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폭로>
노동자의 분신과 기아자동차 집행부의 뇌물 비리
2003년 1월, 2004년 1월에 연이어 배달호 동지, 박일수 동지가 분신 사망했다. 2005년 1월에는 현대자동차 자본의 치 떨리는 탄압에 맞서 투쟁하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인 최남선 동지가 정규직 노조의 연대를 촉구하면서 분신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동지들이 폭력경비와 구사대의 폭력 앞에서 고립되어 유혈이 낭자하게 머리가 깨지고, 두들겨 맞을 때 현대자동차노조는 “임단투에서 해결하자”면서 이 투쟁을 외면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잔업거부 투쟁을 했으나 정규직 노조가 동참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합법’적 형태의 대체인력과 싸우면서 실질적인 생산타격을 하지 못했다.
1월 20일에는 채용비리와 관련하여 막대한 뇌물수수를 한 기아자동차 17대 박홍귀 집행부가 총사퇴하는 경악할 만이 일이 발생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과 대비되는 추악한 뒷거래는 노동계급 내부의 양극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양극을 가르는 분단선은 결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 그어져 있지 않다. 이 양극 분단선의 한편에는 자본의 탄압으로 고통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이 반대편에는 자본과 정권 그리고 대중들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고 배신하는 개량주의 관료들이 있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크레인 농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파업을 철회하고 ‘사회적 교섭기구’ 참가를 주장하는 개량주의 관료들이 반대편의 언저리에 서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지는 상대적 우월의식과 허위의식은 자본이 조장한 분할주의 공세에서 비롯된다. 또한 고용불안에 휩싸여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은 고용안정을 위한 ‘쿠션’이라는 방패막이 의식은 협조주의자들이 이를 부추긴 결과다. 열사 칭호조차 받지 못한 김춘봉 열사의 죽음은 정규직 노동자가 얼마든지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수 있는 불안정한 위치에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귀족’으로 악선동을 당한 LG칼텍스정유 노동자들이 당하는 굴욕적인 현실과 20일, 21일 잇달아 산재로 자살하거나 사망한 대우조선 노동자와 금호타이어 노동자의 현실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 결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의 본질은 집행부와 대의원들한테 까지 깊숙이 파고드는 자본의 유혹과 뒷거래, 매수에 개량주의자들이 넘어간 결과에서 비롯됐다. 자본가 언론은 지난 해 ‘성탄절 특근’을 합의한 기아자동차노조를 극찬하기도 했다.
기아자동차 자본은 박홍귀 집행부와의 뒷거래를 통해 현장 내에 협조주의 노선을 관철시켜 왔다. 박홍귀 집행부는 화성공장 내 구속자 석방을 위한 텐트를 공격하고, 위원장은 구속된 김우용 동지를 면회 가서 석방조건으로 반성문 제출을 요구하면서 노골적인 자본의 끄나풀 역할을 해왔다. 뿐만 아니라 파견법 개악을 분쇄하기 위한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의 수위를 낮출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비리 사건의 뒤에는 전투적 노조가 있는 게 아니라 자본에 매수당한 협조주의 노조가 있을 뿐이다. 당당하게 투쟁을 하는 전투적 노조와 활동가들에 대해서 자본은 구속, 수배, 해고, 손해배상, 가압류 청구로 보복을 한다.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현대자본은 협조주의 집행부와의 공생관계를 포기하고, 자신들의 이미지 타격을 감수하고 광주공장 경영진을 읍참마속(泣斬馬謖)하면서 까지 노조의 채용비리를 폭로했다. 그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으로 수세에 몰리자 노동운동의 도덕성에 타격을 가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립시키고 반전의 기회를 노리기 위함이다. 정권과 자본은 이참에 대공장 노조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붙여 파견법 개악 반대 총파업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하여 총파업을 와해하려 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는 창간준비 9호에서 ‘매수와 노동운동의 말살’이라는 주제로 자본이 막강한 금전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매수로 노동운동 상층의 기회주의 관료들에게 자본의 영향력을 새겨놓는다고 경고한 바 있다. 자본가 언론의 기사는 이 사태를 기아자동차 박홍귀 집행부 내의 간부들 일부를 넘어 현장 제조직과 조직된 대공장 전체로 몰고 갈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물론 자본에게도 비리문제를 무차별적으로 확대할 수 없는 성역의 제한이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뇌물 비리 사슬을 건드려서 자본주의 자체가 폭로되는 것이다. 영악한 자본가들은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비리 사건 수사를 노조에 타격을 가할 수 있을 정도의 통제가능 한 수준으로 조절하면서 조사를 할 것이다.
이미 자본가들은 노동운동 상층 기회주의자들의 뇌물비리와 타락을 급진적, 전투적 노동운동을 말살하려는 기회로 악용하고 있다. 자본가 언론은 기아자동차 집행부의 채용비리 사건에 대해 ‘도덕적 해이’와 ‘대기업 귀족노조, 강성노조가 권력기관화 된 것’으로 비난하고, 라인스톱 제도가 노조에 절대권력을 주면서 이 사태를 만들었다며 파업권을 공격하고 있다. 또한 이번 뇌물 사건이 “대중과 유리된 강경일변도의 투쟁방식, 조직의 관료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기아차노조 집행부의 집단사퇴로 무마하려 해선 안된다”라고 하고 있다. 심지어 뇌물비리의 거대한 온상인 차떼기 정당의 배일도는 “노조의 집단적 힘이 과도하게 작동되도록 한 각종 근로관계법들은 정규직 근로자만 보호하고 비정규직 보호자는 소외되는 결과를 낳는 만큼 제도자체를 정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면서 이번 기회에 노동법을 개악하려고 한다.
기아자동차노조는 진상규명 대책위를 꾸리고 24일 전체 대의원 비상소집과 31일 임시 대의원 대회를 통해 선관위를 구성하여 이 비상사태를 해결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집행부의 사퇴와 선거를 통한 새로운 집행부 구성만으로 이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폭로시점이나 조사대상을 보면 자본의 의도가 분명한데도 사안의 성격상 전면적인 노동운동 탄압으로 규정하여 투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대공장 내 비리문제는 공공연한 사실이고 제 현장조직 그 누구도 이 뇌물공생 비리 커넥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진상규명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 건강검진 병원 선정 과정에서 화성지부 한 상집간부가 뇌물 수수를 한 것이 밝혀지자 2003년 3월 10일 16대 하상수 집행부는 총사퇴를 결정하였다. 16대 집행부는 당시 “노동조합에서는 이 사태를 단지 상집간부 한 사람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는 노동조합 집행부 전체의 문제이며, 좀 더 나아가서는 민주노조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고 사태를 정확하게 인식했다. 그러나 16대 집행부의 사퇴 이후에 등장한 17대 박홍귀 집행부는 더욱 더 광범위하고 총체적으로 자본의 매수공작에 넘어 갔다.
자본은 뇌물비리를 통해 현장 내에 활동가 전반과 노조 활동 자체에 대한 불신과 패배주의를 심어주고 있다. 상대적인 차이는 있지만 뇌물비리로부터 노조 내 제 조직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자본은 이미 뇌물 커넥션으로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킨 것이다.
자본의 막강한 금전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매수로 넘어간 기회주의자들은 때론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자본의 끄나풀 역할을 하면서 노동자 투쟁을 압살하고 있다. 우리는 썩고 문드러져 악취를 풍기는 기회주의자들이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대중들을 배신하고 관료적 지도력을 행사하는 분통 터지는 현실을 뒤집어엎어야 한다.
단순히 자정결의나 도덕성 회복, 제도적 장치마련 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극소수의 노동운동 상층 기회주의자들을 매수하여 자본의 지배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비열한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야 한다. 혁명적 사상으로 무장한 결사적 활동가와 전위조직만이 자본의 매수공작과 회유, 극악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노동자 이익을 사수하고 투쟁을 지도해나갈 수 있다. 그럴 때만이 불신, 무관심, 패배주의에 빠져 있는 노동자 대중과 굳건하게 하나가 되는 혁명적 지도력이 형성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기아자동차 집행부의 채용비리를 둘러싼 뇌물비리 사건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단 하나의 교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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