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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58호] 한국사회 성격과 변혁의 문제Ⅱ-2 - 종속이론, 신식민지 노선의 오류
노정협   2009-12-31 18:24:44, 조회:2,883, 추천:132
  
한국사회 성격과 변혁의 문제Ⅱ-2





4. 종속이론, 신식민지 노선의 오류  


1) 한국사회 성격 논쟁에 영향을 미친 남미 종속이론의 오류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논란은 종속의 문제이다. 식민지가 사실상 사라진 현대 제국주의에서 종속의 문제를 부인한다면 제국주의 지배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의 제국주의가 식민지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정치적 지배방식을 통해 식민지의 영토를 직접 지배하며 식민지 국가의 정치적 독립까지 박탈했다면 현재에는 과거와 같은 식민지는 사실상 사라졌다. 이를 두고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라고 정의내리기도 한다.

최근의 제국주의의 달라진 지배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2차 세계 대전 이전의 구식민지와 구별하여 종속을 근거로 한 신식민지 노선이 생겨났다. 그렇기 때문에 종속의 문제는 독자적으로 충분히 분석되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신식민지이론과 종속이론은 쏘련의 신식민지이론과 남미의 종속이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특히 미제국주의에 종속돼 있는 남미의 후진성과 저발전의 문제를 주로 다룬 종속이론은 한국사회 성격 논쟁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종속이론은 바란, 프랭크, 엠마뉴엘, 카르도스, 산토스, 이집트의 아민 등에 의해 주로 제국주의의 영향 하에 있는 국가의 저발전과 후진성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것을 탈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종속이론은 브라질, 우루과이, 칠레, 멕시코, 파라과이, 과테말라,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 대부분의 남미(라틴 아메리카)를 지배하고 있던 미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이들 국가의 변혁과 독자적 발전을 모색했다. 특히 종속이론은 남미의 후진성을 극복하고 근대화하기 위해서는 미제국주의 자본의 남미 진출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확산모델’에 반대했다.

확산모델은 한 마디로 말하면 제국주의의 지배가 봉건제를 극복하게 하고 자본주의 발전을 가져오게 했다는 ‘제국주의 근대화론’이다. 이 ‘제국주의 근대화론’은 조선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미화하는 제국주의 지배계급의 논리이다. 이 제국주의 논리에 반대하여 종속이론은 남미는 오히려 제국주의 자본이 지배하기 때문에 저발전과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민중의 수탈과 빈곤이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종속이론은 과거와 같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가 사라진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미제국주의의 남미 국가 지배에 맞서기 위한 반제국주의 이론으로 출발했다. 종속이론의 권위자라고 하는 산토스는 종속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했다.


“종속은 특정한 국가집단이 다른 경제의 발전과 확산에 의해 제약받는 경제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모든 경우 종속의 기본 상황은 종속국가를 후진의 상황에, 그리고 지배국가의 착취 하에 두는 세계적 상황을 초래한다. 지배국가는 종속국가에 대해 기술, 상업, 자본자원, 사회.정치적인 우월성을 가진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착취의 상황을 만들고 국내에서 생산된 잉여의 일부를 빼앗아가게끔 한다”(염홍철, ‘제3세계와 종속이론’, p.61에서 재인용).
  

이렇게 종속이론은 제국주의 특히 미제국주의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제국주의 지배를 탈피하기 위한 모색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에 대한 신식민지적 제국주의 지배와 그것의 결과로 종속이 강력하게 존재하지만 현재의 종속이론은 그것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혁명적인 실천전망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맑스와 레닌의 경우에는 종속이론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자본주의 또는 제국주의의 지배는 지배받는 국가의 자본주의 발전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에서 극히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얻은 곳에서는, 모든 봉건적, 가부장제적, 목가적 관계들을 파괴하였다. ... 자신의 생산물의 판로를 부단히 확장하려는 욕구는 부르주아지를 전지구상으로 내몬다. 부르주아지는 도처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고, 도처에서 정착하여야 하고, 도차에서 연계를 맺어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세계 시장을 개발을 통해서 모든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켰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 도구들의 급속한 개선과 한없이 편리해진 교통에 의하여 모든 민족들을, 가장 미개한 민족들까지도 문명 속으로 끌어넣는다....한 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맑스.엥겔스, 「공산주의자당 선언」, 『저작 선집 1권』, p.402-404).


맑스에게 있어서 자본의 지배가 자본주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기계제 대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자본의 자본진출을 의미했다. 따라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남미에 대한 지배는 산업자본의 지배와는 다른 상업무역 시대였기 때문에 남미에서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봉건적 생산양식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던 것이다. 레닌도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는 식민지 국가에 저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자본수출은 그것을 수입하는 나라의 자본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며, 그 발전을 크게 가속화시킨다. 그러므로 자본수출이 자본수출국의 발전을 어느 정도 정체시키는 경향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동시에 전세계에 걸친 자본주의의 발전을 더욱 확대.심화하는 것이다”(레닌, 「제국주의론」, 남상일 옮김, p.96).


그러면 맑스와 레닌의 이론은 남미를 지배하고자 하는 ‘확산이론’ 같은 제국주의 ‘근대화’ 이론과 같다는 말인가? 맑스와 레닌이 자본주의의 진보성을 승인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을 변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영국의 인도지배가 인도의 낡은 봉건적 관계를 파괴했지만 그것의 정치적, 계급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이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은 인민대중을 해방시키지도 못할 것이고 그들의 사회적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이러한 해방과 개선은 생산력의 발전 여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생산력들이 인민의 것으로 되느냐 않느냐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들이 틀림없이 하게 될 일은 이 해방과 개선을 위한 물질적 전제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부르주아지가 이 이상을 일을 한 적이 있는가? 부르주아지가 개인과 민족 전체를 몽땅 피와 진흙, 비참과 타락 속으로 끌고 가지 않고서 진보를 이룩한 적이 있는가?(맑스, 영국의 인도 지배의 결과, 선집2권, 박종철출판사, p.424).
  

맑스는 영국 자본주의의 인도에 대한 지배가 인도의 봉건제의 경제관계와 신분제적 전통, 관습을 무너뜨렸지만 그것은 오직 착취와 억압으로 인도 인민이 일방적으로 고통당하고 희생당한 결과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의 해방은 과거의 봉건제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인도 지배가 낳은 변화를 이용해서 인도 인민이 영국 지배자를 무너뜨리는 혁명을 수행하는 것밖에 없다. 영국의 인도 지배는 인도 인민으로 하여금 해방의 물질적 토대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영국 자본가들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단지 이 점에서만 진보적인 것이다.

한 번 더 자본주의의 발전과 성장이 노동자계급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맑스의 말을 빌려보자!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사회적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모든 방법은 개별 노동자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다. ... 이 법칙은 자본의 축적에 대응한 빈곤의 축적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한 쪽 끝의 부의 축적은 동시에 반대 편 끝[즉 자기 자신의 생산물을 자본으로 생산하는 노동자계급의 측]의 빈궁.노동의 고통.노예상태.무지.야만화.도덕적 타락의 축적이다”(맑스, 자본론, 1하, 김수행 역, p.880-881).  

레닌도 맑스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에 대하여 폭로하고 식민지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 억압에 맞서 투쟁했다.


“이제 자본주의는 한 줌의 ‘선진’국이 지구상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식민지적으로 억압하고 금융적으로 교살하는 하나의 세계체제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 ‘전리품’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무장한 2-3명의 강력한 세계적 강도들(미국, 영국, 일본) 사이에서 분배되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전리품의 분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자신들의 전쟁 속으로 전세계를 끌어들이고 있다”(레닌, 제국주의론 불어판과 독일어판 서문,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p.33).


이렇게 자명한 원칙을 길게 반복하는 것은 자본주의 발전, 성장의 문제에 대해 남미의 종속이론이나 한국의 신식민지론자들이 맑스와 레닌의 주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종속론자들의 모든 오류의 본질이 있다.

미제국주의 지배가 가져온 자본주의 발전의 계급적 의미  

종속론자들의 주장과 다르게 남미 저발전의 주된 원인은 미제국주의의 지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미제국주의의 지배에 따른 발전 -물론 그것의 성격은 약탈적이지만- 에도 불구하고 봉건제적 토지관계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가장 먼저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지주-소작관계 같은 봉건적 소유관계가 철폐돼야 한다. 남미의 대토지 소유는 자본주의 발전에서 반드시 필요한 대규모 노동력의 공급을 가로막았다. 토지를 박탈당하고 도시로 이주해서 값싼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는 대규모 노동자계급의 창출이 없었기 때문에 남미의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던 것이다.

남미 사회를 이중사회라고 분석하기도 하는 것은 공업의 발전과 대비하여 농촌의 봉건제적 토지관계의 존속으로 인한 불균등한 발전의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제국주의의 농업 독점자본을 중심으로 전 세계 농업 독점자본이 농업에 대한 진출을 강화하면서 남미의 농업도 자본주의적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남미에는 지주에 의한 대토지 소유가 존속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농업에도 대규모 기계화가 조금씩 진척되면서 농업 생산물에 대한 수출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길게 인용했던 것처럼 미국 독점자본의 남미에 대한 지배가 남미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가져왔지만 그것이 남미 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의 빈곤과 억압을 청산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미제국주의 독점자본의 지배는 남미 인민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와 수탈, 억압, 광범위한 빈곤을 낳았을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발전이냐 저발전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과 성장이 무엇을 가져 오느냐는 발전과 성장의 계급적 의미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종속이론가들은 저발전과 후진성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남미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 하고 있고, 설사 발전한다 하더라도 ‘저발전의 발전’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종속이론가들은 발전과 성장의 계급적 의미가 착취와 억압의 증대이고 이것이 노동자계급과 인민해방의 물질적 조건을 강화시킨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직 저발전에서 모순을 찾고 있다. 그렇다면 역으로 미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하여 국내 민족자본에 의해 독자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추구한다면 이러한 모순은 사라질 것인가?  

물론 프랭크 같은 급진적 종속이론가들은 남미의 부르주아는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독립하여 독자적인 발전을 이룩할 능력이 없는 ‘룸펜 부르주아지’, ‘매판 부르주아지’에 불과하기 때문에 쿠바 같은 사회주의 변혁만이 남미의 저발전과 후진성을 극복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역시 자본주의 발전과 성장에 대한 계급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비과학적인 이론이고, 남미에서 자본주의가 실제로 발전한다면 그 변혁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종속이론에 대해 제국주의 독점에 맞서 민족 부르주아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론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종속이론의 특정 테제는 역내 지배계급이 자기들의 손실은 제국주의에 의해 강요된 불리한 교역조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바에 대한 관심의 반영으로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민족주의적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의 성격이기도 하다. 국제경제관계를 그와 같이 해석함으로써 종속이론가들은(알게 모르게) 독점자본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역내 자본가들의 이론적 대변인이 되어 버린다. 종속이론가들은 역내 지배계급들이 그들의 상품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지 못함으로써 겪고 있는 현상을 이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카아로스 존슨, 「종속이론, 그리고 자본주의.사회주의의 제과정」, 『종속이론과 정통마르크스주의』, 한울, p. 120).  
    
존슨은 종속이론이 제국주의 독점자본 대 경쟁적 국내자본 간의 모순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비판은 민족 부르주아지가 실제 남미의 독자적 발전을 추구하면서 종속이론을 차용했고, 종속이론가들 중 다수가 변혁보다는 자국의 발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부분 사실과 맞아 떨어진다. 그렇지만 남미의 미제국주의에 대한 종속이 내부의 계급모순과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종속이론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온전한 비판이라고 할 수 없다. 자칫하면 이러한 주장은 국내의 계급문제를 강조하다가 제국주의 모순을 간과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1961년-1968년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 자본의 순 유입은 115억 달러였던 반면에 이 자본에 대한 순 지불은 145억 달러로 증가했다. 즉 단지 이 시기 동안에만 30억 달러의 탈자본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1960년대에 45억 달러로 증가한, 파나마 운하 점령을 통한 식민지적 수익(이 임차지를 유지함으로써 미국 경제에 절감된 비용)과 같은 경제적 잉여의 흡수 형태는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그(편집자 주-미국)의 식민지적 법령에 따라 라틴아메리카의의 공식적 통계에 나타날 권리조차 없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실행된 강탈도 계산되지 않았다”(아구스틴 쿠에바, 「라틴아메리카 자본주의 발달사」, 김기현 역, 지식을 만드는 지식 고전선집, p.67).

실제 라틴 아메리카의 제조업 부문에 진출한 미제국주의의 독점자본은 1950년에 259개, 1955년에 357개, 1960년에는 612개, 5년 후에는 888개나 되었다. 투자된 미국 자본은 1950년 7억 8천만 달러에서 65년 27억 4천백만 달러로 급증했다. 미국 은행도 55년에는 남미의 10개국에 진출했다가 67년에는 22개 국으로 늘어나고 이 기간에 은행 지점의 수도 134개로 증가했다. 이로써 미국자본은 광물과 석유 같은 천연자원에 대한 수탈과 더불어 이익금, 로열티, 기술 서비스 등의 명목으로 1959년-1964년 사이에 1억 6440억 달러나 빼앗아 갔다. 남미의 노동자들은 이 과정에서 미제국주의 독점자본에게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착취를 당해야 했다(같은 책, p64-70의 수치 인용).

이러한 미제국주의에 의한 착취와 수탈은 완화되기는커녕 것이 아니라 지금은 더욱 더 가혹하고 극심해지고 있다.


“1960년에서 1980년 사이에 라틴 아메리카에서 1인당 소득은 82% 증대한 반면에, 그 다음 20년 동안에는 단지 9%만 증대했고, 마지막 5년 동안에는 단지 1%만 증대했다.
단 10년 동안에 빈곤자의 수는 1천4백만 명이나 증대했다.
1990년에서 2002년까지 미국의 은행과 초국적기업들은 라틴 아메리카로부터 1조 달러를 이익금, 이자, 로열티로 송금했다.
1990년대에 1,780억 달러 이상의 국유기업이 사유화되었는데, 이는 쏘련 붕괴 후 러시아에서 사유화된 가치의 20배가 넘는 액수이다”(채만수,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 ― 그 배경과 경과, 성격, 그리고 전망」,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정세와 노동』 제15호).
  

이렇게 여전히 남미 국가에서의 계급모순은 제국주의의 지배와 여기에 결탁한 내부 독점자본, 토지귀족의 지배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남미는 여전히 미국 제국주의에 의한 신식민지적 수탈과 착취가 강화되고 있고 이들 국가들은 미국 제국주의에 종속되어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이러한 상황은 남미 자본주의의 발전의 결과인 것이지 종속이론에서 주장하듯이 결코 저발전과 후진성의 결과가 아니다. 남미의 기형적 성장이라는 것은 ‘저발전의 발전’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대립, 산업과 산업의 불균형, 자본에 의한 부의 증대와 대다수 민중의 빈곤의 증대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발전의 고유한 모습이 남미의 특수성 속에 표현된 것이다. 맑스주의의 입장에서 종속이론을 비판하는 쿠에바는 이를 이렇게 말한다.


“역시 어떤 자본주의 과정도 사회적으로 조화롭고 경제적으로 동질적인 발전이라고 할 수 없다. 반대로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것은 시간적이고(반복적인 위기에 다른 순환적 움직임) 공간적인(도시와 농촌,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대조) 불평등으로부터 부의 분배와 사회적 복지에서 매번 더 커지는 불평등까지 포함하면서, 모든 수준에서 나타나는 모순에 의해 결정되는 총체적 발전에 불과하다. 여기서도 라틴 아메리카도 예외가 아니다. 쿠바를 제외하고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에는 자본주의 생산 양식 운동을 지배하는 법칙이 모두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종속이라는 역사적 상황은 다만 그러한 법칙의 엄격함을 보다 강조했을 뿐이다. 따라서 ‘저개발’이라는 문제는 단지 자본주의 모순적 발전의 기형적 표현에 불과하다”(아구스틴 쿠에바,  같은 책, p107-108).
  

맑스에게 있어서도 민족해방의 문제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라는 계급모순의 해결과 결코 분리되지 않았다.  


민족들이 현실적으로 단결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해가 공통의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들의 이해가 공통적일 수 있기 위해서는 현재의 소유관계들이 폐지되어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현재의 소유관계들이 민족들 상호간의 착취를 조건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 현재의 소유 관계들을 폐지하는 것, 그것은 오직 노동 계급만의 이해입니다. 그들만이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동시에, 오늘날 다양한 민족들을 적대적으로 서로 대립시키는 국민적, 산업적 분쟁들에 대한 승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부르주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동시에 모든 피억압 국민들의 해방의 신호이기도 한 것입니다(맑스, 「폴란드에 대한 연설들」, 『전집1권』, 박종철출판사, p.340).


결국 문제는 종속 대 종속탈피의 문제, 저발전과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근본모순의 원인인 소유관계, 착취관계를 어떻게 철폐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억압받는 민족의 해방문제도 착취를 철폐하는 계급모순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2) 한국의 종속이론과 신식민지 노선의 문제  

한국의 종속이론과 신식민지 노선은 남미 종속이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다만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과 한국내전, 그것의 결과로 만들어진 북의 사회주의와 남의 자본주의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라는 분단의 문제, 일본 제국주의를 대신한 미제국주의 반공의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이라는 특수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종속과 저발전에서 모순을 발견하는 종속이론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종속이론도 종속의 심화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찾으려고 한다. 남미의 종속론자들이 남미의 자본주의 발전에 직면해서는 그것이 ‘저발전의 발전’이라고 한 것처럼 한국의 신식민지 노선과 종속이론은 “독점의 강화가 종속의 심화에 의해 조건 지어진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신식민지론자들은 종속의 심화를 말하면서도 한국 자본주의를 독점자본주의 단계라고 인정한다는 점이다.

신식민지 노선은 종속을 근거로 제국주의 지배를 설명하지만 종속 그 자체를 곧 신식민지 규정과 동일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에 다양한 방식으로 종속되어 있지만 신식민지 국가가 아닌 경우도 있다. 레닌은「제국주의론 노트」에서 “국가적 종속의 여러 가지 과도적 형태”를 언급하면서 금융적, 외교적 종속 등 종속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다뤘다. 레닌은 이에 따라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에 대해서는 금융적 종속 국가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식민지나 반식민지를 거느린 제국주의 지배 국가로 분류하는 러시아의 예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신식민지 이론이나 종속이론은 이러한 지배와 종속의 유형을 중심부와 주변부로 단순화 시키고 있다. 이러한 단순화 때문에 제국주의는 아니지만 고도로 자본주의 발전이 이뤄진 즉,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금융적으로 종속되어 있지만 저개발 국가에 대해서는 자본수출을 하는 등 제국주의에 준하는 모습을 보이는 국가의 복잡 다양한 현실을 포착하지 못하며 변화무쌍한 현실을 도식에 맞추는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식민지 지배 시대와 달리 현대의 제국주의 지배는 어떻게 다른가? 종속론자와 신식민지론자들은 제국주의 지배와 종속을 강조하지만 오히려 제국주의 지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신식민지 ‘간접’ 지배의 문제

식민지나 반식민지에 대한 제국주의 지배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식민지 노동력, 원료에 대한 수탈과 착취를 강화하고 시장확대를 강화하여 자국 독점자본의 이해에 복무하기 위해 이뤄진다. 그러므로 주된 지배방식이 변화했다고 식민지를 통해 제국주의 독점자본이 얻고자 하는 목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에 대한 영토적 지배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국가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통해 가장 많은 이윤을 뽑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배의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식민지 지배는 식민지 국가 내부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저항을 낳기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가 안정적이지 못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국가는 효과적인 지배를 위해서 동시에 엄청난 군사적 비용과 인명의 손실(지배받는 국가의 노동자 민중의 고통과 억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에서 신식민지적 지배로 지배방식을 다양화 한 원인은 쏘련의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지원도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영토적 지배를 하는 제국주의를 제치고 자신의 새로운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 변화한 측면도 존재한다.

식민지 시대의 영토적, 군사적 지배에서는 중국과 같은 반식민지 국가처럼 제국주의 국가 간, 자본 간 각축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으나 제국주의 국가의 단독지배가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 간 힘의 역관계가 변화하면 기존 식민지를 재분할하기 위한 제국주의 국가 간의 투쟁이 격렬하게 벌어졌고 이것이 제국주의 전쟁을 낳게 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변화된 신식민지 지배에서는 제국주의 국가 간의 공동착취가 이뤄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공동착취는 동등하게 안정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 간 힘의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국가에 의해서 지배적인 착취와 수탈이 이뤄진다. 이라크에서 미국 제국주의는 단독지배만으로 피지배 국가 인민들의 투쟁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 간 군사동맹의 형태로 공동의 지배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미제국주의는 지배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라크에서의 공동지배의 대가를 나누면서도 원유 등 원료자원에 대한 지배권과 정치적 지배권을 확립하고 있다.  

이렇게 제국주의 지배방식은 다양하게 변했지만 지배를 통해 제국주의 국가와 독점자본이 얻고자 하는 이익은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에 의한 지배와 종속이 이뤄진다고 해서 기존의 종속이론이나 신식민지 이론이 제국주의 지배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신식민지론자들과 남미의 종속이론은 현대 제국주의의 다양한 지배방식인 종속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왜곡하고 있다.

신식민지론자들은 제국주의에 의한 새로운 지배를 ‘간접 지배’라고 표현하고 있다. 현대 제국주의가 종속국가에 대해서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 간접지배를 주로 하고 있으나 그것 역시도 제국주의 국가의 군사적, 정치적 힘을 기초로 수행하고 있다. 또한 제국주의는 여전히 자신의 지배력이 위기에 처하거나 지배력을 독점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지배를 위한 영토침략이나 직접적인 정치적 지배를 서슴지 않는다. 또한 종속국가에 괴뢰정부를 세우거나 종속국 내부의 지배계급을 군사적, 정치적으로 직접 지원함으로써 지배를 강화하기도 한다. 제국주의는 종속국 인민에 대한 암살과 테러, 고문을 직접 감행하기도 하고, 쿠데타를 배후에서 조종하기도 한다.

미제국주의는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에 버금갈 정도로 군사침략과 종속국가에 대한 테러와 암살, 고문, 대량학살 등 추악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남미를 미제국주의 독점자본의 ‘뒷마당’으로 만든 것에는 생산력에서 우월한 독점자본의 발전도 있지만 그 뒤에는 미국 제국주의의 군사적 침공과 개입이 버티고 있었다. 미제국주의는 직접적인 군사적 침공뿐만 아니라 군사 파쇼적인 신식민지 국가의 지배계급을 군사적, 정치적으로 후원해서 제국주의의 이해를 도모하기도 했다.

미제국주의는 1960년대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 반도와 1983년 그레나다에 대한 직접적 군사침략과 더불어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 전역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 전역, 아프리카 등 세계 전역에서 군사정권에 대한 무기공급과 군사훈련 장교파병, 정보부대 창설 등 직간접적 지원을 통해 수백만 이상의 공산주의자, 노동운동가, 민주화 인사에 대한 테러와 학살 등 유혈적 폭력을 자행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군사 파시스트 정권의 지배가 확립되면 미국 독점자본은 그 지원에 대한 대가로 엄청난 특혜와 자본진출을 통해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이러한 지배가 여의치 않으면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 보듯 직접적인 침략과 영토에 대한 장악도 서슴지 않고 자행하고 있다. 다만 미제국주의는 베트남에서의 군사침공이 패배로 돌아가고 이후 그레나다에 대한 침공에서 보듯 안정적인 친미정권이 세워지자 군대를 철수하여 신식민지적 지배를 하게 되었다. 미국은 원조, 차관 등의 명분으로 자본수출을 하여 원료자원에 대한 수탈과 기업지배 등 독점자본의 지배확립을 도모하기도 한다. 이러한 미제국주의의 침략만행의 역사와 지배를 단지 ‘간접지배’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지배방식의 다양화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신식민지 지배 종속의 불변의 문제

종속이론의 오류는 저발전의 문제를 영구적인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실제 프랭크나 산토스 같은 급진 종속이론가들은 라틴 아메리카가 ‘종속의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의 식민지지배는 식민지 국가 내에서의 급속한 자본주의 발전을 이뤄지게 한다. 이점은 신식민지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식민지, 반식민지 보다 신식민지 지배에서는 신식민지 국가 내부 자본의 성장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종속이론의 가장 큰 오류는 지배와 피지배의 일방적인 관계로만 보면서 종속국가 내부의 발전이나 힘의 변화를 무시한다 점, 이로써 지배가 불변의 영구적인 것, 저발전을 항상적인 것으로 규정하면서 지배관계가 변화하거나 심지어 역전할 수도 있다는 점을 무시한다는 점에 있다.

경쟁과 불균등 발전은 제국주의 국가 내부에서도 이뤄지지만 저발전한 국가 내부에서도 이뤄진다. 독점자본 내부의 경쟁, 독점자본과 비독점자본 간의 경쟁, 비독점자본 내부의 경쟁 속에서 불균등한 발전이 이뤄지듯이 국가 간의 문제에서도 불균등 발전 법칙이 적용된다. 이것은 제국주의는 영원히 제국주의 국가이고, 비제국주의 국가는 언제나 비제국주의 국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식민지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제국주의 지배는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지배의 경향과 지배에 저항하는 투쟁의 경향의 상호투쟁 속에서 관철된다. 지배의 경향이 강화되면 억압과 예속이 강화되고 민족해방투쟁이 강화되면 해방의 가능성이 열린다. 불균등 발전의 가장 극명한 예로 한국, 대만, 싱가폴 등 신흥 개발국가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최근에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브릭스 국가들(BRICs)의 자본주의 발전의 사례도 있다.

기존의 종속이론, 신식민지 이론은 이런 저개발 국가에서의 자본주의의 발전에 대해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종속이론은 물론 ‘저발전의 발전’이라고 이들 국가 내부에서의 발전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지만 ‘축적 강화, 종속심화’론에서 보듯 이러한 발전이 기형적이고 비정상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선발자는 기술투자에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지만 후발자는 손쉽게 선발자의 기술을 습득해서 선발자를 뒤따라갈 수 있다. 이러한 후발자의 이득이 이들 후발 국가의 자본주의 고도발전을 가능하게 한 측면이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가가 후발자의 이득을 취해 고도의 자본주의 발전을 이룩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남미국가나 중동,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국가, 새롭게 제국주의의 지배 하로 편입된 동유럽 대부분 국가에 대한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등의 제국주의 지배는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미제국주의의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 하에 놓여 있다. 그러나 종속의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과 독점자본의 독자적 발전이 가로막히고,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예속의 조건 속에서 기형적으로 발전한다며 신식민지로 지배적인 사회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일본의 공산당도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 이후에 미국의 점령상태로 들어가고 여전히 미군이 진주하면서 군사적, 정치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종속탈피와 독립의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렇게 종속의 측면을 전면적인 사회성격으로 규정한 결과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 미국의 속국 즉, 신식민지 국가가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은 일본 공산당이 일본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국가와의 정면대결을 포기하는 개량주의와 협조주의의 길을 가는 한 원인이 되었다.

한국은 미국제국주의의 강력한 영향력 하에서 군사적, 정치적 종속의 측면이 유지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에서 한국내부의 주도성이 발휘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국가권력은 노동자 인민에게 직접적인 억압과 탄압을 가하는 억압의 도구가 된 것이다. 물론 군사적으로는 주한미군의 주둔과 군사동맹의 형태로 여전히 종속성이 강한데 이것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파병을 하도록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하위 동맹자로서의 파병 속에서도 지배계급은 이라크나 중동에서 건설수주나 원유개발 참여 등으로 자국 자본의 이해를 부분적으로 관철시키기도 한다.

신식민지 이론과 종속이론은 자국의 독점자본과 국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내의 계급모순과 국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종속탈피와 신식민지적 착취구조의 폐절이라는 모호한 변혁의 상을 제시하고 있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신식민지 이론은  제국주의 반대를 내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종속심화와 종속약화, 그 쌍생의 문제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은 종속에 의한 자본주의 발전의 저해가 아니라 오히려 종속이라는 상황에서 자본주의 발전을 이룩했다는 점에 있다.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말하는 종속심화나 종속약화론은 반대편에 있지만 종속을 주요 모순으로 본다는 점에서 쌍생아에 불과하다. 전자는 한국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발전했지만 축적의 강화가 종속의 심화로 연결되기 때문에 개량의 여지가 없는 것에서 모순이 심화되고 여기서 변혁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종속약화론자들은 한국 사회를 식민지로 보다가 나중에는 주변부 자본주의로 넘어 가고 다시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강조하면서 중진자본주의를 주장하게 되었다. 이들은 한국 자본주의의 종속이 약화되어서 개량의 여지가 생기고 모순이 약화된다는 이유로 변혁성을 포기했다. 종속약화를 주장하는 세력들 중 안병직과 그의 제자 이영훈은 일본 제국주의와 박정희정권의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악질적인 뉴라이트 집단의 극우 이론가로 변절하였다.

  
“안 교수는 1980년대 들어서면서 자신의 이론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국경제는 파탄이 아니라 오히려 급속히 성장한 것이다. 식민지 사회에서는 경제발전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그는 당황했다. 그러던 중, <역사평론(歷史評論)>에 실린 나카무라 사토루(中村 哲)의 「중진자본주의론」을 접한다. 안 교수는 제3세계에서도 자립적인 자본주의의 성립이 가능하다는 나카무라 교수의 주장에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일본에서 유학하며 제3세계 경제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 안병직의 역사관은 뿌리부터 달라졌다. 전향한 안 교수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흔쾌히 동의하지 못했다. ...이영훈 교수는 안 선생보다 먼저 사회주의운동가의 길을 벗어났다. ....지리산 산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봉고차 안에서 이영훈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으로 명성을 얻었던 당대 대표적 좌파지식인 박현채 선생에게 ‘저 도시의 불빛을 보십시오. 저것이 어떻게 신식민지입니까.’라며 도발했다. 박현채 선생은 격렬하게 화를 냈다. 독서 모임에 나오지 않는 동료가 걱정되어 찾아갔을 때, '자본론'도 읽지 않은 사람과는 토론할 수 없다는 말에 이영훈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뉴데일리 2009. 5.4, 안병직과 이영훈의 깊고 폭넓은 대화).


이것은 변절자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유전자의 문제도 있지만 사회성격 문제에 대한 오류와 왜곡이 학문적으로 성실하다고 평가받는 학자를 반동 모리배로 변절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영훈은 도시의 불빛 즉 자본주의의 발전에 압도당해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와 박정희 군사 독재가 자본주의 발전을 가져 왔다고 보기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와 박정희 독재를 찬양하는 뉴라이트로 변절한 것이다. 그러나 이영훈은 자신이 봤던 도시의 빛나는 불빛에 취해 그 불빛 아래에서 심야노동과 야간노동으로 착취당하는 노동자 착취의 현실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다. “‘자본론’도 읽지 않은 사람”인 이영훈은 자본론의 과학적 인식 없이 사회성격 논쟁을 해왔던 것이다.

이는 이글 전체의 초반부에서 말한 것처럼 안병직과 이영훈 정도로 반동으로 변절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사회를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보다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현실 앞에서 글로벌 대자본 운운하며 민족주의적 변혁성마저도 상실하는 민경우의 사례와도 같다.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은 이러한 경로를 밟지 않고 신식민지 독점자본주의를 자처했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개량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변혁의 가능성을 포기했다. 물론 인민노련의 변절은 쏘련 사회주의의 붕괴의 영향도 있지만 사회성격에 대한 잘못된 관점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종속심화론자나 약화론자 모두 종속을 모순의 주요 형태로 보고 있고, 자본주의 발전과 성장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계급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종속심화론자들은 종속의 심화를 통해서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을 증명하려고 집요하게 노력한다. 반면에 종속약화론자들은 종속의 약화를 통해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종속심화론자들은 한국이 독점자본주의 발전을 이루고 있지만 미, 일 제국주의 자본에 여전히 기술종속이 되어 있어서 수출의 증대가 수입의 증대를 부르고 연구개발 등 기술적 발전을 위한 노력이 단지 모방에 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동남아 등지에 일부 자본수출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제국주의의 자본수출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종속약화론자들은 연구 투자비의 증가로 인한 기술혁신 노력으로 기술자립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들어서 종속약화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자본수출의 증가도 종속약화의 근거로 들고 있다.

종속심화론자들은 종속을 지배와 지배당하는 측면에서만 바라보고 이것이 자본의 국제화, 세계 자본주의와 한국 자본주의의 연관을 심화시키는 또 다른 측면에서 한국 자본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종속약화론자들은 한국자본주의가 종속을 탈피함으로써 자립적 발전을 이룩하는 것으로 말하는데 자립적 발전 역시 독자적 발전이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와의 연관이 깊어지는 가운데서의 발전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대외 의존성이야말로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원동력인 동시에 한국 자본주의 취약성의 표현인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미일 제국주의에 대한 대외 의존성은 최근에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높이면서 다변화되고 있다.

종속은 자본주의 국가 간, 자본 간 수평적인 연관의 심화와 지배와 종속이라는 수직적 관계 형성이라는 이중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점은 미제국주의나 최근에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미제국주의 역시 세계 자본주의와의 관련을 강화하고 있고, 중국 역시 자본주의에 대한 편입을 강화하면서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대외의존성으로 볼 때 미국이나 중국도 세계 자본주의와 깊게 관련을 맺고 있다.

9월말 현재 한국은행이 보유한 외환 보유액은 2542억5000만 달러인데 이 가운데 64.5%(2008년 말 기준)가 달러 표시 자산이다. 한국은행이 보유한 달러는 대부분 미국 국채와 우량 회사채인데 한국은행이 이 보유자산을 매각한다면 미국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미채권 보유국으로 08년 11월말 기준으로 6819억 달러 규모인데 중국이 만약 미국 채권을 매각한다면 미국 경제는 사실상 마비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자본주의는 중국에 종속되어 있다는 말인가? 역설적으로 지배와 종속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기존의 종속이론에 의하면 미국은 중국의 속국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종속을 지배와 종속뿐만 아니라 상호관련의 측면에서 동시에 볼 때 미국의 세계 자본주의와의 깊은 관련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미제국주의는 세계자본주의에 깊게 연관되어 있지만 이 연관성은 동일한 수준에서가 아니라 지배와 종속, 이 종속관계를 역전시키기 위한 상호투쟁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점에서 미국의 지배적 위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영원히 지배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종속심화냐 약화냐의 논란은 애초부터 저발전과 발전이라는 잘못된 논점을 잡았다. 종속을 둘러싼 논쟁은 저발전과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위기의 심화냐 약화냐, 착취의 강화냐 약화냐의 관점으로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

맑스는 토지소유자가 토지소유의 독점을 통해 직접적 생산자들의 잉여노동을 먼저 취득하느냐 자본가들이 잉여노동을 취득하고 이것의 일부가 지대로 제공되느냐에 따라서 봉건사회와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했다. 한국사회에서 잉여노동의 직접적인 취득자는 토지 소유자가 아니라 독점자본이다. 그것도 한국의 독점자본이다. 이점에서 한국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고 그것도 신식민지를 벗어난 독점자본주의이다. 한국의 자본가 국가는 한국의 독점자본에 종속된 국가 독점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기존의 종속이론에서는 지배와 종속이 마치 자본주의의 경제법칙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종속심화냐 종속약화냐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영구불변의 법칙이 아니라 자본축적의 조건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대중의 빈곤과 수탈과 착취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자본축적의 법칙이야말로 말 그대로 자본주의 법칙인 것이다. 한국자본주의는 종속의 심화나 종속의 약화에 따라서 위기가 심화되거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독점자본주의의 발전에 의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 때문에 위기가 만들어지고 여기에서 변혁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자본주의는 물론이고 세계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모순에 의해서 전 세계적 공황을 맞고 있다. 이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 자본주의는 물론이고 전 세계 국가들은 노동자 민중에 대한 억압과 수탈을 강화하고 있다. 이것이 또한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 민중의 격렬한 저항을 낳고 있다. 종속에서 위기가 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양식 그 자체에서 위기가 오는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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