입률이 8%에 불과하다. 젊은이들의 노조참여가 줄고 있다. 20인 이하의 사업장에선 단기계약이고 노동운동에 대한 의식이 낮은데다 경영주의 해고위협 때문에 노조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자본의 위기와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자본의 위기에 대한 노동자의 정치적 전망과 단결된 투쟁이 조직되지 못한다면 노동운동의 위기는 세계적으로 더욱 깊어질 것이다. 자본의 공격을 기다렸다가 싸우는 방어적 투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노동자의 정치적 대안을 내걸고 자본의 축적구조를 공격하는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면 투쟁으로 지킨 오늘의 현상유지는 자본의 재무장에 따른 내일의 더 큰 상실로 나타날 것이다.
울프의 이런 말은 실천적으로 중요하다.
“다음 신자유주의 공격이 닥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서야 또 다시 그것을 쫒아버리기 위해 싸울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들로 하여금 고용주에 맞서 끝없는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경제구조에 도전함으로써 이 전쟁과 맞설 것인가?”
착취의 결과에 대한 투쟁은 정치적 전망과 대중의 역동적인 투쟁의 경험과 결합하여 착취의 원인에 대한 투쟁으로 전화해야 한다.
2. 프랑스 투쟁의 수혜자들
프랑스 투쟁의 수혜자는 대권주자들이다. 프랑스 투쟁은 정치적 지도자 없이 이루어진 대중 투쟁이었다. 프랑스 정당들은 여론의 풍향계를 지켜보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판단을 하고 정치적 입장을 제출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모습이다. 선거주의 정당에게 여론은 정치적 생명을 좌우하는 것이다. 투표를 통한 당락이 정치적 입지와 영향력을 좌우하는 선거주의자들에게 여론은 가장 민감한 정치적 기준이다.
TNS-소프레스의 조사결과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인 루아얄의 입지가 강해졌다고 응답자의 71%가 대답했고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제1서기 57%, 집권 대중운동연합의 사르코지 55%가 정치적 입지가 강해졌다고 대답했다. 반면에 시라크는 88%, 드 빌팽은 89%가 정치적 입지가 약해졌다고 대답했다.
2007년 대선에서 정당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63%가 좌파정당에 이롭다고 대답했고 우파정당은 10%, 극우정당은 12%라고 대답했다.
프랑스의 노동자와 학생의 투쟁이 실질적으로 투쟁을 조직하거나 지도하지 않은 정당에게로 가는 것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지도자 즉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26세 미만의 최초 고용계약은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공격의 핵심인 노동유연화의 세계화의 프랑스적 형태라는 의미 이외에 내년 5월 프랑스 대선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시라크와 정치적 후계자인 드 빌팽 총리는 프랑스의 소위 ‘공화국 연대’의 전통과 문화를 무시하면서 최초고용계약을 밀어붙였다. 우파는 연속 3번째 우파 대통령의 당선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공산당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당도 우파의 경쟁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002년 대통령선거 1차 투표에서 1위는 자크 시라크, 2위는 극우파 후보인 장-마리 르펜, 3위는 조스팽이 차지했다. 공산당은 5% 아래의 지지를 받는 소수정당으로 극좌파(건강한 계급적 정치세력) 정도의 지지를 받았다. 사회당의 추락과 극우파의 부상이었다.
우파의 득세와 사회당의 정치력 영향력 약화가 2005년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판단한 우파는 ‘우파의 대통령 후보=당선’이라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빌팽은 경쟁자인 사르코지를 따돌리기 위하여 기업가들과 우파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하여 최초고용계약을 추진한 것이다.
우파의 지지를 얻고 거의 10%에 육박하는 실업률을 노동유연화를 통하여 수치적으로 감소시켜 프랑스를 대내외적으로 안정성이 있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확보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그리고 사회당에게 새로운 정치적 기회를 주었다. 신자유주의에 맞서서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제출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지도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사회당이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제출하고 프랑스를 경제위기에서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은 사민주의적인 신자유주의 정당으로 개종했다.
자본의 상대적 안정과 번영의 시대에는 사민주의(케인즈주의)가 자본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었지만 자본이 위기의 시기로 전환하자 사민주의는 자본의 위기를 온존, 은폐시키고 확대누적 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가 사민주의를 자본의 위기의 주범으로 몰아붙이고 시장주의와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자본의 위기의 대안으로 주장하는 역사적 근거로 이용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대세가 되었다.(남한 부르주아 언론은 프랑스 투쟁을 복지국가의 병폐가 불렀다든지 잘못된 교육의 결과라고 악선동하고 있다.)
사민주의자들도 사민주의가 자본의 위기의 시대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 자본의 고도의 발전과 과잉축적에 따른 이윤율 저하의 시기에 자본의 절약과 노동자에 대한 착취강화를 통한 자본의 경쟁력 높이기는 자본의 필연적 선택이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위기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자본의 절망적인 발악이다.
물론 신자유주의는 각 국가의 계급역학구도와 전통에 따라서 관철되는 형태와 속도가 다르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에 대한 각국 국민의 지지도를 보면 미국 71%, 중국 74%, 영국 66%, 독일 65%, 이탈리아 59%, 프랑스 36%로 프랑스가 압도적으로 지지도가 낮다. 프랑스는 공화국 연대의 정신이나 똘레랑스의 전통이 그만큼 깊다. 그래서 프랑스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신자유주의가 관철되는 속도가 느리고 폭이 상대적으로 좁다. 이것은 프랑스의 역사적 전통과 국민적 여론의 영향이다.
우파도 정치적 대안이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당도 정치적 대안이 아니다. 사회당이 정치적 대안이 되었다면 우파가 연속집권 하지 못했을 것이고 사회당이 극우파의 후보에도 뒤쳐지는 충격적 대선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 사회의 위기가 지속되고 이 위기에 대한 정치적 대안은 탄생하지 않고 실업은 계속 늘어나고 비정규직은 확대되고 대중의 고통은 참을 수 없는 정도로 확대되면 국가와 민족 또는 사회 전체의 안전과 번영의 이름을 정면에 내걸고 파시즘이 등장 할 수도 있다. 실업자와 하층 노동자, 도시 소부르주아지, 청년학생들이 파시즘의 계급적 배경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두 가지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는 극우파가 대선에서 2위를 했고 프랑스 투쟁으로 12%가 이익을 본다는 통계가 나왔다는 것이다. 극우파의 일정한 지지도는 반짝 효과가 아니라 지속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하나는 언론에서 카쇠르(파괴자)라고 부른 파리 교외에서 온 청소년들이다. 학교 중퇴자가 많고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취업이 안되기 때문에 청년실업이 50%나 되는 이들의 절망과 불만의 극단적 양상이 극단적인 폭력과 파괴로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이들의 모습은 내일의 실업자 일반과 하층 노동자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극우파와 이들 절망과 미친 듯한 불만과 분노가 하나로 모아져서 파시즘이 등장할 수도 있다.
3. 정치적 대안은 어디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가?
프랑스에서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있는 세력은 현재 없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와 사회주의 정치세력이다. 이들이 하나로 결합되어 대중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고 사회당의 본질을 폭로하고 기존 노조의 노동자를 획득해 나가고 새로운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위기에 대한 체제의 전망을 제시하고 대중을 의식화․조직화 하는 것이다.
부산 교육대 강사인 이학수의 다음의 이야기는 이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국내 언론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은 쉬드 노조가 과거 거대노조가 하던 역할을 이번에 대신했다. … 노조의 진정한 살 길은 신자유주의 공격을 물리쳐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핵심전략으로 놓고 지난 몇 년간 그렇게 투쟁해 왔던 것이다. 그러자 기존의 노조원들이 쉬드 노조로 옮겨오고 최초로 노조에 가입하는 노동자들은 쉬드 노조를 선택했다. 그리고 사회당과 공산당, 녹색당이 없는 빈자리를 극좌파 정당들이 채우고 있었다.”
사실 사회주의 정치세력들은 4% 정도의 지지도를 얻고 있었다. 어찌 보면 공산당과 비슷한 지지도이다. 그러나 둘은 다르다. 공산당은 쇠퇴하는 정당이지만 사회주의 정당들은 상승하는 정당이다. 극좌파 정당은 극우파 정당에 비해서 아직은 매우 힘이 부족하다. 그러나 명확한 정치적 입장과 대안을 제출하고 대중의 투쟁에 앞장서서 참가하고 대중과 함께 정치적 입장을 검증하여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치적 신뢰를 얻는다면 빠르게 정치적, 조직적 힘을 키울 수 있다. 이 길이 깊은 절망에 빠져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불만과 분노에 몸부림치는 실업자와 하층 노동자 그리고 파산하는 소부르주아지를 극우파의 품이 아닌 사회주의자들의 품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길이다.
대중이 알게 하라! 대중이 경험하게 하라! 대중이 지지하게 하라!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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