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정세와 노동]리비아의 봄?
보스코프스키   2015-09-20 10:55:45, 조회:945, 추천:184
리비아의 봄?  













































[역자주 : 이 글은 일본의 인민신문의 기사이다. 필자는 히라타 이츠코(平田伊都子)이며, 수차례 가다피 인터뷰 취재를 한 저널리스트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글은 가다피가 엄청난 국제적 압력을 받아온 과정에 있었다는 것, 반동파라 불릴 만한 왕제복고파가 최근의 분위기와 맞물려 봉기하자, 이들을 진압하려 했다는 것, 그리고 이를 계기로 NATO가 나섰다고 주장한다. 정보가 워낙 없는 한국 사정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해 본다. 일본어를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고유명사에 오기가 있을 것이다. 일일이 찾아보지 못함에 양해를 부탁한다.]


























사르코지 지배의 왕정복고파












"9월 3일까지 가다피군은 투항하라"라고 가다피 군에 최후 통첩을 들이밀었던 국민평의회(왕제복고파)는 며칠 후 "중단한다! 일주일간 항복기간을 연장한다." 고 개정하였다.





선언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는 것은 국민평의회(왕제복고파)에 주도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조직이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 조종당하고 있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이 사르코지에게 지혜를 빌려 샤리르 국민평의회대표는 가다피의 목에 1억 3,000억 엔의 상금을 걸었다.



















가다피, 안녕












구미는 말하는 것을 듣지 않는 가다피에 애를 먹고 UN은 욕설을 퍼붓는 가다피에 질리고 리비아 국민은 이 시끄러운 남자에게 싫증내고 있었다. 알자지르 TV는 독재자라는 소문을 계속 부채질 하였다. 이러한 가다피에게도 지금까지는 팬이 있었다. 초대강대국 미국의 폭력에 창을 겨누고, 학대받은 국가들을 원조하며, 팔레스타인 인민에게 국가를 빼앗은 이스라엘을 심하게 비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도 단순한 팬 중 한 사람이었다. 어디서 굴러다녔을지 모를 저널리스트인 필자를 "사마 피야․여자 저널리스트"라고 불렀으며 다른 국제 언론과 동등하게 취급해 주었다. 1989년부터 2002년에 걸쳐 빈번하게 리비아에 드나들었다. 가난한 사람과 약자의 우군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9년 팬 아메리카 기 폭파사건의 용의자 모가디프를 구미 측에 팔아버린 다음 가다피의 언동이 변화해 갔다.





팬 아메리카기 폭파사건이란 1988년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발생한 폭파 테러 사건이다. 미국과 영국은 리비아 첩보원인 모가디프를 실행범으로, 리비아 정부를 주범으로 간주하였다. 모가디프의 인도를 거부한 리비아에 국제사회는 경제제재를 가하였는데 경제제재에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모가디프를 구미에 넘겨주고 만다.





2000년에 들어서 가다피의 얼굴이 붓고 치열이 나쁘게 되며 이상한 것을 태연하게 말을 하게 되었다. 옷차림만 요란하게 되고 필자를 포함한 많은 팬이 "가다피, 안녕" 하고 만다.



















푸들인가 광견인가












"이라크의 후세인 전 대통령이 미영군에 의해 코텐판에서 당하는 것을 보고 가다피는 망연자실하고 만다"라고 후세인 변호단의 지야드 변호사가 필자에게 말해 주었다.





2003년 이라크 침략은 가다피의 입을 완전히 봉해버렸다. 가다피는 구미가 시키는 대로 핵폐기를 하고 파키스탄의 과학자들을 배신한다. 반테러 협력이라 부르며 제3세계 혁명가들을 구미에 팔아넘긴다. 그리고 가다피는 실언증 상태가 되고 만다.





그 대신 차남 세이푸․알 이슬람이 가다피의 이름을 빌려 2007년 3월에는 트리폴리에 "지중해 국제회의"를 주최했다. 그러나 그는 회의에 나타나지 않았고 그가 앉아야 할 의장석에는 알려지지 않은 남자가 이름도 알리지 않은 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팬 아메리칸기 폭파사건의 희생자 270 명에 대하여 2052억엔의 배상금 문제가 정리되자 가다피의 태도가 바뀌어 간다.





2009년 8월에는 스코틀랜드 형무소에 갇혀 있던 팬 아메리칸기 폭파범 모가디프를 차남 세이프가 직접 마중 나간다. 가다피는 영웅취급하며 모가디프에 훈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23일 UN 수뇌연설에서는 한 사람당 15분의 주어진 시간을 1시간 반이나 훨씬 넘겨 "UN은 왜 팔레스타인 국가를 침략한 이스라엘을 벌하지 않는가!" 등 쉬지 않고 떠들었다. 또한 "필요도 없는 UN 헌장따위!" 라며 UN 헌장인 듯한 책을 던져버렸다.





구미는 석유 이권을 구미의 뜻대로 할 수 있는 푸들을 원한다. 미개척 석유가 아직까지 있다는 리비아는 유럽 대륙의 관심사인 것이다.





구미 제국은 광견으로 되돌아 간 가다피를 말살한 기회를 노렸다.



















사르코지 NATO의 승리












올해 2월 17일, 벵가지에서 이도리스 왕조(1951년∼1969년)의 깃발을 치켜든 사람들이 인민혁명을 드높게 외쳤다. "왕정복고가 민주화? 뭔가 이상하다?" 고 의심하면서도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에도 인민봉기"라고 찬미하던 알자지라의 선언을 믿었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인민혁명병사들은 유창한 영어, 멋스러운 선글라스, 세련된 차림새의 타국의 아랍인 냄새.





이도리스 왕국기를 흔드는 왕제 복고파가 국민평의회라며 나서고, 샤쟈리르 대표가 파리에 참배를 하게 될 시기가 되어 무대 뒤의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무대 위에 나타났다.





"벵가지의 배신자들, 용서 하지 않겠다!" 사르코지의 교활한 유도에 보기 좋게 당한 가다피는 절규하고 만다. 올해 2월 27일 "벵가지 시민을 가다피의 학살로부터 보호하는 행동"을 UN에서 결의하고 리비아 자산의 동결을 시작한다. 3월 17일 "벵가지 시민을 지키기 위해, 리비아 상공비행금지영역"을 UN이 결의하고 3월 19일부터 사르코지의 NATO는 트리폴리 공중 폭격을 개시한다. 8월 말에 트리폴리를 함락시킨 것은 인민혁명병사가 아니다. NATO의 공중폭격과 그 우군인 카타르 정규군이다.





올해 9월 1일, 파리에서 63개국 대표를 초청하여 쟈리르 국민평의회 대표를 첫 선을 보인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득의 만만하게 절정에 이른다.





"리비아 비행금지구역 설치결의는 리비아 공중폭격을 승인하고 있지 않다. 리비아에 대한 NATO의 침략은 내정간섭이다"라고 사르코지를 비난해 왔던 러시아도 리비아 석유 이권을 박탈할 것이라고 겁박당하고 국민평의회를 승인했다. "우선 리비아 자산의 일부에서 1조 1500억엔을 지원국과 국민평의회에서 대충 나눈다"고 사르코지는 발언하였다.





다른 국가의 석유, 자산, 국토를 모두 도둑질하면 민주주의가 되는 것인가?












이산가족이 된 가다피 일가












가다피 일가의 9월 6일 현재 소식을 알아 보았다.





부: 무안마르, 알 가다피(추정 70세), 행방불명.





모: 사피아 (연령 불명), 8월 28일 알제리아로 망명.





차남: 세이프 알 이스람 (41세), 알자지라는 몇 번이고 세이프 체포라고 흘리다.





칠남: 하미스, 하미스 군단을 이끈다. 알캬키라의 보도에 의하면 3번 살해당했다. 행방불명.





장녀: 아이샤(35세) 후세인 국제변호단의 일원이었다. 8월 28일 알제리아로 망명하고, 입국 직후 여아 출산. <노사과연>



















번역: 임덕영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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