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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2호] 간첩단 사건’과 극악한 종파주의
노정협   2006-11-28 20:11:26, 조회:2,305, 추천:217

‘간첩단 사건’과 극악한 종파주의


의회주의가 국가기구에 대한 맹신을 낳았다!


국가보안법의 미친 칼날이 또 다시 ‘간첩단 사건’을 만들어 내며 춤추고 있다.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 인혁당, 통혁당 사건, 남민전 등 민주주의 투쟁을 했던 수많은 선배투사들을 고문하고 탄압하고 학살했던 악명 높은 군사정권 시절의 악법이 또 다시 활개치고 있다. 정작 역사의 유물로 사라져야할 국가보안법은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외치며 역사의 시계와 민주주의를 수십 년 뒤로 후퇴시키고 있다. 자본가 언론에서는 어김없이 조직사건이 터질 때 등장하는 조직계보를 그려가면서 사건을 부풀리고 선동적으로 보도하기에 여념이 없다.

국정원은 이번 사건을 터뜨리면서 앞으로 간첩사건이 3-4개 더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과거에 대선을 앞두고는 어김없이 조직사건이나 간첩단 사건이 터졌다. 이번 간첩단 사건도 북한 핵실험을 둘러싼 한반도의 첨예한 긴장상황에서 사회적으로 보수적 정서가 팽배해지고 있는 상황과 더불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배계급 내부의 힘의 역관계가 변하는 정세와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국정원이 국가보안법 사건을 터뜨리기 얼마 전에 서울대 최종길 교수의 투신사건이 안기부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에 의한 고문타살임이 공식적으로 밝혀지면서 국가기관의 폭력성은 이미 만천하에 폭로됐다. 이번 사건 또한 이른바 ‘진도간첩단 사건’이라는 명목으로 18년간 구속생활을 했던 피해자들의 다음 달 1일 대법 출석을 앞두고 터졌다. 국정원은 이번 사건을 통해 국가기관의 억압과 폭력을 은폐하면서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과시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폭력적 국가기관이 만들어내는 국가보안법의 광기 말고도 극악한 종파주의라는 어두운 광기가 운동진영을 휘감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 사민주의 우파세력들인 ‘자율과 연대’가 바로 그들이다.


“국가기관이 국가의 주요 범법행위를 위반하는 행위를 조사하는 것이 "공안탄압"이란 말인가?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마땅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주장이 "북공작원과 접촉하고 밀입북하는 행위"를 방조하기 위함이 아니다. 당은 즉각 국민께 사과하고 국가기관의 수사에 협조해야한다.”


자율과 연대는 최소한 운동진영으로서 지녀야할 마지막 선을 넘어 버렸다. 자율과 연대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달고 있지만 이러한 전제는 아주 위선적이고 구역질난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실제 국가 공안기관의 탄압에 대해서는 국가의 적법행위라고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의 구성원들이 공개적으로 북한인사들과 접촉하고 자본이 개성공단에 진출하고 금강산 관광과 중국에서 수십만 명이 북한과 접촉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철폐는 출판, 집회 및 시위의 자유, 사상의 자유와 조직결성의 자유를 쟁취하고 폭압적인 국가기구를 철폐하는 민주주의 투쟁의 요구이다. 그러나 자율과 연대의 한 회원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 국가기관을 신뢰하고 믿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폭압적인 국가기관의 행위에 대한 지지와 국가보안법의 희생자들에 대한 자율과 연대의 태도는 이들의 부르주아 국가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뼛속 깊이 스며들었는지 잘 알 수 있게 한다.

자율과 연대의 한 회원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민주노동당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떨어뜨렸다”고 개탄했다. 민주노동당 내 사민주의 우파들에게는 이 사건이 국민적 지지를 확대해서 집권하려고 하는 민주노동당의 사민주의 집권전략, 득표전략에 최대의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율과 연대 같은 노골적인 사민주의자들은 국가보안법 철폐의 정당성을 대중들한테 인식시키고 대중들을 변화시키면서 지지를 끌어내기 보다는 대중들의 후진적인 인식에 야합하는 편한 길을 선택한다. 전형적인 대중 추수주의다.

자율과 연대의 국가기관에 대한 맹신은 그들이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국가기구인 의회주의의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신봉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법률에 순응해야 한다. 자본주의적 착취질서가 그들에게는 넘어뜨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철저하게 적응해야 하는 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합법주의적인 개량주의 운동을 하는 세력들에게는 국가보안법의 칼날과 이 칼날을 휘두른 국가정보원 같은 억압기구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그들에게는 국가보안법과 국정원이 준수해야 하는 기존의 자본주의 법률과 국가기구 중의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종파주의가 운동의 대의를 갉아먹고 있다!


북한 핵실험과 관련해서 사이비 좌파들은 미제국주의와 그 동맹자인 노무현 정권을 주되게 비판하고 타격하기 보다는 북한과 자민통 세력에게 그 책임을 돌리는 종파주의에 사로잡혔다. 자율과 연대에게도 국가보안법과 자본주의 폭압적 국가기구인 국정원 보다도 내부의 자민통 세력들에 대한 적개심이 더 컸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단순히 자율과 연대만이 이러한 극악한 종파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동당 내 많은 좌파들이 이번 사건에서 침묵을 지키거나 자율과 연대에 동조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부의 사이비 좌파들의 기회주의적 처세와 종파주의는 운동 진영 내부에 엄청난 불신과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종파주의는 운동에 있어서 가장 큰 해악이다.

운동 진영 내부의 노선투쟁이나 주도권 싸움은 대적 전선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내부의 기회주의자들이 협조주의라는 이름으로 적들과 내통하고 투쟁전선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제대로 된 대적전선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내부투쟁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투쟁을 하는데 있어서 한 정파의 이해는 주적과 싸운다는 운동의 대의와 맞아떨어져야 한다.

맑스주의에 있어서도 종파주의는 척결의 대상이었다. “한마디로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현존의 사회 정치 상태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운동을 지지한다.…끝으로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모든 나라의 민주주의 정당들 간의 결합과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가 선언에서 말한 맑스주의의 주요한 원칙이었다. 물론 이것은 노동자 계급에 의한 정치권력의 장악이라는 운동의 대의를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는 전제 하에서의 원칙이었다.

이러한 대의가 종파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이해가 전체 사회의 발전과 이해와 맞아떨어지고 노동자계급이 언제나 민주주의 투쟁의 전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천했기 때문이다. 집회, 결사, 사상의 자유 같은 민주주의 투쟁의 전위가 될 때만이 노동자계급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다른 피착취 계급에게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억압적이고 기만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서서 노동자 계급의 민주주의가 확산되지 않고서는 자본의 권력을 조금도 약화시킬 수 없다. 노동자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착취질서를 폐지하고 노동자 계급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데 있어서 자본주의 내에 진지를 구축하는 것과 같다. 노동자 민주주의는 노동자 계급이 성취할 새로운 세계가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고 진정으로 대중들에게 민주주의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국가보안법의 칼날 아래 희생이 된 자민통 세력들에 대한 국가권력의 억압과 탄압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자민통은 우리와 근본적으로 정치노선이 다르지만 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한미FTA반대 및 각종의 민주주의 투쟁에서 같이 연대할 수 있는 세력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민통과의 연대에 있어서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와 노사협조주의 노선에 대해서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폭로하고 비판한다. 그것은 운동의 대의와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노선을 용인하면서 공동전선을 수행한다면 그것은 종파주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당파성을 상실한 정치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번 국정원의 ‘간첩단 사건’을 통해 국가보안법은 다시 되살아나고 있고 앞으로 엄청난 피바람을 몰고 올 수 있다. 앞으로 국가보안법은 내년 대선을 거치면서 자민통에 대한 탄압을 넘어서 누구를 향해 미친 칼날을 휘둘러댈지 아무도 모른다. 정치지형이 더 우경화된다면 이런 문제는 현실화될 것이다. 앞으로 국가보안법은 핵실험을 빌미로 한반도의 정치 상황이 변화되고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이 더 진척이 된다면 애초의 존재이유인 사회주의자 탄압법으로 본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 남한 내에서의 많은 정파들은 열려진 정치공간을 활용하면서 투쟁하고 있다. 앞으로 정치지형이 더 우경화된다면 대대적인 탄압을 당할 수도 있다.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는 이번 ‘간첩단 사건’을 보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얼마나 퇴행적이고 억압적인지를 가슴으로 새겼다. 노무현정권은 한 편에서는 과거사진상규명을 통해 과거 국가기관이 자행했던 인권유린과 고문과 살해행위를 단죄한다고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그것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행위인지 보여주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노무현정권이 주도한 사건이 아니라 공안기관 자체의 판단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태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관점이다. 노무현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가권력은 폭력적인 정보기구를 통해 계급지배를 관철해오고 정권은 여기에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남한 내에서 노동자 계급에게 열려진 정치공간의 한 자락은 투쟁의 성과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 보다는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자신감이 한 몫을 했다. 부르주아지의 의지에 따라서 이 알량한 정치적 활동공간이 언제든지 회수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이번 사건에 맞서 투쟁해야 하는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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