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 홀로 ‘기준과 범주’에 빠져 있는 ‘대리운전노동자’
국제주의   2008-10-10 19:12:39, 조회:2,030, 추천:389
나 홀로 ‘기준과 범주’에 빠져 있는 ‘대리운전노동자’



‘대리운전노동자’ 동지가 국가자본주의론을 옹호하면서 노정협과 ‘행동강령’의 입장을 비판하고 나섰다. ‘대리운전노동자’가 국가자본주의론 비판에 대한 핵심적인 답변을 회피했고, 논쟁을 첨예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주장을 했기 때문에 가급적 대응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몇 가지 논점에 대한 대응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간락하게 비판하려고 한다.


1. 소련사회의 실제의 사회적 생산관계는 무엇인가?

‘대리운전노동자’는 국가자본주의 비판이 소유형태의 관점으로만 보고 실제의 사회적 생산관계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련의 실제의 사회적 생산관계는 무엇인가? 이것을 밝히려면 관료가 자본가 계급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관료가 잉여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물론 소련사회의 공장 대표자가 얼마나 계급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 공장대표자가 직접 선출됐는지, 소환이 가능한지. 평균노동자 임금을 받고 있었는지 등을 밝히는 것은 민주주의의 문제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관료주의의 문제는 될 수 있어도 관료가 자본가라는 문제와는 완전히 다른 ‘기준과 범주’의 문제다.


2. 역사발전의 단계를 건너뛸 것인가?

‘대리운전노동자’는 1917년 2월 혁명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고, 10월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이었다는 주장이 스탈린주의 단계론이라고 비판한다. 2월 혁명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었다는 것이 2월 혁명으로 인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가 완수됐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월 혁명은 짜리즘을 무너뜨리고 부르주아가 이중권력의 불안정한 상황이었지만 권력을 잡았다는 의미에서 부르주아 혁명이다. 하지만 토지와 빵과 평화와 자유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완의, 제한적인, 기만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레닌은 이에 대해 “국가권력이 부르주아의 손으로 넘어 갔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만 러시아의 부르주아 혁명이 완수되었다”, “아직 완성하지 않았다.... 아직 농민운동을 완수하고 있지 못하다”라고 했다.

이 말은 모순적인 주장이지만 이것은 현실 모순의 표현이었다. 당시 2월 혁명의 현실적인 모순이었다. 2월 혁명은 짜리즘을 무너뜨리고 부르주아가 국가권력을 장악했다는 의미에서만 완수되었지, 핵심적인 부르주아 혁명의 과제는 성취되지 않았다. 아니 부르주아로서는 그것을 성취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 미완의, 제한적이고 기만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는 어떻게 완수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오로지 소비에트를 통한 노동자-농민(특히 빈농)의 독재권력만이 해결할 수 있는 과제였다. 마치 그것은 노무현정권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이었지만 집시법을 개악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지 못하는 등 민주주의적 요구마저도 해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처럼 부르주아는 민주주의 요구마저도 해결하지 못하는 역사의 퇴물이 되었다.

레닌은 유럽에서 부르주아의 반동성을 보고 오직 노동자계급만이 진실로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 민주주의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부르주아와의 연합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농민과의 동맹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것이 짜리즘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적 과제와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 부르주아와 손잡고 나아가자던 멘셰비키와의 본질적 차이였던 것이다.

10월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10월 혁명으로 권력은 노동자계급으로 손으로 넘어 갔다. 하지만 10월 혁명은 사회주의의 과제를 일거에 완수하지 못했다. 이 점에서 10월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었지만 끊임없는 투쟁으로 높은 수준의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였던 것이다.

혁명에 있어서 단계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부르주아 혁명의 단계를 뛰어 넘어서 바로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맑스주의의 역사 유물론적 관점이고 레닌의 일관된 관점이다. ‘대리운전노동자’는 “1917년 2월 혁명을 부르주아혁명(단계)으로, 그리고 1917년 10월 혁명을 사회주의혁명(단계)로 이해하는 사고 방식이 바로 러시아혁명에 대한 스탈린주의 해석 방식이다. 레닌이 1917년 4월테제 이전의 사고였고, 레닌의 '두 가지 전술'에서 '노동자-농민의 민주주의 독재'가 그 단초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토니클리프주의자들은 심지어 레닌이 ‘두 가지 전술’에서는 단계론에 빠져 있었지만 4월 테제로 그것을 극복했기 때문에 이미 1905년 영구혁명론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트로츠키와 입장이 같아지면서 트로츠키가 볼셰비키에 가담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레닌에 대한 왜곡이자 모독이다. 또한 트로츠키가 멘셰비키와 볼셰비키를 왔다 갔다 하면서 조직적 오류를 범했지만 강령적으로는 레닌과 다르게 일관된 입장을 견지했다고 하는 토니클리프 류의 트로츠키주의자가 만들어낸 트로츠키 신화다.

레닌은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 당의 두 가지 전술’에서 부르주아 혁명의 주도권을 노동자계급이 잡고 혁명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맑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부르주아 혁명을 피하지 말고, 그 혁명에 불참하지 말고, 부르주아지에게 혁명의 지도권을 맡기지 말라고, 반대로 가장 정력적으로 거기에 참여하고 일관된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를 위해, 혁명을 끝까지 이끌고 가기 위해 가장 단호하게 투쟁하라고 가르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제 정부의 저항을 힘으로 분쇄하고 부르주아지의 동요를 무력화하기 위하여 농민 대중을 자기 진영에 결합시키면서 민주주의 변혁을 끝까지 수행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힘으로 쳐부수고 농민과 소부르주아지의 동요를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주민 가운데 반(半)프롤레타리아적 분자의 대중들을 자기 진영으로 결합시키면서 사회주의 변혁을 완수해야 한다”

레닌은 노동자계급의 주도성을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사적 단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맑스주의는 상품 생산에 근거를 둔 사회, 문명화된 자본주의 국민들과 교환 관계 속에 있는 사회는 일정한 발전 단계가 되면 그 자체도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길로 접어든다고 가르친다. 맑스주의는 인민주의자들과 무정부주의자들의 몽상, 예를 들자면 러시아가 마치 자본주의적 발전을 비껴갈 수 있다는 듯, 이 자본주의 자체에 기반하고 그 틀 내에 있는 계급투쟁의 길이 아닌 다른 어떤 길을 통해 자본주의로부터 뛰쳐나가거나 그것을 건너뛸 수 있다는 듯 생각하는 그들의 몽상과는 완전히 절연했다.”

혁명에 있어서 피해갈 수 없는 하나의 사회발전의 법칙인 부르주아 혁명의 단계가 있다는 것이 사회주의 혁명을 피해가는 것인가? 맑스주의와 레닌주의는 역사발전의 객관적 발전단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단계론이다. 맑스레닌주의는 역사발전의 단계가 하나의 법칙이지만 주도권을 노동자계급이 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 독자성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주체역량과 의지적 측면도 마찬가지로 강조한다. 그래서 맑스레닌주의는 단계론이면서도 객관주의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다. 객관적 발전 조건 때문에 노동자 계급이 야당으로 물러나서 부르주아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자는 주장은 바로 멘셰비키의 주장인 것이다.

‘대리운전노동자’는 “2월과 10월은 하나의 연속과정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일면적이다. 만약 러시아에서 노동자와 농민이 권력을 잡았다고 하면 연속적 혁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부르주아가 혁명의 주도권을 잡고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부르주아 권력과의 단절이 필요했다. 이것이 10월 정치혁명이다. 이 단절이 없다면 부르주아 혁명에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발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4월 테제를 발표할 당시에 고참 볼셰비키가 레닌에 반대했던 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가 완수되지 않았는데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계론에 빠져 있었던 것이 아니라 레닌의 단계론을 변증법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객관주의에 빠져 있었다.


3.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다!

‘행동강령’은 처음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을 주장한 것을 가지고 스탈린주의자라고 했다. 그런데 ‘대리운전노동자’는 ‘행동강령’마저도 스탈린주의라고 비난한다. 참으로 아이러니다. ‘행동강령’이 나에게 겨눴던 비난의 칼날이 정통 트로츠키주의를 자처하는 ‘행동강령’에게 쏟아지고 있다. 클리프주의자의 이름으로....

‘행동강령’이 스탈린주의자면 트로츠키도 스탈린주의자다! 4월 테제 이전의 레닌이 스탈린주의였다고 말하는 '대리운전노동자'인데 무슨 말은 못하겠는가?


4. 맑스주의 방법론을 이해하고 있는가?

‘대리운전노동자’는 "‘변증법적 방법론’이니 ‘과학적 방법’이니 하는 문제 등은 지금처럼 흔하게 쓸 때는 기준과 범주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말이 아니라 논쟁의 내용에서 증명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한다.

맑스주의 방법론은 자본론에서 가장 풍부하게 구체화되었다. 노정협에서는 자본론의 방법론을 통해 국가자본주의론을 비판했다.

맑스주의의 변증법적 방법론의 핵심은 추상과 구체의 방법론이다. 맑스는 이 추상과 구체의 방법론에 의해서 잉여가치, 상품, 가치법칙, 시장, 경쟁 등 자본주의의 발전법칙을 분석했다. 이러한 맑스주의적 기준과 범주를 가지고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그런데 기준과 범주가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기준과 범주가 아니라 자의적 설정과 주관적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대리운전노동자’는 회피하지 말고 자본론에서 사용한 동일한 기준과 범주로 소련이 자본주의였다는 것을 “말이 아니라 논쟁의 내용에서 증명”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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