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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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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9 19:56:01, 조회:2,485, 추천: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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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민영화가 불러올 재앙
30여 년 전 만 해도 병원 갈 줄을 몰라서, 병원 갈 형편이 안 돼 병을 키우다 때를 놓쳤다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허다했다. 당시 까지만 해도 병에 대한 무지와 가난 때문에 유아 사망률 또한 지금 보다 훨씬 높았다. 그러나 온갖 최첨단 의학과 기술을 자랑하는 현재, 또 다시 과거의 고통,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당선 이전부터 이명박이 밝혀온 건강보험 민영화 정책, 의료 산업 활성화 정책이 가시화 되면서 이제는 ‘병원을 바로 옆에 두고도 못 가게 될 처지’, ‘아파서 병원 갔다가 문전박대 당할 처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 마침 미국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sicko-환자에 대한 속어)’가 개봉되면서 미국 의료 보장 제도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폭로되고 있다. 영화에서는 단지 과체중이거나 미달체중이라는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절당하는 사람에서부터 보험 범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응급차조차 함부로 이용할 수 없는 사람, 일하다 두 손가락이 절단돼도 한 손가락 봉합하는데 몇 천만 원이 드는 수술비 때문에 결국 한 손가락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람 등이 등장한다. 대중들은 ‘식코 함께 보기 캠페인’등을 벌이며 이명박의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식코는 단지 영화 속 과장일 뿐인가? 의료 보험 민영화를 30여 년 간 추진한 미국 사회만의 일인가? 사실 돈이 없어 치료를 거절당하거나 스스로 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몸에 이상이 발견되더라도 병원 갈 시간이 없어 조기 진단을 할 수 없고, 맘먹고 병원을 가더라도 ‘정확한 검진’ 단계에서부터 여러 가지 비보험 추가 검사비와 진료비 약값을 감당하기가 벅차다. 그나마 국민건강보험제도 의무가입을 진행하고 있는 현재는 감기나 충치 치료 같은 간단한 병은 큰 부담 없이 치료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이 진행된다면 감기 치료조차 아무 병원에 갈 수 없고, 싼 병원을 찾아 전전하는 상황이 오게 될 것이다.
민간의료보험 자율화, 생명을 지킬 의무로부터의 자율
이명박 정부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으로 내 놓은 내용은 ‘당연지정제 폐지’, ‘의료기관채권발행법도입’, 병원 주식 상장 등의 ‘영리병원허용’,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3월 10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위한 '민간의료보험실무협의회'를 구성 하고, 의료법을 개악할 계획을 발표하는 등 올 10월까지 국가가 갖고 있는 개인질병정보를 민간보험회사에 넘긴다고 발표했다.
이 중 가장 반발을 사고 있는 것으로 ‘당연지정제 폐지’는 모든 병원이 의무적으로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한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는 기존의 방식을 폐지한다는 것이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병원은 국민건강보험 가입환자를 받지 않아도 되고 병원과 제휴한 보험에 가입한 환자만 받아도 된다. 그렇게 된다면 병원은 보다 이익이 되는 환자들만 선택해서 진료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당연지정제 폐지와 더불어 국민건강보험 의무 가입이 폐지된다면 돈 있는 사람들은 국민건강보험에서 탈퇴해 민영 보험에 가입하게 되고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 식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의 결과가 이렇다는 것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지만 의사단체와 부르주아 언론들은 건강보험 민영화와 병원 자율성 강화를 부르짖고 있다.
‘새 정부가 추진키로 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과 의료 서비스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이다. 의료기관(병·의원, 약국 등)이 건강보험 적용환자의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된 현재의 ‘당연 지정제’를 완화해 특정 민간의료 보험 가입자만 받도록 한다면 획일적인 의료서비스로 인한 ‘1분 진료를 위한 1시간 대기’ 현상도 개선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적자구조의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고수가 의료서비스를 민간보험에서 흡수할 수 있다면 이런 구조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파이낸셜 타임즈 02/22 ‘건강보험 민관이원화가 효율적)
부르주아 언론들은 이명박의 의료보험민영화 방안이 나오기 이전부터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이 열악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공단 구조조정과 건강보험의 민영화를 부추겨왔다. 이들은 ‘유럽 사람들이 의료서비스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받는 대가로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질적으로 낙후된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한국일보칼럼 -‘식코는 미국영화일 뿐’)라며 뻔뻔하게도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를 옹호하기 까지 한다.
한국의 의료제도는 과도한 국가의 규제와 획일화된 보험제도가 문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민영화와 자율화로 의료 다양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본이 말하는 다양성의 논리는 결국 자본을 위한 다양성이며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고급화일 뿐이다. 양극화와 차별은 다양성의 논리로 포장되고 있다.
중대형 병원과 의사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한의사협회 또한 3월 2일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의사들과 민간보험사들이 단체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요구하는 '건강보험제도에 관련한 규제개선방안'을 공식제출했다. 그들은 “정부 기관에 규제 개혁을 위한 의견을 요청한 만큼 이번에는 의료계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여 의사의 자율성과 전문성 보장을 통한 국민의 건강권이 향상되기를 기대한다”며 “현행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는 획일적 의료서비스 조장, 다양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 배제, 헌법재판소에서조차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당연지정제의 강제 적용이 비효율적임을 인정하는 등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말미암아 국민과 의사의 선택권이 축소되어 질 높은 의료서비스 제공에 상당한 문제점을 유발하고 있다”며 건강보험 완화와 민영 보험 활성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고유권한을 침해하는 의약분업 정책이나 의료법개정에는 극렬하게 반대했으면서도 정권의 병원영업규제완화나 민영화를 위해서는 엄청난 로비를 벌이고 있다.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으매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라고 엄숙하게 낭송하던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정신은 오늘날 자본의 논리에 침식당하며 환자가 아닌 이윤을 위해 봉사하는 의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인간생명조차 이윤추구의 대상인가?
4월 28일 이명박 정권과 서비스 관련 자본가 단체들이 만나 ‘서비스 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관광, 의료, 교육 등 서비스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감세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는 한미 FTA를 앞두고 서비스 업계의 불안도 줄이고 자율화와 구조조정으로 한미 FTA를 준비하기 위한 정권과 자본의 준비 과정의 하나였다.
‘서비스 산업 선진화 방안’에는 외국인학교 설치 규정 완화나 골프장 감세와 같은 교육, 관광 분야 및 외국인 환자 유치나 외국 의사 진료 허용, 병원의 부대사업 확대 허용 등과 같은 의료관련 내용이 있었다. 이들은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닌 ‘의료법 개정’이나 ‘영리병원허용’이라는 이름으로 기존부터 추진되던 내용이다.
‘영리병원허용’은 병원의 주식 상장, 채권발행을 허용하자는 주장인데 이렇게 된다면 결국 거대병원주식회사가 탄생하고 온갖 수익사업을 펼치며 병원은 주주들의 이익과 보다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고운세상피부과, 함소아한의원과 같은 유명한 네트워크 병원은 영리의료법인 허용에 대비해 병원경영지원회사(MSO)를 중심으로 외부 자본을 유치하려 시도 하고 있다. 치과나 성형외과 같은 기존에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진료과에서 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몇가지 부분에서의 의료계와의 이해 충돌로 작년에 통과되지 못한 의료법 개정안에는 △병원 간 인수합병 허용 △민간보험사와 개별의료기관 간 비급여진료 가격계약 허용 △병원 부대사업 및 수익사업 허용 △비전속진료(프리랜서 의사제) 허용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유인알선행위 허용 등이 담겨있었고 이 내용은 어떤 방식으로든 강행하려 할 것이다.
또한 의료 시장 개방과 더불어 외국계 병원들이 ‘선진기술’, ‘고급 의학’을 내세우며 투자를 한다면 거리는 온갖 병원 광고와 홍보로 도배 되겠지만 정작 노동자 민중들이 갈 수 있는 병원은 점점 줄어들고, 건강보험 민영화와 더불어 국민건강보험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점점 부실해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병원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노골적인 자본의 형태로 간다면 이후 결과는 뻔하다. 출산에서 장례까지 온갖 호화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맞춤형 병원이 탄생할 것이며 병원은 지금의 과잉 검진과 과잉 진료는 더더욱 권장 될 것이다. 병원은 돈 되는 환자만을 골라 받게 되고 6인실과 같은 다인실 병실은 점점 사라지게 되며 병원식 또한 호텔식과 일반식으로 나뉠 것이며 응급실조차 맘대로 갈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더 이상 병원은 인간을 치료하는 기관이 아닌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관이 되어 오히려 병을 키우고 환자를 만들어 내는 기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수술, 통원치료, 입원, 이식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치료할 수 있는 병의 경우에 병원에서는 좀 더 치료기간이 길고 비용이 많이 드는 방식을 권장할 것이다. 간단하게 치료 할 수 있는 병조차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도록 할 것이다.
병원이 자본의 모습으로 환자를 만들어 내고 인권까지 침해하는 극단적인 예로는 청구성심병원에서의 노조원 집단 우울증 판정 사례를 볼 수 있다. 청구성심병원은 극심한 노동자 감시와 탄압으로 노조원들이 집단 우울증 판정을 받았고 지금도 전화도청이나 조합원 왕따, 욕설 등 극심한 노조 탄압을 벌이고 있다. 이는 청구성심병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자본의 모습을 할 영리병원은 점점 국내, 외국 병원과의 경쟁에 내몰릴 것이고, 의료자본 간 경쟁이 심해질수록 점점 더 이윤만을 쫓아 갈 수밖에 없게 되며 경쟁은 병원 자본의 독점과 횡포를 통제할 수 없게 만든다. 아무리 양심적인 의사 개인이라 할지라도 병원의 경영논리를 벗어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누가 노동자 민중의 건강을 책임질 것인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이나 영리병원허용과 같은 정책은 단지 이명박 정권이 만들어 낸 정책은 아니다. 병원영리화와 산업화 내용의 의료법 개정은 노무현 정권 때부터 진행돼 이제 구체적인 추진 과정에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 유아 진료비 지원 확대나 입원환자 식대 지원 폭 확대 등의 정책으로 병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지원을 하기도 했지만 건강보험 재정 부족 등의 이유로 얼마 되지 않아 지원을 폐지하고 건강보험료 또한 큰 폭으로 인상시킬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건강보험재정부족문제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부르주아 정권이 시도하는 갖가지 의료보장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는 이제 자본주의 사회의 어떤 복지와 보건, 의료 혜택을 통해서도 노동자 민중의 건강과 생존은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병원은 주식회사의 모습을 갖추든 그렇지 않든 결국 실질적인 치료보다는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치료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고 때문에 지금의 건강보험적자 문제 또한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시민단체나 진보적인 의료단체에서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를 폐지해서 불필요한 진료를 줄이도록 하자, 국민건강보험의 누진제를 강화하자라고 대안을 내 놓지만 행위별 수가제가 폐지되더라도 병원은 또 다른 방식과 편법을 동원해 건강보험 재정에 압박을 줄 것이며 아니면 환자의 부담이 늘어나게 될 수도 있다. 건강보험 누진제 강화 또한 자본가들에 대한 강제 징수의 문제와 반발로 결국 자본가 정부에서는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이다. 노동자 민중이 점점 빈곤화 되는 지금,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도 건강보험 적자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고, 때문에 정권은 민간보험의 활성화로 탈출하려 하고 있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너나없이 개인 보험 하나쯤은 들어 둬야 하는 지금의 사회에서 이미 자본가 국가는 더 이상 의료복지를 유지할 능력도 의지도 없게 되었다. 영화 ‘식코’가 보여주는 것은 단지 미국 사회만이 아닌 자본주의 사회의 의료 체계에 대한 폭로이며 우리에게 다가올 현실인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건강과 질병은 개인의 문제이며 결국은 개인과 가족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의식을 끊임없이 유포한다. 그리고 이제는 최소한의 의료복지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자본은 지금 노동자 민중 생존권의 기본인 건강마저 빼앗아가고 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생명조차도 탐욕적 이윤추구의 대상이다. 우리의 생명조차도 흡혈귀 자본에 넘겨줄 것인가? 아니면 흡혈귀 자본주의와 싸워서 우리의 생명을 지킬 것인가?<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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