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가 있는 겨울 풍경은 따듯하다.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기울이는 것은 적은 돈이나마 이왕이면 자조(自助)하려는 영세상인에게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기업형 포장마차의 주인은 그날그날 생계를 꾸려나가는 저소득층이 아니다. 기업형 포장마차는 정작 자조하려는 생계형 포장마차를 밀어내고 있다.
現重노조 상급단체 탈퇴 실용노선
근로자를 한 개인으로 보면 ‘사회적 약자’이다. 소액주주도 사회적 약자이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노동귀족’이라는 어휘가 시사하듯이 조직된 근로자의 경제적 처지는 그렇지 않은 근로자와 판이하게 다르다. 임금과 고용 안정 측면에서 조직된 대기업•정규직 노조의 근로자와 조직되지 않은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비정규직 근로자는 이미 양극화돼 있다. 조직에 대해 충성과 보호의 교환이 가능한지 여부가 양자를 가른 것이다. 민주화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노동운동을 대기업•정규직 노조가 주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타 근로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노동운동은 자기 모순을 잉태한 것이다. 투쟁적 조합주의에 빠진 노동운동은 위기를 자초했다.
최근 현대중공업 노조가 매년 상급 노동단체에 납부해 오던 연맹비 5억여원을 조합원 복지와 지역사회를 위해 사용키로 해 눈길을 끌고 있다. 어찌 보면 민주노총을 탈퇴한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연맹비를 조합원의 후생복지에 쓸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거 연맹비의 전용(轉用)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논점은 현대중공업이 상급 노동단체를 탈퇴한 사실이라 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같은 대규모 사업장의 상급 노동단체 탈퇴는 전국단위의 상급 조직이 갖는 위상과 대표성을 떨어뜨리므로, 노동운동 진영의 눈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단위조직 모두가 일률적으로 반드시 상급 조직의 구성원이 돼야 할 이유는 없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독자노선 선택은 상급 노동단체와 정부 간의 대리전에 더 이상 현대중공업 노조가 동원되는 것을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대중공업 노조의 실용적 변신을 의미한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정치적 투쟁보다 조합원들의 권익 향상에 눈을 돌림으로써 현대중공업의 노사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진 ‘파업과 직장 폐쇄’의 악순환을 떨쳐버리고 1995년부터는 10년 연속 무쟁의를 달성한 것이다. 현대중공업 경쟁력의 원천은 산업 평화를 이뤄낸 노사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선박 발주처인 엑슨모빌사에 보낸 편지는 아직도 화제가 되고 있다. “노조가 책임지고 최고의 품질로 납기 준수를 약속한다”는 서신에 엑슨모빌사도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변함없는 협력관계가 유지되길 기대한다”는 뜻을 노조에 전했다. 서신 왕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함의’를 발견할 수 있다. 노조의 파트너는 바로 고객일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그것이다.
‘시장.기술중심’ 인식전환필요
엑슨 모빌은 16억달러에 이르는 원유 생산•저장 시설을 발주한 최대 고객사 가운데 하나이다. 노조와 근로자 보호 관련 법규가 근로자의 직장을 지켜주는 것은 아니다. ‘고객의 선택’이 일자리를 지켜주는 것이다. 너무나 평범한 시장경제의 원칙이지만 이념 지향적 적대적 노사관계에서 간과될 수밖에 없었다. 고객에게 외면 받는 기업은 존속할 수 없다.
노동운동은 산업화 시대에서와 같이 자본과 노동의 양자 대결 구도로 단순화하거나 민주화운동 시대처럼 정부와의 대립각을 세워 접근해서는 안 된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자주성을 생명으로 삼는 민주노조운동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교조적일 뿐이다. 이는 기득권을 지켜내겠다는 또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노동운동을 주도하는 리더십은 역설적으로 ‘시장과 기술의 변화’를 읽어내는 능력에서 나온다. 현대중공업 노조의 실용적 변신은 우리 노동계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