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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펌-]울산에서 민주노동당은 왜 계급투표에 실패했는가 - 노동자 정치의 참된 전망을 향하여

몰계급투표

2006-06-25 09:13:38, 조회:1,502, 추천:461

울산에서 민주노동당은 왜 계급투표에 실패했는가 - 노동자 정치의 참된 전망을 향하여

[저자] 양준석 [작성] 2006년 6월 20일 [출처] 울산노동자배움터 6월 토론회
[등록] 배움터 (Homepage) 2006-06-20

양준석 (울산 노동운동가)

5·31 지방선거에서 울산시장 후보로 민주노동당 노옥희 후보를 내세운 민주노총울산본부는 5월 26일 “울산노동자 계급투표를 통한 18만 득표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노총울산본부 조합원 5만 명이 가족 1명과 친구 1명을 설득하여 15만 표를 만들고, 민주노총이 아니지만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노동자 2만 명을 중심으로 3만 표를 만들어, 총 18만 표를 득표하겠다는 ‘야심찬’ 선언이었다.

그러나 개표 결과 노옥희 후보는 104,384표(25.3%)에 머물러 261,361표(63.2%)를 얻은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에게 크게 패배했다. 목표치 18만 표의 60%도 얻지 못했으니, 민주노동당은 5·31 지방선거에서 울산의 ‘계급투표’에 실패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수치상의 실패는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1998년 지방선거 이래 줄곧 승리해 왔던 북구청장 및 동구청장 선거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여전히 민주노동당은 울산에서 상당한 득표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상당한 득표력 밑에 숨어 있는 철저한 전망부재와 무기력이며, 그로 인한 노동자 대중의 자신감과 설득력 상실이다.

지난해 10·26 북구 재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조직된 노동자 대중 가운데 압도적 다수는 민주노동당에 투표했다. 그러나 지난해 재선거부터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몇 년 전과 달리 노동자 대중 스스로 주변의 가족이나 이웃·친지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설득하려 해도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표면상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러한 변화야말로 매우 의미심장한 것이며, 울산에서 민주노동당의 진정한 실패가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나아가 이것은 민주노동당이 진정 어떤 도전 앞에 마주쳐 있는지, 또한 노동자 정치의 참된 전망은 어떻게 열릴 수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 시금석이기도 하다.

자, 그 시금석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하나씩 풀어가 보자.

1. 세계화된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전 세계적인 사회·정치 양극화

노동자 민중에 대한 자본의 전면적 공격으로 그 의미를 요약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 그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적 수준으로 관철되기 시작한지 벌써 10~15년이 흘러가고 있다.

세계화된 신자유주의는 세계 곳곳의 나라들마다 사회 양극화 추세를 빠르게 강화시켜 왔다. 소수의 자본가들이 규제완화, 사유화, 구조조정 등을 통해 전례 없이 부를 확장시켜 가는 반면, 다수의 노동자 민중들은 실질임금 동결·삭감, 고용조건 악화, 연금 및 사회보장 후퇴, 농업을 비롯한 전통적 산업 붕괴 등으로 삶의 조건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세계적인 수준으로 전개되는 사회 양극화는 세계적인 수준의 정치 양극화를 불러오고 있다. 각 나라마다 사회민주주의 혹은 복지자본주의를 내건 중도좌파 및 중도우파의 정치적 기반이 축소되는 반면, 극우파와 급진좌파의 정치적 영향력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중도 정치세력들의 후퇴와 극우파·급진좌파의 약진

중도 정치세력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정치적 약속과 실제 정책 사이의 괴리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스스로 사용한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우스꽝스러운 규정도 사실 이러한 세계적 현상의 한 단면이다. 사회민주주의 혹은 복지자본주의를 약속한 중도 정치세력들이 실제로는 신자유주의 집행자로 기능함으로써 대중적 분노의 표적이 되고 정치적 기반이 축소되는 양상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극우파 정치세력들은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사회 양극화로 인해 벼랑으로 떠밀린 노동자 민중들에게 군국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노동조합과 진보세력에 대한 마녀사냥 등 ‘야만적인 공격성의 표출을 통한 불만 해소’라는 거짓되고 위험천만한 탈출구를 제시함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혹은 자본주의라는 문제의 근원은 전혀 건드리지 않거나 오히려 더욱 강화하면서, 인류 전체를 원시적인 폭력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들어가는 새로운 파시즘의 야만이 꿈틀꿈틀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급진좌파 정치세력들은 문제의 근원으로서 신자유주의 혹은 자본주의에 대한 철저한 극복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중도좌파의 거짓된 약속에 절망한 노동자 민중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으며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소련·동구 정권의 몰락과 자본주의화, 중국의 자본주의화 등 스탈린주의의 역사적 붕괴는 일시적으로 급진좌파 전반에게 극심한 정치적 곤경을 야기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에 철저히 맞서 온 급진좌파 정치세력들은, 신자유주의(자본)에 맞선 노동자 민중의 투쟁 속에서 노동자 민주주의와 생태·여성·인권의 공동체적 가치들을 결합시키며 자본주의와 관료주의를 동시에 극복해 나간다는 사상적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21세기에 접어들 무렵부터 대중과의 새로운 결합력을 급속히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극우파 대 급진좌파의 대결구도로 나아가는 전 세계의 정치 지형

물론 구체적인 양상은 각 나라들이 갖고 있는 역사와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주로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사회 양극화의 심화 정도 및 정치세력간 역량관계를 중심으로 전개 양상이 구체화되고 있다.

대체적으로 보아 신자유주의가 일찍 전면화된 남미쪽은 급진좌파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양상1)이라면, 중도 정치세력이 막강한 유럽쪽은 극우파와 급진좌파의 급성장 속에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주도권이 상당한 도전에 직면하는 양상2)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급진좌파의 역량이 왜소한 미국과 일본의 경우에는 극우파의 일방적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

어쨌든 다양한 구체적 양상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 수준의 정치 양극화는 최근 몇 년 사이 분명한 추세로서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더욱 심화됨에 따라, 전 세계적인 정치 지형은 극우파 대 급진좌파의 첨예한 대결구도로 더욱 완연히 발전해 가게 될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완패, 한나라당의 압승, 민주노동당의 패배로 요약되는 5·31 지방선거 결과는 이러한 전 세계적인 정치 양극화 추세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2004년 4월 총선이 탄핵이라는 돌발 변수에 의해 열린우리당의 압승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5·31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좌파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2002년 대선에서의 (한국적 의미의 중도좌파) 노무현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기대가 사회 양극화의 심화 속에서 얼마나 심각한 배신감으로 귀결되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2. 민주노동당의 전망 부재와 한나라당의 일방적 승리

그런데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킨 주범으로서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분노가 왜 5·31 선거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약진과 병행되지 않은 채 한나라당의 일방적 승리로 귀결된 것일까?

그 원인은 거의 전적으로 민주노동당 스스로에게 있다. 신자유주의 집행자,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분노 앞에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대안 주체로 다가서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열린우리당과의 차별성을 스스로 애써 부정하기까지 한 까닭이다.

이렇다 할 평가 자체가 되지 않는 민주노동당의 현실

그런데 5·31 지방선거 이후 정작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이렇다 할 평가조차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이른바 당 지도부인 ‘자주파’와 서울·울산의 선거를 주도한 ‘평등파’ 사이에 “서로 상처받지 말자”는 암묵적인 동의가 선거 평가와 관련한 제대로 된 논의조차 가로막고 있다는 분석3)도 있다. “평가를 두려워하면서 선거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사실상 억압되었다는 사실은, … 향후 민주노동당의 미래와 관련해 매우 부정적인 효과를 남길 것”4)이라는 분석에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필자는 평가조차 안 되는 이유가 단지 평가를 두려워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 평가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한마디로 현실의 역동적인 상황 전개를 해석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드러난 문제조차 인식하고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정체성 혼란, 사고체계 붕괴, 결과적으로 전망 부재에 빠져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수치상의 현상유지 속에 숨어있는 심각한 패배

어쨌든, 민주노동당의 5·31 지방선거 결과를 평가하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수치상의 현상유지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적인 내용에 있어서의 심각한 패배를 철저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광역비례대표 지지율 12.1%는 지난 2002년 지방선거의 8.1%에 비교하자면 약진한 것이고, 2004년 총선 때의 13.5%에 비교하더라도 근소하게 후퇴한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수치 속에 숨어 있는 의미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2002년과 2004년 민주노동당의 득표는 어쨌든 당의 약진을 상징했다. 한국전쟁 이래로 극히 우경화된 정치지형 아래서 한국의 진보정치세력은 현실 정치에서 최소한의 지지 세력을 결집하는 것조차 힘겨운 투쟁의 연속이었고, 수십 년의 시도 끝에 비로소 민주노동당의 2002~2004년 선거 약진을 통해 기본적인 지지 세력 결집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2006년 선거는 민주노동당의 지지 세력 확대에 결정적으로 제동이 걸렸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상황은 한국 자본주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진보정당의 정치적 기반이 강력하게 확대될 수 있는 조건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정작 진보정당의 정치적 기반 확대에는 결정적인 제동이 걸리는 모순적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더욱이 그 내용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더욱 심각한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민주노동당이 취약했던 여러 지역에서 2002~2004년의 전반적 약진이 뒤늦게 이제야 반영된 반면, 울산처럼 민주노동당이 지방권력 일부를 8년간 장악해 온 곳에서는 오히려 대중적 지지가 축소되는, 즉 약진했던 과거와 추락하는 미래의 모순적인 결합이 외관상의 현상유지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치세력으로서 최소한의 정체성조차 견결하게 지켜내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기반 확대에 결정적인 제동이 걸린 까닭은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진보정치세력으로서 최소한의 정체성조차 견결하게 지켜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선거 기간 중 발표한 ‘진보개혁세력 대표주자 교체론’은 그 전형적 사례다. 열린우리당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대다수 노동자 민중을 삶의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고 있으며 그로 인해 누적된 대중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려 하는 이 심각한 정세에서, 신자유주의 집행자 열린우리당에 맞선 대중적 항쟁의 주도자로 나서야 할 진보정당이 오히려 ‘진보개혁세력’이라는 범주를 통해 “민주노동당은 결국 열린우리당과 한 묶음”이라고 자기 정체성을 천명한 것이다.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이 전격 등장하는 과정이 상징하듯이, 사회경제적 문제를 담아내지 못하는 형식적인 민주주의와 개혁은 현 시점의 한국 정치에서 이미 주된 쟁점이 아니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의 신자유주의를 일정하게 비판한다 하더라도 진보개혁세력이라는 낡은 규정과 어법 속에 빠져 있는 한, 민주노동당은 결코 사회 양극화 속에 절망하고 있는 노동자 민중과 진정어린 상호소통을 확장해 갈 수 없었던 것이다.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정체성 혼란이 우발적인 실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2004년 12월에도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을 둘러싸고 ‘열린우리당 2중대’ 논란이 벌어졌으며, 국회에서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치열한 대치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열린우리당과의 공조가 수차례 거듭되어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복합적인 문제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으로 정세를 관통하는 대중적인 정치투쟁 전선의 중심이 부재한 가운데 사안별로 요동치는 국회 대응 전술이 낳은 필연적 귀결이라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른바 ‘통일세력 대 反통일세력’, 혹은 ‘개혁세력 대 反개혁세력’이라는 경계선을 중심으로 한국 정치를 이해하려는 시대착오적인 접근법이 민주노동당 내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특히 짚어져야 할 것은, 여전히 통일이 그 자체로 진보적 이슈일 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의 핵심적인 기준점이라고 보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입장이 민주노동당 내에서 공공연히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 문제가 이미 몇 년 전부터 개성공단 등 남북경제협력을 중심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파업이 금지된 월급 10만원 미만의 저임금 노동력을 수 천 수 만 명 단위로 공급해 주는 개성공단에 입주하려고 수 천 개의 중소기업들이 앞 다투어 몰려드는 현 상황에서, 이제 현실이 절박하게 요구하는 쟁점은 ‘통일 자체’가 아니라 ‘어떤 계급적 성격을 갖는 통일이냐’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진보정치세력이라면, 벅찬 기대와 이 갈리는 분노가 교차하며 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 시대를 겪어가고 있는 노동자 민중들, 그리고 중국의 자본주의화를 목도해 온 연장선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확장으로 전개되는 통일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노동자 민중들에게 ‘통일세력 대 反통일세력’ 혹은 ‘개혁세력 대 反개혁세력’이라는 접근법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지고 공허한 것으로 다가가고 있는지 정말 뼈저리게 직시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독도 군대 주둔’ 운운으로 대표되는 민주노동당의 민족주의적 언행들이, (노동자 민중의 사회경제적 불만이 파시즘의 정치적 기반으로 축적되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 캠페인들에 힘을 보태는 치명적 과오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게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안적 전망을 일관되게 확장해 나가지 못하였다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기반 확대에 결정적인 제동이 걸린 두 번째 이유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안적 전망을 대중과의 결합력을 강화하며 더욱 근본적인 지점까지 확장해 들어가기는커녕 심지어 기왕의 약속들에 대한 최소한의 일관성조차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한편으로 부유세와 무상의료·무상교육이며, 한편으로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이다. 2002~2004년 민주노동당의 약진을 가능케 했던 것은,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나마 뒤늦은 약진을 가능케 했던 것은 그러한 민주노동당 나름의 대안적 전망들이 상당한 대중적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적 약속들이 그동안 민주노동당 내에서 어떻게 취급되어 왔는가? 부유세와 무상의료·무상교육은 어느덧 당의 핵심 의제에서 사실상 사라져 버렸고,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안은 비정규직 법안 처리 공방 속에서 스스로 후퇴를 거듭하면서 반쯤 누더기가 되어버린 것이 냉정한 현실 아닌가!

중간층 눈치 보기와 물타기로 점철된 정책의 구체화 과정, 아래로부터 대중 동력을 형성해 오는 집요한 노력의 부재, 아니 그 이전에 대중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 자체의 결여 등등. 그 원인을 어떻게 설명하든, 이전에 민주노동당이 가장 그럴싸하게 내걸었던 대중적 약속들은 그간의 과정을 거치며 사실상 공수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새로운 대안적 전망을 제시하며 보다 근본적인 지점까지 전선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존재했지만, 민주노동당은 그러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부동산 문제와 론스타·삼성·현대차 문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집값폭등으로 부동산 문제가 또다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지만, 민주노동당의 대응은 과거 ‘토지공개념’이나 노무현 정권의 각종 부동산 정책들이 야기한 파장들에도 훨씬 못 미쳤을 따름이다. 그 대안 또한 ‘1가구 1주택의 강제 실현’ 정도에 머물고 있을 뿐 이를테면 ‘무상주택’이라고 불릴만한 근본적 접근은 아예 시도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사기 인수 문제가 IMF 이후 초국적 투기자본들이 어떻게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떼돈을 챙겨먹었는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여 주었지만, 민주노동당은 별다른 대응을 해내지 못했다. 극우적 경향이 날로 강화되고 있는 일본에서조차 지난해 투기자본 문제와 관련하여 “회사가 과연 주주들의 소유물인가”를 둘러싸고 치열한 사회적 논쟁이 벌어졌다는데 말이다.

삼성 이건희 일가와 현대차 정몽구 일가의 불법행위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과 관련해서도 민주노동당은 별다른 대응을 못해 냈다. 특히 5·31 지방선거를 한 달여 남겨두고 정몽구가 전격 구속되자 대대적인 정몽구 구하기 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었음에도 민주노동당은 성명서와 기자회견을 넘어서는 아무런 실질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대안 정치세력으로서의 믿음과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기반 확대에 결정적인 제동이 걸린 세 번째 이유는 노동자 민중의 새로운 삶을 열어젖힐 수 있는 대안적인 주체, 대안적인 정치세력으로서의 믿음과 신뢰를 심각하게 상실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귀족’에다가 부패 세력으로까지 낙인찍히고 있는 대공장 정규직 노조의 대표자 정도로 민주노동당이 인식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보자면 전국적 수준에서도 이미 일정하게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아직 다분히 울산에서의 문제다. 물론 다른 많은 측면들과 마찬가지로 이 점에서도 울산은 민주노동당의 미래를 압축하여 상징한다. 울산에서처럼 전면화 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지역들이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어쨌든 울산에서의 핵심 문제, 믿음과 신뢰의 상실이라는 문제 속으로 들어가 보자.

3. 울산에서의 패배 : 미래에 대한 심판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한국 노동운동에서 지속적으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 왔던 울산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있어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특히 동구청장과 북구청장을 동반 당선시킨 1998년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는 한국 진보정치 운동의 역사에서 큰 전환점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이번 지방선거에서 울산은 동구청장과 북구청장을 모두 잃었다.

진작부터 예견되어 온 울산의 5·31 지방선거 패배

울산의 민주노동당이 5·31 지방선거에서 심각하게 패배하리라는 것은 사실 선거 돌입 훨씬 전부터 충분히 예견되어 있었으며,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울산의 어지간한 활동가들이 다 피부로 느끼고 있는 사실이었다. 노동자 대중의 밑바닥 정서가 뚜렷한 변화를 겪고 있음이 어렵지 않게 확인되어 왔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한번은 혼내줘야 정신을 차릴 것 같다. 그런다고 정신을 차릴지는 모르겠지만...”. 필자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이러한 종류의 속마음들은 상대적으로 선진적인 노동자들의 가슴 속 깊이 이심전심으로 형성되어 온 정서다.

“예전에는 현장에서 한나라당 얘기는 입 밖에도 못내는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누가 한나라당 얘기를 막 떠들어도 사람들이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어요.” 현대자동차에 다니는 어느 평범한 정규직 노동자가 필자에게 들려준 이 이야기는 노동자 대중의 밑바닥 정서 변화가 어떻게 현장 분위기의 변화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98년과 2006년의 차이

사실 울산에서 오랫동안 지내온 활동가들이라면, 1998년 무렵의 선거에서 나타났던 노동자 대중의 폭발적인 열기와 최근의 선거들에서 나타난 노동자 대중의 냉소적인 무관심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차이를 충분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차이가 득표율 수치에서 나타나는 차이보다 훨씬 더 큰 것이라는 것도.

1998년 무렵의 선거에서 노동자 대중이 폭발적인 열기로 진보정치세력을 지지했던 것은 무엇보다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신뢰, 그리고 민주노조운동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인식한 진보정치세력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IMF 경제공황이 몰고 온 생존권 위협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도 상당한 작용을 했지만, “정리해고 저지”로 요약되는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치세력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절박한 위기의식이 진보정치에 대한 폭발적 지지로 연결되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의 선거들에서 수많은 노동자 대중은 나름대로 확신과 자신감을 갖고 누가 특별히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가족과 주변의 이웃·친지들을 설득하고 조직하러 다녔다. 현장의 분위기는 진보정치세력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자연스럽게 결집되었고, 온갖 수로를 통해 작동하는 밑바닥 노동자들의 설득구조는 지역의 분위기 또한 확연히 휘어잡았다.

반면에 5·31 지방선거를 비롯한 최근의 선거들에서 노동자 대중이 냉소적인 무관심으로 돌아선 것은 무엇보다 민주노조운동과 민주노동당을 더 이상 가슴 속으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진영 및 활동가 전반에 대한 신뢰 상실은 일상화된 생존권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별적인 악전고투로 몰두하도록 이끌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노동운동의 조직적 기반 약화와 무기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로 연결되고 있다.

최근의 선거들에서 평범한 노동자 대중이 주변의 이웃·친지들을 스스로 설득하고 조직하러 다니는 현상은 적어도 필자의 경험에서는 매우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민주노총이 거창하게 계급투표라는 용어까지 동원하며 노동자 대중들에게 주변을 설득하고 조직해 달라고 호소하였지만, 밑바닥 노동자들의 움직임은 거의 감지되지 않았다. 간혹 주변을 설득하려고 시도하였던 노동자들이 있었지만, 필자는 그들로부터 설득하는 자 스스로가 갖고 있는 열정의 한계와 더불어 이전처럼 쉽게 설득되지 않는 달라진 주변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들 스스로 확신이 없는데, 누구를 설득할 수 있다는 말인가!

상당한 득표력 밑에 감추어진 사태의 심각성

그런 점에서, 울산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상당한 득표력은 문제의 심각성을 상당 정도 은폐하고 있다. 같은 한 표지만, 이전의 한 표와 그 의미가 매우 다르다는 중대한 사실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지금 울산의 조직된 노동자 대중 가운데 압도적 다수가 여전히 민주노동당에 투표하고 있는데, 그들 중에 적어도 절반 이상이 이미 민주노동당에 대한 신뢰를 거의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민주노동당에 투표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이나 민주노동당이 아무리 실망스럽다 하더라도 한나라당을 승리하게 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더 큰 해악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쨌든 민주노동당이 승리하거나 표가 많이 나오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그래도 유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꼭 수고스럽게 투표장까지 가서 민주노동당을 찍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 뿐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 이미 가족과 주변에 대한 설득력이 거의 상실된 가운데, 이제 거꾸로 주변으로부터 포위된 현장 노동자들의 응집력이 조금씩 해체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현 시점을 요약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되어 갈 것인지는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그나마 1987년 이래 숱한 투쟁 속에서 형성되어 온 울산 노동자 대중의 높은 계급의식이 극단적인 사태 전개를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태 전개 속에서도 환골탈태·대오각성하지 않는 활동가들을, 민주노조운동을, 민주노동당을, 평범한 노동자 대중들은 가슴 속에서 정말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왜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믿음과 신뢰를 상실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울산의 민주노동당은 이처럼 상당한 수준의 계급적 정치의식을 갖고 있는 노동자 대중들로부터 왜 이토록 심각하게 믿음과 신뢰를 상실하게 되었는가?

앞에서 살펴본 두 가지 전국적 수준의 문제들, 즉 진보정치세력으로서 최소한의 정체성을 지켜내지 못했다거나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안적 전망을 일관되게 확장해 나가지 못했다는 점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겠으나, 울산의 민주노동당이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 것은 무엇보다 지난 8년여의 시간 동안 울산의 민주노조운동과 민주노동당의 실천으로부터 야기된 총체적인 문제들을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총체적인 문제들을 요약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투항과 배신으로 노동자 대중의 투쟁을 패배하게 만든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

첫째, 신자유주의에 맞선 울산 노동자들의 투쟁이 패배를 거듭해 온 지난 과정들에서 형성된 민주노조운동과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저지 투쟁, 2001년 화섬 구조조정 저지를 비롯한 울산 총력투쟁 등에서 구조조정에 맞선 대중의 역동적인 투쟁이 강력하게 분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부의 결정적인 투항과 배신을 통해 투쟁이 패배하는 과정이 거듭되었던 점, 이러한 투쟁들 속에서 민주노동당이 별다른 실질적 역할을 하지 못했던 점, 그러한 대중적 투쟁을 배신했던 지도자들이 여전히 민주노조운동 및 민주노동당의 지도적 인물들로 자리 잡고 있는 점 등이 지난 8년여의 시간을 지나며 복합적으로 축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다른 과정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비슷하게 작동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중의 차별과 초과착취로 신음하고 있음에도 상당 기간 민주노조운동이나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아예 무시당해 온 점, 2003년 이후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등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투쟁들이 전개되었으나 정규직 노조의 배신 및 민주노동당의 철저한 방관 속에서 패배하게 되었던 점, 그러한 과정에 상당한 책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민주노조운동 및 민주노동당의 지도적 인물들로 자리 잡고 있는 점 등이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나름대로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어느 정규직 현장 활동가가 필자에게 해준 다음과 같은 말은 이 문제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압축해서 전달해 준다.

“그동안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노동자들이 투쟁할 때 지도부란 사람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결정적인 순간마다 배신해 온 역사 아닙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 사람들이 민주노동당 아닙니까? 계~급투표요? 웃기지 말라고 하세요! 1998년에 현자에서 쫓겨난 사람들, 2001년에 화섬에서 쫓겨난 사람들, 그 사람들이 현장에서 밀려나와 갖고 지역에 쫙 깔렸는데, 계~급투표요, 정말 될 것 같습니까?”

특권·부패·위선으로 점철되어 있는 관료주의에 대한 혐오

울산의 민주노동당이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 두 번째 핵심 문제는 민주노조운동과 민주노동당을 망라하여 특권·부패·위선으로 점철되어 있는 관료주의에 대한 혐오 때문이다.

투쟁의 상징 ‘빨간조끼’가 부패한 특권층을 가리키는 의미를 담고 ‘빨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든지, 그래서 상당수 활동가들이 공장 밖에 나오면 부끄러워서 일부러 빨간조끼를 벗고 다니는 것이 오늘날 가장 강력한 현장조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현대자동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취업비리로 전·현직 노조간부들이 대거 구속되는가 하면,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독직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노조간부들의 특권과 부패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혐오는 오늘날 매우 깊은 수준으로 발전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조 간부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특권과 부패를 노동자 대중은 민주노동당까지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확장시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깊이 연결된 한패거리로 보는 것이다.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위선적 행태에 대한 혐오다. 이와 관련해서 볼 때, 지난 10·26 보궐선거는 압권이었다. 2000년 사내하청 대거투입의 장본인인 전 현대차노조 위원장을 후보로 내세워 놓고, 2005년 내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외면하고 급기야 9월초 류기혁 열사의 죽음마저 외면하여 지탄의 대상이 되었던 현대차노조 당시 위원장을 앞장세워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민주노동당만이 당신들의 대안이라고 융단폭격을 해댄 것이 지난 10·26 보궐선거였다. 그 가공할 위선을 바라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못지않게 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슴 깊숙이에도 씁쓸한 환멸의 고랑이 하나 더 깊게 파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그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압도적 다수가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민주노동당에 투표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10·26 보궐선거 패배 이후 그 시끌벅적했던 민주노동당의 평가 과정에서 중앙에서든 울산에서든 이러한 지점에 정면으로 마주치려 했던 견해를 필자는 별로 접할 수 없었다. 그러니 그 떠들썩한 평가 과정이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용 없는 출세주의에 대한 혐오

울산의 민주노동당이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 세 번째 핵심 문제는 내용 없는 출세주의에 대한 혐오 때문이다.

5·31 선거 직후 어느 인터넷 언론의 인터뷰에 응한 울산의 한나라당 선거참모는 민주노동당을 평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민주노동당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세력을 확장하고 나서, 대중적 지지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연구한 흔적이 없다는 점이다.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들끼리 선명성 경쟁하고, 내부 정파싸움만 한 것 같다.”5)

물론 그가 생각하는 ‘대중적 지지를 받기 위한 노력과 연구’는 아마도 우리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방향을 달리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치열한 노력과 연구의 결여 자체를 지적하는 점에 있어서만큼은 문제의 핵심을 간파한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실 중앙당에서부터 시작되는 문제이겠지만, 필자 또한 울산의 그 많은 민주노동당 출신 공직자와 당 간부들로부터 감동받을 만한 치열한 노력과 연구, 실천과 도전을 느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형식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여예산제만 놓고 봐도 그렇다. 북구의 참여예산시민위원으로 활동해 온 어느 시민단체 활동가는 “이것은 참여예산제를 통해 민중을 지방자치의 주체로 조직해 가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그저 생색내기일 뿐이다”고 단언했다.

‘내용 없는 출세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양대 분파의 끝없는 내부 주도권 투쟁이다. 원한이 복수를 낳고, 복수가 원한을 낳고, 다시 원한이 복수를 낳고···.

이제 울산 민주노동당 양대 분파의 내부 주도권 투쟁은 어떤 객관적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그저 켜켜이 쌓여진 원한과 복수의 감정들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치열한 내부 투쟁은 종종 정당을 건강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생명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지금 울산에서 양대 분파 사이에 벌이고 있는 끝없는 전쟁은 아무 내용이 없다. 그저 자신들의 ‘내용 없는’ 출세를 가로막고 있는 혹은 가로막아 온 상대에 대한 원한과 복수의 처절한 한풀이일 뿐.6)

필자가 보기에, 이미 노동자 대중은 내용 없는 출세주의와 내부 주도권 투쟁의 본질을 깊이 느끼고 있다. 그것도 이미 몇 년째. 그런데 노동자 대중이 그들을 진정으로 신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는가!

최소한의 진지한 소통조차 실패하고 있다

울산의 민주노동당을 바라보며 필자가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이제 노동자 대중과 최소한의 진지한 소통조차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 대중은 비록 압도적인 표를 몰아주고는 있지만 대안 세력으로서 더 이상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 점을 해소하기 위한 어떤 대화나 노력도 회피한 채 구태의연한 얘기들만 반복한다. “이제 당신들에게 도대체 믿음이 안 간다”고 말하는 노동자 대중에게, 이리저리 덧칠한 ‘새로운’ 약속들을 선물하고 ‘계급투표’ 같은 그럴싸한 지령을 내리면서.

4. 노동자 정치의 참된 전망을 향하여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이 있다.

민주노동당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신자유주의 공세 앞에 벼랑으로 내몰린 노동자 민중의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있는 급진좌파의 정치적 주체를 현실화하는 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제다.

특히 노동자 대중의 강력한 신뢰를 결집시키며 대안적 전망을 발본적으로 확장시켜 가는 급진좌파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은 채로 세월이 당분간 더 흘러가면, 우리는 이 땅에서 또 다른 파시즘, 또 다른 전쟁의 악령과 마주쳐야 할지도 모른다.

민주노동당을 발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내부 투쟁이 더 빠른 길일 수도 있고, 작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더 빠른 길일 수도 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길은 분명히 있지만, 무엇이 진정 빠른 길일지는 역사만이 알고 있다고 필자는 또한 생각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양 측면의 노력이 더욱 치열하게 긴장감을 갖고 가속화되는 것이며, 진정한 목표를 향해 서로가 적극 협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파시즘과 전쟁의 악령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열광적인 혁명과 해방의 시대 또한 분명히 저쪽 한켠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 중 누구를 우리가 만날 것인지는 앞으로의 우리 노력이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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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미 대륙에서는 지난 20여 년 동안 우파 정치세력들이 신자유주의 집행자로 기능해 오면서 심각한 사회 양극화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까닭에 대중적 기반이 현저하게 약화되어 있는 반면, 급진좌파 성향의 대중운동과 정치세력들이 강한 탄력을 받으며 급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압력으로 인해 중도좌파에서 급진좌파까지 다양한 좌파 정권들이 꼬리를 물고 등장하면서 남미 대륙의 절반을 지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2002년 집권한 브라질 노동자당(PT)이 신자유주의에 굴복하거나 온갖 부패 스캔들에 휩싸인 것처럼, 집권 좌파 정권들의 다수는 또 다른 시험대에 올라 있는 상황이다.

2) [프랑스 2002년 대선] 사회당(중도좌파) 참패, 국민전선(극우파) 약진, LO와 LCR(급진좌파) 약진. [독일 2005년 총선] 사민당(중도좌파)과 기민·기사연합(중도우파) 패배, 자민당(극우파) 선전, 좌파연합(급진좌파) 약진. [이탈리아 2006년 총선] 우파연합에 맞선 좌파연합의 신승, 그 속에 재건공산당(급진좌파)의 약진

3) 박상훈 후마니타스 주간은 6월 14일 ‘한국 민주주의와 5․31 지방선거, 무엇을 남겼나’를 주제로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가 주관하는 월례포럼에서 발표한 발제문 ‘5.31 지방선거와 민주노동당 - 관찰자의 시각’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490 참조

4) 상동

5) <레이버투데이>, “그들”은 선거에서 왜 졌을까?, 정용상 기자, 2006. 6. 8.

http://www.labortoday.co.kr/news/view.asp?arId=63945 참조

6)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산시장 후보 선출을 위한 민주노총 총투표 과정에서 울산시당의 핵심 당직자가 “상대 후보가 당선되면 재앙”이라는 문서를 자기 정파 사람들에게 회람시킨 사실이 공개된 것, 더욱이 그러한 심각한 종파적 행위가 양대 진영의 담합에 의해 은폐되려 했던 것은 극단적이면서도 상호의존적인 내부 주도권 투쟁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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