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내에서의 현장조직 운동의 의의와 과제
패배주의와 고립감을 일거에 떨치고 치열하게
또 치열하게 전진하자!
서울지하철 내에서 조합원들은 궤도투쟁의 백기항복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협조주의적, 기회주의적인 '민주파'인 김종식 진영을 위원장으로 선택했다. 이 글은 2년 여 전 무렵에 쓰여졌지만 여전히 지하철 내에서 소수 고립된 혁명적 전투파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 대한 '작은 전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투파 동지들의 치열한 실천을 기대하면서 '오래된' 글을 다시 올린다. 패배주의와 고립감을 일거에 떨쳐버리고 치열하게 또 치열하게 전진하자!
1. 현장조직의 태동과 발전
남한에서 현장조직 운동은 노동조합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현장조직 운동의 초기 형태는 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노민추)로 시작되었다. 노민추는 자본과 결탁한 어용노조에 맞서고 현장투쟁을 일구는 민주파 활동가들의 총결집체였다. 노민추는 민주노조를 염원하는 노동자들의 염원을 안고 대중적인 기반을 가지고 투쟁을 전개하였다. 노민추 수준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반어용 민주파 총결집의 기치 하에 활동가들 사이의 노선적 차이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노민추의 성과로 어용노조를 타도하고 민주노조를 쟁취하게 되면 노민추의 핵심 활동가들은 노조 집행부로 올라가게 된다. 이후 노민추 조직은 민주노조 활동으로 활동양식이 전환되면서 현장 내에서의 독자적인 활동은 사라지게 된다. 현장에 남은 민주파 활동가들은 집행부의 지침을 현장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친목 모임 수준으로 급격하게 활동력이 위축되게 된다. 하지만 활동의 목표를 잃어버린 친목 모임은 모임 자체를 유지하는 것도 힘겨워 하면서 개별화되어 대소위원 등 공조직 활동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한편 노민추 운동의 성과로 건설된 민주노조는 자본과의 힘의 역관계, 자본의 탄압과 회유 등에 의해 노민추 운동 당시의 투쟁정신을 고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노민추 출신 집행부의 일부는 노골적으로 노사협조주의의 길을 걷는다. 개별적으로 현장에 남은 노민추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만든 노민추 출신 집행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견제하고 비판을 가해야만 한다는 보다 높은 자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신경영 전략 등 자본의 새로운 노무관리가 강화되면서 자본에 맞서 일상적인 현장투쟁을 전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활동가들은 지부, 반, 부서 단위로 세분화해서 치고 들어오는 자본의 공격에 대해서 노조 차원의 지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러한 투쟁을 하면서 부서별 동지회로 산개해 있던 활동가들이 전공장 차원에서 결집하게 된다. 반드시 이러한 경로를 거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이러한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현장조직 운동이 출발하였다. 집행부 장악과 상관없이 현장 내에서 일상적인 투쟁을 전개하는 활동가들의 항상적인 조직체가 바로 현장조직이다.
대공장을 중심으로 출발한 현장조직 운동은 이후 급속하게 전국 대부분의 사업장으로 확산됐다. 후발 현장조직들 같은 경우에는 어용노조 하에서 노조 민주화의 과제를 안고 출발했지만 노민추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현장조직 수준의 활동을 고민하게 된다. 따라서 집행부 장악 이후에도 현장조직으로 남을 것을 결의한다.
개별 사업장에서 출발한 현장조직 운동은 지역 차원의 연대를 끊임없이 모색하였다. 단일 현장조직이 건설되기 이전 부서별 동지회로 산개해 있던 활동가들은 개별 활동가들의 연대체로 지역연대 조직을 구성하였다. 울산에서는 이것이 울산민주노동자회(울민노), 울산노동자연대투쟁위원회(울연투) 등의 이름으로 활동을 하였다. 95년에는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현대정공(현 현대자동차 5공장)의 민주파 활동가들은 일제히 전공장을 아우르는 단일 현장조직을 결성하게 된다.
현대중공업에서는 분과 동지회 형태로 존재하던 현장 활동가들이 전진하는 노동자회(전노회)라는 현장조직을 건설하였다. 현대자동차에서는 과거에도 소모임이나 군소 현장조직들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95년 이영복 어용 집행부 하에서 양봉수 동지의 분신 이후 비대위를 구성하여 투쟁을 전개하고, ‘양봉수열사 정신계승을 위한 실천투쟁위원회’라는 한시적인 투쟁체를 발전적으로 해소하여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라는 현장조직을 건설하였다. 현대정공에서는 부서별로 존재하던 동지회를 하나로 통합하여 부서동지회연합이라는 단일 현장조직을 건설하였다. 남구 지역에서는 동양나이론(현 효성)의 단일 현장조직인 전진하는 노동자회(전노회)와 남구 지역의 개별 활동가들이 남부지역노동자연대추진위(남연추에서 이후 남부지역노동자연대 즉 남노련)가 구성되어서 활동하고 있었다. 이 4개의 조직이 이후에 울산현장조직대표자회의를 구성하여 지역현장조직 모임을 구성하였다. 이 조직은 명칭은 회의체 수준이지만 대표자회의 체계와 서기 체계를 두고 실제로는 협의회 수준의 연대활동을 전개하였다.
96, 97년 노동법 개정 총파업 투쟁이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의 타협과 투쟁회피로 패배로 돌아간 뒤 현장조직 활동가들은 단사, 지역 차원의 현장조직 활동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면서 전국적 현장조직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97년 3월에 울산현장조직대표자회의 소속 현장조직, 대우자동차, 기아자동차, 한라중공업(현 삼호중공업) 현장조직 등이 모여 개량주의, 관료주의 반대, 현장권력 건설을 기치로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전국회의)를 구성한 것이 전국적 현장조직 운동의 첫출발이었다.
전국회의는 98년 2월 8일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에서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을 합의한 민주노총 지도부를 규탄하고 노사정위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투쟁을 거치면서 전국회의는 15개가 넘는 사업장의 현장조직들이 대거 결집하고 현대자동차, 현대정공 등 대규모 단사 집행부를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극심한 고용의 위기 속에 당선된 현장조직 출신 집행부들은 양보교섭을 하게 되면서 전국회의는 많은 비판을 받게 되고 이것이 현장조직 운동의 위기를 낳는 한 원인이 되었다. 과거 전국회의에 대해 쏟아지던 타 현장조직들의 비판은 “너무 원칙적이다. 투쟁만을 외친다. 정책대안이 없다”였다. 하지만 전국회의 출신 집행부나 현장조직이 자신이 비판하던 대상들의 수준으로 추락하게 되었을때 이제 그들은 “뭐 묻은 게 뭐 나무란다”라는 식으로 냉소적으로 바라 보았다. 너무 원칙적인 투쟁을 한다고 각 세력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질 때 전국회의는 고립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도덕적 권위가 가장 높았고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전국회의의 추락으로부터 노조 운영이나 현장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교훈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전국회의 산하에는 울산지역현장조직대표자회의 외에 대전지역, 광주․전남 권역모임, 수도권 권역 모임 등을 두고 있었다. 한편 전국회의와 별도(전국사회보험노조 현장회는 전국회의 소속)로 서울지하철 현장활동가 모임, 버스 노민추, 발전 민주노동자회, 철도 민주노동자회 등이 공공부분 현장조직 연대모임을 구성해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지역, 권역 현장조직회의는 전국회의 차원의 논의가 실질적으로 집행이 되고, 사업장 현안들을 중심으로 원활한 연대투쟁을 전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구성되었다. 지역, 권역 모임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전국회의는 상층 단위에서 논의만 무성한 조직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단사 모임, 지역 모임, 전국모임이 한데 어우러지고, 단사 내에서 타 조직과 공동투쟁체가 구성되어 활발한 현장투쟁, 지역연대투쟁, 전국적 현안에 대한 대응 투쟁이 씨줄, 날줄로 긴밀하게 이루어질때 현장조직 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다. 전국회의가 활력을 잃어버리자 이러한 투쟁 모임은 깨질 수밖에 없었다. 역으로 이러한 모임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전국회의의 활동이 약해진 측면도 있다.
초기 현장조직 운동은 민주파 활동가들의 총결집체였다. 대공장에서 현장조직은 실천활동을 거치면서 급속하게 여러 개의 현장조직으로 나눠지게 되었다. 현대자동차에서 민투위는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실천하는 노동자회(실노회)를 꾸려서 떨어져 나간 뒤 현장을 지키는 사람들(현지사), 미래를 여는 노동자회(미래회), 형제회(현장투) 등으로 나눠지게 된다. 이후 실노회는 자동차 4사 해외매각 반대 투쟁 과정에서 정갑득 집행부가 한겨레 신문 광고비를 현대자본으로부터 지원받은 것이 드러나면서 자주노동자회(자주회)로 또 다시 쪼개진다. 이후 현지사, 미래회, 현자 노동자신문(현노신)은 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민주노동자투쟁연대(미래회)로 통합을 하게 된다. 현대자동차에서 현장조직의 분화와 통합 과정은 분파간의 노선적 차이와 부결투쟁을 둘러싼 실천적 입장 차이 등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상당 부분은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 추천을 둘러싼 내부 갈등의 측면도 크다.
전국적 현장조직 운동 차원에서도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와는 별도로 민주노동자전국회의(전국회의)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민주노동자전국회의는 자주․민주․통일이라는 단일한 기치 하에 좀더 완성된 조직체계를 갖추고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자전국회의는 조직 내부에 협조주의적 경향들이 많이 있다. 이 협조주의와 단절하지 못한다면 민주노동자전국회의는 혁신적인 현장활동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이밖에 중앙파 현장조직들이 있다. 중앙파 경향의 현장조직들은 단일한 조직 틀을 구성하고 있지는 않고 있지만 총연맹, 연맹, 지역본부 선거 등을 중심으로 경향적으로 단일한 행보를 하고 있다. 대공장 단사와 전국적 수준의 현장조직들은 이른바 현장파, 중앙파, 국민파라는 세축의 경향으로 나눠져 활동을 하고 있다.
2. 현장조직 운동의 위상과 쟁점
현장조직은 노동조합, 정치조직과 그 위상이 다르다. 일상 시기에 가장 대중적인 노동자들의 조직인 노동조합은 종교, 정치 사상, 성별 등에 상관없이 노조의 일정한 규약에 부합하여 노동력을 판매하여 임금을 받는 모든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있다. 정치조직은 단일한 사상과 이념에 맞는 선발된 인자들을 중심으로 구성원을 선발한다.
현장조직은 노동조합도 정치조직도 아니다. 비록 현장조직 운동이 경향적인 차이로 크게 3개의 축으로 나뉘어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것을 가지고 현장조직을 정치조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현장조직은 정치조직의 차이를 기준으로 조직을 구성하지 않는다. 또한 정치조직이 없는 무당파라고 해서 배제하지 않는다. 단 노동조합의 구성과 다른 점은 현장조직은 현장 내의 노사협조주의에 반대하는 실천투쟁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검증을 받은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현장조직의 구성원은 노조 공조직인 위원장이나 대의원같이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도 않는다. 이러한 현장조직의 구성원칙은 현실에서는 노사협조주의나 관료주의에 의하여 부단히 도전을 받는다.
반현장조직적 경향과의 투쟁을 통해서 조직이 실천적 투쟁조직이 될 때 현장조직은 기풍이 살아 있고 생명력 있는 조직이 된다. 만약 이러한 현장조직의 구성원리를 무시하고 무원칙한 조직확대나 검증안된 조직과의 통합을 시도한다면 현장조직의 정체성은 사라지게 된다. 역으로 현장조직을 무리하게 단일한 정치조직의 하부단위로 재편한다거나 정치조직 가입 유무로 조직원들을 선발한다고 해도 현장조직은 무너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현장조직의 대중성은 사라지고 현장 내에서의 영향력은 급격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치조직 스스로도 대중적인 외연조직을 잃어버리고 현장 내에서 스스로 고립될 것이다.
현장조직과 정치조직은 서로의 조직적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정치적 내용을 중심으로 굳건하게 결합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점은 노조와 현장조직, 노조와 정치조직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장조직 내에서 활동하는 정치조직은 현장조직의 규약과 질서, 위상을 존중하면서 활동하고, 현장조직의 대중적, 계급적 발전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현장조직 내에서 타 정치조직과는 종파주의나 분열주의에 빠져서 현장조직을 분열로 몰아가서는 안된다. 현장조직 내에서 대중적 활동을 통해 실천적으로 검증된 정치조직이 현장조직 내에서 다수파를 형성하고 지도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때에도 소수파 정치조직을 배제하거나 활동을 제약해서는 안된다.
노조가 자본과의 투쟁조직인 동시에 교섭조직의 양측면을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현장조직은 노조 운동의 한 부분인 동시에 노조로부터 자립적인 독자조직이기도 하다. 우리는 노조의 교섭조직적인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노조를 투쟁조직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한다. 현장조직의 경우에도 노조운동과 맞물려 돌아가지만 노조 운동으로부터 독립적인 현장조직의 독자성을 위해 투쟁한다. 독자성을 강조하는 현장조직은 자신의 현장조직 출신 집행부에 대해서 파견자의 위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의 현장조직은 대중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노조 운영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현장조직 출신 집행부가 민주적이고 계급적인 집행을 할때는 이러한 관계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조직 출신 집행부가 현장조직의 정신과 맞지 않는 집행을 하여 현장조직과 갈등을 빚을 때 파견자의 규정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결국은 현장조직이 대중적인 힘과 영향력, 계급성을 가지고 있을때 파견 집행부에 대한 견제, 견인, 협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위에서 현장조직은 집행부 장악과 상관없이 유지되는 항상적인 투쟁조직이라고 규정을 했다. 이말은 현장조직이 집행부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현장투쟁만을 수행하는 조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현장조직은 대중적인 활동을 위해서 끊임없이 집행부 장악을 시도한다. 그러나 현장조직의 집행부 장악이 대중적인 현장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변질되면 현장조직은 선거조직으로 전락되고 만다. 실제로 많은 현장조직들은 일상적인 시기에는 휴면상태에 있다가 선거때면 집행부 장악을 위해 활발히 움직인다. 이러한 현장조직은 대중적인 신뢰도 잃어버리고 집행부 장악 이후에는 계급적인 집행을 못하게 된다. 반면에 현장조직이 집행부 장악에 실패하면 패배주의에 빠져 현장조직은 활동성을 잃어버리고 사라지게 된다. 조직이라는 유기체는 끊임없는 활동으로 살아 움직이지 못하면 생명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3.지하철에서 현장조직 운동의 필요성
지하철은 대공장 중에서 유일하게 현장조직 운동의 불모지이다. 물론 각 지부별로 현장 활동가 모임들이 존재하고 있으나 그것이 온전하게 전사업장을 포괄하는 안정적인 현장조직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는 없다. 지하철 내에서 현장조직 운동이 활성화되지 못한 원인은 먼저 과거 어용 배일도 집행부에 맞서는 비대위와 공투본 활동의 한계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대위와 공투본은 한시적인 투쟁체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뿐아니라 이후 단일한 조직으로 전환되지도 못했다. 현장 활동가들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첫째, 단일한 결정과 단일한 집행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는 결국 노동조합 공조직 체계를 조직전환을 통해 투쟁조직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둘째, 노동조합 공조직을 통한 조직건설은 지부별 지회별 조합원 대중의 정서를 대변해야 하는 집행간부의 역할과 노사협조주의 혹은 구조조정에 맞서 투쟁해야 하는 투쟁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셋째, 공조직을 통한 조직건설은 지부 및 지회 공조직에 포함된 전체 조합원으로 포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민주적 활동가와 노사협조주의자들과의 구별정립조차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했다.(‘03임․단협과 하반기 투쟁 승리를 위한 현장투쟁실천단을 조직하자.)
결국 지하철 내에서는 대의원, 지회, 지부, 노조 집행부 등 공조직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졌다는 말이 된다. 지하철의 활동이 공조직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반배일도 투쟁전선도 어용 집행부를 제외한 공조직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공조직 내에는 전투적 현장 활동가들과 이질적인 노사협조주의적 간부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반배일도 전선은 끊임없이 교란을 받았다. 일부 공조직 간부들은 투쟁체 내에서의 단일한 활동이 아니라 노조 체계 내에서 참여를 통한 견제에 무게를 싣기도 했다. 결국 대중투쟁을 중심에 두는 투쟁체와 공조직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충돌하면서 일관된 투쟁을 가로막았다.
공조직과 투쟁조직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은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공조직이 조합원 대중을 포괄한다고 해도 요구와 투쟁이 하향평준화 되어서는 안된다. 공조직의 경우에도 가장 선진적인 조합원의 의사를 상향적으로 조직화해내고 대변해야 한다. 지하철 내에서 직능별로 이해가 대립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자본이 조합원 내부를 분열시키기 위해 조장된 측면이 크다. 본질적으로 직능별 이해는 구조조정에 맞서는 전체 조합원의 단일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다만 전체 조합원들의 단일한 요구를 가지고 투쟁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직능별 이해가 대립적으로 크게 부각되었다.
지하철 내에서 투쟁체가 공조직 중심으로 건설되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강력하고 단일한 현장조직이 없는 결과이다. 이것은 지하철 현장 활동가들이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현장활동을 수행하면 된다는 공조직 중심 활동에 무게를 두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성으로 인해 현장 활동가들은 노조 집행부가 어용으로 넘어갔을때 현장 내 단일조직을 통해 강력한 반어용투쟁과 현장투쟁을 일관되게 수행할 수 없었다. 현장조직의 부재는 일상투쟁으로 엄밀하게 검증된 인자들을 공조직에 파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공조직 내에 노사협조주의적 경향들이 자리잡게 만들었다. 지하철 내에서 직능별 이해를 구조조정 반대 요구로 집약하여 전 사업장 투쟁을 조직하지 못한 것도 강력하고 단일한 현장조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일도에게 비판적인 정서를 가지고 조합원들조차 민주파 활동가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서 집단적인 투쟁보다는 개인적인 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배일도는 실리주의를 추구하지만 조합원들에게 실리를 주지 못하고 있다. 배일도 집행 기간 동안 현장은 파괴되고 구조조정 공세로 조합원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결국 노골적으로 노사협조주의를 추구하는 어용 배일도가 연거푸 집권하는 것은 조합원들에게 믿음을 주는 대안세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4. 전체 사업장의 단일한 공동투쟁과 현장조직 건설
지하철 내에서의 현장조직은 현장 활동가들의 강력한 공동투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빌미로 한 근무형태 개악, 인원감축, 외주 용역화, 단협 개악 등 당면한 현안문제를 해결하면서 건설되어야 한다. 단순히 형식적 조직 건설을 위한 추상적인 논의에 그친다면 현안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대중적인 기반을 가진 조직건설도 되지 않는다. 이미 지하철 내에서 현장 활동가들은 위기 의식 속에서 03년 임단협을 앞두고 현장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토론회를 통하여 공동투쟁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궤도 사업장들간의 연대를 위한 ‘궤도 현장연대활동 준비모임’(이하 준비모임)도 만들어지고 있다. 준비모임의 구성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지하철 내에서 현장회, 역동회, 현장 활동가 모임 등 현장조직 간의 공동투쟁 논의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준비 모임에서 논의되는 내용의 한계를 살펴봄으로써 지하철 현장조직 공동투쟁의 바람직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준비모임의 구성과 논의되는 내용을 보면 강력한 실천투쟁을 수행하는 조직이 아니라 상층 중심의 느슨한 회의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준비모임 내에서는 “정책과 선전을 중심으로 사업진행을 하면 좋겠다”, “단위 사업장을 넘기 위해서라도 산별이나 정치세력화 등 전체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을 담지 않으면 현안문제에 매몰될 가능성이 크다”등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가 중심이 된다면 준비모임은 현장투쟁을 수행하지도 못하고 개량주의적 정치세력화와 관료주의적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해 동원되는 하부 기구의 역할에 머무를 것이다. 물론 준비모임 내에서는 “현장에서 활동가들이 현실의 문제(현장 강화 등)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등 현실적인 고민들을 중심으로 사업내용이 배치되었으면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준비 모임의 구성을 보면 현실적으로 공동투쟁을 수행하는데 장애요소가 많다.
준비모임은 현장투쟁을 공동으로 수행하는데 이질적인 요소들을 안고 있다. 내부에서도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인 산별이나 정치 세력화를 중심으로 논의하자고 주장한다. 이후 사업계획도 산별노조, 정치세력화 교육 일정이 잡혀 있다.그런데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논의한다고 다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세력화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 성향의 정치조직들이 존재하고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을 전제하고서 정치세력화 논의를 하자고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민주노동당에 비판적인 현장 활동가들도 많이 있다. 산별노조 건설은 모든 활동가들이 공유하는 내용으로 알고 있지만 건설 경로, 시기, 방식, 조직체계, 산별노조의 상 등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논란이 있다. 이미 금속 내에서도 투쟁없는 조직형식상의 전환과 교섭조직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것에 대해서 관료주의적, 개량주의적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다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정치세력화, 산별노조 건설을 중심으로 준비모임의 방향을 잡아가겠다는 것은 순진하거나 종파주의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발상은 내부에서 수많은 논란을 낳으면서 행동하지 못하는 분란만 일으키는 조직으로 준비모임을 전락시킬 소지가 많다.
준비모임 내에는 현실투쟁을 거치면서 입장이 다르고 상호 신뢰가 무너진 조직들이 뒤섞여 있다. 특히 철도를 보면 통일단결, 철도노동자회, 현장회 등이 다 함께 준비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조직들은 노선, 현집행부에 대한 태도, 철도 파업 과정과 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에 있어서 현격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질적인 입장들이 준비모임이라는 커다란 틀로 모아진다고 해서 강력한 실천을 할 수는 없다. 물론 이질적인 요소를 안고 있기 때문에 누구는 배제하고 입장이 같은 조직만으로 공동투쟁을 수행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동투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전제와 방향은 분명해야다. 첫째, 과거 활동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둘째, 자본의 현장탄압과 구조조정에 맞서서 공동투쟁을 중심으로 한다는 확고한 입장이 서야 한다. 셋째, 현장 내에서 노사협조주의에 대한 분명한 반대를 천명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준비모임은 노사협조주의 청산과 현장 활동의 혁신, 구조조정에 맞서는 강력한 현장 공동투쟁의 수행이 방향으로 잡혀야 한다.
궤도 준비모임의 전제와 방향은 지하철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투쟁 방향에서도 분명한 전제와 원칙으로 자리잡혀야 한다. 지하철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투쟁은 과거 한시적인 투쟁체였던 비대위와 공투본 활동의 한계를 반성, 평가, 극복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지부별 활동의 관성을 뚫고 전체 사업장의 요구를 내걸고 자본의 분할공세에 맞서 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선거조직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지하철에서 현장 활동가들은 집행부 인맥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구조를 깨야 한다. 이러한 구도는 공동투쟁의 장애요소가 되었고, 선거를 앞두고 현장 활동가들 간의 갈등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선거를 염두에 둔 사전포석으로 현장활동이 수행되기도 했다.
현재 지하철 내에서 현장 활동가들의 공동투쟁의 모색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활동은 민주 집행부와 강력한 현장조직 건설의 성과로 나타나야 한다. 과거 집행부 인맥 중심의 활동은 앞으로의 투쟁 속에서 검증을 받은 활동가들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새로운 틀로 재조직되어야 한다. 어용 집행부 하에서 지하철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는 지하철 운동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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