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정치신문 전국노동자대회 특별호]
2004.11.13
적들의 살인적인 탄압을 뚫고 전진하라!
전투적 노동계급이여!!
1. 사회적합의주의(노사정협조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자본과 정권은 민주노총의 총파업 계획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미친 듯이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15일 총파업 돌입을 앞두고 공무원 노조는 사무실이 침탈당하고 파업찬반 투표가 공권력의 무단적 폭력으로 가로막히고 있다. 이미 핵심 노조간부들에게는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몇 명 동지들은 구속되었다. 공무원 노동자들은 노동3권은 고사하고 집회 참석 자체에 구속을 각오해야할 만큼 살벌한 탄압을 당하고 있다.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이 전개되던 2001년 계엄령 하의 ‘부평’이 전국 곳곳에서 재연되고 있다. 복귀 이후 징계, 구속, 조합원 개별면담, 반성문, 서약서 등 무단적 탄압을 강요하던 자본은 LG정유노조 내의 어용들과 손잡고 민주노총 탈퇴를 이끌어내고는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선택”이라면서 총파업 약화의 선전도구로 악용하고 있다. 청주의 버스 사업장인 우진교통에는 공권력이 투입되었다. 남한 자본주의의 가장 낮은 곳에서 투쟁하고 있는 장애인이동권연대 동지들의 천막농성장은 무자비하게 짓밟히고 있으며, 정권과 건설자본의 비호 하에 용역깡패들에게 강제철거당한 노동자들은 도륙당하고 있다. 정권은 또한 지난 8월 17일 기만적인 고용허가제 실시와 더불어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예사냥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반한 테러단체로 몰아가고 있다.
노동운동 진영의 일방적 백기투항과 타협양보로 상반기 투쟁전선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한 자본과 정권은 민주노총의 총파업 계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개악된 내용으로 11월 2일 국무회의에서 노동법 개악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도 경총은 “향후 국회에서는 기간제․파견제 차별구제 절차, 기간제 근로자 해고제한, 파견제 근로자 직접고용의무, 파견제 휴지기간 도입 등 고용의 경직성을 심화시키는 규정은 반드시 삭제되어야 할 것이다”라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5일 산업자원부와 한국생산성 본부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에 비해 제조업 노동생산성은 1분기 14.6% 증가에 이어 2분기에도 14.2%나 증가했다. 반면에 노동투입량은 줄어들면서 인력은 축소되고 노동 강도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런데도 500인 이상 대기업의 임금상승은 500인 미만 중소기업들의 임금상승률보다 낮은 3.8%에 그쳤다. 자본의 ‘고임금론’ 공격에 위축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기업의 낮은 임금인상률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한테 돌아가지도 않았다. 대기업의 임금인상률 둔화는 오직 자본의 새로운 공격의 빌미만 되었을 뿐이다. 이로 인해 상위 자본가들과 압도적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의 격차를 나타내는 소득 분배율은 더욱 양극화되고 있다.
자본과 정권이 그토록 떠들어 대던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명분으로 한 사회적합의주의(노사정협조주의)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개량주의자들은 “정부의 이번 비정규직 법안은 사회적 타협의 가치를 걷어차 버리는 행동이었다”면서 “아직, 사회적 대타협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라고 말하고 있다. 노사정 협조주의주의자들은 여전히 사회적합의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정부의 선처를 애원하지만 자본과 정권의 무차별적인 공세야말로 사회적합의주의의 적나라한 실체다.
2. 개악안 상임위 상정만을 쳐다보고 있을 것인가?
민주노총 총력투쟁본부 1차 회의(중집회의)에서는 노무현정권과 자본의 야만적인 살인탄압이 자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유리한 정세를 활용하여 10월 26일부터 11월 노동자대회 직전까지를 대정부 집중교섭기간으로 설정한다. 총파업 돌입 직전까지 성과를 최대한 확보한다. 총연맹 차원의 교섭을 중심으로 사안별 교섭을 병행한다”고 교섭전략을 세우고 있다. 지금도 이 기조는 변화하지 않고 있다. 지금이 과연 “가장 교섭력이 높은 시점”인가? 지금은 평화적 집중교섭기간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자근자근 짓밟히고 있는 적들의 전면적 탄압의 시기이다.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가 현장을 순회하고 단위노조와 현장 활동가들이 출근투쟁과 개악안에 대한 대대적인 선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사별 투표결과를 공개하지 못할 정도로 현장은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파업의 힘을 강화하고 노동자민주주의의 강력한 수단이었던 찬반투표는 지금은 우리의 미약한 힘을 적들에게 노출시키는 치부로 전락해 있다.
“총파업하지 못하면 다 죽는다”고 노조간부와 활동가들이 목소리를 높여도 아직까지 현장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분노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러나 분노가 집단적 힘으로 모아지지 않으면 “비정규직 개악안이 통과되면 고용이 불안해지지만 당장은 정리해고가 아니니 다행이다”라는 체념과 상실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반기 투쟁의 패배로 인해 현장이 붕괴되고 노조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상실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견법이 통과되면 정규직이 비정규직이 된다던데 어차피 우리 비정규직이야 잃을 것도 없는 신세고 정규직이 비정규직 되면 차별은 없어지겠네!”라는 냉소주의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우리는 ‘노동법 개악안 상임위 상정 시 총파업’이라는 대의원대회에서의 결정사항을 기다리며 움츠려 있어서는 안된다. 최근 총리의 사과와 한나라당의 등원 결정으로 국회가 정상화 되면서 파견법 개악안 상임위 상정 일정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다만 정권이 개악안 상정 시점을 잡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변수는 공무원노조의 투쟁이다. 정권은 공무원노조의 투쟁과 파견법 개악 반대 투쟁이 하나로 맞물려 거대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물리력을 총동원해서 속전속결로 공무원노조의 투쟁을 박살낸 이후에 그 여세를 몰아 파견법을 개악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까지 투쟁의 주력대오라 할 수 있는 공무원 노조의 15일 총파업 투쟁이 고립, 섬멸 당하고 나면 또 다시 패배주의를 안고 맨 땅에서 총파업 전선을 쳐야 한다.
우리는 지난 매각 반대, 민영화 반대 투쟁에서 동일한 오류를 범했다. 자본과 정권은 매각과 민영화 이전에 이미 단협 개악, 희망퇴직, 외주화 등 내부 구조조정을 통해 현장을 치고 들어왔다. 그런데 투쟁시점을 매각과 민영화 시점으로 맞춰놓으면 이미 구조조정은 절반 이상 진행되고 현장이 다 박살난 상황에서 총파업을 선언하게 된다. 그러니 싸움이 될 리가 없다.
현장 조직 상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동지들의 선도적인 열린우리당 점거농성을 중심으로 해서 지난 9월 21일 대의원대회에서는 만장일치로 총파업을 결의했다. 우리는 ‘상임위 상정 시 총파업’이라는 대의원대회의 결의를 형식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대대에서의 총파업 결의 정신은 파견법 개악에 맞서 정규직, 비정규직이 총단결하여 자본과 정권의 노동법 개악안 공세를 막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 민주노총 조직쟁의담당자회의에서는 정국의 유동성을 감안하여 ‘장기전’으로 “다양한 파업전술을 구사하여, 파업부담을 가능한 한 최소화하면서도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며 투쟁전선을 이완시키려 하고 있다.
‘상임위 상정 시 총파업’ 결의 당시의 적극적인 의의는 정세가 급변하고 요동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투쟁의 집중을 막고 자본과 정권의 고립, 분할, 타격이라는 고전적 공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 대기주의적 결의로 전락했다. 정권이 총파업 계획에도 불구하고 겁먹지 않고 공세를 취하는 이유는 하루짜리 총파업조차도 제대로 전개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무원노조의 투쟁을 실질적으로 엄호하고 투표결과 드러난 낮은 현장 동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노동자대회의 집결된 힘을 모아 거점농성, 잔업거부, 부분파업 등 공세적 파업전술을 구사하고 총파업 돌입 시점을 당겨야 한다.
3. 투쟁요구와 시기를 분산할 것인가?
철도, 화물, 택시 운수 공동투쟁은 공무원노조의 투쟁과 더불어 그 규모나 위력 등에서 총파업 투쟁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운수 공동투쟁에 있어서도 궤도 공동투쟁의 한계가 고스란히 답습되고 있다. 운수 3사는 지난 10월 16일 운수노동자 투쟁결의대회에서 공동투쟁을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공동교섭, 공동투쟁, 공동타결의 상과 원칙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고 있다. 11월 25일 총파업 돌입 일정도 공무원 노조의 투쟁과 분리되어 있다. 철도노조일각에서는 이미 외주화로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있는 데도 인력충원 시 상당수를 비정규직으로 충원한다는 철도청의 자구안에 대해서 수용할 의사를 비치기도 한다.
철도청의 외주화 공세와 비정규직 확대는 정권의 파견법 개악 공세의 연장선에 서 있다. 그런데 철도노조의 특단협에서의 요구는 운수 3사는 물론이고 전국적인 총파업 전선과 상당부분 독립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투쟁기조는 자칫 청의 자구안을 타협적으로 받아들이고 운수 3사 공투와 전국적 총파업 투쟁 전선에서 이탈케 하면서 ‘공동패배’로 전락시킬 수 있다. 운수 3사의 공동투쟁은 공무원 노조의 투쟁과 전국적 총파업투쟁과 긴밀하게 연결돼야 한다. 사립학교법 개정을 가지고 투쟁하고 있는 전교조의 경우에도 노동3권 쟁취라는 공무원노조의 투쟁과 하나의 요구로 결합돼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의 한일자유무역협정(FTA), 한미투자협정(BIT) 체결저지, 이라크파병 연장 동의안 저지와 비정규직 차별철폐, 국가보안법 폐지 등의 요구는 하나로 집중되지 못하고 병렬적으로 나열돼 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정권의 기만적인 4대개혁입법을 중심으로 반한나라당 전선 운운하면서 “열린우리당의 이중대가 되더라도 국가보안법 철폐 등 4대 개혁입법을 중심으로 열린우리당과 공조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파견법 개악을 강행하려고 하는 노무현 정권과 첨예하게 맞서지 않는 위장된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에의 동참은 정치사상과 조직결성의 자유를 쟁취하는데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견법 개악 반대 전선에 해악을 끼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총력투쟁본부에 제출된 민주노총 중앙 지도부의 정세인식도 4대 개혁입법의 반노동자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일면 타격, 일면 견인”하면서 정권과의 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싸고 미친개처럼 서로 물어뜯고 죽이지 못해 안달 나 있다. 이러한 지배계급 내부의 투쟁은 누가 어떠한 방식으로 자본의 입장을 잘 대변하는가를 둘러싼 대립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권은 수도이전 위헌판결로 고립된 상황을 돌파하고 자신이 더 잘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강력한 공세를 펼치고 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자본주의를 강화하고, 노동자를 죽이는 공동의 계급적 이해관계 앞에서는 적전분열을 멈추고 굳건하게 하나가 된다. 실제 그렇게 싸우던 두 당이 파견법 개악안 ‘연내 처리’에 대해서는 적극적 공조를 다짐하면서 ‘비판적 찬성에서 적극적 찬성’으로 단결하고 있다. 결국 노무현 정권이 부르짖는 ‘개혁과 민주주의’는 자본가들을 위해 노동자들을 죽이는 것이다.
자본과 정권은 파견법 개악을 완료하고 나면 숨쉴 틈을 주지 않고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파업권을 박탈하는 노사관계선진화방안(로드맵)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이 밖에 경제특구법에 이어 기업도시 건설, 규제완화가 기다리고 있다. 자본은 노동자 착취의 ‘해방구’를 특정지역에만 두는 게 아니라 특정 거점을 중심으로 확대시키고 있다. 자본에게 착취‘해방구’는 노동자에게는 고통스런 지옥이다.
지난 해 민주노총은 총파업투쟁으로 노동법 개악을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국회 앞 농성투쟁을 하다가 개악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총선에서 심판하자”, “현장에서 투쟁하자”고 했다. 그러나 개별 단사 투쟁에서는 대부분 자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특히 사회보험노조, 발전노조 등 공기업은 거의 다 개악안을 수용했다. 자본과 정권은 노동시간 단축을 빌미로 노동법을 개악하고 단사 내에서 단협을 공격했다. 사회보험노조, 발전노조 등 대부분의 공기업에서는 동절기 1시간 근무 연장으로 실질노동시간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자본은 또 다시 노사관계선진화방안(로드맵)으로 현장을 재차 치고 들어오려 하고 있다. 이러한 공세는 노동의 유연화와 노동운동 말살을 통해 자본의 ‘착취왕국’을 건설하려는 장기적 목표 아래 주도면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노동운동 진영은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사안별로 분리하여 대응하다가 각개격파 당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또 다시 대오를 갖추기도 전에 새로운 공격에 직면해있다.
자본은 일관된 기조를 가지고 치고 들어오는데 ‘총파업’을 미리 하루로 제한해서는 파견법 개악을 막을 수 없다. 물론 낮은 투표참가와 파업찬성을 볼 때 현장 동력이 떨어져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장동력은 고정되지 않고 항상 변화한다.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투쟁과 예측 못한 정세 변화에 따라 역동적으로 분출될 수 있다.
4.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이번 총파업 투쟁을 할 것인가? 당장은 임박한 파견법 개악을 막아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 자체로 목표는 아니다. 우리는 파견법 개악안을 막아내는 투쟁을 통해서 현장에서 불리한 계급역관계를 뒤엎어야 한다. 또한 자본이 조장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간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정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굳건하게 하나가 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인 임금과 복지를 하향평준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자본을 공격하여 노동조건을 상향평준화 시켜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당한 투쟁주체로 성장하여 정규직-비정규직의 단일한 계급투쟁의 대오를 형성하는 것이다.
김형기, 박승옥, 이병천 등 기회주의자들은 90년대 초부터 노동운동의 위기를 논했다. 그들은 주요한 투쟁의 고비마다 개입하여 자본의 의도대로 노동운동의 계급성을 말살하려고 한다. 노동운동 위기론자들은 “시위 때 등장하는 쇠파이프는 이제 버려야 한다”면서 비폭력 평화운동을 설교하고, 전투적 노동운동과 파업투쟁 등 투쟁일변도의 노선에서 합리적 노동운동으로 전환할 것을 선동하고 있다. 그러나 상반기 투쟁은 위기론자들의 진단과 다르게 전투적 노동운동이 넘쳐서가 아니라 일방적인 타협과 백기항복 때문에 패배로 돌아갔다.
노무현 정권은 파업현장은 물론이고 심지어 1인 시위에도 공권력을 투입하고 집시법 개악, 테러방지법 제정 등으로 폭력성을 더욱 더 강화하고 있다. 지난 해 노동자들의 연이은 분신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파견법을 개악하려는 국가의 폭력에 맞서 더욱 더 치열하고 전투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노동운동의 위기는 위기를 유포하고 개량주의와 노사협조주의를 선동하면서 자본과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반동적인 자들로부터 온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위기론자들이 주장하는 반노동자적 이데올로기를 먼저 분쇄해야 한다.
자본은 “수출은 잘 나가는데 내수가 죽었다”면서 내수를 회복하자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정규직에게는 ‘고임금론’을 유포하면서 임금삭감을 유도하고 비정규직을 영구적인 파견근로의 노예로 삼고자 한다. 최저임금은 전년에 비해 13.1% 올랐지만 낮은 통상급 기준이어서 8만원 정도 오른 64만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기만적인 조삼모사(朝三暮四) 식 적용으로 주휴수당이 기본급에 포함되면서 극악한 임금수준에는 변화가 거의 없다. 1월에서 5월까지 5인 이상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인상은 1.3%에 불과하다. 자본은 내수가 죽었다고 아우성치면서도 실질적인 내수의 기반이 되는 노동자계급의 임금인상은 거부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허용하면 이윤이 줄어들고 격화되는 자본 간의 경쟁에서 탈락하여 도태되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현재 남한 자본주의다.
노동자, 농민 등 압도적인 근로인민 다수를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 지긋지긋한 자본주의는 사라져야 한다. 남한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질서를 끝장내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능력과 전망을 가지고 있다. 2004년 노동자대회는 1990년 이후 사라져버린 노동자계급해방의 기치를 다시 들어올리는 출발이 돼야 한다.
<박스> 한일FTA에 맞서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
민주노총은 한일FTA 반대를 위해 일본 원정투쟁을 전개했다. 자동차 완성 4사 노조들은 한일FTA가 체결되면 2년 내 2만 명, 2010년에는 8만 명의 일자리가 감소된다며 FTA반대투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이 투쟁은 철저하게 노동자계급의 관점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정작 노동조합 못지않게 한일FTA체결을 반대해야 할 사측이 하반기 투쟁을 현실을 외면한 투쟁이라고 매도”한다면서 “사측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는 뿌리지 마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자본은 이에 대해 “최악의 경제상황에 정치투쟁을 위한 총파업 투쟁 결의”라고 비난을 퍼붓고 있다. 노조는 한일FTA가 체결되면 자동차산업이 종속되기 때문에 현대자동차 자본도 노조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FTA체결로 인한 이해득실을 냉정하게 따지고 있다.
한일FTA는 98년 10월 김대중이 일본방문 중에 FTA관련 협의를 먼저 제안하여 이루어졌다. 남한 자본이 손해 보는 짓을 정권이 할 리가 없다. 자본가들은 당장은 일본의 혼다, 도요타, 닛산과의 경쟁에서 밀릴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 노조말살로 자국 내에서 노동자의 착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FTA가 체결되면 한국 자동차산업이 몰락하고 수만 명의 일자리가 감소된다고 하는 분석도 과장돼 있다. 오히려 자본은 내부 구조조정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철저하게 노동자를 수탈할 것이고,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을 최대한 늘리려 할 것이다. 단순히 일자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본의 경쟁력과 착취를 위해 비정규직 형태의 고용이 확산되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 강성노조가 가장 큰 비관세 장벽이다”라고 하여 FTA체결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남한의 민주노조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은 유급휴가제도, 노동시간 적정화, 법정퇴직금제도 개정, 파견근로제도 개정, 노조전임자수 감축과 임금지급 금지, 노조 불법노동행위에 대한 엄정하고 신속한 법적용, 정규직 해고조건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일본의 요구대로 한일FTA가 체결된다면 남한 노동운동은 괴멸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남한 자본 또한 엄청난 혜택을 입게 된다. 이렇게 남한과 일본의 착취자들은 공동의 이해관계 앞에서 철저하게 ‘자본가 국제주의’ 관점으로 하나가 되고 있다.
이 투쟁을 자동차산업 살리기로 이끌고 가면 국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 노동자가 앞장서서 희생을 자처하는 어리석고 파멸적인 결과를 자초할 수 있다. 2000년 대우자동차 매각을 앞두고 자동차 4사 노조는 해외매각 반대투쟁을 내걸고 싸웠다. 당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국내자동차 산업을 완전히 먹어치우기 위해 대우자동차 인수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자동차 완성 4사 노동자들은 이 투쟁에서도 노동자들의 이해와 자본가의 이해를 분리하지 못하고 ‘노사상생’의 관점에 빠져 있었다. 기아자동차 자본은 노조 간부에게 “같이 손잡고 잘 싸워서 해외매각을 막아보자”고 할 정도였다. 결국 현대자동차 정갑득 집행부는 현대자동차 자본의 후원을 받고 한겨레신문에 해외매각 반대 광고를 실었다가 이후 들통이 나면서 중도하차했다.
이것은 도덕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관점에 없기 때문에 발생한 해프닝이다. 미국 자본이나 일본자본이나 악랄하기는 다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우리는 매각반대 투쟁에서 인수할 자본의 국적을 가지고 “좋다, 나쁘다”를 따져서는 안된다. 국내자본이 같은 민족이라고 노동자를 봐주지 않는다. ‘인격화된 자본’인 자본가는 오직 이해타산 앞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매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행되는 자본의 사전 구조조정이나 매각조건으로 제시되는 자본의 공격에 맞서 고용과 생존권을 중심에 놓고 투쟁해야 한다.
산업공동화에 맞서는 투쟁에 있어서도 동일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올해 금속, 화섬 등 대부분의 업종에서는 산업공동화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전면에 내걸지 못하고 ‘자본과 함께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노동자가 산업공동화의 대안으로 기업 해외경쟁력을 높이고 생산성 향상, 신기술 도입을 먼저 주장한다면 그것은 비정규직 확대, 노동강도 강화, 임금삭감, 인원축소 등으로 노동자 자신을 죽이게 될 것이다. 결국 산업공동화에 맞서 산업살리기를 주장하는 것은 노사협조주의적 ‘회사 살리기의 확대복사판’에 불과하다.
현장 바깥에서 빵빵 변죽만 울리며 FTA반대를 외치면서 정작 현장 안에서 자행되는 자본의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확산 기도에 맞서 싸우지 않고 침묵하는 이중성을 보여서는 안된다. FTA와 산업공동화 투쟁은 국내노동자와 국내자본이 한편 먹고, 반대편에 해외노동자와 해외자본이 있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자본가와 노동자의 투쟁이다. 따라서 이 투쟁은 자본가들의 국제협약에 맞서 노동자 국제주의적 정신 하에 자국 자본과 국가에 맞서 노동자의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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