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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MBC노동자를 위한 변명:어느 해고노동자의 세월호 참사 읽기/강지웅 MBC PD, 해고 노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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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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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31 23:47:36, 조회:2,874, 추천: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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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노동자를 위한 변명: 어느 해고노동자의 세월호 참사 읽기
강지웅 MBC PD, 해고 노동자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지 한 달쯤 지난 5월 17일. ‘자신을 MBC PD’라며 실명까지 밝힌 한 네티즌이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엠빙신 PD입니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됐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MBC에 입사한 지 3년가량 된 예능 PD였습니다.
그는 “세월호 참사의 MBC 보도는 보도 그 자체조차 참사에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이번 보도가 ‘MBC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떠들었다”며 경영진을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MBC의 뉴스가 “수치”스럽다고도 썼습니다.
MBC를 좋아해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했지만 지금의 MBC에 마음 깊숙이 실망하고 상처 받은 후배 PD의 글을 보며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마봉춘’이란 애칭으로 불리며 국민들의 신뢰를 얻었던 MBC였습니다. 하지만 ‘엠빙신’이란 비칭(卑稱)이 어울리는 방송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최근 몇 년간 MBC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만 갔습니다. 제가 한 때 몸담았었던 PD수첩은 독보적인 시사 프로그램으로서의 위치를 잃어 버렸고 차갑게 외면됐습니다. MBC 뉴스를 사랑했던 많은 시청자들도 이젠 MBC 뉴스를 보지 않습니다.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핫 이슈는 찾아 볼 수 없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랑말랑한 아이템들만 난무하니 누가 찾아보겠습니까? 혹자는 MBC 뉴스가 ‘동물’ 아이템을 많이 다룬다고 MBC 뉴스를 ‘동물의 왕국’이라고 비아냥거렸다고도 합니다.
‘욕’도 애정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개선되리라는 희망이라도 있어야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MBC를 욕하는 사람도 점점 없어지는 상황…사람들이 MBC는 보지도 않고 아예 관심을 끊어버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뇌리엔 MBC의 존재 같은 건 이제 희미한 추억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누가 봐도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수 백 명의 학생들이 배 안에 남겨진 채로 배가 거꾸로 침몰했는데 그 시간 대부분의 방송들이 ‘전원구조’라는 자막을 내보냈습니다. 뒤에 밝혀진 일이었지만 관계당국은 사태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전원구조’라는 방송자막은 한참 뒤까지 화면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단순오보일까요?
세월호가 침몰한 그 시간, 그 지점에서 대한민국 언론도 함께 침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부끄럽게도 그 중심에 MBC가 있었습니다. 사고 지점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목포 MBC 기자들이 현장을 보고 서울에 여러 차례 정정보도를 요청했었다고 합니다. 전원구조는 오보라고. 침몰한 배 안에 ‘최소 200여 명’의 학생들이 남아 있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요청은 묵살되고 맙니다.
결과적으로 생존자에 대한 구조마저 지연시켜버렸던 이 ‘엄청난 오보’의 주인공들인 MBC 보도국의 수뇌부들은 더 참담한 일마저 서슴지 않았습니다. MBC 보도국장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깡패”에 비유했습니다. 목포 MBC 기자들의 애타는 보고를 묵살한 보도국 전국부의 부장은 자신이 직접 뉴스에 출연해 유가족들의 생떼가 결국 잠수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거 아니냐고 힐난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로 저를 절망케 한 것은 이런 행태들이 아니었습니다. 후배 PD가 적시했던 것처럼 MBC는 마봉춘이 아니라 ‘엠빙신’이 돼 버렸으니까요. 이런 유의 일들은 그동안 MBC에서 숱하게 일어났었으니까요. 국민들의 편이 아니라 정권의 편에 선 사이비들이 MBC를 장악하고 있었으니까요. 새삼스럽지도 않았습니다.
저를 정말로 절망케 한 것은 세월호 유가족 분들의 태도셨습니다. 그분들은 MBC에 항의하지 않으셨습니다.
KBS 보도국장의 사석에서의 망언을 규탄하기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유가족 분들께서 MBC는 그냥 차갑게 외면해버리시고 만 것이었습니다. 물론 현장에서 MBC 중계차는 쫓겨나고 기자들은 MBC 로고를 단 채 정상적인 취재마저 불가능할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었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MBC는 그냥 ‘상갓집 개’였던 것입니다.
그 와중에 MBC 사장이 앞서 후배PD의 글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MBC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고 망발을 해댔습니다. 자뻑도 유분수입니다. 요새 유행하는 유체이탈 화법도 이 정도면 ‘정신병’ 수준입니다.
그래서 입사한 지 3년밖에 안 된 후배 PD가, 시사보다는 국민들을 웃기는 데 전념해야 할 예능 PD가, 입사하자마자 파업을 맞이했고 수습기간 3개월이 끝나도 파업이 계속되고 있어서 결국 첫 업무를 파업으로 시작하고 말았던 새내기 조합원이 글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MBC를 차갑게 외면하는 국민들에게 지금은 요 모양 요 꼴이지만 부디 저희들을 완전히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지는 말아 달라는 애타는 호소를 한 것입니다. 가슴에 분노와 절망과 슬픔을 담아.
2012년 MBC는 170일간 파업을 했습니다. 저희는 패배했습니다. 수백의 조합원들이 중징계와 강제전보를 당했습니다. 그중엔 30년 가까운 베테랑 선배들도 계셨습니다. 요새 참 언론인의 표상이시죠. JTBC 손석희 앵커의 오늘을 있게 해 준 MBC 라디오 <시선집중>을 기획하고 연출하셨던 노장 PD가, 후배들과 함께 3개월간 ‘강제교육’조치를 당해(전두환 정권의 삼청교육대에 빚 대어 신천교육대라 불렸습니다) ‘블루베리 소스가 가미된 닭가슴살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해고자 7명은 아직도 복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굴욕의 세월이었습니다. 아니 굴욕의 세월입니다. 이런 탄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 기자들을 보도와는 상관없는 한직으로 좌천시키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징계도 줄줄이 계속되고 있고요. 노동조합은 부당함을 법원에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줄줄이 소송에서 계속 이겼지만 회사는 요지부동입니다. 징계가 부당하다고 법원이 판결을 내려도 다시 재징계를 합니다. 이 정도면 안하무인입니다.
지난 5월 26일 저희는 의미 있는 승리를 했습니다. 2012년 MBC 170일 파업이 검찰에 의해 ‘업무방해’로 기소됐었는데 무죄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이미 ‘해고무효소송’과 ‘손해배상소송’에서 1심 모두 저희가 승리한 터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재판은 7분의 시민들을 배심원으로 모신 ‘국민참여재판’이었습니다. 2012년 MBC가 파업을 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MBC에 큰 관심이 없으셨을 그런 분들이셨습니다.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그 후의 MBC의 모습에 크게 실망하고 지금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셨을 분들이실 겁니다.
아침 9시 30분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17시간 가까운 검찰과 저희 측 변호사의 날선 공방들. MBC 파업은 ‘근로조건’을 위한 파업이 아니기 때문에 불법파업이라고 주장하는 검찰과 거기에 맞장구를 치며 증인으로 나와 저희들을 정치 모리배로 몰아간 회사 측 인사들. 거기에 맞서 MBC 파업이 ‘공정방송’을 위한 저항이었으며, 방송인들에게 ‘공정방송’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근로조건’이라고 역설하는 저희들의 주장. 17시간 가까이 그 공방을 지켜보신 배심원들은 저희들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새벽 4시 30분 피곤하고 졸린 눈을 애써 비비며 판결내용을 들으면서 뜨거운 눈물이 나왔습니다. 국민들이 저희들을 완전히 외면하고 계신 건 아니구나. 하지만 MBC의 상황은 여전한가봅니다. 밤샘 재판을 끝내고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처음 들은 소식은 이 글 맨 앞에 언급했던 후배 예능 PD의 ‘대기발령’과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 회부’ 소식이었습니다. 이유는 회사명예 실추랍니다.
MBC의 싸움은 계속 진행 중입니다. 비록 지금은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저희들은 포기하지 않고 MBC를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계속 애를 쓸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염치없지만 하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MBC의 보도를 수치스럽게 생각한 후배 PD의 호소의 글 말미에 올렸던 작은 소망입니다. 그 글을 직접 인용하면서 제 글도 마치겠습니다.
“…계속해서 싸워온, 원래의 마봉춘을 자랑스러워했던 대부분의 직원들은, 다시 언론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독을 차고 있습니다. 혹은, 노조에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까지 참고 있습니다. 지금 참을 수 없이 화가 나지만, 그 화를 못 이겨 똑같이 싸웠다가는 또 똑같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뼛속 깊이 배웠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 자리를 지키고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치욕을 삼키고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무력한 싸움들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템을 거부할 수 없다면, 리포트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바꿔가며 그래도 차라리 차악의 형태로 바꾸어 방송에 내려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 뉴스, 내가 안하면 더 최악의 형태로 읽어줄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세월호 관련 보도들은 그 싸움을 하지 않는 이들의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 기자들 아나운서들 당사자들은 못합니다. 어쨌든 같은 배를 타고 나간 뉴스이니까요. 묵묵히 기레기임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엠빙신’을 욕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마음껏 욕해주세요. 더 먹어야 합니다. 사실 욕은 저희들이 제일 많이 합니다. 불매운동도 좋습니다. 뉴스도 이미 안 보시겠지만, 주변에 잘 모르는 분들에게도 이런 상황임을 알려드리고 보지 말라고 해주세요.
다만 이 얘기를 드리는 것은, 다시 싸움을 시작하려 할 때는 싸우는 이들과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리고자 함입니다. 최근 KBS와 MBC의 보도국장들과 관련하여, 노조와 기자협회 등에서 성명서를 내고 발언을 할 때마다 만나게 되는 차가운 반응들을 봅니다. 실망하고 분노하신 마음들 이해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그 움직임들은 물타기도 아니고 여론전환용도 아닙니다. 그 속의 사정은 이랬고, 이런 싸움들이 이어져왔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박근혜 정권의 대한민국이라고 해서 모든 국민이 박근혜의 국민이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박근혜의 대한민국이 된 것이 수치스럽지만, 그 속에서도 다시 한 번 싸워 비록 대통령이 박근혜라 한들 그 정부에게라도 국민들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움직임들이 있지 않습니까. ‘엠빙신’의 직원들이라고 해서 모두 ‘엠빙신’에 적극적으로 충성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침묵하고 있지만, 이길 수 있는 싸움을 기다리고 있고, 그 승패는 뜻을 같이 하는 국민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부디, 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에서 동의할 수 있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는 힘을 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자소개: 강지웅 PD는 2012년 MBC 노조 대투쟁 때 노동자정치신문(2012년 2월, 85호)에 “2012년, 다시 언론의 자유를 외치다”라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2012년 당시 MBC 노동조합 사무처장이었던 강지웅 PD는 약 170여 일 간의 파업투쟁 이후 2012년 4월 2일자로 해고된 이래 지금까지 해고 노동자로서 투쟁하고 있다. 지난 2012년 170일 파업으로 인한 해고자는 7명(정영하 위원장,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최승호(현 뉴스타파), 박성제 기자, 박성호 기자회장, 이상호(고발뉴스))인데, 강지웅 PD는 그 중에 한 사람이다. 강지웅 PD는 며칠 전 해고무효소송 1심에서는 승리했으나, 회사는 복직시킬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한다. 현재 MBC는 단체협약이 해지돼 있는 상황이다.
강지웅 PD가 MBC에서 만든 프로그램들은 2007년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다룬 MBC ‘이랜드 신화 창조의 그늘’(2007), 시사저널 사태를 다룬 '삼성공화국-언론은 침묵하라?'(2007) 등이 있고, 2009년에 촛불시위를 다룬 MBC ‘봉쇄된 광장, 연행되는 인권/서울경찰청의 무전’(2009)으로 제12회 ‘엠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노/정/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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