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투쟁사(2)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이냐,
‘준비된’ 투쟁을 위한 양보교섭이냐
- 80년대 영국과 미국의 구조조정과 노동자 투쟁
영국의 탄광노동자 총파업과 노동법 개악
80년대 중반, 서구에서는 이미 70년대 공황을 지나면서 자본이 자신의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구조조정 공격을 전면화하고 있었다.
70년대 중반 영국에서도 IMF구제금융을 받아 노동당정부는 복지와 임금삭감, 정리해고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대해 1926년 총파업 이후 처음으로 광산노동자들과 자동차 노조, 공공부문 노동자들로부터 시작하여 노동당 정부를 비판하는 전국적인 총파업이 전개되었다.
“곳곳에는 거리마다 쓰레기가 널려있고, 간호사 등 병원노동자들도 업무를 거부했고 소방관들조차 파업에 합류했다. 무정부상태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었다.”는 표현은 그 규모를 짐작케 한다. 최근 남한의 노동운동에서 “결코 국민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총파업’”을 조직하려는 투쟁 회피주의자들의 투쟁방식과 비교되는 것이기도 하다.
79년 150만 명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총파업 등 이른바 ‘불만의 겨울’이라 불리는 총파업투쟁은 노동당정부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노동당정부는 이러한 생존권 사수의 기조를 수렴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가경제 위기’ 논리에 밀려 노동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그리고 79년 총선에서 보수당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보수당의 리더 마가릿 대처는 노조 탄압과 노동력의 유연화, 자본에 대한 규제완화를 통한 자유로운 시장경제정책을 통해 노사관계를 ‘민주화’시키고 경제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탄광 폐쇄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노총은 설마 대처정권이 그대로 실천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노총이 이렇게 안이한 생각을 하면서 별 대응이 없을 때, 이미 대처는 80년 고용법이라는 개악법을 제정하여 노조 무력화 공격을 시작했다. 고용법은 불법파업에 대해서 노조의 면책권을 없애는 법안으로서 대처가 행한 노동개악 중 가장 위력적인 것이기도 하다.
물론 남한 노동운동에서도 이 손배 가압류로 인해서 90년대 이후, 특히 최근 더욱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얼마 전 효성해고자들 역시 2001년 화섬3사 공동투쟁 이후 해고자복직 및 민주노조 사수투쟁을 계속해오다가 손배 가압류로 인해 생계의 고통은 물론이고 구속도 계속되는 등 이중 삼중의 탄압 속에 놓여있다.
이러한 대처정권의 탄광폐쇄 - 해고라는 구조조정 공격에 대해서 탄광노동자들을 시작으로 전국노동자 총파업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대처 정권은 탄광파업을 본보기로 노동운동을 무력화 시키고자 치밀한 준비를 했다. 일단 석탄 재고량을 확보했고, 화력발전소가 석유를 사용하도록 개조했다. 또한 갱 폐쇄 가능성이 낮은 노팅엄 탄광을 중심으로 대체생산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지역 총파업이 시작되자 대처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1만 명 이상의 광산노동자들을 체포했고, 새로운 고용법을 제정하여 노조 재산도 압류했다.
결국 노조는 1년여의 파업을 정리하고 작업에 복귀했다. 그러나 노조의 교섭력은 약화되고 현장복귀 이후 4년 동안 절반의 갱이 폐쇄되었다. 신기술 도입으로 11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현장을 떠났다. 물론 생산성은 두배 이상 상승했다.
하지만 영국은 탄광 구조조정 이전에도 경제성장률이 둔화되었을 뿐, 적자 경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자본과 정권은 총파업을 무력화시킴으로써 탄광파업 이전의 경제성장‘률’ 저하와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노조에게 돌리는 이데올로기를 성공시켰다!!
특히 84년 대처정권은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 이후 노조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한치의 양보 없이 오히려 불법파업을 이유로 탄광노조 재산을 동결했고 파업주동자에 대한 손배를 부과했다. 물론 파업대오에서도 파업 지속에 대한 의견차이가 극심해졌고 이를 견디지 못한 파업지도부는 파업을 정리했다.
이러한 투쟁의 패배에 이어 대처정권은 반노동조합법을 입법해서 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간섭했다. 이로써 영국에서는 총파업이 정리된 후 파업이 눈에 띄게 줄었고, 파업금지법에 의해 노동조합 활동은 통제되었다. 또한 탄광파업이 다른 산업들에 큰 영향을 미치듯이 탄광 파업의 패배도 다른 노동자 투쟁에 동일하게 영향을 미쳤다. 다음 해인 86년 <더 타임즈>지 인쇄노동자들의 파업도 전자설비가 도입되면서 패배했다. 그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 이윤을 확대하려는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84-87년의 짧은 기간동안 통신과 철도, 석탄과 전기, 수도 등 다수의 공기업이 민영화었다.
영국 자본과 정권의 승리를 계기로 유럽 곳곳에서는 신기술 도입과 함께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가 자행되어 고실업과 노동강도 강화 및 노동조합 약화로 노동자들의 고통이 심화되었다. 이제 정규직 노동자의 주변에는 직접고용된 반숙련 노동자들과 함께 단기계약 혹은 시간제 임시노동자들이 포진해있다.
한편 84-85년 영국 탄광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동안 독일 탄광노조는 영국 파업탄광의 석탄을 대체하기 위해 독일 석탄이 영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저지하거나 파업투쟁을 국제화시키기 위한 어떠한 연대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국의 탄광을 국제적인 경쟁자로 인식했다. 그리고 '영국 탄광자본의 파산= 독일 탄광의 경쟁력 강화= 국가적, 지역적 일자리 보장'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사고는 독일 탄광노조 지도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노조 중앙지도부와 직장평의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즉 이들이 파업을 위한 국제적 연대와 지원을 사고할 때에는 일단 국제경제 전쟁터에서의 상대 자본의 약화를 노리는 것이었던 것이다.
"만일 한국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지속하면, 우리들의 입지는 강화된다"는 논리가 독일 등의 관료화된 노동조합들의 일상적 사고를 이루고 있었다. 이처럼 노동자계급의 연대와 무관한 경쟁력주의도 영국과 미국노동자들의 패배의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 탄광파업 당시에도 강력한 연대투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올바른 연대를 하고자 하는 소수 노동자운동은 독일 내부에서 물론 있었고 지금도 있다.
미국 항공관제사 파업과 노조 반동화
미국의 레이건 정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 항공관제사 파업이 그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미국의 항공사 자본가들은 초과설비와 할인 가격경쟁으로 인한 이윤의 감소를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로 해결하려 했다. 항공관제사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단행했다.
이 투쟁에 대해 레이건 정권은 11,000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블랙리스트에까지 올려 새로운 취업마저도 방해했다. 물론 지도부는 국가반란죄로 구속되었고, 파업기금도 몰수되고 파업기간에 대해 일일 백만달러씩의 손배를 물게 했으며 노조를 폐쇄시켰다. 파업 이후 새로 고용된 항공 관제사들은 파업 불참 서명을 강요당했다.
한편 파업기간 동안 항공기 제조산업 노조는 연대투쟁으로서 운송중단 및 항공편 운행중단, 승객출입관리업무 중지와 전국적인 부분파업을 계획했다. 그러나 AFL-CIO 지도부가 연대투쟁을 거부함으로써 투쟁은 무산되었고, 자본가들은 파업파괴자 조직을 만들기 위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레이건 정권도 다른 노동자들을 위협하면서 임금 삭감, 현장통제 강화와 노조 무력화, 신기술 도입 과정에서의 작업시간 조정과 인원 배치과정에서 노동강도를 강화시켜 갔다. 실제로 81년에서 85년 동안 임금은 3.5% 감소했다.
이렇게 영국과 미국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깨지는 동안 이탈리아의 피아트 공장에서도 현장투쟁과 태업을 이유로 한 61명의 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대응의 미약함으로 인해 현장의 주도권이 사측에게 넘어갔다. 또 80년 8월 피아트사의 정리해고에 대해 노조는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돌입했지만 33일간의 투쟁이 정리되면서 23,000명의 해고를 수용하게 된다. 특히 사측 관리 감독자들이 파업반대로 조직화되고 확산되면서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노동유연화를 기조로 한 구조조정은 영국과 미국에서의 전면적인 공격을 시작으로 확산되었다. 즉 정치적 보수화는 더 강화되고, 정책적으로는 긴축재정과 사유화, 노동조합에 대한 개입, 탄압, 노동관계법 개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는 강화되었다. 국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자본의 세계화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과 함께 말이다.
이미 당시에도 노동시장을 유연화시켜 항상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한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을 통한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 강화가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 국가적 경제 위기의 원인을 노동조합에게 돌리면서 노조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갔던 것은 10년 전이나 20년이 지난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사회적 합의’도 필요 없는 영국과 미국의 노자협조주의
영국 탄광노동자 파업을 전후하여 80년 이후 여덟 차례의 고용법 개악을 통하여 노조는 무력화되었다. 이제 노조가 행동하려면 조하붠 우편투표로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다. 이제 자본가들은 정리해고도 맘 놓고 할 수 있으며, 청소년과 여성노동자들을 최저임금 이하로도 고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 노동조합의 파업찬반투표용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만일 당신이 파업이나 여타의 단체행동에 참여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고용계악을 스스로 파기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파업찬반투표 결과와 파업일정 및 파업 참가자 명단을 자본가에게 통보해야한다. 남한에서도 노동법 개악을 분쇄하지 못하거나 노무현 정권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노사관계 로드맵이 관철된다면, 이수호 민주노총 개량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준비된 파업'을 통해서 이처럼 관리 통제되는 것은 머지않은 일이다.
영국은 그나마 노동자들을 회유하기 위한 노사정 참여기구인 인력관리위원회를 87년 이후 노조를 배제하는 지방훈련위원회로 조직 개편했다. 또한 비정규직을 확산시키는 고용정책을 중심으로 단체행동권도 제약하고 연대파업도 금지하며, 조합원이 파업을 거부할 권리도 입법하는 등 법 제도적 개악을 통해 노조를 무력화시켰다. 물론 그 후 90년대까지도 파업의 피해를 입은 시민들이 노조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권리와 함께 파업 돌입 1주일 전 사용자에게 파업 범위와 기간을 통보하게 하는 법, 유니온 샾 폐지, 노동조합비 원천공제체계 금지 등으로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은 이어졌다.
게다가 당연히 노동시장 유연화의 필수 기제인 정규직 최소화, 파견제와 시간제, 정리해고제를 도입했다. 국 공유기업에 대한 민영화와 함께, 독점자본과 초국적 자본운동은 활발해졌다. 특히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쟁취한 그간의 성과들은 대대적인 공격을 받게 되었다. 실업보험도 감축되고 공공부문 고용창출 정책도 저임금 일자리로 채워졌다. 이로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삭감되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전환을 통해 생존권은 파괴되었던 것이다. (영국은 이러한 암흑의 80년대를 거치면서 조합원수도 급격히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사용자가 단체교섭에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47% 가량이나 되었다.)
한국 자본은 이미 90년대 후반을 넘어서면서 경제위기를 계기로 하여 노동유연화를 현장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개악했다.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변형시간제를 필두로 하여 각종 고용유연화와 성과급 확대와 이를 통한 임금삭감, 경쟁을 강화시켰다. 게다가 비정규직을 확대시켜 실업률을 줄이는 기만적인 고용‘확대’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현장에서는 90년대 후반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급투쟁의 전면에 나서면서 생존권투쟁들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그러나 자본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고용안정을 구실로 한 임금삭감과 단협개악이라는 양보교섭을 강요하고 비정규직 확대 도입을 합리화시켰다. 그리고 그 결과 자본이 의도했던 대로 투쟁하는 노동자, 활동가들에 대한 고립과 개량주의 세력을 지도부로 확대 강화시키게 되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개량주의 관료주의적 지도부에 대해 비판하고 구조조정에 맞선 총파업투쟁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총파업을 실질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 현장조직력이 구축되지 않아 총파업은 주장일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껏 현장에서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에 맞선, 노조 무력화에 맞선 일상적인 현장투쟁을 조직해오지 못했다. 그렇기에 총파업투쟁을 민주노총 지도부에만 요구한다고 해서 그 총파업투쟁이 계급투쟁으로 조직되는 것은 아니다. 97년 전국노동자 총파업 당시, 현대자동차 등의 노조에서 나타난 것처럼 현장 파업은 안하고 가두투쟁만 열심히 하는 ‘순수정치파업’에 머물러 계급적 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예전의 연대-동맹파업의 정신을 이어받지 못하고 오히려 정부자본을 ‘압박’하고 교섭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한 ‘정치파업’으로 축소, 왜곡되어 왔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구로동맹파업과 같이 우리는 의식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무기인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활동가들조차도 “현장의 정서가 이렇다”, “집행부와 활동가들, 현장조직의 상태도 이런 수준이다”라면서 오히려 현장을 대변하는 수준에 급급했지, 그 수준에서부터 출발해서 어떻게 의식적으로 끌어올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수세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선진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자신의 위기를 은폐하고자 하는 구조조정 공세와 개량주의세력에 대한 회유 확대전략에 대해서 폭로하는 것과 동시에 현장투쟁을 통해서 노동자의 희망으로 서야 한다. 최근의 사회적 교섭-사회적 합의주의를 둘러싼 내부전선은 단순히 내부적인 투쟁 혹은 갈등이 아니다. 또한 작년 올해 이어지는 비정규직 개악법안 저지투쟁과 사회적 교섭 분쇄(대의원대회 강행처리 저지)투쟁이 결코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자협조주의를 사회적 담합으로 구조화시키려는 개량주의자들에 맞선 투쟁은 현실에서 전개되는 비정규직 노동자투쟁과 무관하지 않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분쇄 및 하이닉스 매그너칩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생존권사수 투쟁, 사회보험노동자들의 노동탄압 및 노사화합 분쇄 투쟁이 중요한 것이다.
말로만 총파업이 아닌, 자본과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실질적인 파업, 구체적인 현장투쟁에 참여하자! 현실의 투쟁을 전국적인 단결, 단호한 연대로 사회적 교섭, 사회적 합의주의를 무력화시키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