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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97호] 레미콘 파업과 고공농성 일기/조창호 건설노동조합 울산건설기계지부 레미콘총분회 교육선전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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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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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1 22:30:14, 조회:3,055, 추천: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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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콘 파업과 고공농성 일기
조창호 건설노동조합 울산건설기계지부 레미콘총분회 교육선전부장
숱한 선배 열사들의 역사에 비추어 그저 작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은 소박한 노동자의 외침인 것을 노동자정치신문에까지 노크를 한다는 것이 왠지 부끄럽기도 하고 머쓱하기만 하다. 24일 간의 짧은 고공 농성의 상황을 써달라고 하니 현대차 비정규직 철탑농성 250일이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그분들이 먼저 생각난다. 어쨌거나 노동자 관련 소식이니 미흡하나마 정성껏 공유하도록 해보겠다. 아직도 긴 여정의 여운이 주위를 맴돌며 현실을 혼란스럽게 하고 73일간의 동지들 모습과 그 울부짖음은 아주 오랜 세월동안 이 가슴에 각인 될듯하다.
어쩌면 나는 죽어도 그 메아리는 살아 움직일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질긴 놈 이었으니까! 벚꽃이 천막 농성장 주변을 떠돌아 다녔고 미련이 남은 겨울바람은 꽤나 성가셨다.
사측의 도발로 분주하게 진행된 준비과정과 어색한 팔뚝질에 옆 동지 눈치 보며 따라 불렀던 노동가요들! 2013년 4월1일은 만우절이 아니었고 사실이었다!
방송차 스피커는 찢어져라 호통을 치기 시작했고 육십이 훨씬 넘은 얌전한 큰 형님(투쟁대오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노동자)은 삿대질이며 침을 튀기는 육두문자로 핏대를 세웠다. 방송차를 선두로 꼬리가 보이지 않는 차량 시위로 여러 건설현장과 시청 및 관공서 압박과 여론호소를 하며 수십 년 동안의 탄압과 착취의 현실을 방송과 신문사에 고발하며 몇 며칠을 정신없이 돌아 다녔다. 정말 어수선 했으며 오히려 사측에서 당황하기 시작하면서 사태가 조속히 마무리 될 것만 같았다.
건설동지(덤프, 굴삭기, 펌프카, 크레인)들의 연대투쟁으로 더욱 가열차진 대오는 1.2차 불시파업을 거치면서 자본이 완패하기를 노렸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자본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승리를 낙담한 기세가 한풀 꺾기면서 상황은 파국 국면(투쟁과정에서 사측의 회유와 분열 책동으로 이탈자 발생)! 참으로 난감했다! 집행부의 한사람으로서 동지들께 너무도 미안했으며 믿고 따라와 달라고, 함께 가자며 굳은 결심과 결의로 다졌던 그 어깨들이 왠지 작아 보일 때는 죽고만 싶었고 돌아서서 흐르는 눈물만 닦아야 했다. 이 싸움에서 지면 두 번 다시는 회생불능이고 사측(자본) 기세는 더 세질 것이다! (중략).
파업48일째. 패배다!! 라는 먹구름이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퍼부을 듯 어두워졌다! 지쳐있는 동지들과 늘어나는 이탈자들을 보면서 전략수정이 필요했고 그 어떤 결단을 내려야했다. 비공개 긴급회의 결과 싸일로(시멘트 보관 창고) 고공농성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며칠 일이 많아서 못 들어 갈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하늘 한번 올려다보니 순간 두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저 아이들이 훗날 살아갈 이 땅은 노동의 가치가 바로 선 사회이기를 간절하게 희망하며 5월20일(파업50일차) 새벽 3시 40분경 고요를 틈타 김낙욱 지부장. 오명환 부지부장. 장동기 레미콘 총분회장 그리고 조창호, 이렇게 4명은 각각 두 개의 싸일로에 2인 1조가 되어 35m의 싸일로 정상꼭대기로 올라갔다.
아래에 있는 동지들에겐 이런 말은 한마디도 못했지만, 레미콘 위에서의 잠을 자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조그만 매트를 깔고 이불도 없이 얇은 비닐을 덮고 다음날 이슬에 흠뻑 젖어서 일어났다. 아침에 6시쯤 일어나 7시쯤에 방송차가 날마다 와서 아래에 있는 동지들과 같이 매일 아침 조례를 하였다. 우리는 밑에 동지들이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도록 씩씩하게 활동했다.
싸일로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조합원들이 볼 때, 건강에 이상이 없고 쌩쌩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점이다. 우리는 위에 있는 지도부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 밑의 동지들이 힘 빠질까봐 표현을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비닐에 맺혀있는 이슬이 동지들의 피와 땀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쌩쌩한 동지들을 보니, 우리의 승리가 머지않았음을 느꼈다.
‘장시간 노동근절과 인간다운 삶 쟁취’라는 현수막을 순식간에 부착하고 강제 진압에 대비해서 출입구와 사다리 쪽에 준비해온 쇠사슬로 단단히 봉쇄한다. 상황실에서 두 개 공장(한라엔컴 장생포 지역과 대원레미콘 언양 지역)에 ‘싸일로 고공농성 돌입!’이라는 전체 문자를 전송하자 두 눈을 부비며 뛰어나온 동지들은 예고 없는 상황에 당황해 하며! 싸일로 쪽을 주시한다. 날이 점차 밝아오자 경찰 기동대병력, 소방차, 방송사카메라와 기자들로 분주했고 사측의 불성실한 교섭 태도에 대한 분노와 레미콘 동지들의 현실을 보다 강도 높게 언급하고 또 여론화해서 지쳐가는 동지들을 보며 조속한 마무리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한줌의 재가 될지언정 패배는 인정 못한다고 결의해 놓은 터다! 차라리 편안할 수 있었고 싸일로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오히려 담담했다. 동지들의 움직임과 눈빛 또한 꺼져가는 불씨의 기름처럼 살아나기 시작했다. 올해로 62세의 연세에 뚜렷한 의식과 사상을 가진 총분회장님은 아래에 있는 동지들의 걱정에 한숨을 내 쉬었다. 그간의 끈끈한 동지애가 심금을 울리고 ‘찔긴 놈이 이긴다!’는 단결 투쟁의 구호가 동지들을 결합하고 저 아래 보이는 곧 쓰러질듯 한 천막 옆의 붉은 깃발은 햇빛에 탈색되어 허옇게 변해간다.
공장 마당에 동지들의 레미콘 차량에는 군데군데 녹이 쓸어 있고 사측의 회유에 넘어간 이탈자들은 다른 세상 보는 듯 탕바리에 여념이 없다. 싸일로 아래 주변으로는 낙하방지용 그물이 쳐지고 동지들의 구호와 방송차 스피커는 가열차게 외쳐댄다. 몇몇 동지들은 울먹이며 전화를 한다. 올라가게 해서 미안 하다고! 꼭 사수 하겠다며 건강 잘 챙기라고 한다. (통화 후 나도 울었다).
여론의 압박과 살아나는 동지들의 투쟁으로 궁지에 몰린 사측은 최종 카드로 협상을 제의 한다. 선봉자들에 대한 ‘선별복귀!’
집행부 사수와 전체복귀. 그리고 장시간 노동근절의 토대마련 조건이 아니면 협상불응을 고수하며 거부를 한다. 참!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고공농성 3일째(파업 54일차) 되던 날 많은 비가오고 비닐 한 장에 의존하며 밤을 지새는 레미콘 총분회장한테 사측에서 전화가 와서는 이렇게 장기화 될지 몰랐다며 이제 내려와서 함께 일 하자며 백기투항을 종용한다! 아무런 조건제시도 없는 막연한 내용을 일언지하에 거부하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개**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동이 트고 비닐 안쪽으로는 서리가 맺혀 온몸이 찌뿌둥하다.(싸일로 위는 평평하지가 않고 경사가 져서 자세를 바꿔가며 움직여야 한다). 동지들이 올려다 주는 식사도 잘 넘어가지도 않고 이것도 일이다 싶어 부담스러웠다. 항상 깔끔한 스타일의 장동기 레미콘 총분회장은 덥수룩한 수염과 떡진 머리모양에 짜증도 많았으며 늘 조용히 챙겨 드려야 했다. 가끔 생수통 하나를 희생하며 머리를 감겨 드리면 어이 마누라! 고마워하며 좋아 하셨다. 좁은 공간에 함께 있는 동안 두터운 정도 생겼다. 여기는 도심을 살짝 벗어난 시골스런 곳이라 공장 뒷편으론 전답이 펼쳐져 있고 밤이면 개구리 합창에 초록의 풀내음도 있다. 며칠 전에 모내기가 끝났는데 벌써 많이 자라 있다.
싸일로를 기준으로 앞과 뒤의 상황은 전쟁과 평화였다. 일요일을 몇 번 보내고 고공농성 23일차 되던 날 분위기가 심상찮다. 그러자 곧 전화벨이 울린다. 오늘 잘 하면 마무리 될듯하다는 희소식이다. 그러나 동지들은 최후일격을 가하기 위해 이때다 싶어 피 터져라 외치며 하늘을 찌를듯 한 팔뚝질이다. 검게 탄 얼굴! 오기와 독기로 번뜩이는 눈빛! “찔긴 놈이 이긴다”는 구호가 왜 생겨난 건지 깨닫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잠시 뒤! 협상은 결렬되었고 사측은 선봉자 ‘선별복귀’ 원칙에 모두를 수용하겠다고 한다. 결렬 사실에 대오는 잠시 휘청거렸지만 7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자본의 습성에 대해 교육을 통해 학습되어 있는지라 크게 동요 되지는 않았다. 장동기 레미콘 총분회장과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자본의 적대감에 또 한 번 주먹을 쥐었지만 냉정을 찾아야 했고 뜨거운 철판 위에서 둘만의 긴급조치를 결의! 오후에 마무리 집회 때 발표하기로 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동지 여러분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시작으로 투쟁사는 이어졌고 이 시각 (파업72일차 저녁) 이후로 사측의 악랄한 작태에 반기를 들며 무기한 단식 투쟁으로 전환한다고 어금니를 깨물며 최후통첩을 전했다.(침묵!)
다음날. 이제 정말 처절한 싸움이 되겠구나! 볕은 왜 이리 따가운지! 에너지 소모를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꼼짝 않고 있던 차에 저녁 무렵에 전화벨이 또 울린다.
상황실이다. 협상팀이 사측의 요청으로 사무실로 올라갔다고 한다. 저녁 늦게까지 몇 차례의 협상결과 ‘선별복귀’에 원만한 내용으로 협상 체결 되었다고 한다! 자본이 손을 들었다! 온몸이 내려앉는다! 모든 체결 내용은 둘째치고 “자본이 손을 들었다!”
방송차 스피커에서 투쟁사가 아닌 하산 준비하라는 경쾌하고 귀에 익은 장현수 상황실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렁찬 함성과 동지들의 박수소리가 이내 허공을 가득 메우며 개구리도 합창을 한다. 수고했다고!
대출로 생계를 이어가며 짧지 않은 73일(4.1~6.12)의 파업! 24일의 싸일로 농성!
똘똘 뭉친 동지들의 승리며 힘들다는 레미콘 조직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전국의 레미콘 동지들이 조직되어서 현장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투쟁에 함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동지여! 사랑한다!
- 감사의 글 -
금속노조 현자지부와 단위조합 동지들, 덤프. 굴삭기, 펌프카, 크레인 건설동지들, 학비노조 동지들, 비정규직 지회 동지들, 사회단체(울산여성회, 울산청년회) 통합진보당 등의 연대가 아니었으면 감히 이룰 수 없었던 성과였습니다. 특히 통합진보당 김해정 동지는 끝까지 동지들의 식사를 해결하느라 분주하셨고 더군다나 저의 두 아들 엄마 역할을 해주신 분이라 가슴에 남습니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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