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협


	제목 : [한호석 칼럼]‘거역자’의 딸을 바라보는 미국의 싸늘한 시선

미국의 생각

2012-12-20 13:04:21, 조회:943, 추천:243

미국의 기억 속에 ‘거역자’로 남아있는 박정희

1970년대에 폭압만행과 부정부패의 대명사로 전 세계에 악명 높았던 독재자 세 사람이 있었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1915-2006),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Ferdinand Marcos, 1917-1989), 그리고 일제 식민통치기에 일왕 히로히토에게 다카키 마사오라는 일본 이름으로 충성을 맹세한 박정희(1917-1979)다.

피노체트는 1998년 10월 17일 신병치료를 위해 영국 런던을 방문하던 중 폭압만행죄로 전격 체포되어 가택연금을 당했고, 2000년 3월 3일 미국의 비호로 간신히 귀국한 뒤에도 복잡한 재판절차를 거쳐 2006년 11월 28일 또 다시 가택연금형에 처해졌다가 12월 10일에 자연사하였다. 마르코스는 1986년 2월 필리핀 민중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폭발하자 미국이 하와이로 피신시켜 망명생활을 하던 중 1989년 9월 28일 하와이에서 자연사하였다.

그런데 박정희는 1979년 10월 26일 여성 연예인들이 동석한 비밀 주연(酒宴)에서 술잔을 기울이다가 김재규가 쏜 총탄에 비명횡사하였다. 이것을 세칭 10.26사태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악명 높았던 세계 3대 독재자들 가운데 한국 대통령이 들어있다는 것만 해도 너무 치욕적인데, 자연사로 생을 마감한 다른 두 독재자와 달리 박정희는 술자리에서 총탄을 맞고 비명횡사하였으니 국제사회에서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는 치욕 중의 치욕이다.

핵개발 고집하다 술자리서 비명횡사한 박정희

독재자 박정희는 왜 총탄을 맞고 비명횡사하였을까? 세상에 이미 알려진 대로, 미국을 거역하고 핵개발을 고집하다 결국 살해당한 것이다. 그에 얽힌 과거사의 내막은 대충 이렇다.

박정희의 지시에 따라 핵개발 총책으로 일했던 오원철이 2010년 1월 12일에 발간된 <주간조선> 2089호 기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박정희는 1970년 중반에 핵개발을 결심하였고, 1972년 초에 대통령 비서실장 김정렴과 당시 경제수석이었던 자신을 집무실로 불러 핵개발을 지시하였다고 한다.

오원철의 회고담에 따르면, 박정희는 대통령 서재 뒤쪽에 들여놓은 풍금 크기만 한 철제금고 속에 핵문제에 관련된 비밀문건을 보관하면서 핵개발에 집착하였는데, 그렇게 7년 동안 핵개발을 추진한 끝에 1979년 10.26사태 직전에 핵물질을 만들 수 있는 핵기술을 확보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확보한 핵기술로 미국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핵물질을 제조하였을 때, 박정희는 비서실장 김정렴, 경제수석 오원철, 국방장관 서종철, 국방과학원(ADD) 책임자를 집무실로 불러, 핵물질을 무기화하라고 지시하였다. 박정희는 1979년 1월 어느 날 바닷가를 거닐면서 자기 비서관에게 1981년 봄에는 핵무기 개발을 완료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박정희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의 핵정책과 피할 수 없는 정면충돌을 일으켰다. 미국은 박정희가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도록 설득도 하고 압박도 하였지만, 박정희는 미국을 거역하고 핵개발을 끝내 고집하였다. 핵무기 개발이 종착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던 1979년 미국은, 박정희의 핵무기 개발을 압박조치만으로는 저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를 제거하기로 하였다.

1967년부터 1994년까지 외국 관련 정보를 수집하였던 한국 경찰청 정보책임자가 <신동아> 2008년 4월호에 실은 회고담에 따르면, 1979년 6월 29일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가 방한했을 때,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열린 비밀회의에서 박정희 제거공작이 논의되었다는 것이다. 비밀회의에는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William H. Gleysteen)과 부대사, 정치과장이 참석하였고,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에서 지부장 로벗 부르스터(Robert G. Brewster)와 부지부장이 참석하였다. 그들 5명은 “미국이 외국 국가원수를 죽이는 것은 위법이므로 우리들이 직접 손을 대지 말고 한국 중앙정보부에게 우리의 뜻을 전하여 그들이 대행하게 하자”고 결정하였다고 한다. 카터가 방한하였을 때, 한국에 증파된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 250명은 10.26 사태가 일어날 때까지 4개월 동안 한국에 체류하며 비밀공작을 벌였다.

피노체트나 마르코스 같은 친미독재자는 미국의 비호 속에 자연사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박정희는 미국을 거역하고 핵개발을 고집하다가 미국의 제거공작으로 비명횡사하였다. 10.26사태는, 박정희가 피노체트나 마르코스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미국에게 기억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박정희는 미국을 거역한 독재자, 그래서 미국이 제거할 수밖에 없었던 거역자로 미국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이다.

두 여성 정치인을 바라보는 미국의 대조적인 시선

결론부터 말하면, 제18대 대선에 집권당 후보로 출마한 박근혜 후보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은 싸늘하다. 왜냐하면, 박근혜 후보는 미국이 33년 전에 ‘거역죄’로 제거한 독재자 박정희의 친딸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국면에서 박근혜 후보가 자신의 친미성향을 뚜렷이 드러내며 백악관의 환심을 사려고 애써 봐도, 그런 행동이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미국의 혐오스러운 기억을 지워버릴 수는 없으며, 미국이 제거한 거역자의 딸에 대한 의심을 말끔히 해소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거역자의 딸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은 싸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적인 보급망을 가진 미국의 유력한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2년 12월 7일 아시아판 최신호 인터넷 기사에서 박근혜 후보를 표지인물로 등장시키고 특집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것은, 그녀를 ‘권력자의 딸(Strongman's Daughter)’이라고 지칭한 표제를 달아놓았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이 ‘권력자’라는 말을 들으면, 거칠고 난폭한 통치자(harsh ruler)의 부정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권력자라는 말에는 독재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자기 당의 대선후보가 <타임>의 표지인물로 등장하였다고 좋아하던 박근혜 후보 선거본부는 표제을 읽어보고 그만 기겁하고 말았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들은 표제를 ‘강력한 지도자의 딸’이라고 아전인수격으로 번역한 보도자료를 황급히 취재진에게 돌리며 부산을 피웠는데, ‘권력자의 딸’이라는 표제에 대한 논란이 한국에서 일어나자 <타임>지 편집국은 특집기사 제목을 아예 ‘독재자의 딸(Dictator's Daughter)’로 바꿔놓았다. 이것은 박근혜 후보 선거본부의 고의적인 오역을 바로잡아준 것이다.

지금 아시아에서 친미성향의 여성 정치인으로 미국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도 1947년 7월 19일 당시 미얀마 총리가 보낸 테러단에 피살된 미얀마 건국영웅 아웅산(Aung San, 1915-1947)의 딸이다. 그런데 2011년 1월 10일 <타임>은 아웅산 수치를 표지인물로 등장시키면서, ‘투사(Fighter)’라는 표제를 달고, 그 밑에 “버마의 아웅산 수치는 자유 없는 나라를 비추는 자유의 횃불”이라는 찬사를 써놓았다.

그런데 그와 달리, <타임>은 이번에 박근혜 후보를 표지인물로 등장시켜 ‘권력자의 딸’이라는 표제를 달고, 그 밑에 “박근혜는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역사에 등장하려고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물의를 일으키는 과거를 넘어설 수 있을까?”라고 써넣었다. 그 물음은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의 과거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불길한 암시로 읽힌다.

아웅산 수치에게 ‘자유의 투사’라는 미국식 찬사를 보낸 <타임>이 박근혜 후보에게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미국식 혐오감을 드러낸 것은 너무 대조적이다. 박근혜와 아웅산 수치를 각각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이 그처럼 대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미국을 거역한 박정희에 대한 미국의 혐오스러운 기억이 박근혜 후보에게 반복적으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물의를 일으킨’ 과거

위에 서술한 <타임>지 표제 아래 쓰여 있는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물의를 일으킨 과거(controversial past)’라는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임>은 ‘박정희가 남긴 물의를 일으키는 과거’라는 말을 유신독재의 과거라는 뜻으로 서술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임>의 시각일 뿐이다. <타임>과 달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박정희가 남긴 물의를 일으키는 과거’를 미국을 거역하고 핵개발을 고집하다가 제거당한 독재자의 과거로 인식할 것이다.

제18대 대선 선거일을 불과 12일 앞둔 매우 민감한 시점에, 미국의 유력한 시사주간지가 박근혜 후보를 독재자의 딸로 지칭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를 바라보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싸늘한 시선을 유력한 시사주간지가 언론필치로 대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선을 불과 며칠 앞둔 지금, 얼마 전까지 ‘박근혜 대세론’으로 표현되어오던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율 상승세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 대신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흥미진진한 역전극은, 박근혜 후보를 바라보는 미국의 싸늘한 시선과 무관한 게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 두 후보 사이의 지지율 역전현상은 미국의 대선개입공작이 대선국면 막판에 이르러 어느 쪽으로 쏠리고 있는지를 능히 짐작하게 만든다.

조엘 위트의 말에서 엿보이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분위기

2012년 12월 10일 <연합뉴스> 특파원이 조엘 위트(Joel Witt) 전 미국 국무부 대북담당관을 현지에서 대담한 기사가 실렸다. 대담에서 조엘 위트는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단정하고, 북미 대결에서 “실제로 북한이 이겼다”고 말하면서, 제18대 대선에서 당선되는 한국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서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게 되면, 미국은 그 기회에 이미 실패한 전략적 인내 정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원하는 한국의 새 대통령은 우리에게(오바마 정부에게라는 뜻 - 필자) 그런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조엘 위트의 이 발언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의 제18대 대선에 대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분위기를 그의 발언에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에서 엿보이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분위기는, 한국의 제18대 대선에서 북과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라고, 북이 대화상대로 여기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 가운데서 북과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는 후보, 북이 대화상대로 여기는 후보는 당연히 문재인 후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내내 그러했던 것처럼 ‘북한 붕괴설’과 ‘북한 정권교체설’을 미신처럼 믿으며 반북적대감을 드러내왔다. 그에 대응하여, 북도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를 향해 적대감을 보이며 맹비난을 퍼부어 왔다.

이런 현재 사정을 헤아려보면, 지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왜 거역자의 딸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주한미국대사관 정치부와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가 방대한 공작망을 총가동하여 벌이는 대선개입공작이 한국 대선의 당락을 사실상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거역자의 딸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과연 어떤 선거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칼럼은 본지의 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민중의 소리 입력 2012-12-16 10:22:23

정세	2012-12-20 \| 13:15:15

위 칼럼에 따르면 미국이 물밑으로 문재인을 지원했다는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선거 결과는 한호석 소장의 위 예측과는 정반대다. 미국은 원래부터 누가 되는 상관 없었을 거라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보스코프스키	2012-12-20 \| 13:19:56

순수에 가까운 토착적, 자생적 운동은 너무 답답하죠...^^

보스코프스키	2012-12-20 \| 20:21:13

이제부터 한호석씨는 주의 전환 프로그램부터 이수해 보시는 것이 어떠시겠습니까? 이런 비과학문을 보는 것도 이미 1/4세기(25년)은 지난 것 같으신데 지치지도 않습니까? 그리고 인제부터라도 그 문재인이나 민주당을 더 나쁜 놈으로 규정해 버리고 이들과의 투쟁부터 먼저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	2012-12-22 \| 22:21:57

음? 한호석 씨가 일리가 없지는 않다고 보입니다. 먼저, 미국이 꼭 지원, 조직 이런게 아니더라도, 박근혜씨한테 주는 메세지의 형식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두번째 재미있는 것은 문재인도 그렇게 반미적이지 않은 인사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지요....

보스코프스키	2012-12-23 \| 00:47:57

머 그럴수도 있긴 하겠습니다. 물론 문재인을 보니 여전히 예전일에 대해선 확신범이라는 생각이 강하더군요. 얼마 전에도 삼성관련 폭로도 있었는데 아직도 삼성하고도 분리를 결행하지 않고 있고 대외적인 인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의 세계는 오로지 상국 중심부의 제 1세계의 강대국 뿐입니다. 하나 한호석씨 같은 사람들이 주권회복지상적 사고에 지사적 행태에 빠져있다가 보니 지나친 비과학에 외부 원인(...)만 강조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이런 문서가 식상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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