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정세와 노동]'현대 부르주아경제학 비판'서평 외
보스코프스키   2015-09-20 10:35:41, 조회:1,069, 추천:206
≪현대 부르주아경제학 비판≫서평  


3월말부터 3개월에 걸쳐 ≪현대 부르주아경제학 비판≫ 세미나에 참여했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할 수도 있지만 세미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은 만만치 않았다. ‘케인즈주의’, ‘포스트-케인즈 학파’, ‘케임브릿지 학파’, ‘통화주의’, ‘신고전파’, ‘신고전파적 종합’, ‘합리적 기대학파’ 등 많은 용어들 때문에 질리기도 했다.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이 있다. “대학 4년 동안 이런 쓰레기 같은 부르주아경제학을 배우는 데 시간을 허비하다니……. 쯧쯧... 너무 안 됐구나.”라고…….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시간이 아까웠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모든 부르주아경제학은 “모두 자본주의 체제의 전반적 위기의 시대, 국가독점자본주의 시대의 부르주아 속류경제학일 뿐”이기 때문이다.



2007년 새로운 대공황이 발발하고, 이후 ‘신자유주의 파탄’이 명백해지자 세계 전반적인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신자유주의는 끝났다는 이야기가 요란하게, 그러나 그런 목소리가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를 위협하지 않는 수준에서 변죽을 울렸다. 국내에서는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등 공상적인 이야기가 무슨 대단한 발견이고 대안인 것처럼 말하고, 그러한 이야기가 소위 ‘진보적’인 주장으로 통했다.

이런 시점에 ≪현대 부르주아경제학 비판≫(노사과연)이 나왔다.



책에는 13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이 글들은 1980년대 초반 ‘쏘련 과학 아카데미’ 소속 경제학자들의, 현대 부르주아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의 성과이다.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대상은, 1930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탄생하여 사실상 부르주아 경제학 일반을 지배하고 있는 이른바 케인즈주의 경제학과, 1970년대에 케인즈주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반대’을 내세우며 신자유주의를 선도해 온, 통화주의·신보수주의 경제학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1930년대 이후에는 전반적 위기의 시대로 전화”되었고, 부르주아 경제학은 케인즈주의와 통화주의로 “번갈아 서로의 파탄을 선언하면서 티격태격하고 나아가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마음이 쓰라린 점은 이 책이 쏘련에서 나올 당시에 세계 사회주의 진영이 존재하고 있었고, 자본주의는 인구의 최빈곤층의 보호, 의료, 연금지급 등 사회보장제도 축소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본격적으로 개시하던 시기였지만, 지금은 세계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졌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의 공격이 더욱 강해졌다는 것이다.



아직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20세기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해체의 경험 때문에 사회주의는 이미 패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역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는 결코 일직선으로만 전진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여러 사정과 이유로 일시적인 후퇴와 반동·반전이 불가피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그 후퇴와 반동·반전이 역사의 전진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세의 봉건제·절대왕정기로부터 근대 부르주아 사회,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과정을 보라. 프랑스 부르주아 혁명의 전진과 후퇴·반동·반전과 그 최종적인 이행, 승리의 과정을 보라!”



이 책에 수록된 1980년대 초는 1980년대 후반 기회주의가 급속히 강화되는 시기보다는 덜하지만 엄밀하게 표현되지 못한 부분들이 일부 보인다. 하지만 이 부분은 당시 시대상황의 한계로 잘못 표현되었거나, 일부 잘못 분석한 부분에 대해서는 ‘역자 주’를 통해 보완하여 읽어 나간다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역자의 노고와 친절함에 감사드린다.



첫 번째 글, “이론적 계급투쟁과 부르주아 경제학의 위기”(p. 1)에서는 “부르주아 경제학이란 자본가계급의 근본적 이익을 이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경제학의 진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객관적 경제법칙의 작용만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진전이다.”라고 말하며, 이론적·역사적 계급투쟁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를 과학적으로 깊이 분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그 ‘적대적 모순의 본질’을 고려해야 함을 강조한다.



두 번째 글, “케인즈주의는 왜 인기가 있는가”(p. 37)에서는 케인즈주의가 자본뿐 아니라 개량주의적 정당들, 노동조합 관료들 등으로부터 인기가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가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자본주의 옹호가 초계급적인 과학인 것 같은 가면과, 금기를 피한 자본주의 비판이라고 하는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케인즈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그의 깊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표면성에 있고, 그의 사상의 새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절충주의에 있다.”



세 번째 글, “케인즈주의의 진화”(p. 75)에서는 정통 케인즈 학파의 발전의 특징과 후기 케인즈주의적 패러다임의 형성에 대해 설명한다. 포스트-케인즈주의자들은 예산정책, 신용·화폐 정책과 소득정책을 보완적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는데, 이것은 ‘선의의 협정’을 관련시킨다. 그러나 부르주아들이 기대하는 ‘사회적 합의’는 자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종속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착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네 번째 글, “케인즈주의 ― 그 과거·현재·미래” (p. 101)에서는 1970년대 말에 걸쳐서 케인즈적 수요관리 구상에 입각한 국가독점 규제전략이 적합하지 않게 됨에 따른 보수파의 ‘반혁명’을 이야기한다. “사회보장비를 삭감하면서 벌인 감세는 군사비의 미증유의 돌출과 생산의 위기라는 조건하에서 이루어졌다.” 한편 케인즈주의의 자유주의적, 급진적이고 개량주의적인 강령은 “국가의 적극적인 경제규제라는 도움을 빌려 계급대립을 완화하고, 경쟁과 생산의 무정부성을 제한하려고 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진짜 요구가 반영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다섯 번째 글, “필립스 곡선의 ‘권위’와 그 몰락” (p. 125)에서는 1970년대로부터 1980년대 초에 걸친 필립스 곡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을 중심으로 케인즈 학파적 방법의 위기, ‘합리적 기대’의 역할, ‘공급 중시 경제론’의 처방을 설명한다. 특히, 공급 중시라는 사상을 실제로 적용한 결과 비참했으며, 전후의 경제발전의 실적은 경제가 호황으로 이행할 때는 언제나 가속적인 물가등귀가 수반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현대 부르주아 경제학의 이론구조의 파산이 명확해”지는 것을 보여준다.



여섯 번째 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부르주아적 구상 비판” (p. 163)에서는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계급적 모순이 격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노동자의 현저한 부분이 부르주아적 관념의 포로가 되어 있으며, 국가는 흡사 국민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처럼 제시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 레닌의 국가독점자본주의 분석을 소개하고, 국가독점자본주의하에서 케인즈와 그 이후 부르주아 경제학은 지배계급과 그 국가를 위한 변호론에 불과함을 폭로한다. 자본주의하에서 잉여가치의 법칙과 그에 따른 생산력의 증대는 자본주의를 “경제의 군사화와 핵전쟁이라는 파국의 위협으로부터 구할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곱 번째 글, “‘혼합경제’ 개념의 사상적 원천과 진화” (p. 185)에서는 ‘혼합경제’ 사상의 유형, 이론적 기초, 경제 ‘사회화’의 방도, 형태, 방식에 관한 개량주의적 관념을 소개한다. 관료주의적인 중심주의에 대한 반동으로서 ‘반(反)국가적’이고, ‘반중심적인’ 풍조가 강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특질이 ‘사회화’사상에도 반영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각종 생산자 협동조합이나 소비자 조직, 중소기업 연합체 등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하는 개량론자들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은 꼭 기억해두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의 경험이 말하는 것처럼, 사회·경제 영역에서의 다소라도 본질적이고 전향적인 개혁은 언제나 민주세력의 광대한 운동, 근로자, 특히 조직된 노동자계급의 목적의식적인 정치활동의 결과인 것이지, ‘사회적 연대’의 소산도 아니고, 지배자층의 ‘관리 비법’의 부산물도 아니다. 단계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으로서는 경제의 진정한 사회화는 달성할 수 없다. 그것을 위해서는 체제의 행동원리 그 자체의 변용이 필요하고, 그것은 또한 국가의 정책, 바꾸어 말하면, 국가권력의 유형의 근본적인 변화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변화는 그 내용과 의의에서 혁명적인 것이지 않을 수 없다.”



여덟 번째 글, “통화주의자들의 ‘개방경제’론” (p. 215)에서는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이 경제생활의 국제화가 강화되었으며, 케인즈 학설의 위기해결을 위해 서방에서 연구하고 있는 통화주의자들의 ‘개방경제’론에 대해 설명한다. 이들의 ‘개방경제’론은 현대 자본주의의 심각한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며, “대외경제의 곤란이 자본주의 체제의 일반적 위기의 표현에 불과하다고 하는 명백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아홉 번째 글, “미국의 현대 보수주의의 이론 강령” (p. 237)에서는 현대 보수주의의 경제이론은 국가적 규제의 사회적 기능에 중대한 제한을 가할 근거를 부여하는 것이며, 국가 개입의 온전한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한다. 이들 대표자들은 “신고전파에 대한 비판가이자 또한 정통 케인즈 학파에 대한 비판가로서 등장하여, 좌파 케인즈주의자들, 제도 학파, 리카도파, 드디어는 맑스주의의 개별 명제들까지도 포함한, 부르주아 경제사상의 비정통파적·개량적 경향 모두를 종합하려고 노력하는, 후기 케인즈 학파라고 하는 새로운 사조의 형성이다.”



열 번째 글, “현 단계 부르주아 경제학과 경제정책의 제문제” (p. 261)에서는 두 개의 사회체제의 대결, 국제노동운동이나 민족해방운동과의 투쟁이라고 하는, 정치와 전략의 문제들이 전면에 내세워져 있는 상황에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배집단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을 어떻게 수행해 왔는지 이야기한다. 현대 제국주의적 군국주의화의 광기에 대해 그 근거와 실제 사례를 설명한다.



열한 번째 글, “통화주의자들의 인플레이션론” (p. 287)에서는 신케인즈 학파에 대립하는 통화주의, 인플레이션 단일 요인 모델, 밀턴 프리드만 모델을 통해 1970년대의 심각한 위기적 변동을 배경으로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인플레이션 과정의 격화가 국가독점적 경제규제의 위기를 반영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케인즈 학파와 마찬가지로 통화주의 학파도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현실적인 방책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데, 이것은 또한 부르주아 경제학의 심각한 위기를 증명함을 강조한다.



열두 번째 글, “현대 통화주의와 부르주아 국가의 경제정책” (p. 309)에서는 “통화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의 화폐적 요인의 역할과 인플레이션 경향의 진전이 장기간 무시된 데에 대한 독특한 반동”이며, 당면한 상황을 이용하면서 그들의 지도자들은 정부기관의 중요한 자리들을 장악하고, 경제 상태의 안정화에 관한 스스로의 권고를 실현시키려고 광분했다. 그들이 영국과 미국에서 하고 있는 역할은 그들이 “노동자계급의 적일 뿐 아니라, 이를 지지하는 자들은 어떠한 민주적 개혁에도 반대하는 자들”임을 지적한다.



열세 번째 글, “맑스 경제이론에 대한 현대적 비판가들의 무능” (p. 333)에서는 맑스 경제학과 케인즈 경제학의 사회적·계급적 성격을 분석하고, 전후 근대경제학자들의 맑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 내용을 살펴본다. 그리고 맑스의 노동가치론에 대한 현대의 비판, 잉여가치론에 대한 부르주아적 비판에 대해 이야기한다. 맑스의 “잉여가치론에 대한 모든 비판의 본질은 역시 자본주의하에서의 착취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역자는 말한다. 맑스주의를 흉내내거나, 맑스의 말을 인용하여 맑스주의를 비판하는 자들에 대해 레닌은 “맑스주의의 이론적인 승리는 그 적으로 하여금 맑스주의적인 의상을 입게 하고, 맑스주의적인 술어를 흉내 내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 부르주아경제학 비판≫ 세미나를 통해 책을 읽게 되어 정말 감사드린다. 번역을 해주신 역자분과 출판하는 데 노력하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혹시 책을 볼지 말지 망설이시는 분이 계시다면 꼭 읽어 보실 것을 권해드린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두 가지 좋은 점이 있다. 하나는 사상적 혼돈을 극복하고 부르주아 경제학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의 관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학습계획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사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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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온라인 서평가)의 사랑방(블로그; http://blog.aladin.co.kr/mramor )에 보니 '비즈니스 우파가 승리하는 이유(http://blog.aladin.co.kr/mramor/6463757 )'라는 서한(포스트)이 있습니다. 이 문서 역시 일부 논쟁거리가 있긴 하지만 도서 '현대 부르주아 경제학 비판'을 볼 때도 참조를 할 내용은 있다는 생각입니다. 서한이 조중동의 기사 인용이 있고 물론 노동/민중에 적대적이지만 케인즈 주의가 당연히 우파/유산 진영의 공격에 말려드는 원리를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말미의 결론은 결국 변혁만이 가능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간접 시사했습니다. 이 평은 자유게시판에 작성한 '밀리밴드의 환상'이라는 문서의 일부를 재구성한 것인데 현실에선 이런 유산 경제학의 논리가 자리잡고 있고 특히 현재도 그렇지만 아직 2010년의 봉기와 공황의 재격화 이전 시점 또는 2007 ~ 8년 공황기 초기 무렵까지만 해도 이런 연성의 유산 경제의 경험은 인정받았을 망정 변혁의 논리는 인정받은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작금 특히 동아시아 권엔 상당한 고통으로 작용하고 있는 점이 있는데 반가운 서적이자 논평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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