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마을호 계약직 여승무원 투쟁,
2005년 구조조정과 외주 용역화 분쇄 투쟁의
불씨가 되자!!
11월 22일, 철도노조 서울지역본부에서는 ‘새마을호 여승무원 정규직화 쟁취 및 철도 비정규직 철폐 공대위’가 구성되었다. 3월 초 해고통지서를 받고도 주저하던 승무원들이 “물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새마을호 계약직 여승무원은 기관사 1인 승무를 시행하지 않음에 따른 인력 충원 시 정규직원으로 전환한다.ꡓ2003년 4월 20일 김세호(현 건교부차관)철도청장과 체결한 철도단체협약에 명시된 사항이다. 단협에 명시된 ‘비정규직 정규직화’ 합의사항은 열악한 현실 속에서도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비정규직 투쟁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철도 본부 조합은 “4.20 합의는 보직의 정규직화지 지금 있는 승무원의 정규직화가 아니다”라는 청의 논리를 고스란히 들이대며 투쟁을 회피했다. 악법을 투쟁으로 깨뜨리지는 못할망정 합의 된 단협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이다. 서지본은 이를 비판했지만, 정규직화를 전면에 걸고 투쟁할 정도의 결의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또한 12월 31일 계약해지 되면 주체동력이 떨어져나갈지도 모른다는 ‘현실적’ 판단으로부터 투쟁의 목표를 ‘재계약 이후 정규직화 요구’로 정했다. 여승무원들은 ‘계약직 역무원’이라는 청의 교란술에 흔들리기도 했다. 정규직화는 꿈만 같은 먼 일로 느껴지고 생계문제는 코 앞 의 일로 닥쳐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에 지도부의 임무는 “투쟁하는 만큼 쟁취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고 투쟁을 지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지본은 주체역량을 탓하면서 스스로 요구를 낮추었다.
그 결과는 투쟁이 상승하는 국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안팎의 우호적인 여론 속에서 투쟁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여승무원들 스스로도 처음에 쑥스러워하던 모습과는 달리 “정규직화 될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의지를 불태웠다. 만약 지도부가 “패배를 각오하더라도 정규직화 될 때까지 싸우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투쟁을 지도해왔다면 더욱 대담하고 공세적인 전술을 구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투쟁은 교섭국면으로 돌아섰다. ‘재계약’이라는 단계적 목표가 투쟁이 더 상승하는 것을 막아버린 것이다. 승무원들 사이에서도 ‘재계약’은 반쪽의 승리로, 정규직화 쟁취는 이후의 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투쟁을 통해서 비정규직 주체를 조직한다는 목표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이 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승무원 20명의 조합원 가입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단결투쟁의 성과이다. 비정규직 주체가 발굴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정규직 조직화의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현재 서지본은 20명의 조합원을 시작으로 KTX를 비롯해 철도 비정규직 조합원을 조직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조직화 방안은 나와 있지 않다.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내는 것이 필요하다.
한달 남짓 투쟁 속에서 여승무원들은 스티커 선전전, 서명운동 등을 스스로 나서서 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투쟁이 마무리되고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면 지금의 긴장감이 풀어지게 될 것이다. 지도부는 일상적인 조합활동과 당면한 현안문제 해결 등을 통해 능동적인 주체로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규직화 요구를 쟁취함에 있어서도 청과 본조의 교섭에 목매는 것이 아니라 본조가 또다시 소극적이거나 기만적인 태도를 보이면 그것을 폭로하고 투쟁을 통해 압박해 들어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새마을호 여승무원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05년 구조조정과 외주 용역화를 막기 위한 투쟁이 전면화 될 것이다. 새마을호 여승무원 투쟁은 그 투쟁의 민들레 홀씨가 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주체들과 산하 지부가 함께 구조조정과 외주 용역화 분쇄 투쟁을 조직화하자!
<새마을호 여승무원 인터뷰>
새마을호 여승무원 윤은선 동지(회장 직무대행)와 권정은 동지를 만나보았다.
1. 작업환경, 임금에서 비정규직으로서 받는 차별을 말해달라.
윤은선 : 기본급이 56만원이다 보니 수당으로 먹고산다. 그래서 우리한테는 쉬는 게 다 돈이다. 우리는 위험수당이 없다. 사고가 나도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아무런 보상을 못 받는다. 승무 할 때는 차에서 매 순회를 20분마다 해야하는데, 손님들 불편한 게 없는지, 차안의 환경상태, 온도 등을 다 체크하려면 20분도 더 걸린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사람이 많아서 거의 쉴 새가 없다. “계약직이라 일 못한다” 그런 소리 안 들으려고 정규직보다 더 악착같이 일하게 된다.
2. 3월에 해고 통지서를 받고 어땠는지?
윤은선 : “본인이 희망하지 않는 이상 짤릴 일 없다”고 해서 “나도 언젠가 정규직 되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일했다. 그런데 해고 통지서를 받고 화가 나서 승무원들끼리 모여서 의논 했다. 단체로 사직서를 쓰자는 얘기도 나왔고, 승무거부도 생각해봤다. 그때는 신규 채용자를 뽑은 상태였지만, 아직 교육이 안 되어 있어서 우리가 승무거부를 하면 전무나 차장이 그 차를 다 타야했다. 그런데 “설마 너희들을 자르겠냐”, “열심히 하면 좋은 소식 있을 테니 기다려라”고 해서 계속 참았던 거다.
3. 어떻게 다시 싸울 생각을 하게 됐는지
권정은: 해고 통지서를 받고도 재계약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는데 11월 중순쯤 됐을 때 아무런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생계수단이 끊기고, 다시 취업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생각에 다들 괴로워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주변동료들이 너무 힘들어하면서도 아무소리 못하는 거였다. 노조에서는 우리가 싸우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노조를 찾았던 거다.
4 처음 집회 때보다 지금은 더 적극적인데 투쟁과정에서 변한 게 있다면?
윤은선: 예전에는 팀장, 소장이 못할 말을 해도 무조건 참았다. 정말 죽고만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의 목소리 내는 걸 겁내지 않게 됐다. 우리도 떳떳하게 우리의 요구,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워야한다고 생각한다.
권정은: 처음에는 노조 말도 안 믿었다. 그러나 청은 우리한테 계속 거짓말을 해왔고, 노조는 우리 편이 돼서 같이 싸웠다. 친한 승무원들이 “같이 가자”고 해서 집회에 나갔다가, 기왕 할 거면 “싸움에서 이기자” 는 생각이 들었다. 싸우면서 우리가 그 동안 당한 일이 얼마나 부당하고 억울한지 점점 느끼게 되었다.
5 청에서 “역무 계약직으로 보내주겠다”는 얘길 했을 때 흔들리지 않았나?
윤은선: 사실 아무런 대안이 없을 때 역무 얘기에 70～80% 흔들렸다. 게다가 개별적으로 소장이 전화해서 “할려면 너 혼자해라” 라는 식으로 압력을 넣었다. 그래서 간담회를 통해서 마음을 잡았던 거다. 그러나 청은 항상 말 뿐이라 청의 말은 믿지 않았다. 집회를 할 때마다 요구안이 바뀌는 것을 보고 싸우면 된다는 걸 알았다.
6 정규직화 될 때까지 싸우겠다고 했는데
윤은선: 우리는 이 일을 좋아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1년을 재계약 하더라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싸우다보니 그게 아니더라. 1년마다 재계약을 계속해야 한다면 투쟁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요구는 사소한 것이다. 새마을호 여승무원 정규직화 시키는 게 뭐 그리 어렵겠나. 하지만 철도 안에는 새마을호 여승무원 말고도 비정규직들이 많기 때문에 청이 우리의 요구를 안 들어주는 것 같다.
7 현재 재계약은 청에서 약속한 상태다. 우호적 여론
과 투쟁이 상승되고 있는 시점인데, 만약 재계약을 요구안으로 걸지않고,
처음부터 정규직화를 걸고 싸웠다면 더 많은 것을 쟁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윤은선 : 재계약이 되면 생계문제는 해결되기 때문에 더 안정적으로 싸움을 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것 같다.
권정은: 처음부터 재계약을 한 뒤에 정규직화 요구를 가지고 계속 싸우기로 했다. 절반은 승리했지만, 더 큰 싸움이 남아있다. 여기까지도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너무 빨리 와서 정신이 없다. 그런데 그 거대한 싸움을 한꺼번에 하기란 어렵지 않겠나.
8 지금 투쟁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권정은 : 지금까지는 20명중에서 몇 사람이 이끌어왔다면, 이제는 20명 전체가 한 발자국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정규직화 투쟁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
9 철도 최초의 비정규직 조합원으로서 앞으로 활동계획은?
윤은선 : 아직 구체적인 고민은 해보지 못했다.
권정은 : 오늘 같이 일하는 다른 계약직 여승무원들에게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한마디로 질색하더라.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내가 무슨 빨갱이나, 공산당이라도 되는가. 노조 가입이라는 게 따라다니면서 적극적으로 권유한다고 해서 될 문제만은 아니다. 오히려 더 경계하는 면이 있다. 우리도 3월에 해고통지서 받고도 노조에서 접근하면 피했다. 그러다가 싸움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합원이 된 것이다. 그런 방식이 필요한 것 같다.
10. KTX 같은 다른 비정규직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윤은선 :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가만히 있으면 당한 거 또 당한다.
권정은 : 이번 투쟁을 하면서 비정규직은 사람답게 대접받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그 안에서 순응하지 말고 자기주장은 스스로가 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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