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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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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9 20:25:31, 조회:3,557, 추천: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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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적 시각만이 ‘위험사회’에 대한
전망을 보여줄 수 있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1986)를 읽고
- 공공부문 비정규직 활동가
‘위험사회’에 대한 새삼스런 관심
2008년 7월. 전 세계를 양분하고 있던 적대진영 간 대립의 심화는 결국 양자간 최후의 심리적 저지선이었던 ‘초자력병기’의 사용으로 이어지고, 결국 공멸의 상황이 벌어지기까지 불과 2달 남았다. ‘초자력병기’의 사용으로 인한 지구 자전축의 변화는 전 지구적으로 해일, 폭풍우, 지진, 화산, 해빙 등 엄청난 재해와 재앙으로 이어지며, 인류를 절멸의 위기로 몰아 넣는다. 운이 좋은 소수의 인류만이 인더스트리아와 하이하버를 중심으로 태양 에너지에 의지해서 또 다른 지배와 정복을 꿈꾸게 될 것이다.
1978년 <미래소년 코난>에서 암울하게 예고하고 있는 배경이 결코 ‘미래’가 아닌 ‘현재’가 될 수도 있었다. 원작자인 알렉산더 케이와 연출가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소련과의 냉전체제 속에서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공멸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으나, 내가 받아들인 것은 코난의 현란한 발가락 묘기와 포비와 함께 악당을 물리치고 라나를 구해내는 장면이 전부였다. <미래소년 코난>이 의도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아마도 반공 이데올로기의 악선동의 포로가 되는데 약간의 일조를 했을 것이다. 당시 미국이 먼저 핵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으므로...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를 저술했던 시기는 바로 ‘근대화’의 산물인 환경오염, 유독물질의 확산, 핵전쟁의 위협, 에너지 자원의 고갈, 사회 불평등의 문제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면서 잠재적으로 인류를 절멸시킬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인식하고 있던 시기였다. 벡은 저서를 통해 현대 산업사회(근대화)가 무모한 모험을 체계적으로 재생산하고 있으며, 이러한 위험은 과학기술과 이에 기반한 군사-경제력에서 초래되고 있으며, 계급사회에 기반한 기존의 근대화 개념들이 아닌 ‘성찰적 근대화’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본서의 출간 이후 같은 해에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 방사능 유출사고에 의해 그의 ‘위험사회’는 눈으로 확인되었다.
벡의 문제제기 이후 전 지구적 사회는 여전히 확산되는 ‘위험사회’의 여러 징후들(지구 온난화, 기상이변, 유전자 조작 농산물, 광우병과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 등)과 여전히 ‘위험’의 해결 전망이 보이지 않는 속에서 20여년이 흘러 왔다. 벡의 문제의식은 포스트 맑스주의와 탈근대 사상이 유행하면서 국내에도 90년대 중반부터 ‘성찰적 근대화론’으로 소개되었으나, 2008년 현대에 이르러 좀 더 주목받고 있다. 이는 최근 연이어 벌어진 삼성중공업 태안해안 기름유출 사건,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 숭례문 화재 사건 등 대형 인명, 재난 사건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인해 예상되는 ‘위험’(한반도 대운하 건설 등 각종 개발 사업, 친자본·노동배제적 정책 등)에 대한 즉자적인 관심일 것이다.
울리히 벡의 탈계급적 시각과 ‘위험분배’개념의 한계
기존의 산업사회와 근대화 과정이 낳은 ‘위험사회’라는 벡의 비판적인 문제의식은 ‘성찰적 근대화’라는 탈근대화적 담론으로 빠지게 되고, 결국은 ‘위험사회’(아직, 그리고 동시에 산업사회이기도 하다고 한다)로 전환되면서 점점 더 두드러지게 진행되는 개인주의화의 경향을 들며 자본주의 사회가 계급사회임을 부정하고 있다. 또한 그 해결책으로 민주주의의 확대를 그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전 지구적인 환경오염 등의 위험인자에 대한 계급적 시각을 버림으로써 자본주의에서의 ‘위험’의 발생원인 및 책임과 그 분배의 동학에 대한 정치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벡에 의하면 ‘위험’은 초국가적이며, 비계급적인 지구적 위해이다. 동일한 위험인자가 사람들에 따라, 즉 연령, 성, 식사습관, 노동유형, 정보, 교육 등에 아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본질적으로는 계급적 조건과 국제적 불평등에서 기인함을 간과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위험’은 자본 자신의 본성에 의해 과잉생산을 할 수밖에 없는 자본과 이러한 생산양식의 유지·재생산을 자기 목적으로 하고 있는 국가의 책임이 일차적이다. 물론 과학기술은 이 과정에 자본과 국가에 의해 목적의식적으로 동원된다. 기후변화와 환경재앙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받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미국은 이산화탄소 배출에 있어서 세계 전체의 25%, 유럽은 20%를 차지하고 있으나, 온난화로 인한 해빙과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남태평양 상의 섬나라와 방글라데시와 같은 동남아시아가 될 것이다. 벡도 지적하고 있는 바대로 오늘날의 위해들은 산업적 과잉생산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위험’들이 부수적으로 야기되며, 또한 광우병 소나 유전자 조작 농산물 등과 같은 ‘위험’들이 자본의 직접적인 이윤을 위해 발생하고 있다
벡은 이러한 ‘위험’들이 누구에게 분배되고 있는가에 대해 논의의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위험’의 전 지구적이고 비계급적인 특성을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대기, 토양, 지하수 오염 등에 노출되는 것 또한 ‘위험사회’에서도 여전히 계급적 지위와 국제적 불평등에 따라 분배되고 있다. 인류전체의 공존을 위해 책임과 역할을 나누자는 자본의 발상은 일개 자본내부에서의 ‘고통분담론’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곧 “위험사회”
자본주의에서의 과학의 사용과 환경문제
위험을 초래한 주요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경우 벡은 일부 전문가 집단과 권력집단(국가와 초국적 자본 등)이 지식을 은밀하게 생산하고 독점적으로 활용한데 비롯되었다고 일부 올바르게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해결책으로 공중 즉, 의회가 과학기술적 지식 생산에 비판적으로 개입함으로써 현대 과학기술의 가능성만이 아니라 그 한계까지도 함께 인식한 상황에서 과학기술이 이루어 질 것을 제시하고 있다. 위험의 결정에 학문 분과, 시민집단, 공장, 정부와 정치 사이의 끊임없는 협상과 열린 논쟁의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의 확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과학기술은 전문적 지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권력적 속성에 의해서만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과학기술이 자본주의적으로, 즉 자본가들의 이윤추구의 수단으로만 이용되기 때문에 생산의 무정부성과 함께 현대 사회의 각종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본질적으로 몰계급적이고 비정치적인 과학기술은 없다는 것이다.
전세계를 무대로 자신을 재생산하는 자본은 이제는 국제환경협약 등을 통해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명제 하에 환경보전과 인류사회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자본의 속성상 결국은 지구 환경 악화와 생태계의 파괴가 자신의 이윤확대와 자본주의 사회의 존속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만이 그 관심사가 될 것이다.
또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가 계급은 자신의 이윤을 침해하면서까지 대체 에너지 개발과 이용 등을 위한 자신의 자본구조를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일국 또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뿐이다. 1997년 교토회의에서 이산화탄소를 의무적으로 감축하기로 합의된 교토의정서에 미국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미국의 석유재벌을 비롯한 자본들의 반대로 인한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과 각종 기상이변 등 환경재앙에 대해 한 목소리로 우려를 제기하고 있지만 그 원인과 해법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자체의 고유한 생산양식의 문제라는 계급적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는 한 답을 도출할 수 없다. 각종 인재냐 천재냐를 둘러싸고 논란되는 각종 사건과 사고들은 사실상 비용절감을 통해 최대한의 이윤추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재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위험’인 주기적인 공황과 자본의 대응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실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고용된 노동 또한 불안정성(노동의 유연화)이 가속화되고 있다. 개별 자본들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커지는데 고용이 오히려 줄어드는 ‘고용없는 성장’의 경향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더욱 심화될 것이다. 심지어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자 없는 공장의 출현까지 예고하고 있다.
이미 자본주의로 진입한 중국의 경우 이미 성장의 단계를 지나 과잉생산의 수준에 도달하였다. 전 세계 초국적 자본의 안정적인 이윤을 보장해 주던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자기소임을 다하고 전 세계적 공황을 야기하는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금융시장의 개방으로 인해 실물경제 위기에 따른 공황뿐만 아니라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 공황의 사태로 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07년 2월 중국 주식시장의 대폭락은 곧바로 북미증시를 폭락시키고, 다음날 아시아증시를 폭락시킨 바 있다. 이에 더해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 프라임 모기지)의 부실 여파로 미국 주식이 폭락하고, 연속적으로 금융회사와 채권보증사들의 파산을 야기했다. 미국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조차 미국의 경기침체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제위기는 악순환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경제의 불황이 장기화되고 악순환이 반복될수록 전 세계 자본주의는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며,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전개되지 않는 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전 세계의 노동자, 인민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수많은 노동자와 민중들로 하여금 생존권이 박탈당하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공황이라는 상황보다 더한 ‘위험’이 어디 있겠는가?
실제로 자본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대 재생산, 대대적인 정리해고, 복지후퇴, 노동강도 강화, 노동시간 연장, 임금삭감 등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강화와 이데올로기 공세(국가 및 기업 경쟁력 강화론, 고통분담론 등)를 한 축으로 하고 전쟁을 통한 과잉생산 된 자본의 폭력적 소실과 대대적인 살육을 또 한 축으로 자신의 위기를 시한부로 연기하고 있다. 소련사회주의만 붕괴하면 모든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것처럼 선동하던 시대가 지나고도 여전히 인류의 공멸에 대한 ‘위험’을 야기하는 전쟁도 자본주의 그 자체로부터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위험사회’는 암울한 미래일 수밖에 없는가?
<위험사회>에서는 결론을 통해 최선의 대안은 ‘정치의 차별화’를 제시한다. 즉 정치영역과 하위정치영역들이 공존하여 끊임없는 자기비판이 이루어지는 ‘성찰적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2008년 4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초청강연에서 벡은 “국가적이고 지구적인 투기장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치학에 대한 하나의 대안적 선택지가 존재한다. 국가와 같은 세계시민적 형태(유럽연합과 같은)를 생성... 종국에는 자고 있는 소비자 거인이 깨어나 세계화된 자본을 무력화하고 국가와 시민운동의 힘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사자들은 부정하겠지만 ‘역사의 종언’ 신봉자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기에는 ‘위험사회’를 바라보는 울리히 벡의 탈계급적 시각 또한 공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노동자 계급투쟁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타도하고 계급모순 없는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산업사회가 야기한 ‘위험사회’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전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우리 혁명적 노동자들에게는 고된 삶이지만 얼마나 희망적인가? 자본과 함께 하는 이들에겐 희망이 없다!!<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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