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버스현장상태와 투쟁목표
서울 한복판 버스현장에서 투쟁이?
2003년 10월3일 한성여객 조합원들은 힘없이 짐을 챙기고 파업현장을 나왔다. 밖에는 현장을 접수하려는 어용구사대들이 피식거리며 마지막 한 사람이 나올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파업 돌입 107일만의 일이었다. 10월11일 어용들로 구성된 대의원대회에서 다시 한국노총으로 조직을 변경했다. 한성여객노조의 파업은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의 시내버스 현장, 고속버스 현장에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사측과 어용노조는 물론이거니와 조합원들 역시 그 결과가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벽한 패배로 끝난 지금 각 버스현장은 그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닥치고 있다. 특히 야당이라 불리는 활동가들과 그에 동조하는 조합원들은 노골적인 탄압과 툭하면 자행하는 해고로 고통이 더 해가고 있다. 한성여객파업 기간중에 한성의 '한'자도 입에 못올리게 단속해오던 버스자본과 어용노조들은 이제 보란 듯이 한성여객의 상황을 교육하고 있다.
비록 한성여객 총파업투쟁은 처참하게 깨졌지만, 03년 한해를 돌아보면 중앙고속, 삼성여객, 코오롱고속, 선진운수 등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버스현장에서 투쟁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최소한 한 탕(노선 한 바퀴)돌고 오면 오줌 쌀 시간은 줘야 할 것 아닙니까?
대부분의 버스현장에서는 식사시간도 제대로 없어서 밥에 물말아서 후루룩 마셔버리고 곧장 다음 탕수를 뛰려고 자기 차량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나마 배차간격보다 조금 늦게 들어와서 밥 먹으려 갈라치면 곧바로 방송에서 "00호차 아무개"를 수시로 불러대니 먹기를 포기하기 일쑤다.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버스자본은 배차를 돌리는데, 이 시간이란 게 80년대 교통사정을 기준으로 만든 것이어서 실제로 한탕도는데 3시간이 걸려도 배차일지에는 2시간 20-30분으로 계산되어 있다. 운전대 잡자마자 신호무시, 차선무시, 난폭운전을 해도 제 시간 맞춰 들어오기 힘들다. 조금 늦어서 앞차와 간격이 벌어지거나, 뒷차와 붙어서 오면 새파랗게 젊은 배차들에게 험한 욕듣기 일쑤다. 노동법, 단협은 휴지조각 된지 오래다. 단협에 사고나도 자부담을 하지 못하게 하면 뭐하나? 노무부장이나 영업부장이 눈깔 부릅뜨고 "사표쓸래? 알아서 처리할래?"한마디면 알아서 길 수 밖에 없다. 그깟 5-7만원 벌금 물고 말지 그거 안문다고 경찰서 왔다갔다하면서 만근깨지고, 회사에 불려다니다 보면 임금에서 30여만원 손해보는 건 우습다. 그리고 한 번 맞짱 떴다가 그 다음에 당할 봉변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운전 특성상 언젠가는 접촉사고든, 시민의 불편 엽서 제보든, 벌금딱지든 날라들 텐데, 찍혀있으면 곧바로 에어콘이나 히터도 제대로 안나오는 똥차로 배차받거나 심지어는 해고까지 당할 수 있다. 더욱이 다른데 취직하고 싶어도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잘~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한마디면 서울시내든 경기도든 어디에도 버스현장에는 취직하기 어렵다. 임금을 제 날짜에 주는 사업장은 거의 없고, 심지어 각종 임금체불은 부지기수다. 삼성여객의 경우는 2003년 중순까지 9개(27개월 분)의 상여금이 체불되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 노동조합에 고해 바친다면? 해고 일순위로 올라가는 지름길이다. 버스현장의 노조는 전국적으로 99%가 한국노총 소속이다. 완전 어용노조다. 이들의 수많은 사례들 중 어떤 사업장은 조합원이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자 사측 증인으로 서면을 작성하고 출석해서 "노조활동을 한게 아닙니다"라고 뻔뻔스럽게 대답하거나, 마산지역의 시내버스 사업장에서는 조합원이 노조사무실로 찾아와 부당한 일을 얘기하자, 그 자리에서 사측 전무실로 쪼르르 가더니만 일러바치기도 했다.
작년에 폭로된 중앙고속의 경우는 노조 위원장이 사측의 해고 결정에 함께 싸인해주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대부분이 이런 상황인데 감히 어느누가 노조에 부당함을 알릴 수 있겠는가? 현재의 어용노조 집행부를 일컬어 '사측의 시다바리', '사측의 노무 2중대'라고 부르는 것은 괜한 소리가 아니다.
엎친데 덮쳐 구조조정까지 진행돼…
어차피 80년, 90년대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있어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더 가혹한 탄압이 모든 버스현장에 몰아치고 있다. 99년부터 진행되기 시작한 소위 버스구조조정!이 그것이다. 구조조정은 개별 사업주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교통부에서 버스, 택시, 화물, 지하철, 고속철도 등에 대한 총괄적인 틀을 짜고, "재경부와 기획예산처 과장급 회의를 갖고 개선방안에 대한 기본입장 정리"(「운송업 경영개선 지원계획」 건설교통부, 문서번호:운정91100-1031)하여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 재경부 등과 지원방안에 대해 합의"하면서 큰 틀의 구조조정 계획이 수립되고 진행되어 왔다. 그 속에서 고속철도, 버스, 택시, 화물, 전세버스는 건설교통부가 직접 관장하고, 시내버스와 지하철, 도시철도 등은 각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최근 도시철도, 지하철노조 등에서도 '스마트 카드'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 현재의 지하철 요금 산정이 구간별로 되는 것처럼, 향후에는 버스노선과도 연계하여 통합적인 카드요금화를 진행하려 하고 있다. 이는 버스현장의 구조조정이 버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전체 여객수송의 국가적 계획속에서 각 시도별 지하철, 버스 등의 연계 속에서 진행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2004년부터 진행될 간선-지선 구조조정에서 지선버스는 지하철과의 연계노선 속에서 개편되는 계획이 나와 있다.
이런 큰 틀 속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버스현장의 구조조정은 99년부터 2003년까지 버스사업장들을 솎아내는 독점화 기간과, 2004년부터 독점화된 소수의 버스사업장들의 운영방식과 교통체계를 총체적으로 개편하는 시기의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99년 서울지역에서만 89개 사업장이 2003년 말까지 50개 사업장으로 통폐합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버스노동자들이 임금, 퇴직금도 제대로 못받고 정리되었다. 또한 99년부터 1년 계약직 등의 비정규직을 급속도로 늘리기 시작했다. 임금, 상여금 삭감을 위한 단협 개악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2003년에 서울시에서는 「교통시스템 개편(안)」으로 각 버스사업장의 조합원들까지 교육을 마친 상황이다. 이 구조조정의 골자는 현행 대형버스의 사업장별 개별운영에서 노선별로 묶어 중복노선을 최소화하고, 이를 서울의 끝에서 끝까지 가는 장거리 노선을 간선으로 고속화 하고, 이의 연계노선들을 지선으로 구분하고 이들을 서울시에서 준공영화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한 작업이 99년부터 진행된 시내버스 평가제, 노선전산화 및 경영정보 데이터 베이스 구축, 운송수익금 조사를 통해 진행되었던 것이다. 2004년 7월 1일부터 시행될 지선-간선 구조조정을 앞두고 막바지 매각 작업이 한창이다. 실제로 2003년 하순부터 상마운수, 관악교통의 한개 노선 등이 한남운수로 매각되었고, 신성교통의 158번이 제일여객으로 넘어갔다. 공항버스의 한 개 노선이 매각된데 이어, 2004년 6월경까지 본사매각이 예정되어 있다.
지난 과정 버스구조조정 과정을 통해서 집합된 자료들을 통해 향후 서울 시내버스의 경우는 버스 한 대당 42만원의 보조금을 서울시에서 집행하고, 개별 사업장의 운송수익금을 서울시에서 통합관리하면서 사실상의 준공영화를 하려한다. 물론 이는 전체 버스에 대한 공영화 계획이 아니라, 지선을 중심으로 한 단거리, 지하철 연계노선에 국한된다. 이는 현재 지하철과 도시철도의 민영화 과정에서 역무, 정비 등의 민영화는 추진하되, 핵심적인 직능에서는 여전히 공사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하철, 도시철도의 경우 기존에 공사에서 일부 민영화를 하고 있다면, 버스는 사적 자본의 상태에서 핵심 노선들에 대한 공영화로 순서만 다르지, 결과는 같다.
구조조정에 노동자들만 죽어난다
이처럼 현재의 버스현장에서의 구조조정은 전국가적 차원의 여객, 물류 수송 관련 구조조정과 맞닿아 있다. 버스현장에서의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비용의 절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 서울시의 계획에서도 나타나지만 수입구조의 획기적인 개선은 사실상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즉 버스의 수송분담률은 현재까지 떨어져왔지만, 이를 장기적으로 28%까지 맞추고 그 선을 유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비용의 절감을 통한 수익구조의 개선으로 나타나게 된다.
실제로 99년부터 단협에도 없는 1년계약직이 한성여객의 경영자인 조장우의 흥안운수에서부터 도입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2002년 단협에서는 계약직이 명문화되기도 했다.
현재 흥안운수의 경우 계약직이 전체 노동자 중 90%에 약간 못미칠 정도이며, 삼성여객, 우신운수, 우신버스, 공항버스, 공항리무진, 한성여객, 삼화상운 등의 버스사업장에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 중에서 공항버스의 경우 지속적인 현장투쟁으로 2003년 9월부로 전면 철폐되었다. 삼성여객의 경우 심지어 6개월 계약직까지 도입되어 있는 실정이다.
비정규직의 급속한 확대와 함께 버스자본가들과 어용노조는 단협의 개악을 통해서 입사부터 6개월간 상여금 지급을 하지 않기로 개악하면서 비정규직은 매년 6개월 분의 상여금을 날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한 비용절감 효과는 상당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기존부터 통상-평균임금의 착취분은 고스란히 회사의 수중에 들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매각되어 왔던 시내버스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재입사를 통해 대부분이 비정규직화 되고 있다. 최근 매각된 상마운수의 노동자들은 경우 매각과정에서 5년치 상여금, 3개월치 임금, 퇴직금 전액을 날리고도 재계약 입사를 하기도 했다.
이미 신촌, 북부, 개봉 등의 경우에도 상마와 거의 비슷하게 매각되었다. 쉽게 말해서 2004년 7월전까지 막바지 매각과정에서 정리되는 사업장의 조합원들은 대부분이 재계약에 비정규직화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지선-간선 구조조정이 시행되는 7월부터는 현재보다 (사업장이 아닌)노선이 100여개가 더 늘어나는데도 버스노동자들의 임금총액은 그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서울시 보도에서도 입증된다. 실제로 현재 북부운수의 일부 노선이
이미 지선으로 시범운행 중인데, 이 노선에 투입된 버스노동자들은 전부가 계약직으로 고용되었다.
최근 불거진 버스현장의 투쟁은 구조조정에 따른 생존권 사수투쟁이었다
이런 구조조정이 기존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어우러져 더 열악한 현장을 만들자, 최근 버스현장의 노동자들의 다양한 형태의 투쟁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한성여객의 투쟁에서 보듯이 해고자 원직복직 비정규직 철폐…는 바로 이런 구조조정에 따라 발생한 문제들이 집약적으로 터져나온 것이었다.
실제로 한성여객의 경우 대형버스만 230여대가 넘는데, 이에따라 필요한 인력이 500명이 넘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 노동자들은 340여명 가량만 남기고 모두 정리해 버렸다. 이들 340여명 중에서 1년 계약직이 30%에 달하면서 투쟁과정에서 계약직 조합원들은 대부분이 사측의 눈치를 보며 구사대에 서기도 했다. 여기에 기존에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무해오던 버스현장이기에, 노동자를 머슴 취급해오던 오래된 관성은 소위 '악질'사업주의 방식으로 상식 자체가 통하지 않는 폭력으로 현장에 구조조정을 진행했었고, 이에 대해 노동자들의 투쟁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왔던 것이다.
비록 한성여객으로 대표되는 버스현장의 투쟁은 처참하게 깨져나갔다. 현재 노조를 장악하지 못한 다른 버스사업장 평조합원들의 많은 투쟁들은 더 힘든 조건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구조조정 공세가 사업주 차원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노동자를 탄압하면서 생존권 사수투쟁은 동시에 노조민주화 투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노조민주화 투쟁은 이미 87년 노동자대투쟁과 맞물려 많은 버스현장에서도 유행처럼 일어나기도 했지만, 상층 지도부 장악을 위한 선거주의, 개별적인 형태의 법적 투쟁에 매몰되고, 이것이 약 15년의 기간동안 각 버스현장에서 재생산되면서 여전히 어용노조를 민주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당시 버스노동자협의회에서 약 60여명의 위원장을 당선시켰지만, 최근까지 하고 있는 김포교통의 김00지부장을 보더라도 기존 어용보다 더 노련한 어용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이는 기층 노동자들 속에서의 일상적인 현장투쟁을 조직적으로 진행하면서 조합원들의 신뢰를 받아가는 방향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버스현장을 민주적으로 바꿔내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의 현장투쟁은 대부분 버스업종의 구조조정과 맞물려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장투쟁은 생존권 사수와 함께 구조조정 분쇄 투쟁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노조집행부를 장악, 이를 중심으로 한 투쟁들이 진행되어야 한다. 앞서서 본 것처럼 단지 버스현장에 국한된 투쟁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즉 지하철, 철도, 택시, 화물 등과 맞물려 거대하게 진행되는 구조조정에서 버스현장의 투쟁은 이들 사업장 노동조합의 투쟁과 긴밀히 연계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업장 마다 자기 역량은 차이가 있지만 현장에서의 일상적인 구조조정 분쇄 투쟁들이 준비되고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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