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정협
|
2012-02-02 16:28:08, 조회:6,972, 추천:326
|
![]() |
|
|
![]() |
영화 ‘부러진 화살’과 리얼리즘
영화 ‘부러진 화살’을 둘러싼 관심과 논란이 뜨겁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부르주아들이 평소 옹호해 마지않는 ‘순수예술’이었다면 이 영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논란은 지금처럼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른바 ‘석궁재판’이라고 하는 현실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들을 직접 영화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대법원은 “영화 ‘부러진 화살’은 사법테러 미화”라며 이 영화를 거세게 비난하고 있고 부르주아 언론 역시 `부러진 화살'과 법치주의의 위기(연합시론2012/01/27)라며 비난에 동참하며 첨예한 관심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 아니 실제 사실인 이 사건의 본질은 삼성소유 성균관대에서 수학 입시 문제 오류를 지적한 김명호 교수에 대한 보복성 ‘부당해고’를 시발점으로 해서 사법부의 대학 편들기 판결, 이후 부르주아 사법부라는 거대권력의 ‘석궁재판’에 대한 은폐조작과 법적 ‘테러’ 사건이라고 본다.
대학재단에 의해 비정규직 강사 노동자 절반이 정리해고 당한 전남대를 비롯하여 수천 명의 비정규직 강사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와 저임금에 맞서 투쟁하고 있고 심지어 자살을 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대학재단에 의해 자행되는 부당해고 사건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김명호 교수가 비록 비정규직은 아닐지라도 대학재단에 의해 강압적으로 부당해고를 당한 점에 대해 분명하게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관점은 대단히 ‘당파적’인 것이다.
최근 ‘부러진 화살’에 대한 영화평론을 가장하며 사실은 ‘부당해고’와 ‘석궁재판’에서 부르주아 사법부를 변호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진중권은 이러한 관점에 대해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무턱대고 한 쪽 편을 드는 ‘진영론’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진중권의 이러한 태도는 당파성과 과학성을 대립시켜서 보는 것이다. 하지만 맑스가 자본론 서문에서 노동자계급의 과학성과 당파성은 대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 것처럼 객관적 사실 추구와 당파성은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르주아야말로 부르주아 체제가 영원할 것이라는 자본주의 변호론적 입장에 있기 때문에 부르주아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당파성은 있으나 객관적 사실, 진실을 추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나 실제 사건을 보고 사법부를 비판하는 것을 ‘진영론’이라고 비판하는 진중권 역시 ‘진영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진중권은 이 부당해고 사건이 수학문제 출제에 대한 보복행위였음을 인정하면서도 “해임의 사유는 사립학교법에 교원임용에 관한 규정에 따랐을 겁니다. 거기에 따르면 교수는 학문만 잘 가르칠 게 아니라, 다른 여러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교수의 인품이나 자질 등은 사안과 무관한 게 아닙니다. 해임 유효판결의 결정적 법적 사유고, 임용 자격의 규정은 사립학교법에서 학교 사정에 맞게 정하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라며 해고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정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중권은 마치 자신이 객관적 사실을 옹호하는 ‘진리의 재판관’인양 자처하지만 오히려 명백하게 사법부의 해고 판결을 두둔하는 당파적 입장에 서 있다. 진중권은 이 판결이 사립학교법 교원 임용에 관한 규정을 따른 재판이고 여기에 김명호교수의 ‘인품이나 자질’이 심각하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해고는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진중권은 사립학교법이 부르주아 사학재단의 추악한 부패와 절대권력을 옹호하도록 되어 있고 김명호 교수나 비정규직 강사 노동자들의 재임용권을 가지고 정리해고를 자행하도록 하는 악법임을 외면한다. 이 악법에 근거하여 김명호교수에 대한 판결이 정당한 것이라고 법원판결을 두둔하는 것은 부르주아 법물신주의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진중권은 이 사건에서 철저하게 지배계급과 부르주아 법률을 옹호하는 반동적인 당파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균관대재단과 법원이 해고 근거로 삼았고 진중권이 편들고 있는 김명호교수의 해고 근거가 된 ‘인품’이나 ‘자질’ 역시 그 동안 노동자 해고 사건에서 자본과 재판부가 수없이 하극상, 상사명령 불복종, 회사 명예훼손, 업무 불성실 같은 근거로 노동자 해고를 정당화 했을 때 사용한 근거에 다름 아니다. 노동자에 대한 평가제도를 근거로 한 해고 정당화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석궁사건 피해자’인 박홍우판사와 함께 당시 김명호 해고 사건을 맡았던 이정렬판사는 당시 판결에 대한 논란이 일고 영화 흥행으로 사법부에 대한 불만이 극도로 높아지자 재판과정에 대해 법원 내부 통신망에 소상하게 밝혔다. 여기서 그는 처음에는 재판부 내부적으로 만장일치로 부당해고 판결을 내리려 했는데 원고의 사건 청구와 달리 재임용 거부 결정일이 3.1일 공휴일이 아니라 2월 29일이었기 때문에 변론을 재개했고 재변론 과정에서 정당한 해고라는 판결을 내리게 됐노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균관대의 재임용거부 결정일이 3월 1일 공휴일에 이뤄졌는가 그 전이나, 그 이후에 이뤄졌는가의 문제는 부당해고냐 정당한 해고냐가 판결의 본질임을 비춰볼 때 해고 판결을 합리화하기 위한 치졸한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정렬 판사는 김명호 교수가 제기하는 “문제 출제상의 오류, 학교 측으로부터 보복을 당한 점, 학자로서의 능력 인정”을 판결문에 반영하면서도 결국은 “원고의 말과 행동, 업무처리방식, 다른 사람들, 특히 제자들로부터의 평판 등이 교육자답지 못하다는 점 때문에 원고의 능력과 학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로서는 적합하지 않아서 원고에 대한 이 사건 재임용거부결정이 무효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를 판결서에 추가하였습니다.”라고 하여 정당한 해고라고 판결하였다.
재판부가 김명호 교수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대단히 주관적인 것으로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교수나 학생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대학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교수나 학생들의 일방적인 증언을 바탕으로 대학 측의 입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게다가 성균관대에서 재임용 심사자 두 명이 오류가 난 시험 문제 출제 당사자들인데 재판부는 재임용 심사는 학교 측의 자유 재량권이라는 이유로 해고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1심 재판장인 이혁우 부장판사가 성균관대 출신이라는 점도 학교 측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학교 측의 보복성 해고가 부당해고의 본질인데 이것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자질과 평가를 근거로 해고를 정당화하는 법원의 판결은 기만적인 판결이고 이러한 법원의 판결은 김명호 교수의 명예를 훼손하고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는 야만적인 폭력행위이다. 이러한 법원의 판결이 ‘석궁사건’을 낳았던 것이다.
진중권은 또한 “석궁 들고 판사 찾아가는 (것이) 국민저항권의 행사가 됩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죠. 그거, 테러입니다. 테러....”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자신이 말하는 상식의 근거 역시 이 사건이 사법부에 대한 ‘중대한 테러’라는 사법부가 만들어놓은 주장에 근거한 것이었다. 진중권은 또한 김명호교수가 돈키호테처럼 현실감을 상실한 사람이라는 모욕적이고 대단히 주관적 입장을 가지고 “그의 세계에서는 대한민국의 모든 판사가 다 썩었죠.”라며 사법부를 당파적으로 옹호한다.
진중권은 이 사건에서 피고와 대법이 사건을 미리 예단하고 ‘사법부에 대한 테러’로 규정하고 이 방향으로 재판을 했던 점, 부러진 화살의 증거인멸, 피가 묻어 있지 않은 와이셔츠의 의혹, 석궁에 의한 피해를 주장하는 박홍우 판사의 비일관적 증언과 자작극 의혹, 혈흔 감정에 대한 법원의 거부 등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대신에 “화살이 없어진 것은 수사기관의 잘못이죠. 법원의 잘못은 아닙니다.”라고 주장하고 박홍우의 자작극 의혹에 대해서는 “그럼 어느 미친놈이 자해를 한 다음에 남의 피 얻어다가 제 옷에 묻혀놓겠습니까? 코미디죠, 코미디...”라며 법원을 옹호한다.
진중권에게는 판사가 사건 당사자라는 점, 대법원이 비상대책회의를 가질 만큼 국가권력 차원에서 개입한 사건이기 때문에 대법, 법원, 검찰, 경찰이 서로 결탁하여 핵심 증거를 은폐 조작할 수 있다는 높은 개연성, 실제 재판과정에서 이러한 의구심이 상당 부분 근거가 있는 것으로 확연하게 드러난 점은 애초에 관심 사항이 되지 않는다. 국가 물신주의에 빠져 있는 그에게는 국가권력이 그런 추악한 짓을 벌일 것이라는 추정 자체가 불경스런 신성모독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이냐 허구냐 논란 자체의 사악함
이 영화를 둘러싸고 사실이냐 허구냐의 예술관의 문제로까지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대법원은 물론이고 이정렬판사, 박찬운, 금태섭 변호사에 미학 전문가라 자처하는 진중권, 영화평론가 정성일까지 이 영화의 허구성을 집요하게 증명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핵심은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주장은 대법원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평소 진보적인 입장에 서 있다고 하는 자들에 의해 집요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를 두고서 사실이냐 허구냐의 논란으로 가져가는 악의적인 의도는 “영화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예술론을 통해 결국은 영화에 비해 김명호 교수 판결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보다 더 객관적인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사법부를 변호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문학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모든 예술작품은 현실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리얼리즘 예술이라 할지라도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예술이 현실 그 자체라면 예술이 아니라 현실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얼리즘 예술은 현실 자체는 아니지만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창이다. 그리고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면 현실 그 자체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이면에 있는 본질까지도 드러낸다.
그 점에서 영화 ‘부러진 화살’은 사실 자체는 아니지만 김명호 재판을 통해 부르주아 사법권력을 통렬하게 폭로하는 리얼리즘 예술인 것이다. 진보연하는 지식인들이 “영화는 허구다”라는 사이비 예술론을 가지고 영화에 대한 폭발적 관심과 사법부에 분노하는 대중들에게 우매하게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며 가르치려 든다. 그러나 이 영화를 100%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대중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고 사법부에 대한 분노를 토해내고 있는 것은 영화와 현실을 착각해서가 아니라 이 영화가 현실의 일단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명호교수 재판뿐만 아니라 인민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부르주아 사법부 자신의 추악한 법조비리, 횡령, 비리, 정치자금 제공 등 거대범죄와 사기로 얼룩진 삼성 이건희나 현대 정몽구에 대한 불구속 재판과 국가권력의 사면,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금력에 좌우되는 재판, BBK 사건을 폭로한 정봉주에 대한 구속 판결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국가권력의 주구 노릇을 하는 사법부,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에 대한 가혹한 처벌 등. 대중들은 수백, 수천 번의 직간접적 경험으로 법이 가진 자들과 권력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봉사한다는 것을 깨달아 왔다. 이것이 영화가 저예산 영화이고 초기에 상영관을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진정한 이유이다.
맑스의 ‘철학의 빈곤’ 같은 원전을 인용하기도 하며 진보연해 왔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이 영화가 검사의 설명 기회를 박탈하고 박홍우의 입장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가정된 음모론’으로 ‘의도적으로 전술적이며 선동적이며 이분법적이고 이미 편을 든 다음 투쟁적이다”(정성일 영화평론가, 부러진 화살의 과녁, 경향신문, 2012-01-29)라고 말하며 ‘정치적인 영화’라고 말하고 있다. 정성일은 “김명호의 재판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영화비평이라는 수단을 통해 현실의 사법권력을 ‘정치적’으로 변호하고 있는 것이다. 정성일은 “의심에 가득 찬 시선. 자동인형처럼 보이는 판사의 지루하리만큼 반복적인 반응. 듣고 싶은 말, 듣기 싫은 이야기 사이의 불균형.”이라며 ‘추리소설에 가까운 웅변’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 영화는 정성일의 말대로 박홍우 판사 역에 평소 비열하고 음모적인 연기를 잘하는 인물을 내세우고 판사의 표정, 말투에서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의 판사를 포착하고 검사는 말 한마디 못하는 인물로 의도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것은 예술의 영역이다. 그러나 실제 재판 기록에서 검사는 변호사와 피고인의 질문에 제대로 발언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현실의 판사들 역시 영화 속 판사들의 모습과 대부분 일치한다. 영화에서 극적 요소를 사용했지만 이 역시 사실의 반영인 것이다.
모택동은 ‘연안문예강화’에서 “문예작품에 반영된 생활이 일반적인 실생활에 비해 더욱 고상하며 더욱 강렬하며 더욱 집중적이며 더욱 전형적이며 더욱 이상적이며 따라서 더욱 보편적일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현 세계에서 일체 문화 또는 문학예술은 모두 일정한 계급에 속하며 일정한 정치노선에 속한다. 예술을 위한 예술, 초계급적 예술, 정치와 병행하거나 정치로부터 독립한 예술은 실제상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영화 ‘부러진 화살’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은 김명호교수 재판을 통해 나타난 사법부의 현실을 집중적이고 강렬하게 표현했고, 특수한 사건을 통해 보편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극적 예술성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대중들의 사법부에 대한 분노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많은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마치 김명호 교수가 법 자체는 정당한데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가 문제라고 여기고 있는 것처럼, 사법부가 부르주아 지배계급의 집행위원회이고 법 자체가 폭력과 억압 기구인 부르주아 국가권력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는 더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발언을 통해 대중들에게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고 알려졌던 이정렬판사가 사립학교법에 근거하여 해고 사건에 대해 정당한 해고라고 판결을 내렸던 것처럼, 이는 판사 구성원 개인의 성향과 상관없이 부르주아 법률 자체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김명호 교수 재판과 영화 흥행 이후 고위직 판사 검찰총장 직선제나 특별검사제 등 사법개혁 요구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법률 자체의 반동적 성격이나 법관 절대 다수가 가진 지배계급 의식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선출되지 않는 권력’에 대한 대중들의 직접 선출과 소환제 도입은 적극 도입되어야 한다. 그것은 최소강령의 일부처럼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실과 영화에서 사라졌던 ‘부러진 화살’의 파편이라도 되찾는 길이기도 하다.<노/정/협>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