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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96호] 철도를 조각내는 정부 정책, 누구를 위한 것인가?/박흥수 철도노동조합 정책연구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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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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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31 23:26:01, 조회:2,718, 추천: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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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조각내는 정부 정책,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박흥수 철도노동조합 정책연구팀장
MB정권 말기에 강력하게 추진되었던 수서발 KTX 사유화가 지난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와 토건금융자본이 야심차게 밀어붙인 사유화 정책이 광범위한 사회적 반대에 부딪치자 이번에는 겉모양을 바꿨다. 전문가 여론을 수렴한다며 국토부의 사유화에 찬성해왔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민간자문위원회를 구성해 형식적 회의를 거쳤다.
5월 23일 국토부는 이 자문위원회의 검토 사항이라며 수서발 KTX 운영을 책임지는 별도의 회사를 설립해 경쟁체제를 도입할 뜻을 분명히 했다. 또한 신설선과 지방 적자선에도 민간의 참여를 보장하는 등 경쟁을 통한 효율화를 이루어 내겠다고 발표했다.
민간자문위원회의 안을 좀 더 살펴보면 우리 여건에 적합한 철도산업 발전 모델을 선정한 후 이에 부합하는 철도산업발전 전략과 운영체계의 개선방안을 검토하고 이에 따라 간선, 지선, 광역(수도권 전철) 등 서비스 특성별로 차등화 된 경쟁도입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이에 맞춰 철도공사의 서비스 특성과 가격구조가 상이한 기능들의 전문화와 효율화를 할 수 있도록 구조개편을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언뜻 보면 평이하게 보이는 위의 내용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담고 있다. 간선, 지선, 광역 등 서비스 특성별로 차등화 된 경쟁을 도입하고 서비스 특성과 가격구조가 상이한 기능들의 구조를 개편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철도 산업의 통합적 구조를 해체해 분야별로 사유화의 길을 열어놓겠다는 것이다. 국토부의 입장에서는 간선과 지선과 광역철도를 분리해 독자적인 사업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며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해 민간의 진입이 필수적이다. 결국 노선별 분리를 통한 사유화의 의지를 밝힌 것이다. 또한 고속철도와 일반철도는 서비스 특성과 가격구조가 상이하다. 여객철도와 화물철도도 마찬가지다. 전문화와 효율화를 위한 철도산업의 구조개편은 철도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들을 떼어내서 사유화하는 것이다.
수서발 KTX는 철도공사가 참여하는 출자회사를 설립하되 철도공사의 부당한 간섭이 없도록 회계와 경영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자문위원회의 검토의견을 내놨다. 국토부는 덧붙여 철도공사 외의 지분은 공적 기금보다는 일반기업의 참여가 필요하며, 장기적으로 지배구조 개편의 필요성도 제기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기자회견에서 자신들이 추진하는 수서발 KTX 운영사의 신설에 민간지분은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렇게 수서발 KTX에 민간출자를 보장해야 한다는 자문위원회의 권고사항과 국토부가 추진하고자하는 방향이 차이가 나는 것은 당장 민간지분의 참여가 보장될 경우 사유화라는 비판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공기업과 연기금 등 공공부분이 자금을 출자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간자문위원회의 의견이라며 일반기업의 참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지배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당장은 민간지분의 참여를 제한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유화의 길로 달려가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지배구조의 개편이란 결국 공적소유를 사적소유로 바꾸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안을 발표하면서 독일식 개혁방안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실제로 독일에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개편안으로 시민들을 속이고 있다.
국토부의 방안은 독일식 철도모델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독일식 철도 모델의 핵심은 건설과 운영부문이 하나의 그룹사 내에 존재하는 상하통합형 공영철도이다. 국토부가 추진하는 방안의 핵심은 건설부문(한국철도시설공단)은 그대로 두고, 운영부문(철도공사)만 갈기갈기 나누어 놓는 방식으로, 독일식 철도모델이 아니라, 철도 운영부문을 세분화하여 시장을 완전 개방한 영국식 사유화 방식이다.
영국은 철도의 시설과 운영을 분리하여 사유화를 추진했다. 사유화의 효과가 나타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철도사업에 진출한 민간 기업들이 주주 배당금 잔치는 성대하게 열면서 시설투자에는 눈을 감았고 연이은 사고로 이어졌다. 곳곳의 선로에서 균열이 발생하고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열차를 제어할 수 있는 신호시스템의 개량도 미루어졌다. 수 십 명의 승객들이 열차 탈선과 충돌사고로 목숨을 잃고 더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영국정부가 뒤늦게 수습에 나섰으나 어디에서부터 손을 봐야할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위험이 산적한 선로에 대해 긴급점검 명령이 내려졌고 마치 파업이 일어난 것처럼 상당기간 열차 운행이 차질을 빚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사유화된 시설분야에 대한 재공영화가 추진되었다. 시설분야만큼은 수익이 최고의 가치인 민간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철도 운영사들은 민간체제로 놔두었다. 수십 개에 이르는 민간기업의 사업면허를 취소할 수 없었다. 프랜차이즈 계약기간을 일방적으로 만료할 경우 부담해야할 정부의 배상비용과 자본의 강고한 저항, 여전히 남아있는 민간경쟁체제의 효용성에 대한 믿음이 영국철도를 붙잡았다. 24개사에 이르는 영국철도 운영사들 덕분에 영국에서 철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가장 혼잡한 승차권 구매 방식에 따른 혼란과 유럽 최고의 열차 값을 감당해야만 하는 지경이다. 국토부가 발표한 철도공사에서 물류부분의 분리, 신설선들에 대한 민간개방, 기능과 성격에 따른 개편 등 많은 것들이 이미 영국에서 집행된 내용들이다.
정부가 모델로 삼았다는 독일 철도는 어떤 체제인가? 독일에서 고속철도를 포함한 간선철도는 공기업인 독일국영철도공사(DB)가 독점운영하고 있다. 독일의 고속철도(ICE)는 모두 공기업인 DB가 운영하고 있으며, DB의 전체 간선철도 수송점유율은 99%에 달한다. 또한, 극히 일부의 지역노선에서만 민간의 참여를 승인하고 있다. 독일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지방화기금을 지원하고 이를 이용해 지방정부가 각 철도회사와 계약하는 형태로, 국토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선별 사유화와는 완전히 다르다.
한국철도에 대한 사유화 시도는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진행되었다. 특히 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 때에는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공기업의 민영화를 강력히 추진할 것을 요구 당했다. 이에 따라 다수의 공기업이 구조조정이란 이름아래 민간에 매각되었고 주요 국가기간산업인 철도, 발전, 가스에 대한 민영화 공세가 가속화됐다. 2002년 2월 25일의 3사 공동연대 파업은 이런 사유화 정책에 맞선 노동자들의 저항이었다. 공공의 영역을 파괴해 국가기간산업마저 자본의 수익 창출 도구로 전락시키려는 시도에 각각의 분야나 기업울타리를 뛰어넘는 투쟁을 벌인 것은 한국 노동운동의 소중한 성과였다. 철도, 발전, 가스 노동자들의 투쟁이 급물살을 타던 정부의 사유화 추진 정책을 가로막았던 점은 분명하지만 이 후에도 각 부문에 대한 사유화 추진은 끈질기게 이어졌고 현재 철도와 가스에 대한 사유화 정책이 노골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
철도 노동자들은 일방적인 정부의 사유화 정책에 맞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속속 투쟁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수서발 KTX로 촉발된 철도 사유화 문제는 과거와 달리 노동자만의 투쟁이 아니라 시민 사회진영의 광범위한 지지를 등에 업고 사회적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철도, 가스, 발전, 의료, 물 등의 사유화 정책에 맞서기 위해 각 단위 사업장 노조와 시민사회단체, 정당이 함께 참여하는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공공성 강화 공동행동>과 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철도 현장에서는 철도 사유화 정책에 대한 조합원 토론과 대 시민 홍보전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고 해고자들을 중심으로 철도 공공성 사수를 위한 국토 도보 대행진도 진행되고 있다. 28일 부산과 여수에서 출발한 행진단은 철도 노선을 따라 현장의 철도 노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공공철도 사수의 의지를 다지고 서울로 행진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국토부가 일방적으로 사유화 정책을 밀어 붙인다면 총력투쟁으로 맞설 것임을 밝히고 이를 뒷받침할 투쟁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철도노동자들은 110년 고난 속에 달려온 철도를 시민과 노동자의 것으로 온전히 일으켜 세우기 위해 힘차게 달리는 기관차가 될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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