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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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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9 12:03:11, 조회:7,534, 추천: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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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어머니의 삶과 투쟁
지난 9월 3일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가 향년 81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의 삶과 투쟁의 역사는 전태일 이후 40여년의 세월만큼이나 장대하다. 지면에 그 역사를 다 실을 수가 없어서 짧게나마 역사와 어머니의 정신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하나의 큰 별이 어떻게 하여 우리의 가슴 속에 깊이 파고들게 되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이소선 어머니는 1929년 경북에서 태어났다. 1933년 대구 농민운동,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 이성조씨는 일제에 의해 학살당했다. 1945년 근로정신대로 대구 칠성동 방직공장에 끌려가 강제노역 중 해방 직전 공장을 탈출하여 여름 대구 남산동 봉제공장을 하던 전상수씨와 결혼하였다. 그 뒤에 전태일과 슬하 2남 2녀를 출산 한 뒤에도 가난 때문에 가정이 매우 어려웠다.
이처럼 어머니의 생애는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아들의 죽음 뒤에 닥치는 더한 역경과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반평생 노동자 민중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셨다. 항상 밝고 당당하게 투쟁하여 노동자들의 등대가 되어주셨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어머니의 삶에 대해 들은 사람이라면 어머니가 전태일의 어머니로만 살아오지 않았으며, 왜 노동자의 어머니이자 각성한 자주적 활동가로 불리는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40여 년의 삶은 투쟁으로 꽉 차 있다.
1970년도에 어머니는 아들 전태일로부터 근로기준법을 배우게 되고 1970년 11월13일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며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진행하며 분신 항거한다.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항거는 한국 전쟁 이후에 단절된 ‘아래로부터의 노동운동’을 복원하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또한 전태일의 분신항거는 억눌려 있던 노동과 자본 간의 모순이 폭발한 분화구였다. 전태일의 죽음으로 1960-70년대의 급격한 경제성장 뒤에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노동환경과 저임금, 장시간노동이라는 노동현실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 전태일 열사의 삶과 정신은 많은 청년 학생 지식인들을 각성시켰다. 1970년 11월27일 청계피복노조가 결성되었고, 이것은 ‘19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와 같았다.
“어머니를 노조와 분리시키기 위해 정부에서 엄청나게 탄압을 했죠, 특히 (전태일) 사진을 떼 내어 못 붙이게 하거나, 이소선 어머니는 직접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월급을 못 주게 한다던가.... 이런 것에 대한 압력을 계속 넣었죠. 그 사이에 집행부가 얼마나 시달렸겠어요?” (민종덕 구술, <노동자, 자기 역사를 말하다>)
1975년 청계피복노조는 근로시간단축 농성에 돌입한다. 1975년도 전태일 추도식을 고리로 현장에서 조직을 더욱 확대하고 기존에 있는 소모임 대표 급들을 모아서 근로기준법을 지키기 위해, 특히 그중 핵심이었던 ‘노동시간 준수’를 내걸고 투쟁에 돌입한다. 이른바 ‘근로기준법수호투쟁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노동시간 단축이 왜 중요했냐면, 평화시장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을 의식화시키려는데 공부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일 끝나면 10시, 12시니까 어디 갈 데가 없잖아요? 그 시간에 19번 타고 쌍문동 이소선 어머니 집에 가서, 그 시간에 먹고, 씻고, 그럼 몇 시야? 그리고 잠깐 이야기하면 금방 아침 되고. 환장하는 거죠. 그래서 우선은 배우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가장 절실했죠.”(만종덕 구술, 같은 책)
근로시간단축 투쟁이 성공하자 이후에는 임금인상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해서 ‘전태일추모회’를 ‘횃불회’로 개편했고, 그 이후에 ‘임금인상투쟁위원회’를 만들어 투쟁했다. 1976년 시다 임금 직불제 농성, 파업을 통해서 시다임금직불제를 확보하고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는 퇴직금을 받아내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이소선 어머니는 1976년 4월 16일부터 노동교실의 실장을 맡았다.
“노동교실은 특히 실장이 누구냐가 굉장히 중요한데 그 때 당시 노동교실 실장이 최일호 씨라는 분이었어요. 집행부가 바뀌자 노동교실 실장을 이소선 어머니가 하게 됐고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거죠. 엄숙하던 분위기가 시끌벅적한 시장통 같기도 하고, 서로 모임하려고 방 찾으러 다니는 분위기였죠.”(만종덕 구술, 같은 책)
이소선 어머니로 실장이 바뀌고 나서 노동교실은 활기찬 분위기가 되었고, 내용도 검정고시를 위한 공부에서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노동교실을 했던 사람들은 “퇴근하고 노동교실에 들리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빠뜨린 것 같은 느낌을 줬다”고 했다. 노동교실은 ‘배움의 장, 투쟁의 장, 연대의 공간’의 의미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1977년 유신정권은 민주노조운동의 상징인 청계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노동교실 실장 이소선 어머니를 구속하고 노동교실을 폐쇄했다. 이에 맞서 청계 노동자 53명은 ‘노동교실 사수 -9,9투쟁’을 벌였다.
1970년대 청계피복노조의 활동은 사업장 내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연대활동도 함께했다. 이소선 어머니도 1976년 동일방직 노동조합 탄압에 맞선 투쟁, 1979년 8월 YH 노동자 신한당사농성 투쟁 등에 연대투쟁 하였다. 민청학련 수배자들을 숨겨주셨고 1977년 7월 민청학련 수배자 장기표 재판에서도 법정모독죄로 구속되어 실형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5,17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여 민주화운동세력과 노동운동에 대해 혹독한 탄압을 가했다. 이소선 어머니는 1981년 1월 30일 계엄당국에 의해 해산된 청계피복노동조합을 복구하기 위해 아프리(아시아, 아프리카 자유노동기구)사무실 점거농성으로 구속되어 징역 10월을 선고받아 또다시 옥고를 치렀다.
청계피복노조의 역사는 이처럼 민주노조의 기반을 세우고 신군부의 탄압으로 강제 해산되었던 민주노조를 다시 되찾던 역사였다. 1972년 유신체제는 한국노총을 양성하고, 산별노조와 대부분의 단위노조를 어용화시키고 무력화시키기 위한 작업을 하였다. 청계노조는 이와 같은 정권의 탄압에 맞서서 투쟁하여 승리한 몇 안 되는 노조 중 하나다.
이소선 어머니에게 민주화투쟁과 노동자투쟁은 결코 분리된 과제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민주화운동유가족 협의회(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를 건설하고 초대회장을 맡아 1993년까지 역임하셨다.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죽어간 열사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투쟁에 어머니는 앞장섰다. 1970년에 결성한 청계피복노조가 1980년대 신군부에 의해강제 해산되었다가 1988년 다시 합법화되기까지 노동자들은 피터지게 싸웠다. 노동자들은 군사독재 시절에도 최전선에서 투쟁하였고 선배열사들이 흘린 피로 우리들이 지금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한편의 진보가 다른 한편으로는 야만을 가져오기도 한다.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노동자 민중의 피 땀으로 쟁취한 투쟁의 성과물을 자유주의 부르주아들이 독차지하자 노동자들은 또다시 비정규악법과 손배가압류 같은 노동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자신들의 것으로 가져가기 위해 살아있는 노동자들의 민주주의를 제도권 내로 박제화 시켰다. 정작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과 자식 잃은 부모들, 5.18의 주역들은 제대로 역사적 보상을 받지 못하고 열사를 가슴에 품고 살아남은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말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1970년에서 80년대, 90년대를 지나 군사독재시절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오직 노동자의 한 길로 걸으셨다. 억압받고 고통 받는 노동자들이 있는 한 어머니는 끝까지 함께 투쟁하셨다.
어디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권만이 비판대상인가.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투쟁의 성과로 정규직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위를 확보한 반면 같은 공장안에서 비정규직은 심한 차별과 인격적 모독을 당하며 일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얼마나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조금 나아진 내 신분에 만족을 느끼며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소선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태일이가 이렇게 말했어. 자기가 죽으면 벽에 조그만 창구멍 하나가 뚫리는 거라면서 빛이 조금 들어오면 그거 보고 노동자들이 하나가 돼서 싸우고 권리를 찾으면 점점 그 창구멍이 커진다는 거야. 그 창구멍이 활짝 열리게 함께 싸워야 한다는 거지. 그게 점점 넓어지면 노동자들은 싸우지 말라고 해도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거라고. 근데 지금 창구멍이 있나 모르겠어. 다들 자기 살기만 바쁘지” <“비정규직이랑 함께 하는 게 전태일이야”, 2008년 참세상 인터뷰>
이소선 어머니는 노동자의 단결을 늘 강조하셨다. 그분은 아셨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다’라는 것을. 그것은 전태일 열사의 꿈이기도 했고 이소선 어머니의 꿈이기도 했다.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머니는 40여 년 동안 아픈 몸으로도 끊임없이 연대투쟁을 다녔고, 평소 노동자의 단결을 그토록 강조했던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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