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협


	제목 : [펌-민주노총 조합원게시판]광우병반대싸움이 지향할 것

쟁점	2008-05-20 15:30:56, 조회:1,637, 추천:260

광우병반대싸움이 지향할 것[민주노동]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대중적 저항이 15일 장관 고시를 앞두고 고비를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이 부족했다’고 달래기에 나섰고, 미국 정부도 ‘광우병 발생시 수입 중단’을 밝힌 한국정부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바람을 잡았다. 그러나 기존에 타결된 협상 내용과 일정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으니 그 호들갑이야 뻔한 사탕발림이고, ‘고시’가 며칠 늦춰진 것만이 작은 진전이다. 촛불이 계속 타오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나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먼저 이 글이 갖는 한계부터 짚어야 한다. 아시다시피 이 저항은 처음에 사회운동 단체들이 앞장서고 대중이 화답하여 일어난 운동이 아니다. MBC 보도로 촉발되어 10대와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행동에 나섰고, 기성의 운동단체들이 뒤늦게 따라나섰다. ‘범국민 대책회의’를 꾸렸다고는 하나, 사회단체들이 이 속에서 변변히 주동성을 발휘하고 있지도 못하다. 사회단체들이 심기일전하여 운동의 방식과 목표를 더 가다듬는다 하여 이 변화가 (자발적 대중 흐름에 대한) 진보변혁세력의 주도성 발휘로 금세 이어질 것 같지 않다. 조직운동의 선도적인 주체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 논의를 청한다.

현안과 관련하여, 대중이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는 긴 논란이 필요하지 않다. ‘나이 먹은 소’와 그 ‘부산물(동물성 사료)’의 수입을 금지하라! 취해야 할 운동 방식도 분명하다. ‘범국민 대책회의’에서는 특별법 제정까지도 한때 거론했으나 이는 자칫하면 어리석게 국회의원들에게 문제해결을 떠맡기는 꼴이 될뿐더러, 6월 새 국회에서는 그럴 지형도 이뤄내기 어려우니 현실의 방책이 되지 못한다. 대중의 목소리를 모아 정권과 직접 대결할 수밖에.

주된 숙고 거리는 ‘광우병’ 문제로 촉발된 싸움을 어느 방향으로 넓혀내느냐다. FTA반대운동을 해온 주체들은 이 목표로 넓히기를 바랄 것이나, 섣부른 연결은 대중의 참여를 오히려 주춤거리게 한다. 예전의 FTA반대운동이 ‘국가 이익에 유리하냐’ 여부의 협소한 논점에 갇혀버린 터라, 대중의 반대를 널리 이끌어내지 못했음을 떠올려야 한다. 뒤늦게 저항운동에 동참한 대학생단체들은 ‘광우병’ 문제 외에 교육자율화 반대, 공기업민영화 반대를 내걸었다. 맥락으로 보아 ‘FTA반대’와 통하는 것이지만 그 만만치 않은 과제를 바로 들먹이지 않고 신자유주의 반대를 선전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에두르기’로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선전의 목표를 무엇으로 잡을까? 충분한 선전 선동도 없이 FTA반대와 곧바로 연계하기도 조심스럽고, 그렇다 하여 이 과제를 접어버리는 것도 소심한 태도다. 쇠고기 협상 하나의 ‘각론’에만 몰두하는 것은 수천 수만의 촛불에 담긴 염원을 온전히 받아 안는 태도도 아니다. 이 싸움을 ‘총론’에 대한 문제제기로 업그레이드해낼 때라야 다음 싸움의 토대를 마련한다.
총론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다. “개방과 개혁을 동시에 반대한다! 이 둘은 하나다!” 진보세력이 여지껏 보인 편향은 한쪽이 ‘반미’ 선동으로 성급하게 치닫고, 다른 쪽은 ‘정권 반대’의 결론을 섣부르게 꺼내든다는 것이었다. 한쪽은 ‘반미’의 관점에서 FTA의 ‘개방’을 반대했고, 다른쪽은 ‘계급’의 관점에서 그와 연관된 ‘자유화 개혁’을 비판했다. 이 두 측면을 한데 통일하여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의 총론을 더 풍성하게 제기할 때라야 우리는 모처럼 대중이 스스로 몸을 일으킨 저항운동을 더 높은 목표로 이끌어갈 수 있다.

그동안 쇠고기협상 반대운동은 정권의 “참가자 처벌!” 엄포에 주눅들지 않고 잘 버텨왔다. 그러나 협소한 목표의 실현에 만족하는 운동은 정권이 조금이라도 물러서는 기색을 보이면 전열이 흐트러지기 십상이다. 집회에서 한정된 주제의 동일한 주장만 되풀이되다 보면 참여 열기도 서서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MBC와 KBS가 개최한 두 토론회에서 반대운동측은 갖은 변명을 다 늘어놓는 정부측 패널들을 ‘시원하게’ 압도하지 못함으로써 사람들을 맥빠지게 했는데 이는 비판의 논리가 ‘재협상해야 하느냐/마느냐’의 한정된 주제에만 갇힌 데서 비롯된 일이었다. ‘우리는 높은 싸움을 벌인다’는 고양된 정서를 나눌 때라야 주체들의 사기가 높아지지 않는가.
그렇다고 목표를 높인답시고 사회운동그룹이 자기들의 결론(반-미 또는 반-보수정권)을 성급하게 들이미는 것은 자기들의 정치적 선명성을 뽐내고 생색내기에는 도움 될지 몰라도 소박한 대중들의 공감을 오히려 가로막는다.
민주당은 쇠고기협상과 FTA비준을 연계함으로써 쇠고기협상을 ‘정치적 흥정거리’로 삼았지만 진보변혁운동은 이 두 문제를 (흥정이 아닌) 비타협적인 비판의 과제로 동시에 떠안아야 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길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문제제기를 ‘대중적으로’ 벌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동안 우리가 그 주장을 펼치지 않았느냐?’는 볼멘 소리가 돌아올지 모른다. 그 주장을 내걸지 않은 것은 아니되, 진보정당이나 기성 노동조합의 좁은 테두리 안에서나 먹혔을 뿐이다. 이를테면 ‘사유화(민영화) 반대’가 광범한 대중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일부 정규직 노동조합의 ‘정리해고’ 문제로 협소하게 선전되지 않았는가? 총론의 문제가 대중의 넓은 공감 속에 제기될 때라야 우리는 비로소 지배세력과 이 사회의 미래를 둘러싼 ‘이데올로기 대결’에 힘있게 나설 수 있지 않은가? “지금의 사회적 위기를 타개하려면 신자유주의 세계화 아닌 다른 경로를 개척해야 한다.”는 담론 투쟁에!

‘개혁과 개방 반대’는 바로 대중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까? 그런 속단은 이른바 ‘진보’세력이 지난 대선에서 참패했다는 사실을 몰각할 때나 가능하다. 진보변혁세력이 아직 민중에게 대안이 되지 못할 때에는 대다수의 민중은 ‘개혁개방 불가피론’ 또는 ‘선진화(=선진 제국주의로의 발돋움)의 길로 가자’는 정치담론이 솔깃할 수밖에 없다. 진보적 지식인 다수가 ‘박정희는 우리 사회에 공로도 있다’는 물신주의적 절충론으로 쏠리는 세태에서 우리는 이른바 진보세력 중에도 ‘선진화 담론’을 은연중에 긍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짐작한다.
그렇더라도 지금은 비전 부족에 시달렸던 진보변혁세력이 ‘(자본주의 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는 널리 알려진 정치적 패배주의에 맞서 한판 논쟁을 벌여볼만한 때가 아닌가. 지금의 세계자본주의 체제야말로 인류를 까닭모를 불안과 공포 속에 몰아넣고 있음이 날로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광우병’ 파동과 동시에 터져나온 ‘조류 독감’의 대규모 발병사태를 조금만 들여다 보더라도 우리는 돈벌이를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본주의적 산업(농업, 축산업)과 아예 선을 그어야 한다는 깨달음에 다다르지 않는가? 대책 없는 질병들에 대한 까닭모를 불안과 공포는 그런 근본적인 타개책에 대한 숙고로 이어질 때라야 비로소 해소될 수 있지 않은가? 광우병과 조류 독감과 머지 않아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날 미지의 질병들을 끝장내려면 ‘이윤 추구’의 사회 원리와 결별해야 한다는 더 깊은 통찰을 품게 된 사람만이 지치지 않고 촛불을 밝혀들지 않겠는가? 세계적 식량 위기도 널리 대중과 함께 토론해볼 좋은 주제다. 치솟는 석유값과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구조적 공황의 분출도 대다수 인류가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제다. 촛불 집회장은 그런 깊이 있는 선전과 선동의 무대가 되어야 한다. 더 무게 나가는 정치 연설은 빤한 내용의 이명박 정권 규탄이나 미국 반대가 아니다. 대중의 각성과 함께 비슷한 보폭으로 나아가지 않는 섣부른 정치선동은 진보변혁세력의 울타리를 넓히지 못한다. “미국 소뿐만 아니라 한우도 문제다. 농업 축산업부터라도 자본주의 방식을 걷어치우자”는 훨씬 대담한 메시지만이 한나라당에 투표한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다. 요컨대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변혁의 비전이다.

어른들보다 앞서 정치행동을 벌인 10대들을 찬양하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린다. 이들의 정치적 성숙을 위한 프로그램은 천천히 숙고해 보자. 지금은 여지껏의 자발적 대중 진출에 그저 흐뭇해할 때가 아니라 이를 쇠락해가는 사회운동에 새 힘을 불어넣는 긴요한 계기로 삼을 때다. ‘의심스런 미국 소의 하역 거부’로 대중에게 감명을 준 운수노조의 사례에서 우리는 ‘대중과 함께 하는 운동’의 한 사례를 본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전반적으로 이 싸움에 치열하게 나서고 있지 못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주노총은 이명박 정권의 ‘불법집회 엄단’ 엄포에 노동절날 집회장소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소심하게 움츠러들었으니 싸우는 대중들에게서 오히려 그 기백을 배워야할 판이다. 경찰이 최근 ‘집회 주도자, 사법처리’를 밝히자 그 게시판에 “나도 잡아가라!”하고 숱한 사람들이 벌떼처럼 덤벼들었거니와 민중운동 단체들이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그런 투지가 아닌가. 광우병 싸움은 파쇼적 탄압을 다시 들여오려는 정권의 공세에 파열구를 낸다는 점에서도 매우 엄중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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