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노동자투쟁의 전개과정과 특징
Ⅰ. 노무현정권과 노사협조주의자들의 주관적 열망의 좌절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지 1년을 넘었다. 노무현 정권 1년의 행보는 부르주아 학자들조차도 '우왕좌왕'이라고 평가했듯이 갈지자 행보의 연속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총자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본가에 대한 권위도 세워보고, 노동자투쟁에 대해서 초기에는 개혁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약간 중립적인 척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파'조차도 "노무현 정권이 너무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본의 얼굴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노무현 정권은 그 본질이 처음부터 헷갈릴 정도로 포장되어 있지 않았다. 다만 '협력'과 '의존'을 좋아하는 노동운동 상층부에서 그렇게 믿고 기대고 싶어했던 것뿐이다. 노무현 정권 그 기대에 부합하는 약간의 태도를 보여주면 노동자투쟁 전체가 잠재워질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집권 1년의 초반기를 유지한 것이다.
계속적으로 노동자들의 절박한 투쟁에 혼란을 일으키고 투쟁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은 노무현 정권의 우경화, 말바꾸기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주의자들, 노자협조주의자들의 주관적 망상이다. 그 근거를 1년의 주요 투쟁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투쟁의 교훈을 얻도록 하자.
Ⅱ. 2003년 주요국면과 노동자 투쟁의 특징
1)제1기(1-3월) 배달호 열사투쟁과 노무현 취임
노무현 정권에 대한 기대 반
- 사회적 합의주의와 상반기 투쟁을 ‘하반기 총력투쟁’으로 미루기
노무현 정권은 남한을 동북아 중심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경제발전을 위한 노동정책, 노사관계에 집중하겠다고 나섰다. 노사정위원회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정리해고를 좀더 자유롭게 하겠다고 했다. 그런 '참여정부'에 소위 진보인사로 자처하던 소부르주아지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그들은 '자본과 함께 하는 혁명'을 위해 '사회적 합의주의'를 노동운동의 과제로 제출했다.
김대중정권 때 현장 대중들에 의해서 노사정위원회가 거부된 이후에도 민주노총은 끊임없이 새로운 합의체제를 모색해왔다. 민주노총은 02년 발전노조 파업 전후의 대의원대회를 통해서 '노사정위원회의 현재 자체로는 안되지만 재편 혹은 새로운 틀의 노사정협의체를 적극 모색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식화시킨 바 있다.
2003년 초, 민주노총은 다음과 같은 주체적 상태를 근거로 노동운동을 '위기'로 규정했다. (민주노총 2003년 사업계획 중에서)
·구조조정, 정리해고에 의한 조합원 감소를 신규조직건설 등으로 확대했지만 조직률 정체
·대기업정규노동자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의 한계: 노동자계급의 대표성위기
·자본의 현장통제 강화에 따른 현장주도력, 자주성, 민주성의 약화 ·산별노조건건설의 기회상실과 연맹통합, 조직형식적 산별전환
·여성, 중소영세,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공격으로 투쟁분출
·떠넘기기 식 장기투쟁의 일상화
·총연맹과 산하조직간의 유기적 사업구조 취약
이러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투쟁을 통한 위기 돌파가 아닌 교섭구조를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협의체 구성을 들이밀었다.
"…현 노사정위원회 체제를 해체하고 노정-노자(산별교섭)-노사정 교섭을 망라한 총체적 교섭체제 대안을 내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향후 5년의 투쟁전략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세계화 분쇄'의 기조 하에 '2003년 집권초기 신자유주의 정책 중단 투쟁 → 2004~5년 3대 사회적 의제 쟁취를 위한 경고총파업 → 2005~6년 3대 사회적 의제 쟁취를 위한 전면총파업’이라는 단계별 투쟁을 설정하였다.
그러나 자본과 정권은 민주노총이 순진하게 사고하듯이 단계별로, 계획에 맞춰서 조금씩 조금씩 공격하지 않는다. 단지 노동자계급의 대응정도에 따라서 공격의 강도와 속도를 조절할 뿐이다. 총력투쟁없이 '정책을 선회하라'고 압박한다고 정책이 선회되거나 친노동자적으로 전환, 유지되지 않는다. 자본의 공격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투쟁은 언제나 총력투쟁이어야 한다.
이것은 이미 서구 사민주의정당과 노동자운동의 역사 속에서 확인된 것이며 아주 가까이 프랑스의 주35시간제가 노자역관계에 의해서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도, 사용자들의 노동유연화에 종속되기도 했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실제 현재 프랑스에서는 노동시간단축이 더욱더 친자본적인 방향에서 변형시간제를 강화하고 할증율과 무급휴가제 등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현장투쟁을 단계적으로 조절, 통제한다는 전략에 기초해서 03년 투쟁 역시 철저하게 정부 압박용으로만 기획했다.
‘근기법 개악저지와 사유화저지 및 기업연금 저지, 경제특구법 철폐와 교육, 서비스, 농업 개방저지 비정규 노동과 차별철폐/ 노동3권 강화/ 공공성 강화와 빈부격차 해소’라는 2003년 투쟁과제를 제출하였으나 이를 위한 투쟁방침은 너무나 일반적인 나머지 어떤 주체와 어떤 시기와 요구로 집중해나갈 것인지 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투쟁방침
1. ‘신자유주의 중단’을 내걸고 총파업투쟁을 전개
2. 임단투: 5말 6초 시기집중/ 주5일제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공동요구/ 산별교섭과 투쟁
3. 03년 하반기 3대 사회적 의제를 위한 연대투쟁 전개
민주노총이 외친 신자유주의중단은 직접적으로는 노동법개악 중단과 상반기의 임단투 구조조정 저지투쟁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그걸 풀어가는 방식은 대정부교섭이었다. 상반기 특히 2-4월에 근기법과 연금제 및 민영화, 경제특구법과 직권중재 등 산적한 문제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현장투쟁과 결합시킬 방안은 공백이었다. 단지‘연대와 선제공격’을 강조했을 뿐이다. 2-4월 투쟁과 별개의 요구로 5-6월 임단투 시기집중투쟁이 계획되었다. 또 상반기 투쟁과 분리되어 하반기 사회적 의제투쟁이 홍보와 시민연대를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투쟁을 제한하기 위한 5개년 전략 속에서 2003년 투쟁을 사안별, 시기별로 분리키는 대응전술을 채택하였다.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의 외침을 개인 손배·가압류 해지로 입막음하다!
-최대한 투쟁은 작게, 대화는 많이 하자
"두산이 해도 너무 한다. 해고자 18명, 징계자 90명 정도.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노동조합말살 악랄한 정책으로 우리가 여기서 밀려난다면 전사원의 고용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지금 두산이 사택매각 식당 하도급화 노동조합과 합의사항인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시행한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얼마 전 징계자들이 출근정지가 끝나고 현장에 복귀하였지만 무슨 재미로 생산에 열심히 하겠는가. … 두산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인간들이 아닌가 나는 매일같이 고민을 해본다. 두산의 노동조합 말살정책 분명히 드러나 있다. 얼마전 구속자 선고재판 어처구니 없이 실형 2년이라니, 두산은 사법부까지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 동지들이여 끝가지 투쟁해서 승리해주기 바란다.…"
1월 9일 배달호 열사가 '해고 징계와 재산, 급여 가압류 및 노조탄압 분쇄'를 외치면서 분신했다. 그러자 민주노총과 금속연맹 지도부는 주5일제 개악 저지와 노사관계 개혁을 눈앞에 두고 사회적 파트너쉽을 회복하기 위해서 두산중공업 투쟁을 활용했다. 두산중공업 내의 투쟁을 회피하는 세력과 결합해서 '투쟁동력' 운운하면서 투쟁동력을 제한하는 전술을 사용하였다. 다른 한 편으로는 해고자들의 독자적 선동 중단을 요구하고 통제했다. 그리고 사회적 합의주의를 복원하기 위해서 시민단체까지 동원한 압박용 불매운동 및 재벌개혁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그렇게도 소원하던 노정협상테이블이 마련되었고 배달호 열사투쟁은 전국적 투쟁으로 상승하지 못한 채 철저하게 개별단사투쟁으로 고립되었다. 이런 정세를 틈타 자본은 유가족 보상 문제와 개별 가압류 축소 및 철회 수준으로 투쟁을 수습하고 전투적 활동을 고립시켰다.
2)제2기 (4-6월) 뜻밖의 투쟁과 노무현 정권과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의 사회통합 모색
철도와 화물연대, 조흥은행 및 궤도 3사 파업투쟁
철도노조, “그럼 파업 할 수밖에 없다”
● 장관: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현실이다.
● 위원장: 그러면 우리는 파업할 수밖에 없다.
● 장관: 정원문제는 이런 저런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 위원장: 그러면 우리는 파업할 수밖에 없다.
● 철도청 고위급 관료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 이번 합의는 ‘파업 투쟁’을 통해 철도 조합원들의 힘을 동원해 보지도 않고, 집행부가 스스로 타협과 굴종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거대한 패배였다.(‘합의한 부결투재위원회’ 결성에 대한 제안문)
▶단협투쟁을 승리로 마무리함에 따라 다른 사업장 임단협 뿐만 아니라, 전산업의 손배․가압류 등 산적한 노동현안 해결도 적잖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민주노총 ‘노동과 세계’)
“외주 용역화와 시설 운영의 분리를 사실상 인정했다.” “아니다. 미뤄둔 과제일 뿐이다.”
4.20 파업선언을 앞두고 철도 노조 지도부가 파업철회를 결정하자 철도 노동자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잠정합의안이 어떤 내용인지도 몰랐던 조합원들에게 이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 현장에 복귀한 이후에 잠정합의안이 설명되었다. 그러나 합의문의 내용은 여전히 다양한 추측이 가능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현장에서는 투쟁의 마무리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고 또한 애매하게 처리된 구조조정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제기는 "명시되지 않은 우려부분을 괜히 제기하자 말자"는 논리에 묻혀 버렸다. 몇 개월 후 그 우려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4월 철도 파업을 통해서 투쟁의 전개와 마무리 과정에서 '지도부의 투명한 교섭보고와 이후 방향에 대한 대중적 논의를 통한 책임 있는 결정' 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투쟁
- 화물연대 노동자 투쟁,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
- 계획되지 않은 화물연대 파업, 다스리는 것도 실패하다!
"동지여러분, 어떤 결과가 나왔던 우리가 결정한 결과를 승복해야만 합니다…."
5월12일 화물연대 노조 지도부의 잠정합의안은 노동자들의 치열한 찬반토론과 총회투표로 부결되었다. 체포영장 발부와 주요 도로 병력배치, 공권력 투입 협박과 언론 공세 등이 쏟아졌지만, 정부의 대응은 허둥지둥, 대책 없었다.
"여기서 중단하면 모든 게 끝이다",
"이래가지고는 도저히 살수가 없어서 투쟁을 하제"
자본도 민주노총도 아무도 예상치 못한 분노의 폭발이었다. 그러나 차를 굴릴수록 손해만 보는 현실에서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투쟁은 예정된 것이었다. 그리고 전산업을 마비시킬만한 파괴력을 갖고 정부의 양보를 얻어내었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조직력은 강화되었고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조직화에 대한 자신감과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정권은 금속 대공장 한 곳, 공공 현장 한 곳을 골라서 집중공략하면 그 결과에 따라서 민주노총의 다른 현장의 임단협은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가지고 민주노총의 임단협에 대응한다. 정권과 대공장은 이런저런 인맥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도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끈을 가지고 있다. 철도노조는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화물연대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라인도 없었고 인맥도 없었다. 그리고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무시가 깔려 있었다. 화물연대의 거친 투쟁에 대해, 야성에 대해 정부는 당황했다. 화물연대의 파업은 민주노총의 개입과 통제를 통해 제약된 관료주의적 파업이 아닌 노동자의 역동적인 투쟁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10년만에 공동투쟁을 복구하다-궤도3사 공동투쟁
1994년 6.23 전기협-6.24 전지협-6.25 부산지하철 공동파업 이후 10여년만에 다시 궤도노동자들이 함께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철도, 서울지하철이 아닌 인천지하철, 대구, 부산지하철 노동자들이었다.
2003년 6.24 궤도공동파업은 많은 노조의 민주화와 함께 이후 연장운행 문제를 계기로 모색되었다. 특히 2월 대구지하철 참사를 겪으면서, 안전운행을 사회적 이슈로 제기하고 1인승무제 폐지와 인원 확충, 외주 용역 철회와 철도노조 탄압중단을 공유했다.
이미 4월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와 자신감에 힘입어 궤도노동자들은 5말6초 공동투쟁을 결의했다. 하지만 도시철도 노조의 파업이 부결되면서 도시철도 노조의 참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도철과 부산지하철에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활동가들은 실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 대구, 부산지하철 노조는 공동투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투쟁에 돌입했다. 의식적으로 공동투쟁을 준비했다는 점, 신생 민주노조들의 적극적인 투쟁이었다는 점,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반노동자적 본질을 폭로하는 투쟁이었다는 점은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본질을 폭로하고 분쇄하는 현장투쟁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과 시민안전을 강조하고 여론을 의식하는 투쟁으로 왜곡된 점, 지도부의 현장조직화 노력과 강력한 투쟁의지의 부족, 투쟁참여 인원과 조직력의 부족이라는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그리고 공동투쟁을 했으면 투쟁도 함께 끝내야 하지만 개별적으로 투쟁이 정리되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 중에서 인천지하철 파업은 처음파업이지만 강한 단결력과 적극적인 조합원 참여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옥쇄파업의 형식에 집착하고 선로점거를 비롯한 실질적인 파업의 효과를 위한 능동적인 파업투쟁 조직화를 시도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4월 합의 이후의 안이한 인식과 투쟁을 회피하는 지도부의 태도 속에서 이 3사의 투쟁과 분리되어 있었다. 파업 이후, 지하철 현장에서도 많은 현장탄압과 통제가 들이닥치게 되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본가들은 투쟁적 지도부들을 고립시키기 위한 전술들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공동의 투쟁을 통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리고 지도부를 어떻게 강화해 갈 것인가, 공세적 현장투쟁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과제를 부여받게 되었다.
상반기투쟁-뜻밖의 투쟁들이 선전하다!
민주노총은 2003년을 계획하면서 상반기에 집중총력투쟁을 배치하지 않았다. 이는 그동안 구조조정 투쟁이 생존권 투쟁의 성격을 강하게 띠는 만큼, 상반기 임단투 투쟁에 집중했던 것과는 차별점을 갖는 것이었다.(물론 상반기에도 임단투와 구조조정 투쟁을 분리했었지만) 그 원인은 노무현 정권을 개혁적, 친노동자적 정권으로 규정하고 집권 초기에 어떻게든 타협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노자협조주의자들의 열망에 있었다. 상반기의 투쟁계획은 그들의 사회적 합의주의(계급타협) 노선과 상반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임단투는 시기집중으로 계획되고 총력투쟁은 하반기로 미뤄졌다.
그 결과 상반기 주요 투쟁은 민주노총에 의해 계획된 투쟁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경제자유특구가 이슈화되고 있었지만 상반기의 전국적 투쟁은 임단협 시기 집중 외에는 감히 계획되지 않았다. 그나마 임단투 시기 집중도 실패했다. 민주노총이 기대했던 정부와의 교섭테이블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노동시간단축을 둘러싼 대정부 협상은 자본과의 대립으로 인해 실패했다. 애초부터 현장 대중투쟁력에 기반하지 않은 협상이라는 것은 이뤄질 수 없다. 노자간의 차이가 확연한 것에 대해서 민주노총은 어떻게든 대화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총자본의 양보는 곧바로 이윤에 대한 타격을 의미하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다.
민주노총이 계획한 상반기 투쟁들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화물연대와 철도, 궤도3사와 조흥은행 등 예상 밖의 투쟁이 전개되었다.
이에 놀란 노무현 정권은 2월 "노동계의 힘이 세므로 시정하겠다" → 3월 "(경제자유구역, 주5일제 등)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 → 5월 "나라 경제 발목을 잡는 노동운동은 자제되어야 한다" → 6월 "불법파업 주동자는 엄정 대처", "노동자의 특혜는 해소되어야 한다"는 등 '강경노조운동'을 훼손시키기에 바빴다.
이러한 협박에도 굽히지 않는 '뜻밖의 투쟁들'은 상층 교섭이 오가는 동안 일정한 성과를 내면서 다음 투쟁을 예고하고 있었다.
3)제3기
투쟁회피주의자들의 ‘무조건 파업철회’와 총자본의 공세
철도노조, ‘선복귀 후협상’을 기대하다 왕창 깨지다.
지난 1, 2기가 정부의 노동계 달래기였다면, 제3기는 기본적인 노정합의까지 파기해가면서 노무현 정권이 노골적으로 자본가의 입장에 서서 공권력 투입, 구속 수배 등 직접적인 노동탄압국면으로 돌아서는 시기였다.
지난 4월 철도노조의 파업과 노사합의에는 해고자복직과 공사화에 따른 고용, 임금 보장 등 일정한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외주 용역화 문제 등 애매하게 마무리된 것들도 존재했다. 그러나 이후 철도청에서 일방적으로 합의를 파기하자 철도노동자들은 6월 28일 재파업에 돌입했다. 재파업을 선언하는 순간 공권력이 투입되었고 1500명의 노동자들이 연행되었다. 민주노총과 사회단체들의 폭력진압에 대한 규탄과 함께 철도노동자들은 산개파업에 들어갔다.
철도노조는 정부의 강경방침에도 불구하고 파업대오를 유지했고 기관사의 90% 가까이 동참할 정도로 전체 파업대오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철도구조개혁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순간 언론에는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할 거라는 보도가 흘러나왔고, 정권의 예상대로 다음날 철도노조 지도부는 무조건 현장복귀를 선언했다. 사실상 백기항복을 한 채 복귀한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700여명의 직위해제와 8천명의 징계였다. 지도부의 파업 철회와 엄청난 대량징계에 총자본은 박수를 보냈다.
철도 지도부의 무조건 현장복귀는 기존의 민주노조운동의 역사 속에서는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소위 어용이라거나 불신임대상이라고 비판받는 지도부라 하더라도 투쟁의 압박 없이 교섭만 하는 경우는 없었으며, 심지어 투쟁에 돌입한 이상 어떤 교섭도, 성과도 없이 파업을 접는 경우도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파업 참여 대오가 튼튼한 이번 경우에 보인 지도부의 선택은 사상유례가 없었다. 철도노조 지도부의 파업파괴는 그나마 선전하던 상반기 투쟁을 추락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철도노조지도부는 대중을 신뢰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파업철회를 결정했다. 지도부의 파업철회 의지 속에서 총회 민주주의는 이용되었다. 파업을 지속하자는 조합원들의 문제제기는 지도부의 결정 앞에 무력했다.
이는 단지 민주주의 절차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지도부의 투쟁의지가 결여되어 있을 때 선진노동자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파업에 돌입하기 전부터 파업을 준비하는 것은 노조 상층 지도부만의 역할이 아니다. 노조 지도부와 똑같이 오히려 더 풍부하게 현장을 조직하면서 파업을 준비해야 한다. 그 속에서 내용적인 파업지도력을 갖춰가야 한다는 과제를 이번 철도 파업철회를 통해서 부여받게 되었다.
이번 철도의 파업철회의 가장 큰 정세적 영향은 노동자의 파업의지를 꺾고 노무현 정권, 총자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금속노조 중앙교섭으로 ‘가져온 주5일제’-노동시간 ‘단축’입법으로 실질노동시간 연장
주5일제가 2003년 8월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그 내용은 연월차 통폐합(축소)과 할증률 인하 및 생리휴가 무급화 등으로 임금을 삭감시키고 휴식의 권리를 축소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게다가 변형시간제를 확대 적용시켜 노무현 정권의 공약대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하향평준화시켜서 비정규직과 동일한 대우로 차별을 ‘해소’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은 아무런 액션 한번 취하지 못하고 낙선운동만을 큰소리로 외치면서 뒷걸음질쳤다. 이미 고용유연화와 조직구조조정 및 임금유연화(성과급제, 연봉제 등) 등의 다양한 유연화 방식들을 체계적으로 세팅하기 위하여 주5일제가 입법화되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단축투쟁 역시 임금과 노동시간의 관계에 대한 자본의 논리를 핵심적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노동시간단축은 해야겠는데 그러자니 실제 임금이 줄어들 것이 ‘뻔하고', 그래서 현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실질노동시간이 단축된다고 사고하기보다는 법정노동시간이 단축된 효과로서의 초과임금 상승분으로 실질총임금을 조금 늘려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노동시간단축투쟁은 현장에서도 회사의 임금지불능력 논리 내에서 어떤 형태든 상관없이 임금이 얼마나 더 오를 수 있는 방법인지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노동유연화와 거래하는 형태를 취하기 일쑤다. 예를 들어서 교대제의 경우 비정규직을 교대조의 확대 방안으로 수용하거나, 실질 노동시간이 그대로인 채 임금이 그대로 상승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오히려 법정 노동시간단축에 발맞추어 휴일특근을 더 많이 해서 임금이나 더 받자는 것이 언론이 말하는 병들어가는 '노동귀족’의 현실이다.
임금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만 현장에서 실질노동시간도 단축하자고 설득할 수 있다는 간부들의 변명은 반대로 접근해야 한다. 정말 이상한 얘기지만, 노동시간이 늘어날수록 임금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노동시간과 임금은 반비례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체제 하에서 숨겨진 노동시간과 임금에 관한 진실이다. 한 사람이 그 이상의 일을 할수록 노동자라는 상품의 공급이 증가하여 노동자간의 경쟁이 더 치열해진다. 그러면 당연히 임금이 삭감될 것이며 이는 다시 노동시간을 연장하게 하므로 노동시간단축은 실질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단위시간당 임금 상승으로 반드시 귀결되어야 한다. 따라서 잔업과 특근을 실제 규제하여 1인당 노동시간을 감소시키고 야간노동을 금지시키는 것과 더불어서 변형시간제 철폐투쟁을 동시에 전개해야 한다.
노동시간단축이 정말 노동자들의 계급투쟁, 정치투쟁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생활상태 개선과 함께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대로 자본과 정부의 이익으로 전환해버린다. 특히 노동시간의 유연화는 주중노동자와 주말노동자, 그리고 7일노동자를 양산하면서 노동자들의 생활파탄과 실질임금의 평균적 저하 및 목숨을 박탈하게 될 것이다. 계급투쟁의 성과로서 노동시간단축이 이뤄지지 않은 노동법 개악에 대한 2004년의 노동시간단축 계급투쟁을 준비하자.
이미 경제적 위기, 자본의 위기가 항상화되면서 자본의 생산과잉과 불황은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감수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이번에 적용될 노동시간단축 개악안으로 노동자들간의 소외감이 조장될 것이다. 대공장과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적용시기도 다르고 한 공장 내에서도 정규직과 하청노동자간의 차별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단지 줄어든다면 그것은 자본의 정규직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 하향평준화하는 방식으로 시도될 것이다.
그러나 정규직 원청노동자들이 기업경쟁력주의적 의식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언제나 임금 및 노동시간단축과 고용간의 거래는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지속될 것이다. 그것은 사업장단위와 업종, 산업 단위, 지역단위와 전국단위에서 전면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제4기(10-11월) 열사정국의 노동자 전국투쟁와 총자본의 ‘주춤’
1,2월 배달호 열사투쟁으로부터 10월 열사투쟁 정국까지 2003년은 가히 노동자들의 생존권의 압박과 노동자 투쟁에 대한 탄압까지 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 억압과 저항의 시기였다. 특히 10월 17일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의 투쟁으로부터 전면화된 열사들의 분신과 자결투쟁들이 줄을 이었다.
"노동탄압 분쇄하여 열사의 한을 풀자"
"열사정신 계승하여 비정규직 철폐하고 민주노조 사수하자"
과연 열사의 한은 무엇이었는가? 민주노총의 노자협조주의자들은 '더 이상 죽지 마라, 우리가 당신들의 손배 가압류와 정규직화는 해결해 볼테니..'라고 했다. 열사의 한을 개별 사업장의 손배가압류 및 노동탄압에 대한 해소로 축소시키면서 전국적 투쟁의 확산을 부담스러워하였다. 개별 투쟁의 교섭권을 위임받은 노자협조주의자들은 노동자 투쟁을 압박의 수단으로 하여 자본에게 구걸하다시피 정부에 중재를 호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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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줄줄이 죽어나가는데도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선언하지 못한다면 나는 100명을 조직해서 분신하겠습니다."
민주노총 10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세원테크 노동자가 대의원들에게 총파업을 호소하면서 했던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반대도 안하던 대의원들은 3개 일괄 공동투쟁, 전국총파업 안을 부결시켰다. 그 결과 3개의 열사투쟁은 각 해당투쟁과 활동가들의 연대로 개별적으로 전개되었다.
열사투쟁은 1차 총파업과 노동자대회의 폭력투쟁 등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회복해가던 노동자투쟁에 힘입어 어느 정도의 개별적 성과를 남기면서 연이어 타결되었다. 타결과 함께 정세의 파도는 잠잠해졌다. 한진중공업 등 투쟁이 마무리되면서 지도부는 구속되기도 했고, 노동자들은 열사의 한을 가슴에 깊이 묻고 현장에 복귀하였다. 자신 없던 현장투쟁 분위기가 열사의 외침을 계기로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었던 것이 성과라면, 같은 의미에서 다시 현장에 복귀한 후로 노조활동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기도 하다.
열사들은 죽음으로 자본의 본질을 폭로하고 쓰러져 있는 노동자의 투쟁을 처절하게 일으켰다. 계급투쟁의 집중력을 확보하고 자본의 일정한 양보를 얻어냈다. 그러나 열사들의 투쟁은 전체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투쟁으로 발전하여 노동자가 주도하는 정세를 만들지 못하고 개별적 투쟁의 성과를 남긴 채 노정간의 새로운 타협의 재료로 사용될 처지게 놓이게 되었다. 개량주의·관료주의 지도부에 대항하는 현장 지도력 형성의 실패는 목숨을 건 투쟁이 관료주의 지도부의 종파적 이익을 위한 거래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 치욕스런 상황을 역전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슬픈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도 다시 힘찬 투쟁을 하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가? 진정 노동자로 살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Ⅲ. 2003년 정세의 일반특징
1) 대공장 조직노동자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격의 강화
03년 주요한 특징 중 하나가 자본과 정권의 이데올로기 공격의 강화였다. 서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란 타이틀을 내걸면서 등장한 노무현 정권은 초기에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무조건적인 공권력 보다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려구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는 여소야대 정국과 자신의 취약한 지지기반에서 비롯된 일종의 제스츄어였다. 그러나 개량주의 지도부들은 이러한 제스츄어에도 크게 감격하면서 노무현 정권을 개혁을 표방하는 친노동자적 정권으로 규정하고, 상반기에 전체 노동자계급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러저러한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면충돌을 회피한 채 개혁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만을 배치하였다.
5월말까지 전개된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노무현정권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이른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라는 자신의 노동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는 듯 했다 ( 민주노총 2003년 사업보고 및 평가안 중)
이는 민주노총 상층 지도부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치열한 계급투쟁의 격전지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대립을 격화시켜서 종국에 노동자계급의 승리를 위해 투쟁하기를 거부하고, 자본가계급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층 지도부가 이렇게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안이한 환상에 빠져있을 때에도 노무현 정권은 자신의 본질을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집권 초부터 '정리해고요건이 더 완화되어야 한다', '노조가 정치화되어 있다'는 등 조직노동자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격을 감행한 노무현 정권은 5월 들어서는 화물연대 투쟁과 전교조 투쟁이 격화되자 '나라가 있어야 노조도 있는 것이다, 경제발목잡는 노동운동은 자제되어야 한다'면서 심화되고 있는 경제위기에 대한 책임을 조직노동자에게 떠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7월에 현자노조 임단투 때는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까지 총동원되어서 가장 극악한 형태의 이데올로기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대기업노조의 이기주의와 전투주의, 더 이상 도울 수 없다'는 노무현 발언을 필두로 '대공장 노동자들은 노동귀족', '대한민국은 노조공화국'이라는 근거도 없는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가 버젓이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노무현 정권은 이전의 정권들이 모든 노동자들을 무차별적인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적어도 이데올로기적인 공격의 대상에서는 조직노동자 중에서도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적인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는 심화되고 있는 경제위기 상황과 이미 70%에 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위기, 실업률의 급등 속에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을 이들의 공적으로 만드는데 일정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로서는 그야말로 1석 2조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었는데,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에 따른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형적인 '임금 고비용론'에 따라서 대공장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구조조정에 따른 비정규직의 문제 역시 대공장 노동자들의 이기주의 때문으로 몰아붙이면서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고 자신의 핵심 대항세력을 전체에서 소수로 고립시켜서 그 힘을 약화시키는 데에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의 이에 대한 대응은 실로 미약했다. 현실을 왜곡한 측면에서는 각종 보도자료를 뿌리고, TV토론회 등에 나와서 실제 14년 근속한 현자노동자의 임금명세서까지 들고나와서 자본과 정권의 이데올로기 공격이 근거없음을 역설했지만, 판세를 뒤엎을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정규직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노동강도 속에서 생명을 단축해가며 장시간 노동을 한 대가로 다른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것이 자본과 정권이 말하는 '노동귀족'의 현실이지만, 같은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은 물론 더욱 힘든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의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의 임금 및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것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해야하는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의 이해와 요구를 외면한 채 왜곡된 노동귀족인 정규직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비정규직의 정리해고를 합의했고, 심지어는 기존의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요구를 대변할 수 없음을 깨달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독자조직을 만들어 투쟁할 때에도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러한데, 아무리 정규직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환경을 토로한다고 해도, 그것이 더욱 힘든 노동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일자리조차 갖지 못한 실업자들의 귀에 들어올리 없으며, 오히려 더욱 차가운 시선만을 받을 뿐이다.
내년에는 기아, 대우, 쌍용 등 가장 공격을 받았던 대공장 노조의 임단협이 줄줄이 예정되어있고, 올해 톡톡히 재미를 본 자본과 정권의 이데올로기 공격은 한층 더해질 것이다.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가?
노동시간과 임금명세표를 들이미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계급에게 착취당하는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임금노동자이며,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근본원인인 착취질서를 끝장내기 위해서 함께 단결하여 싸워야하는 동지임을 보여줘야 한다.
이것은 단지 말로써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실천을 통해서 서로간의 동지적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즉, 조직된 대공장 노동자들이 더 이상 자신들만의 이해가 아닌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갖고 투쟁할 때만이 현재 멀리 떨어져 있는 더욱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을 좀 더 힘있게 우리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가장 가까이의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면에 걸고 함께 투쟁할 때만이 자본과 정권의 이데올로기 공격을 박살내고 실제 전체노동자계급의 공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할 수 있으며, 더욱 큰 힘을 갖고 적들을 공격할 수 있다. 그럴 때만이 대공장 노동자들은 모두의 공적이 되어서 고립되어 섬멸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부대의 선진대오로써의 권위를 다시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2) 파업예방책으로써의 다양한 교섭테이블 활용
노무현 정권은 집권초기 1월에 12대 국정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그 핵심은 물론 노동유연성을 제고하겠다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이 사활적인 과제로 제기되었다. 실제 노사관계 개혁 3대 목표에는 1) 노사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최소화가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즉 노사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사정위원회 위상을 재정립하고, 다양한 중층적 교섭구조를 마련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현장대중의 압박으로 노사정위를 탈퇴하기는 했으나, 자본과 정권의 파트너가 되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챙기려는 상층 노조관료들은 끊임없이 노정교섭을 요구하면서 호시탐탐 협상테이블에 합류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호기를 맞은 듯이 노정직접협상에 목을 맸다.
정권인수위 과정에서부터 공식적인 협의를 요구하면서 정책협의회에 참석했으며, 노동부와의 정례정책협의회를 시작으로 임원-대통령, 위원장-총리, 위원장-장관(노동부, 법무부), 사무총장-차관 면담은 물론이고 10월까지도 비정규·노동3권·부당노동행위 분과별 협의회에 참석하였다. 민주노총이 보인 행보는 그야말로 노무현 정권이 '조정기능 활성화를 통해 파업 예방'을 위해 마련한 다양한 중층적 교섭구조와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6월 철도파업 공권력 침탈 이후 잠시 소원해진듯한 둘의 관계는 하반기 근기법 개악 협상참여, 11월 열사정국에서 노동자들의 힘찬 투쟁 이후 노동부 장관과 단병호 위원장과의 밀실면담 등을 통해 아무 문제가 없음이 증명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협상우선주의는 특히 근기법 개악 투쟁과 열사투쟁 때 여실히 드러났다. 근기법 개악 투쟁은 민주노총이 작년부터 핵심과제로 상정한 것이었고 올해에도 총파업까지 결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마지막까지 협상에 목을 매었다.
이에 민주노총은 근기법개악저지 총파업을 준비하면서 적극적 교섭전술을 구사하기 위해 노동계 단일안추진을 결정했다. 한국노총과 협상을 통해 제조연대의 안을 중심으로 연월차 휴가일수를 조정하여 여성중소비정규노동자 희생없는 노동시간단축안을 노동계 단일안으로 제출했다. ... 8.18-19 양대노총 국회앞 노숙투쟁을 전개하고 8.21 상임위저지를 위한 총파업투쟁에 돌입했으나 이미핵심 투쟁동력인 제조업의 주요사업장들이 임단협 타결된 상황에서 총파업투쟁은 실패로 끝났다. ... 8.28-29 양대노총 국회앞 노숙농성투쟁으로는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기에 역부족이었다. ( 민주노총 2003년 사업보고 및 평가안 중)
노무현 정권의 파업예방책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민주노총까지 협상테이블에 끌어들인데 성공한 자본과 정권은 적당히 눈치보는 척 하다가 노동자대중의 힘을 빼고 난 뒤 자신들의 뜻대로 근기법 개악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여기에 완전히 놀아난 꼴이 되었다. 지도부가 교섭에 목을 매면서 압박용 농성전술 정도로 투쟁을 제한하고 자본과 정권의 일정에 따라 농성 날짜 변경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어떤 현장대중들이 총파업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조직하려 하겠는가!
10월 들어서 조성된 열사투쟁국면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현장에선 무기한 총파업을 조직할 것을 요구하고 개별 교섭이 아닌 전국투쟁전선 구축을 주장했으나 민주노총과 상층연맹은 끝내 개별단사교섭에 집중함으로써 투쟁을 분산시켰다. 단병호는 노동부 장관과의 면담을 통해서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했다는 데에 큰 의의를 둔다면서 결국엔 손배가압류 문제 마저도 아무런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투쟁은 정리되었다.
전국노동자들의 기본권이 개악되는데 일조하고 열사정신을 훼손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은 여전히 상반기 철도, 화물, 전교조 등의 노정교섭을 성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04년에도 이러한 형태의 교섭창구를 만들려는데에 집중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핵심인 노사정위원회 참여문제가 민주노총 내에서도 쟁점으로 형성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반기에 최대 쟁점이었던 손배가압류 문제가 민주노총이 빠진 상태의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되었기 때문에 알맹이 없는 '선언'에 그쳤다고 주장하는 것도 미리 사전포석을 깔아두기 위한 것이다.
또한 눈치를 보느라 쉽게 노사정위원회에 복귀를 하지는 못하는 민주노총을 배려(?)하고 실질적으로 파업을 예방하기 위해 노무현 정권은 이미 노사정위원회 산하에 산업·업종별 노사정협의체 안을 내고 10개 업종 노사정협의체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민주노총의 산별노조 건설 흐름과 맞물려서 산별 교섭이라는 형태로 산업·업종차원에서의 노사정위원회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금속연맹은 예전부터 산업별 수준에서의 경영참여를 주장해왔고, 그것을 논의할 수 있는 논의구조 창출에 집중해왔다.
그리고 자본과 정권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현재의 공인노무사를 활용한 사적조 정제도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이것이 실제화되면 그야말로 중층적 협상테이블이 마련되고 모든 노동자 투쟁은 여기에 질식될 것이다. 단사차원에서 사적조정인 제도를 통한 협상, 결렬되면 노동부를 통한 조정안, 그것도 결렬되면 산별차원에서의 노사정협의체, 그것도 결렬되면 노사정위원회나 노정직접교섭......
노동자 투쟁은 이러한 겹겹히 쌓인 교섭구조를 타파할 때만이 가능할 것이고 대다수 사업장의 현장노동자들은 그러기 전에 먼저 지쳐나갈 것이다.
따라서 선진노동자들은 이러한 파업예방책으로써의 모든 교섭창구 개설 및 노사정위원회 참여 논의자체를 무력화시키고 투쟁을 통한 요구 쟁취라는 원칙을 다시금 확고히 해야할 것이다.
3) 대공장에서의 비정규직 투쟁
03년에도 여전히 비정규직은 확산되었고, 여기저기서 비정규직 투쟁이 전개되었다. 이는 IMF이후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다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비정규직 투쟁이 다시 전체 투쟁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특히 올해의 비정규직 투쟁은 하반기의 근로복지공단 동지들의 투쟁을 제외하면 3월 식칼테러가 기폭제가 된 현자아산사내하청노조를 필두로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금호타이어, 그리고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등 대공장의 사내하청노동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에서 예년과는 뚜렷한 차별점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한 편으로는 그동안 축적되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와 불만이 더 이상 자본가들이 억누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지금까지 실패를 반복해온 기존의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평가 속에서 활동가들이 금속 대공장 비정규직 조직화에 목적의식적으로 결합한 결과이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노조들이 건설되었지만, 자본과 정권의 탄압과 개량주의 정규직 노조 지도부들의 배신행각에 의해서 고립된 투쟁을 전개하다가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근근히 명맥만 유지하거나 아예 노조자체가 말살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는 비정규직 주체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안겨주었고, 비정규직 투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 점에서 대공장 비정규직 투쟁 조직화사업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있으며(몇몇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소위 '민주노조'- 물론 많은 한계가 존재하지만 - 전통을 갖고 있고 자본과 대항하여 어느 정도 힘도 갖고 있는 정규직 노조가 존재하고 이들이 적어도 대외명분 때문이라도 한통이나 대우캐리어 등과 같이 아주 노골적인 형태로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하고만 있을 수는 업는 상황), 다시 비정규직 투쟁을 활성화시키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03년 비정규직 투쟁 역시 주체 조직화의 측면이나 정규직 노조와의 관계에 있어서 예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올해 가장 주목을 받았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의 조합원 수는 몇 달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자본의 탄압은 연일 이어지고 있는데, 이를 타파하기 위한 뚜렷한 자기계획을 내오지 못하고 있다. 그저 지금의 조직만이라도 잘(?) 보존했다가 04년에 정규직노조로 직가입되기만을 바라는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데 투쟁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여기에 정규직 노조도 그저 성명서 정도를 내면서 생색내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다른 사업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대공장에는 무수히 많은 사내하청업체들이 난립해있고, 대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내하청업체와 원청자본으로부터 이중삼중으로 통제당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기본활동조차 제약받고 있는 실정에서 현안에 대한 철저한 대응 없이 정규직화 투쟁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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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정권의 구조조정은 계속되고 있고, 다양한 명목으로 정리해고 당한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재생산되고 있으며, 거의 절대다수가 정규직인 전체 노동조합 조직률 역시 하락하고 있다.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강조는 전체 노동자계급운동에 있어서 사활적인 과제로 등장한지 이미 오래다. 이에 압박을 받은 소위 민주파라고 하는 활동가들도 모두 비정규직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말뿐이 아닌 실질적인 공동투쟁을 전개하는 수준까지 나아가는 사례는 아직까지도 극히 드물다. 또한 민주노총 및 연맹은 비정규직의 차별철폐!라는 개량적인 구호로 비정규직 투쟁을 제한하고 있다.
04년 현자정규직노조로의 비정규직 직가입은 전체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며 다른 정규직노조도 여기에 압박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단지 현자비정규직노조 조합원에서 현자노조 조합원이라는 외피를 바꿔쓰는데 그치지 않으려면 비정규직 주체들의 헌신적인 투쟁과 더불어 정규직 선진활동가들 또한 비정규직 철폐! 정규직화 쟁취!투쟁을 위해 모든 현안투쟁에서부터 실질적인 공동투쟁을 전개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자본과 정권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맞선 투쟁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Ⅳ. 선진노동자의 과제
03년 남한의 경제는 거의 바닥을 치고 있다. 각종 경제기관에서는 연초의 경제성장률을 일제히 하락조정하였고, 부르주아 방송매체에서는 연일 '경제를 살리자'는 기획프로를 내보내고 수출호황을 집중방송하면서 04년도에는 경제가 회복국면에 접어들거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은 자본주의 체제내적인 모순인 생산의 무정부적인 성격에 따라서 과잉생산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 일시적(!)으로 중국에서 해소하고 있으나 부르주아 전문가들 조차도 지금과 같은 자동차 업계의 호황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생산량은 이미 세계 4위에 이르고 있으며 모든 세계 자동차 메이커들이 중국으로 앞다투어 진출하면서 경쟁적으로 과잉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결국 현재의 일시적인 호황은 더 큰 자본의 위기상황을 가져올 것이고 남한 자동차 산업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어느 기관에서도 04년 경제회복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내세우고 있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위기의 타결책으로 자본은 여전히 '구조조정'을 내세우고 있으며, 노동자계급의 숨통을 죄어오고 있다.
03년의 경우, 집권 초부터 노무현 정권은 노동유연성 제고를 제기하면서 '정리해고 요건이 더 완화되어야 한다'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라는 미명하에 실질적으로는 노동운동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내용으로 가득찬 노사관계로드맵 발표, 근기법개악을 강행하더니 급기야는 시민단체까지 반대했던 집시법 개악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여기에 테러방지법도 호시탐탐 은근슬쩍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그야말로 현재 노동운동 진영은 총체적인 노동탄압국면에 직면해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집권초부터 두산중공업 투쟁, 화물연대 투쟁, NEIS투쟁 등 굵직굵직한 투쟁들을 겪으면서 노골적으로 노동계에 대한 불만을 내비쳤고, 6월을 기점으로는 공권력 투입,체포영장의 남발 등 탄압방침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각종 제도 정비를 통하여 모든 노동자들의 투쟁을 불법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서 정권이 의도하는 바가 단순히 노동운동을 길들이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과 정권이 보다 본질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가?,
첫째, 04년 총선정국을 겨냥한 정권재창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들어서자마자 보수야당은 물론이고 언론으로부터도 집중견제를 당하고 있으며 집권 1년 새에 대통령 자질론에서부터 하야론까지 그야말로 '대통령흔들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비자금으로 촉발된 정치자금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경유착의 추악한 고리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정치권 전반에 대한 민중의 불신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그놈이 그놈이구 정치권은 다 도둑놈들이다'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으면서 노무현정권 출범시의 '개혁'이미지는 이미 땅으로 곤두박질 친지 오래다.
IMF때보다도 더욱 살기힘들다는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중간층은 급속히 몰락했고, 노동운동 및 제반 민중운동에 대한 노정권의 초강수는 시민단체까지 등을 돌리게 하면서 노무현의 지지기반 역시 흔들리고 있다. 04년 총선결과가 향후 4년의 정국을 판가름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에 현재의 급속한 민심 이반에 노무현은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으며, 자신의 사조직인 '노사모'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것역시 여의치 않자 자신의 기반을 다시 다지기 위해서 여느 정권 때 보다도 급속한 속도로 보수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근기법·집시법 개악, 손배가압류 문제 등에서도 실제 거의 자본가의 편을 들어주었고, 04년 경제정책의 핵심방향 또한 기업들의 규제를 풀어주는 것에 두고있다. 이는 IMF 시기에 '경제를 잡는 것이 민심을 잡는 것이다'라는 말이 유행했듯이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이 노무현 정권을 가장 압박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위한 방안으로 몇몇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자본과 정권이 취할 수 있는 길은 한가지 밖에 없다. 구조조정을 통한 이윤율의 회복이 그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03년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의 특징은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현재의 노동탄압국면도 결국에는 내년도 한 판 대결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04년 본격적인 구조조정 공격을 위해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다! 자본의 경제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자본과 정권의 구조조정 또한 장기화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 내세웠던 4대 부문의 구조조정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고, 노동자계급의 대응 정도에 따라서 시간을 두고 전체 전선을 교란시키면서 진행시키고 있다.
그런 점에서 03년은 4대 부문 중 노동부문의 구조조정에 가장 주력한 해였다. 노무현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남한의 노동시장이 너무 경직돼있으며 노동의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추구해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사실 노동유연화는 자본이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전제가 되는 사안이면서 동시에 자본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과 정권은 이미 03년 노동법 개악을 통해 국정과제로 내세웠던 노동유연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현재 제 2금융권의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예정되어 있고, 공공부문 관련해서는 직접적인 구조조정 공격인 철도공사법이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 또한, 금속 부문에서는 대공장은 자동차를 중심으로 이미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고, 중소 사업장의 경우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장기불황으로 인한 폐업, 중국으로의 공장이전 등이 진행되고 있다.(금속노조는 현재 64개 사업장에서 매각, 공장이전, 폐업 등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워크아웃기업의 매각 정책 대상이 되는 사업장만도 대우정밀보령공장, 우주항공, 쌍용자동차, 대우조선, 대우종합기계 등 5개 사업장이며 아폴로사업, 위니아만도 등은 현대모비스에 인수합병되는데 인력파견형태로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어서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단행될 예정이다.
따라서 03년은 자본과 정권이 04년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한 기본 발판을 다지는데 주력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03년의 일반적인 특징 역시 이것에 근거한다. 대대적인 공격을 앞두고 노동운동의 가장 핵심세력인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격을 통해서 노동계급을 분열시켰으며, 대공장에서도 상층 관료는 다양한 교섭장치를 마련해서 그들을 유인하면서 파업을 근본적으로 막아내고자하고 있다.
당장 내년에 노동진영은 올해 근기법 개악 투쟁의 패배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다. 자본과 정권은 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밀면서 단협 개악시도를 하려고 할 것이고, 몇몇 일시적인 호황을 누리는 사업장을 제외하면 실질임금 삭감까지 시도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현재의 기본권을 후퇴시키는 것과 구조조정이라는 양날의 칼로 공격한다면, 또다시 고용안정을 빌미로 모든 것을 내주는 양보교섭이 성행할 것이다.
이에 대항하려는 모든 실천은 불법파업, 집시법 위반, 더 나아가 테러방지법까지 겹겹의 통제에 부딪칠 것이다. 언제나 투쟁을 회피하려고 하는 개량주의 지도부들은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현장노동자들을 교묘하게 단사 이기주의로 몰아가면서 실질적인 연대투쟁을 거의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단사의 작은 투쟁조차도 정부에 반대하는 투쟁이 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전환하지 않는 이상 시간이 흐를수록 투쟁사업장은 고립될 수 밖에 없다. 그 다음은? 뻔하다. 동력이 떨어질 때 쯤 공권력 투입으로 마무리짓는 것이다.
선진노동자들은 지금이라도 자본과 정권의 공격에 대항할 수 있는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규직도 구조조정의 칼날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04년 구조조정 투쟁에서 힘의 역관계를 역전시켜야만 전체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을 사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04년의 임단협 투쟁을 구조조정 투쟁과 연계시키고, 03년과 같은 사안별 투쟁이 아니라 공공, 금속, 금융 등 전체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한데 모을 수 있는 구조조정 분쇄 투쟁전선으로 모든 투쟁을 한데 모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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