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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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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4 09:01:57, 조회:2,926, 추천: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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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
- 구독회원
많은 사람들이 눈물 없이 이 영화를 볼 수 없다고 했다. 영화는 '실화'보다 담담하게 사건을 담고 있었지만,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꽃다운 나이에 백혈병으로 죽어나가는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소식을 2007년에 처음, 충격으로 접했고, 그 뒤에 얼마나 피나는 투쟁을 통해 여기까지 왔는지 조금은 알고 있었기에……
2월 6일 개봉한 <또 하나의 약속>을 단체관람 했다. 민주노총 지역지부 주최로 이틀 동안 상영 하였는데, 좌석이 모자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왔다. 엄마아빠 손을 잡고 아이들도 많이 왔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부모들에게도 남의 일일 수만은 없었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의 산재인정 투쟁과정을 다루고 있다. 황상기 씨는 딸 유미가 죽기 전 “너는 개인 질병으로 죽는 게 아니다. 반드시 원인을 찾아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외압에 의한 상영관 축소에도 불구하고 예매율이 높았고, 입소문을 통해 관객이 4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아무리 삼성 자본 측에서 탄압을 해도 이 영화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영화가 ‘실화’이고, 세계적인 기업 ‘삼성’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핸드폰, 전자제품을 만드는 삼성전자. 모두가 선망의 대상인 일류기업. 그런데 정작 그 핸드폰, 전자제품을 만드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한 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을까? 최첨단 반도체 산업, 그 생산의 주역인 노동자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백혈병, 암, 림프종, 뇌종양, 불임 등 이름도 알지 못했던 각종 희귀병에 걸려서…
그것이 회사 측 주장처럼 ‘개인질병’이 아니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면서 얻은 ‘산업재해’라는 것을 인정받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고단하고 지난했던 7년의 투쟁, 그러나 소중했고, 아픔도 많았다. 백혈병으로 골수이식 수술을 받은 박지연 씨도 황유미 씨처럼 세상을 떠났고, 그 밖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명을 잃고 쓰러져갔다.
백혈병에 걸릴 확률은 10만 명에 2,3명 꼴 이라는데, 왜 황유미 씨와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가 6명이나 집단적으로 백혈병에 걸려 사망하는 걸까?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백혈병 및 림프종 등 각종 희귀병 발병률과 사망률이 계속 늘어만 가는데, 삼성 측은 산재를 노동자보고 입증하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작업현장은 ‘영업비밀’이라고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을 죽여 놓고 삼성자본은 법과 권력과 돈, 온갖 빽과 줄을 다 동원해서 진실을 말하는 노동자들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했다. 친자본적인 '인바이런사'를 동원해 삼성반도체 근무환경과 백혈병과는 무관하다는 엉터리, 비(非)과학적인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죽을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죽어서도 안 되었다! 2007년 7월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민주노총을 통해 이종란 노무사를 만났고 이들은 함께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백혈병 피해노동자와 가족들의 제보를 찾으러 다녔다. 이러한 노력으로 2008년 2월 대책위는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아래 반올림)으로 다시 구성되었다.
2011년 행정법원에서 처음으로 삼성 백혈병 노동자들이 산재를 인정받던 날, 가슴이 뜨거웠던 그 날을 기억하고 있다. 2011년 6월 23일, 故 황유미 씨와 그녀와 2인 1조로 근무했던 故이숙영씨 2명에 대해 법원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불승인에 황유미 씨를 비롯한 5명이 행정소송을 진행했던 결과였다. 근로복지공단의 계속되는 항소에도 '반올림'으로 뭉친 피해노동자들과 유가족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피해자 증언대회를 통해 반도체 노동자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 반도체노동자 피해 사례를 알리기 위해 '아시아 노동재해 피해자 권리를 위한 네트워크(안로브, ANROAV) 2008년 연례회의'에 참석하기도 하면서 노동자들의 국제연대를 실천했다.
이 날 법원의 산재인정 판결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삼성전자 작업환경과 백혈병과의 연관성이 밝혀진 것이다. 일류기업 삼성전자에서 너무나 많은 생명들이 유해화학물질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죽어가고 있었다. 사회에서는 불치병, 난치병에 걸린 환자들이 있다면 그 병을 치유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아 그것의 근본원인과 치료를 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러나 삼성자본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던 산업재해를 유발하여 건강하던 노동자들을 고통스런 병에 걸려 죽게 만들었다.
산업안전시설을 설치하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 자본의 탐욕을 위해서! 그러고도 돈으로 그 사실을 은폐해왔다. 그러나 법원의 산재인정 판결로 삼성자본의 만행이 폭로 되었다. 그동안 삼성은 산재로 죽어가는 백혈병 노동자들을 '산업폐기물'처럼 처리해왔다는 것! 삼성에게 노동자들은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기계', 자본을 늘리는데 필요한 '인간재료'에 불과했다는 것! 진상조사와 사과, 유족보상을 요구해 왔던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에게 삼성자본은 늘 말해왔다. " 내 돈 내고 쓰다가 망가져서 돈 내고 버리겠다는데 뭐가 잘못됐냐고!!"
‘삼성백혈병’은 자본주의가 저지른 대학살이었다. 현장에서 발암물질이 사용되고, 은폐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사회에서 자본이 가진 독점적 지위와 권력 때문이었다.
만약 <반올림>에서 삼성자본의 압력에 못 이겨 이 싸움을 포기해버렸더라면, 백혈병 피해 노동자들은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웠기 때문에 법원은 부분적으로 나마 산재를(살인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노동자들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 병은 일하다가 얻은 산재라고. 삼성자본과 그들의 편에서 산재를 묵인한 이 사회의 지배자들이 저지른 '살인'이라고. 산재를 인정받은 것은 2명에 불과했지만, 다른 피해노동자들이 계속 투쟁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지금 상영 중인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 난 뒤 ‘반올림’ 게시판에는 전․현직 삼성직원들이 ‘감사하다’고 올린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최고의 영화’라는 평과 함께 ‘7년 동안 명절 때도 쉬지 못하고 일했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다가 디스크에 걸렸다’는 등 영화에 공감하는 사연들이 올라와 있다. 그 동안 숨죽이고 있었던 많은 삼성노동자들이 이제는 영화를 통해서나마 나와 동료들의 삶, 나의 현장 이야기를 꺼내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또한 너무도 억울한 죽음, 희귀병으로 인한 고통, 생계의 어려움, 삼성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투쟁해 온 모든 동지들께 경의를 표하고 싶다.
사실 이 투쟁은 삼성반도체 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니다. 삼성자본처럼 대기업이 아닌, 이름 없는 무수히 많은 사업장에서 얼마나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어가고 있는가! 유기용제, 유해 화학물질들에 대해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노출되어 있다. 작업장에서 유해물질에 대한 열람표와 산업안전교육은 의무사항이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서는 사실상 노동자들의 알 권리가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는 그동안 인터뷰에서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더라면 내 딸 유미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노동자들을 위해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을 만들었을 것이고, 유해한 물질을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맞다. 노동자들의 단결하지 않으면, 가장 기본적인 건강권조차, 생명조차 지켜지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단결을 막기 위한 현장통제 수단이 많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성과급'이다. 영화를 함께 보았던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동지가 말했다. 삼성은 철저히 ‘성과급’을 준다고. 팀별로 경쟁을 시키고, 가장 잘한 팀에게 상을 주고, 꼴찌하면 팀에서 낙오되고, 인사고과를 통해 임금에 등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노동강도를 올려야 하고, 알게 모르게 동료들끼리 감시하는 구조 이다보니, 자연히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일하게 된다.
그래도 성과급은 '작은 것'이라도 자본이 노동자들에게 베푸는 것, 노동자들에게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작은 것'을 주고, 노동자들의 '모든 권리'를 빼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전부인 자신의 노동력! 생명과 건강과 직결된 노동기본권을!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단결과 투쟁을! 노동자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아예 망각하도록! 단결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분열 되도록! 자본가 입장에서 보면 정말 효율적으로 현장을 잘 관리하고 있지 않은가! '성과급'을 통해 보이지 않게 '분열'과 '노동강도 강화'라는 자본의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도무지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작업현장에서 걸린 백혈병, 희귀병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재발방지 대책도 세우지 않는 삼성자본! 이것은 자본의 이윤과 탐욕을 위해 끝없이 노동자들에게 죽음과 야만, 폭력을 자행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적인 얼굴이다. 저들은 ‘사용자’라는 이유로, ‘자본의 권리’를 끝없이 주장하며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여기서 노동자들의 유일한 권리는 노동기본권! 이를 쟁취하기 위해 노동조합으로의 단결이 절실하다!
삼성백혈병 산재인정 투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지난 2013년 12월, 삼성전자와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이 열렸지만 삼성의 무책임한 태도로 교섭은 결렬됐다. 삼성 측은 피해자 가족들과 활동가들의 단체인 '반올림'을 교섭의 주체로 인정하고 공개사과와 적절한 보상,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이어지고 있는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삼성 백혈병에 관한 진상규명'이 중요하다. 이는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적인 문제이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권과 직결된 문제이다. 백혈병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삼성자본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업장에서 '살인'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백혈병 산재인정투쟁은 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산업안전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이 투쟁은 ‘삼성백혈병’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온갖 부정비리, 폭력을 저지르고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삼성자본’의 진실을 폭로하는 투쟁이다. ‘삼성백혈병’을 자본주의의 문제로 인식할 때,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 비단 백혈병 노동자들뿐만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용산철거민 학살, 불산유출사고, 송전탑 문제, 삼성장학금, 정치비자금 등 사회 모든 문제에 삼성이 개입하지 않은 곳은 없다. 그런데 이렇게 거대하게 조직된 자본의 힘에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타격할 수 있는 힘은 노동자들에게 있다! 바로 노동자들의 피땀과 생명을 착취하여 삼성자본이 엄청난 부를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3월 6일은 '삼성백혈병'을 세상에 알린 故 황유미 씨 7주기를 맞는 날이다. 7년째 이어지고 있는 삼성백혈병노동자들의 산재인정투쟁은 '삼성을 상대로 이길 수 있겠냐!' 는 우리 머릿속에 있는 패배의식을 힘껏 내리쳤다. 우리 스스로 막강한 자본주의 질서에 위축되고, 노예가 되어 있지는 않은가! <또 하나의 약속>, 이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삼성백혈병 노동자들의 진실을 알리는 투쟁에 동참하길 바란다. 이 투쟁은 모든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한 투쟁, 노동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며, 또한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투쟁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노/정/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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