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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2호]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을 죽이는 자, 과연 누구인가? -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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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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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9 07:20:41, 조회:3,024, 추천: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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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죽음의 공장 현대중공업
배 만드는 노가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일상은 이렇다. 이른 아침 7시 울산 동구 방어진에는 4만 여의 회색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들이 오토바이에 몸을 실고 현대중공업 사방 출입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간다. 엄청나게 큰 철판을 자르고 붙여서 거대한 배를 만드는 현중 현장은 자르고(가공), 붙이고(취부), 용접하고, 배관을 설치하고, 도장 작업까지, 모든 공정이 노동자의 노동이 집약된 현장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 골리앗 파업이라는 노동운동사를 간직한 현대중공업. 노동자의 단결은 거대했다. 하지만 이제 현장을 고민하고 있는 많은 동지들에게마저 현대중공업 현장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작업안전에 대한 두려움과 사측의 통제와 탄압에 전망을 찾지 못하고 방치되어 가고 있는 죽음의 공장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철판에서 넘어지고, 깔리고, 부딪치고, 선각블록에서 떨어져 죽고, 불 타죽고, 사측의 탄압에 힘겨워하다 자살하는 등 ‘죽음’의 소식이 일주일이 멀다하고 전해지고 있다. 최근 며칠 사이에도 사망사고가 연이어 전해졌다.
이렇게 그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죽음의 현장에서 과연 어느 누가 선뜻 전망을 이야기 할 수 있으며 투쟁을 조직하려 하겠는가!
내가 현대중공업에 입사하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만류가 있었다. ‘현대중공업에서 전망을 찾기란 어렵다’, ‘전망이 없는 곳에서 몇 해 지나지 않아 운동 의지마저 상실할 것이다’, ‘현대중공업 현장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너무 역량 소모 아닌가? 그러니 다른 현장을 고민해라’ 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현대중공업에 들어와서 겪는 현장 분위기 역시 암울했다.
위험이 곳곳에 만연한 현실이지만 노동자들은 산재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하며 혹한과 폭염 속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치르고 있다. 반 조회시간에는 현장 곳곳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와 산재소식이 사고 속보로 전달되지만 관리자들은 사고를 ‘작업자의 안전 부주의’로 결론지어 책임을 작업자에게 묻고 ‘작업도중 위험요소가 있다고 판단되면 작업을 거부하라’고 교육하면서 검사일정을 준수하라고 노동자들의 목숨을 가지고 기만하고 있다.
이런 현실이기 때문에 노동자는 작업 도중 다쳐서 상처가 생겨도 관리자들이 알지 못하도록 감추고 몰래 병원을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산재 처리는 고사하고 공상 처리하는 것마저 사측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중 노동자들의 현실에서는 87년 대투쟁과 골리앗 파업이라는 노동자들의 투쟁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올해 ‘노조 창립 20주년 노사공동선언’으로 노사상생 굳히기를 선포하면서 자본의 하수인임을 대대적으로 선포해 극찬을 받은 어용 정규직 노조는 노조 사업으로 ‘고용 안정, 산재 추방’을 내세웠지만 각종 산재사고를 은폐시키는 자본의 첨병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어용노조에게 산재사고는 지극히 귀찮고 신경 쓰이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측의 산재사고 은폐에 대해 노조에게 이야기하면 ‘웬만하면 공상처리로 마무리하라’며 사측 편을 든다. 이런 현실은 노동자들에게 ‘믿을 놈 하나 없다. 그러니 억울하지만 내가 참고 공상처리라도 받자. 관리자들 눈에 찍히지 말고 고용이나 지키자’는 식의 생존 방법을 각인시킨다. 하지만 안전문제가 현중에만 있는 문제라는 식으로 보는 것은 협소한 인식이다. 사망 사고, 노동 재해는 어느 현장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노동자들의 힘으로 풀어나가는가, 근본적으로 노동재해를 줄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내는가에 있다.
이제 현중노동자들도 사망사고 앞에 분노도 맘대로 느끼지 못하고, 나만은 살아남아야 된다는 인식에 사로 잡혀 있는 상태를 극복하고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고,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을 조직할 수 있는 자신감부터 현장에서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하청 노동자들의 실태
산재 사망사고의 주요대상은 하청노동자다.
한 달에 한두 건씩 전해오는 사망 사고는 모두 하청노동자의 사고이다. 처음 사망소식을 접했을 때는 안타까움과 현중 사측의 책임 회피에 분노도 했었다. 하지만 이젠 사망사고가 분노보다는 ‘또 죽었구나’하는 일상적인 소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감정이 현장에서 수많은 사망사고를 접한 하청노동자들의 상태라 생각한다. 죽은 이들만 억울하고 아무도 그 죽음에 대해서 진실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사측은 오히려 사망사고 사실을 왜곡하고 숨기면서 노동자 통제수단으로 철저히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하청노동자들은 동료의 죽음에 무감각해지면서 철저히 개별화된 임금 체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하고 있다.
사망, 산재사고는 현중 현장의 상태를 보여주는 가장 끔찍한 사례이지만 열악한 노동조건과 무리해서 일하지 않을 수 없는 임금의 현실에서 나온 것이다. 산재 사망 노동자들 연령을 보면 미숙련 20-30대 층 하청노동자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는 중공업노동이 일반적으로 숙련된 기술공의 노동으로 생산 활동이 이루어져야하는데도 숙련된 정규직노동자에 비해 20-30대 하청노동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30대 하청노동자의 임금은 숙련된 정규직노동자들의 절반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숙련 하청노동자들은 임금을 높이기 위해 현중 사내업체 내에서 전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전직을 하면 또 다른 작업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서툴고 낯선 작업을 해야 하고 관리자들의 작업 시한 압박 속에서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 저임금으로 인한 미숙련 하청노동자들의 빈번한 전직은 곧 산재사망의 중요한 이유가 된다.
때로 임금에 대한 불만들이 여기저기서 이야기될 때면 노동조합의 필요성 또한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하지만 현중 하청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으로의 단결은 ‘곧 해고되어 자본으로부터 블랙리스트로 낙인찍혀 고용조차 유지할 수 없는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즉, 하청노동자들에게 단결권은 곧 죽음과 맞바꿔야 하는 것이다.
업체 내 집단적 투쟁이 간헐적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집단적 불만이 현중 사측의 탄압에 무너져 업체가 날아가고 주체들이 해고되는 과정을 경험한 하청노동자들은 결국 스스로의 단결을 두려워하게 되고 정규직 어용노조의 행보에 귀를 기울이며 콩고물을 기대한다.
07년 정규직 어용노조의 임단투는 결국 노동자들의 기본노동권 요구조차 걸지 못한 채 ‘경영 성과’라는 자본의 경쟁력 이데올로기에 먹혀 어용노조의 돈 잔치로 종료됐다. 2만여 하청노동자들은 어용노조의 성과금 요구안에 신경을 주시하면서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현중 자본과 어용노조가 손을 잡고 하청노동자들에게 적선한 격려금은 향후 수 천 배의 대가를 치르며 살아남은 하청노동자의 목숨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 현중 현장은 많은 이들이 우려하듯 자본의 통제가 극에 달해있고 2만여 하청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마저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리고 자본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을 무자비한 탄압으로 압살하고 있다. 그러나 하청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끊임없이 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비록 집단적 조직력을 갖추지 못한 채 개별적인 몸부림에 죽어가는 현실이 우리의 억장을 옥죄지만 현장은 노동자들의 심장에서부터 펄펄 살아 뛰고 있다. 더 이상 죽음의 공장이라 치부하지 말고 살아 있으되 조직되지 못한 채 죽음의 벼랑에 몰린 현중 하청노동자들과 함께 조직전망을 만들어 가자!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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