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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53호] 최근 당건설 토론과 강령논의에 대한 비판과 입장3(최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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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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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8 13:12:31, 조회:3,946, 추천:1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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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최근 당건설 토론과 강령논의에 대한 비판과 입장 3(최종)
사노준과 사노련의 강령논의를 중심으로
[글 순서]
1. 당건설과 강령논의의 방법론상의 문제
2. 사노준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무엇인가?
3. 이행기 강령의 문제에 대해
4. 왜곡된 이행기 강령을 넘어서는 최대강령, 최소강령의 원칙!
4. 왜곡된 이행기강령을 넘어서는 최대강령, 최소강령의 원칙!
최대강령, 최소강령으로 나누는 맑스-레닌주의의 전통은 이행기 강령과 무엇이 다른가? 혁명은 단절과 비약의 시기다. 이때의 하루는 일상시기의 한 달, 1년보다도 빠를 수 있다. 자본주의 내에서의 일상적 당면요구와 단절과 비약의 시기인 혁명 시기의 요구가 각각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행기 강령은 일상시기와 비약과 단절의 혁명의 시기를 엄밀하게 나누지 않는다.
최대강령의 문제는 이론적, 원리적 부분으로 전문에 담긴다. 최대강령에는 주로 사회주의의 문제가 담겨 있고, 당면 요구는 구체적인 실천의 요구, 민주주의적 요구 등을 담고 있다. 이 당면 요구는 자본주의에서 실현가능한 요구다. 레닌은 러시아사회민주주의당 강령 전문의 최대강령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제대로 명시하지 않은 플레하노프의 강령 초안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후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정치권력 장악과 프롤레타리아독재에 관한 테제가 강령의 가장 중요한 조항이 됐다. 전문에 표현된 최대강령은 대중의 선진적 일부를 대상으로 자본주의를 폭로하고 사회주의를 선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물론 이 부분은 이론적 선전의 부문이면서도 단순히 이론적이지 않고, 무매개적인 선전도 아니다. 최소요구를 전면에 내건 일상투쟁의 조직화와 사회주의 권력의 문제와의 결합이 두 강령에서 표현되는 최고의 목표이다.
1) 당면 요구에서 실현 가능성의 문제
개량과 혁명의 변증법적 통일의 추구, 이것이 당면 요구와 최대요구에 담긴 문제의식의 핵심이다. 최대 요구 없는, 최대의 목표 없는 개량의 요구는 개량주의로, 개량주의적 정책대안으로 빠지게 한다. 당면 요구 없는 최대 요구 선전은 대중의 일상적 투쟁, 일상적 요구에 기권하게 되고 선전주의, 대기주의에 빠지게 하고, 최대요구를 공허한 요구로 전락시킨다.
당면요구와 실현가능성 있는 요구를 통해서 대중을 직접 조직하고 대중들의 생활상의 요구,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한 요구, 당면한 요구를 최소강령의 전면에 내거는 일상투쟁의 조직화를 통해서 당은 대중의 지도력을 확보하게 된다. 물론 당면요구에는 민주주의 요구와 더불어 정치투쟁의 요구도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최소강령에서 표현되는 실현 가능성의 문제는 무엇인가? 이 실현 가능성의 문제는 베른슈타인을 중심으로 개량주의자들이 말하는 자본주의 내에서의 정책적 요구와 이행기 강령이 말하는 요구와 어떻게 다른가?
우리가 적극적인 제안을 할 때는 오직 실행 가능한 제안만을 해야 한다는 것은 지당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존 정부가 그것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사실상 실행 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 우리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복을 초래하는 사회주의적 방책을 제안할 때는(이 제안처럼), 사실상 실천적이지만 이 정부로서는 불가능한 것만을 제안합니다. 이 정부는 그러한 방책들을 모두 망쳐놓고 못쓰게 하기 때문에, 이 정부가 그러한 방책을 시행한다면 다만 그 방책들의 파멸만이 초래될 뿐입니다(엥겔스가 베를린의 아우구스트 베벨에게,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1권」 p.475).
엥겔스의 실현 가능한 제안은 모순적인 주장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모순은 변증법적 모순이다. 엥겔스의 실현 가능한 주장은 자본주의의 생산력의 발전 수준에서 충분히 실현가능한 요구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관계 하에서 자본은 이 실현가능한 요구조차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것은 자본의 이윤에 대한 침해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철폐나 정리해고 분쇄 요구는 자본주의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한 문제다. 비정규직은 전 사회적으로 기업이윤을 침해해 들어가서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되고, 기업이 부도가 나서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려 한다면 기업의 주채권은행(예를 들어 산업은행)이 기업의 빚을 탕감하거나 공적자금을 투하하면 된다. 은행은 전 사회의 유휴화폐를 자신에게 집중시켜서 기생적으로 이윤을 남겨 왔으므로 은행이 책임지고 손해(?)를 보면 된다. 또한 물량이 모자라면 노동자의 임금 삭감 없이, 노동조건 유지, 노동강도를 완화하면서 실질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해서 기존의 고용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실업자들을 추가로 고용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과잉생산과 대중의 빈곤으로부터 오는 자본주의의 공황도 일정 정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세입자, 소상인 등 철거민의 주택, 상가 문제도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한 문제다. 거주를 위한 1주택을 제외하고 투기 목적으로 수십, 수백 채를 가지고 있는 자본가나 지주, 건물주들의 주택, 건물을 몰수해서 무주택자가 들어가서 살면 된다. 과잉생산 된 미분양 아파트를 국가가 매입해서 무주택자에게 나눠주면 된다. 거주용이 아닌 지주나 건물주의 투기적 주택소유를 제한하거나 소상인들의 권리금 제도를 없애고, 입주비를 대폭 인하하거나, 은행 빚을 탕감하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실현 가능한 요구를 자본주의는 절대 들어주지 못한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자본과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업과 은행, 지주나 건물주의 소유권을 침해하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노동자의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실업자를 구제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일자리 나누기가 안정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보다는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자의 확대로 귀결되는 것은 바로 자본의 이윤을 그대로 두고 일방적인 노동자의 양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기계의 도입이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더 좋게 하기 보다는 노동자의 정리해고와 노동강도 강화, 노동조건 후퇴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적 기계의 이용 때문이다. 자본이 새로운 기계와 생산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생산성을 향상하기 위한 목적인데, 그것은 노동자를 최대한 줄이고 기존 노동자의 착취를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본주의에서의 과잉생산은 절대적 과잉생산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과 무정부적 생산으로 생산은 엄청나게 늘어나는데 실업, 저임금, 비정규직 확대 등 대중의 빈곤으로 인해 그것을 소비할 수 없어서 오는 상대적 과잉생산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실업자를 취업시키고, 임금을 인상하거나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본의 이윤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발전된 자신의 생산력을 합리적으로 이용하면 노동자의 빈곤이나 철거민의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모순으로 인해 절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자본주의에서 “그러한 방책을 시행한다면 다만 그 방책들의 파멸만이 초래될 뿐”이다. 자본주의에서 충분하게 실현 가능한 문제인데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으로 인해 이러한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면 이러한 당면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실천적 결론으로 노동자인민을 이끌 수 있다. 발전한 자본주의의 생산력의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문제가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모순 때문에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된다. 강령의 실천적 요구에서는 이러한 실현 가능한 요구를 담고, 원리적, 이론적 부문에서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담는다.
다양한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으로 표출되는 대중들의 투쟁을 이끌고 조직하는 최소강령은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타파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최대강령의 목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일상투쟁 과정에서 최대강령의 지속적인 선전이 없다면 최소강령은 개량주의 요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최대강령과 최소강령으로 엄밀하게 나눠서 표현되는 혁명강령의 변증법적 원칙이자 방법, 사고이다.
레닌은 실현가능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카우츠키(배교자가 되기 전의 카우츠키)의 말을 적절하게 인용했다.
“우리의 실천적 요구들은, 주어진 세력편성 아래서 실현될 수 있는가가 아니라, 현존 사회제도와 양립할 수 있는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용이하게 하고 촉진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고려에 따라 확증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재의 세력편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레닌, 「사회민주주의의 농업강령」, 『레닌전집 2-1』, p.113)
개량주의자들은 이 실현 가능성의 문제를 변증법적으로 보지 않고 자본주의에서 합리적인 정책으로 해결가능한 문제로 사고하고 있다.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서 일자리 나누기를 하자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반면 이행기 강령은 최소강령으로 표현되는 실현 가능성의 문제를 혁명적인 변증법적 방법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개량주의적 요구로 폄하하면서 최소강령적 내용과 최대강령적 내용을 절충적으로 섞어 놓았다. 해방연대는 최근 발표한 강령에서 원리적 부분에서 최대강령을 표현하고 노동자계급의 당면 요구에서 최소강령을 담고 있지만 그 중간에 이행기 강령의 요구를 포함함으로써 뒤죽박죽 강령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최소강령은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의 수준으로 볼 때 객관적으로 실현 가능한 요구이다. 물론 비정규직 철폐나 정리해고 철폐 같은 요구는 지금의 주체역량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문제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 삼는 실현 가능성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객관적 조건하에서 노동자계급의 주체 역량이 강화된다면 실현 가능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 요구는 노동자계급의 주체 역량이 강화되어 자본주의를 체제의 위협에 빠뜨릴 정도로 투쟁한다면 자본주의에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행기 강령은 최대강령적 요구들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통제, 재벌 몰수, 국유화 같은 요구는 자본주의에서 실현가능한 문제라기보다는 이중권력의 시기의 요구나 혁명 이후에 취해야 할 과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충분히 실현가능하지만 자본주의가 수용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혁명으로 이행하는 고리인 최소강령과 달리 이행기 강령의 핵심 요구는 일상시기에는 대단히 공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 정세에 맞지 않는 이행강령의 공허한 요구로는 대중들을 직접 투쟁으로 이끌고 조직할 수 없는 것이다.
당이 자본주의가 객관적으로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한다면 당의 요구에 대중들은 무관심 할 것이다. 오히려 손에 잡히는 요구를 내걸어야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실현 가능한 요구, 노동자계급의 손에 잡히는 요구, 최소한의 생존권적 요구에 대해서도 수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가권력을 동원해서 억압하고 탄압한다. 자본주의 국가권력과 투쟁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타파하지 않고서는 최소한의 생존권조차도 보장받을 수 없고, 억압과 착취의 저주받은 노예의 삶을 평생 살 수밖에 없다고 느낄 때, 당이 절망과 분노에 가득 찬 노동자계급과 인민들의 투쟁을 이끌고 정치적 전망을 제시할 때 혁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행기 강령은 원리적 부분, 이론적 부분에 담겨서 대중들을 사회주의 의식으로 이끌어야 하는 선전의 부분과 당장 대중들을 투쟁으로 이끌고 조직하기 위한 당면 요구를 뒤섞어 놓고 있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맑스.엥겔스의 최소강령, 최대강령의 혁명적인 변증법적 전통에 서 있는 레닌의 말도 들어보자!
“우리는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역사적 시기의 객관적 조건들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과제들에 합치하는 이 정부의 행동 강령을 적시해야 한다. 이 강령은 우리 당의 최소 강령 일체이자, 한편으로는 현재의 사회관계와 경제관계의 기반 위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 걸음 더 전진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다가올 정치개혁과 경제 개혁의 강령이다”(레닌, 「민주주의 혁명에서의 사회민주주의당의 두 가지 전술」, 『박종철 출판사』, p.23).
맑스. 엥겔스, 레닌은 역사발전의 객관적 법칙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단계론의 원칙에 굳건하게 서 있다. 특히 레닌은 자유경쟁 자본주의 단계에서 독점자본주의 단계 이것의 상부구조인 제국주의로의 자본주의 발전을 논하면서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최고의, 최후의 발전단계라고 했다.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민중권력이라는 애매한 중간단계가 없었던 것이다.
레닌이 1917년 4월 테제를 발표하고 사회주의 혁명의 단계를 주장한 반면에 고참 볼셰비키와 멘셰비키(독일의 카우츠키를 포함한)가 민주주의 단계를 주장하면서 혁명을 반대했다. 이들은 자본주의 역사발전의 단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역사발전에 있어서 주체역량의 문제를 도외시함으로써 혁명을 지연시키고 기권시키다가 결국에는 역사의 반동으로 전락했다. 마찬가지로 남한에서 자민통과 PD가 현 시기 남한에서 혁명의 단계를 민주주의 혁명의 단계나 민중권력의 단계로 본 것은 해방연대 등에서 말하는 단계론에 빠져 있어서가 아니라 남한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의 단계를 보지 못하고 단계론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레닌은 1917년 2월 혁명으로 짜르가 타도되고 임시정부와 소비에트가 공존하는 이중권력의 시기가 되자 부르주아 혁명의 단계가 끝나고 사회주의 혁명의 단계가 되었다고 봤기 때문에 소비에트에 의한 권력장악이라는 사회주의 변혁의 과제를 제시했던 것이다. 다만 임시정부에 의한 민주주의 혁명은 짜르를 타도했지만 토지와 평화와 빵이라는 대중들의 즉각적인 요구와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혁명을 통해 불완전한 민주주의적 요구와 사회주의적 요구를 동시에 실현시키려 했던 것이다.
레닌이 ‘두 가지 전술’에서 민주주의 혁명의 단계를 주장했다고 해서 레닌이 말한 최소강령의 의의가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부르주아 혁명의 단계가 아닌 사회주의 혁명의 단계에 있지만 부르주아가 반동화(이명박정권으로 대변되는 반동적 부르주아는 물론이고 노무현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조차도) 되어 민주주의 과제를 제대로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노동자계급만이 민주주의적 과제와 사회주의적 과제를 동시에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역사적으로 진보적 계급이다. 노동자계급은 노동자계급에 의한 정치권력의 장악이라는 최대목표를 분명히 하면서 “현재의 사회관계와 경제관계의 기반 위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 걸음 더 전진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다가올 정치개혁과 경제 개혁의 강령”인 최소강령을 제시하고 투쟁해야 하는 것이다.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에 맞서서 가장 철저하게 투쟁해 온 로자 룩셈부르크 역시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의 문제, 즉 개혁과 혁명의 문제를 이러한 전통 위에서 살펴보았다.
“사회 개혁이냐 아니면 혁명이냐? 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는 사회 개혁에 반대할 수 있단 말인가? 또는 사회민주주의는 사회혁명, 즉 자신이 최종 목적으로 설정한 현존하는 질서의 전복을 사회 개혁에 대립시킬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사회 개혁을 위한, 또 기존의 기반 위에서 노동하는 대중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그리고 민주적 제도를 위한 일상적인 실천 투쟁은 사회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을 지도하며,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임금체계를 폐지한다는 최종 목표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사회민주주의를 위하여 사회 개혁과 사회 혁명 사이에는 분리될 수 없는 연관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 개혁을 위한 투쟁은 수단이며, 사회혁명은 목적이기 때문이다”(로자 룩셈부르크,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 서문」, 『책세상』, P.10)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을 나누고 이행기 강령을 채택하지 않아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가 나온 것이 아니라 로자의 주장처럼 베른슈타인은 “최종 목표인 사회 변혁을 포기하고, 반대로 사회 개혁을 계급투쟁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수정주의자가 되었다. 명확하게 말하면 베른슈타인은 개혁과 혁명을 이분법적으로 나눈 게 아니라 혁명의 한 날개를 포기했기 때문에 날지 못하고 추락하는 수정주의자가 된 것이다.
개혁과 혁명이 대립되지 않는 것처럼, 자본주의에서 실현 가능한 최소강령과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타도하지 않으면 성취될 수 없는 최대강령을 긴밀하게 결합해야 한다. 이행기 강령이야말로 이 개혁과 혁명의 변증법적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분법적으로 나눈 것이다. “사회 개혁을 위한, 또 기존의 기반 위에서 노동하는 대중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그리고 민주적 제도를 위한 일상적인 실천 투쟁”을 하지 않고 어떻게 최종 목표로 나아갈 수 있는가? 개혁과 혁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결합시키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강령적 원칙이라면 이를 거부하고 들어선 이행기 강령의 설 자리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2) 노동자 통제의 주체와 국유화에 있어서 국가권력의 성격
이러한 자본주의에서 실현 가능한 요구와 달리 공장위원회, 소비에트의 문제는 자본주의 위기가 고조되는 이중권력의 시기 같은 준혁명적 시기나 혁명적 시기에 만들어지는 역사적 산물이다. 이 이중권력의 시기 국가권력은 여전히 자본의 수중에 있지만 공장점거 물결이 전반적으로 번져 나가고 자본이 철수했을 때 노동자들이 생산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나 분배를 하는 공장위원회나 노동자통제가 현실의 요구로 등장한다. 우리에게 공장위원회나 노동자 통제는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하고 해방된 뒤 적산불하 된 공장을 노동자들이 직접 관리하거나 통제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중권력의 시기는 ‘노동자계급에 의한 국가권력의 장악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자본가계급의 반동적 공세로 노동자계급이 패배하느냐?’를 다투는 권력의 문제가 직접 제기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장위원회, 소비에트 사상을 일상적으로 선전한다는 것과 당면의 요구로 내거는 문제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중권력이 펼쳐지는 준혁명기나 혁명적 시기가 아니라면 노동자통제나 국유화 요구 같은 이행기 강령의 핵심적 요구는 자본주의적 요구가 되어 자본주의 내에서 개별 기업에서 노동자가 기업을 운영하는 종업원지주제나 노동자자주기업관리 같은 요구로 전락하게 된다.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자가 기업의 주인이 되어 기업을 운영하고 통제하는 이러한 기업에서 우리는 노동자가 노동자를 통제, 억압하고 임금을 삭감하고 정리해고 하는 ‘동족상잔’의 사례를 많이 보아 왔다. 비록 개별 기업은 노동자가 운영하고 통제하지만 자본주의 기업에 포위돼 자본주의 경쟁원리에 의해서 살아남기 위한 조치로 벌어지는 필연적인 비극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유화 요구도 이행강령이라는 혁명적 의지 속에서 제기한다고 해도 결국은 자본주의 내에서의 국유화 요구가 될 수밖에 없다.
이와는 달리 최대강령을 전문에 담고 최소강령을 당면 요구로 담는 것은 준혁명이나 혁명의 시기에 어떻게 바뀌는가? 이 시기에는 급진적 정세를 반영하여 최대강령적 요소가 기존의 최소강령에 더해져 당면요구로 떠오른다. 이것이 1917년 4월 테제의 요구다. 이 요구에는 은행 및 자본가 신디케이트의 국유화, 지주, 교회, 귀족 토지의 몰수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먼저 노동자통제와 국유화 요구는 누구에 의한, 누구를 통제하는지, 국유화에 있어서 국가계급의 성격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레닌은 소비에트에 의한 권력장악을 염두에 두고 노동자통제를 말했다.
“우리가 노동자 통제를 말할 때 항상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슬로건과 나란히 배치해야 하며, 항상 그것을 프롤레타리아 독재 뒤에 바로 가까이에 두어야 하며, 따라서 우리가 의미하는 국가의 성격은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 국가는 계급지배의 기관이다. 어떤 계급의? 만일 부르주아지의 기관이라면 그것은 6개월 이상 러시아 노동자 인민을 코르닐로프화 하고, 케렌스키화 한 카데트-코르닐로프적 ‘케렌스키’ 국가이다. 만일 프롤레타리아 국가라면, 만일 우리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인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말하고 있다면, 노동자 통제는 상품의 생산과 분배의 전 지역에 걸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가장 명확하고 양심적인 회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가 직면하는 가장 주요한 난관이고, 즉 사회주의 혁명의 주요한 임무가 있다. 소비에트 없이는 이러한 과업은 적어도 러시아에서는 실행불가능 할 것이다. 소비에트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직적 작업을 프롤레타리아에게 제시해줄 것이다”(레닌, 볼셰비키는 국가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
http://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7/oct/01.htm).
결국 노동자통제는 노동자인민의 대중권력인 소비에트에 의해, 자본가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요구는 최대강령적이지만 그 자체로 완전한 최대강령은 아니다. 레닌은 4월 테제의 요구들이 사회주의를 향한 조치들이며 사회주의의 즉각적인 도입은 아니라고 했다. 레닌은 10월 혁명 진전에 이러한 요구들과 관련해서 ‘전쟁 덕에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 자본가들과 은행가들의 엄청난 이윤에 주저 없이 손대’는 것이라고 했다. 소비에트에 의한 노동자통제는 모든 자본의 몰수와 국유화라는 온전한 최대강령이 아니라 자본에 대한 통제(자본이 여전히 주인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에 머물고, ‘전쟁 덕에 수치스러운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는’ 즉 매점 매석, 비리, 투기 등으로 돈을 버는 자본가들과 은행가들의 엄청난 이윤을 침해하는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당강령의 개정문제가 전면에 떠오른다. 당강령의 이론적, 선전적 부분에 있던 요구가 당면의 구체적 요구로 최대한 확장된다. 물론 이때에도 대중들의 자본주의적 의식이 남아 있고, 당이 대중 다수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선전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설득과 투쟁이 병행된다. 볼셰비키는 소비에트가 이중권력을 형성하고 있지만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들은 임시정부를 타도하는 것까지 나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당장 봉기를 일정에 올리지 않고 임시정부의 기만과 무능력을 선전, 폭로하면서 대중들을 설득했다. 볼셰비키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굳건해진 10월에 와서야 이러한 당면 요구가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타났다.
임박한 혁명의 시기에 전문의 이론적 부분에 있던 최대강령적 요구가 당면 요구로 등장하지만 여전히 최소강령과의 결합은 대단히 중요하다. 소비에트에 의한 권력장악은 최대강령적 요구지만 이 요구가 최소강령과의 연결 없이 무매개적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빵과 토지와 평화라는 노동자 인민들의 절박한 요구와 연결됐기 때문에 공허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강령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오랜 전쟁으로 목숨을 잃고 빈곤과 배고픔으로 지쳐가던 러시아 노동자 인민들의 절박한 요구에 대해 임시정부는 배신, 기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능력했기 때문이다. 볼셰비키는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고 소비에트에 의한 권력장악(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나아갈 때만이 이러한 요구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주어서 노동자 인민의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획득했기 때문에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볼셰비키가 곧바로 국유화와 모든 자본의 몰수, 토지의 집산화라는 사회주의의 즉각적 도입으로 나아가려 했다면 볼셰비키는 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했을 것이고, 설사 성공했다 하더라도 권력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디케이트의 국유화 요구가 소비에트에 의한 국유화와 노동자통제이지만 레닌은 토지국유화 요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견지에서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요구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대한 무서운 타격이 된다는 점에서도 필요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러시아의 봉건적 짜리즘 체제에 대한 타격인 동시에 사유지의 대부분을 은행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한 타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농업강령은 권력이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농의 수중으로 이전됐을 때 전국적 규모로 실행가능 하지만 권력획득 이전이라도 지방적인, 전인민적 권력인 소비에트에 의해 부분적으로 실행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신디케이트, 은행의 국유화와 토지 국유화는 권력장악을 염두에 두면서 새로운 노동자빈민 권력에 의해서 실행가능한 조치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최대강령적 조치의 온전한 요구 정도는 자본주의의 발전 정도, 주체역량의 정도, 노동자계급의 근로인민에 대한 지도력의 확고함과 근로인민의 굳건한 지지 정도, 반동세력과의 세력관계, 정세의 역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사노련과 해방연대는 이행 강령으로 노동자계급에 의한 통제와 국유화를 말하지만 이것이 자본주의 국가권력 하에서의 노동자계급에 의한 통제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되고, 국유화에 있어서도 국가의 성격이 자본주의인지, 사회주의인지가 불분명하다. 그것은 국유화와 노동자통제를 당면 요구로 내걸고 있지만, 국가권력 장악을 행동강령으로 내걸기에는 지금 정세와 대중들의 상태나 의식수준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실천적으로는 부르주아 국가 내에서의 국유화로 나타나고 노동자통제는 자본주의 내에서의 노동자 통제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 때문에 이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제대로 폭로하지 못하고 있다. 권력의 문제를 당면의 요구로 직접 제기하지 못하는 지금의 정세 속에서 제기되는 행동강령으로서의 노동자통제와 국유화 요구는 현실에서는 자본주의 국유화와 별반 다르지 않는 요구로 나타나면서 자본주의 국유화의 기만성을 제대로 폭로하지 못하고 있다. 이행의 요구가 역설적으로 이행을 가로막게 되는 것이다.
사노련과 사노준에서는 단사 내에서의 단협에 의한 노동자의 생산에 대한 개입과 자본의 현장통제에 대한 대응을 노동자통제위원회의 한 요소로 제기하지만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의한 “상품의 생산과 분배의 전 지역에 걸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가장 명확하고 양심적인 회계”로서의 노동자통제위원회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선진 활동가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현장권력 쟁취’라는 구호는 이중권력 시기의 공장위원회, 혁명 이후의 노동자통제의 의미로 사용하기 보다는 자본주의 기업 내에서 일상적인 투쟁으로 자본의 절대적인 현장 지배력과 현장통제를 막아내고 노동자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요구인 것이다. 이는 대중적 요구로 자리 잡고 있지만 엄밀히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자본이 지배하는 기업 내에서 노동자의 ‘현장권력’이 가능한 것으로 왜곡하여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문제를 회피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다함께 정종남은 ‘레프트21’에 기고한 글에서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신디칼리즘 경향의 일부 좌파 활동가들도 국유화 요구가 자본주의 국유기업에 대한 환상을 조장한다며 그저 생존권 쟁취 투쟁이면 족하다고 주장한다”(정종남, 국유화를 통한 고용보장 요구는 투쟁의 결집점을 제공할 수 있다)면서 자본주의 국유화에 비판적인 세력을 ‘첨예한 정치문제를 회피하는’ 노동자주의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국가가 나서 ‘시장실패’를 바로 잡으려고 하는 대규모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주장하면서도 “미국 정부도 시티은행과 AIG를 국유화 했다”면서 자본주의 국유화를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서 거대 금융사와 GM이 공적자금 투입으로 국유기업이 되는 과정은 노동자의 대규모 정리해고를 낳았다. 이러한 자본주의 내에서의 국유화의 한계와 기만을 폭로하지 않고 자본주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환상을 조장하고 사회주의 정치문제를 회피하는 것 아닌가?
맑스주의는 ‘자유로운 인민국가’ 운운하며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환상과 왜곡을 유포하고 있는 라쌀레주의와 끊임없이 투쟁해 왔다. 라쌀레는 ‘자본주의 국가의 신용을 매개로 한 협동생산 조합의 설립’을 요구했다. 라쌀레주의의 영향을 받고 작성된 고타강령에는 “독일 노동자 당은 사회문제의 해결의 길을 내기 위하여, 근로 인민의 민주주의적 통제 아래에 있는 국가 보조를 받는 생산 협동조합의 설립을 요구한다. 생산 협동조합은, 그것들에서 총노동의 사회주의적 조직이 발생할 정도의 규모로 공업과 농경을 위해 생겨나야 한다”가 강령으로 제출돼 있다. 이에 대해 맑스는 고타강령 초안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라쌀레의 ‘철의 임금 법칙’에 뒤이은 예언자의 구원책! 그에 어울리게 ‘길이 나 있다’! 실존하는 계급투쟁 자리를 신문 기자들의 공문구가 대신한다 - ‘해결’의 ‘길이 나고 있는’ ‘사회 문제’. ‘총노동의 사회주의적 조직’은 사회의 혁명적 전환 과정에서가 아니라 국가가 생산 협동조합에 주는 ‘국가 보조’에서 ‘발생하며’, 이 생산 협동조합은 노동자가 아니라 ‘국가가 생겨나게 한다’. 이는, 새 철도처럼 새 사회도 국채로 건설할 수 있다는 라쌀레의 훌륭한 상상에 어울리는 것이다! 그래도 <일말의> 수치심으로 인해, ‘국가 보조’를 - ‘근로 인민의 민주주의적 통제 아래’에 두고 있다 ... 그런데, ‘근로 인민이 지배하는 통제’란 무슨 뜻인가? 더구나, 국가에 제기하는 이러한 요구를 통해, 자신들이 지배권을 쥐고 있지도 않으며 지배권을 쥘 만큼 성숙하지도 않다는 것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음을 밝히는 근로 인민의 경우에!”(맑스, 「고타강령 초안 비판」, 『저작선집 4권』, P.383-384).
이행강령에서 제출되는 노동자 통제 요구야말로 라쌀레주의의 ‘근로 인민의 민주주의적 통제’ 요구와 유사하지 않은가? 라쌀레주의는 직접적으로 현 자본주의 국가에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행요구는 혁명으로 가기 위한 고리라고 하지만 소비에트에 의한 권력장악이 당면 실천과제로 떠오르는 혁명적 시기가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노동자통제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실천적으로는 국가문제를 회피하고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환상을 갖는 라쌀레주의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기회주의적 요구가 되는 것이다.
엥겔스 역시 국가문제에 대한 기회주의적 입장이 남아 있고,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부할 위험이 있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강령 초안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항목들은 1. 변호사 2. 약사 3. 약제사, 치과 의사, 조산부, 간호사 등등의 국영화와 나아가 뒤에서는 노동자 보험의 완전한 국영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카프리비 씨에게 맡겨도 좋은가? 그리고 이것은 앞에서 말한 모든 국가 사회주의와의 절연과 조화되고 있는가?”(엥겔스, 「1891년 사회 민주주의당 강령 초안 비판을 위하여」).
엥겔스의 비판에 의해 이 초안은 에어푸르트 강령 개정으로 맑스주의적 입장이 채택되었다. 맑스와 엥겔스의 강령 초안에 대한 비판은 자본주의적 국유화 요구를 내걸고 있는 정치세력들에 대한 가장 통렬한 비판이 아닌가?
국가자본주의 세력들은 소련에서의 국유화가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근거로 사용하는데, 엥겔스는 비스마르크 정권 하에서의 자본주의 국유화를 비판하기 위해 국유화를 언급했다.
“예컨대 철도처럼 애초부터 그 규모가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에 이와 다른 어떠한 자본주의적 이용 형태도 취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일정한 발전 단계에 이르면 이 형태도 더 이상 충분하지 못하게 된다 : 자본주의 사회의 공식적 대표자인 국가가 그것들에 대한 지휘를 떠맡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처럼 국가소유로 전화시켜야 할 필요성은 우선 먼저 대규모의 교류 시설에서 나타난다 : 우편, 전신, 철도.”[엥겔스, 「오이겐 뒤링 씨의 과학 변혁」(반-뒤링), 『저작 선집』, 박종철 출판사, P.306).
맑스-엥겔스가 산업의 국유화를 진보적으로 보았던 것은, 독점자본이 형성되지 않아 자본이 거대산업을 담당할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을 때 국유화를 통해 국가가 거대 자본을 집적하면서 사회화라는 사회주의의 물적조건을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않을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생산 수단이나 교류 수단이 실제로 주식회사의 지휘에 비래 웃자라서 국유화가 경제적으로 불가피하게 된 경우에만, 비록 오늘날의 국가도 국유화를 수행하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나 국유화는 경제적으로 진보를 의미하며 사회 전체에 의한 모든 생산력의 점유 획득을 위한 새로운 전초 단계에 다다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스마르크가 국유화에 뛰어든 이래로 일종의 잘못된 사회주의가 등장하여 여기저기서 자발적인 하인 행위로 변질되거나, 심지어 비스마르크의 국유화까지 포함하는 모든 국유화를 사회주의적인 것이라고 서슴없이 선언하고 있다”(같은 책, 주 12, P.306).
사적 독점자본이 성장하기 전에 자본주의 국가가 거대하게 자본투자를 통해 직접 자본의 역할을 수행하던 자본주의 초기의 국유화는 사회주의의 물적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에 단지 이점에서만 국유화는 진보적인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는 사적 독점자본이 충분히 성장하여 사회주의의 물적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 자본주의 국가는 사적 독점자본이 형성되기 전에 국유화를 통해 사적 독점자본의 성장을 돕고, 독점자본이 충분히 성장한 지금에 와서는 황금알을 낳는 국가기업을 사유화라는 이름으로 독점자본에게 넘기고 있다. 이밖에도 자본주의 국유화는 파산기업을 국가가 인수하면서 국유화 시켰다가 노동자 구조조정을 통해 국유기업이 이윤을 회복하고 다시 ‘알짜기업’이 되면 다시 독점자본에게 재매각하기도 한다. 다함께처럼 자본주의 내에서의 국유화든, 이행강령으로써의 국유화든 간에 이러한 자본주의 국유화의 한계를 제대로 폭로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엥겔스의 말대로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기관, 자본가들의 국가, 관념상의 총자본가”에서 “현대 국가가 생산력들을 더 많이 자기의 소유로 떠맡으면 떠맡을수록, 그것은 더욱더 현실적인 총자본가로 되며, 국민들을 더욱더 착취하게 된다.” 공기업에서의 노동자 착취와 탄압, 사유화 공세를 보면 국가가 바로 ‘현실적인 총자본가’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명백한 반증이 아닌가? 자본주의 국유화든 이행기 요구로 국유화든 이러한 총자본의 현실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환상을 유포한다는 점에서 똑 같지 않은가?
더군다나 금속노조나 교수진영 등 다양한 형태의 국유화나 사회화, 공기업화, 국민기업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은 개량주의 세력들은 노동자의 양보를 통해 기업을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하기조차 하고 있다. 이들은 국유화 요구가 아니고서는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고 하는데 대안은 이 사회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자본과 자본가 국가에서 마련해야할 문제다.
쌍용자동차 지부는 6월 8일 기자회견문에서 “이미 세계 각국은 과거의 민영화와 시장제일주의라는 낡은 정책을 폐기하고 자국의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하여 막대한 공적자금을 퍼붓고 있고 시장주의의 선두였던 미국에서조차도 자동차기업을 공기업화(국유화)하는 실정이다.”라면서 “정부는 즉각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공기업화 하라!”는 요구를 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할 것처럼 GM의 국유화는 단협과 복지의 대대적 개악과 2만 명 이상 되는 노동자의 대량 정리해고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쌍용차 지부는 “노동자들의 고용이 보장되는 방식으로 공기업화”를 주장하지만 GM의 사례를 부적절하게 제시함으로써 스스로 자기발목을 잡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미 노동자의 구조조정을 전제로 하는 쌍용차의 회생방안이 나온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나서서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회사의 처리방향을 굳이 제시하게 되면서 고용과 생존권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산업 살리기라는 자본의 방향대로 왜곡될 소지를 제공한 것이다. 만약 산업은행이 지부의 요구대로 미국에서의 GM의 처리방향대로 노동자를 정리해고 해서 회사를 정상화하자는 역제안을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각에서는 삼성이나 LG화학이 쌍용차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고, 이것이 아니더라도 노동자의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전제로 하는 회생방안이 나온 상황에서 노조 스스로가 고용과 생존권이 아닌 회사의 처리방식에 대해 제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설사 노조가 노동자의 정리해고를 전제로 하는 회생방안을 거부함으로써 파산협박이 나온다 하더라도 고용과 생존권을 중심으로 하는 정권을 향한 정치투쟁의 전략과 전술은 달라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노조의 옥쇄파업에 대해 쌍용차 파산협박이 나온다면 더욱 굳건하게 옥쇄파업을 유지, 강화하고,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에 대해서 대정권 정치투쟁에 나설 것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노동자의 진정한 대안은 오직 노동자가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사회를 지배하고 통제할 때만이 온전하게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고, 국유화든 제3자 매각이든 소유형태 제시가 아니라 ‘고용과 생존권’을 중심에 두고 자본과 국가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리해고 반대라는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공권력을 투입하여 노동자 투쟁을 파괴하려는 자본과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반동성을 폭로하고, 오직 정치투쟁으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노동자계급이 권력의 주인이 될 때만이 온전하게 노동자의 고용과 생존권이 보장될 수 있음을 대대적으로 선전해야 한다. 정리해고 반대라는 최소요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권력이라는 최대강령의 요구만이 노동자들의 당면투쟁에 맞춰 투쟁을 조직할 수 있고, 노동자들의 당면투쟁으로부터 노동자의 권력장악이라는 목표에 이르게 할 수 있다.
3) 사회주의 혁명 이후의 강령의 문제
자본주의에서 최대강령과 최소강령의 요구는 혁명 이후에는 요구에서 사회주의 권력의 과제의 문제로 전환된다. 후진적인 자본주의 국가였던 러시아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일거에 사적소유 전체를 철폐할 수는 없다. 소상업과 특히 농촌에서의 집산화 같은 사회주의적 요구는 농민의 상태, 계급역관계, 농촌에서의 생산력 발전과 계급투쟁의 조건 등을 면밀히 살펴가면서 설득과 모범의 창출로 점진적이고 사회주의 내에서의 부단한 이행으로 최대강령의 목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최대강령의 과제를 해결하면서 최소강령의 문제도 동시에 해결해 나가야 한다.
사회주의 권력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민중과의 굳건한 동맹을 토대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면서 내전 같은 기존 지배계급의 반동세력을 물리치고, 사회주의의 생산력 발전을 통해 대중들의 물질적 조건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문화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의 흔적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사회의 문화와 도덕을 창출하고, 대중들의 지적, 문화적 수준을 고도로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제국주의와 반동의 공세를 물리치고 세계혁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이전의 민주주의적 요구가 노동자 대중의 교육과 조직화에 필수적이었다면 이제 대중권력을 강화해야 하는 노동자권력은 국가권력과 공장, 직장 등에서 노동자들의 대중적, 직접적 참여를 강화하여 관료주의를 막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꽃피우는 것이다. 관료주의와의 투쟁은 근본적으로 도시와 농촌의 대립, 대중과 관료의 대립을 근본적으로 없애서 물질노동과 정신노동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다. 소비에트 권력은 대리주의를 양산하는 자본주의의 지역구 중심이 아니라 경제적 생산단위를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 국가의 재편성이다.
자본주의 국가가 한 줌도 안 되는 독점자본을 위한 부르주아 독재라면 소비에뜨 권력은 노동자인민 절대 다수의 대중국가다. 자본주의가 대중의식의 진보적 발달을 억압하고, 대중의 정치불신과 무관심에 기초하여 권력을 유지.강화한다면, 소비에뜨 권력은 대중의 진보적 참여와 비판의식, 능동성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해서만이 존재할 수 있다. 계급의 선진적 일부로서 당은 노동자 권력 하에서도 여전히 중요하다. 대중의식의 불균등발전에 의해 국가기구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당은 대중의식의 전반적 고양을 촉진시켜서 능동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자기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당은 이 불균등성을 상향적으로 높여나가야 한다.
노동자대중들의 광범위한 생산현장과 국가에의 참여와 직접 운영은 지적수준, 통치능력을 한층 더 높일 것이다. 당이 중심이 되지만 당원들만의 참여가 아니라 국가권력, 공장권력 운영과 참여에 있어서 무당파 선진 대중들의 참여 비중을 높여야 한다. 국가의 소멸, 계급의 소멸과 함께 진정한 대중권력이 창출되면 당은 국가와 함께 점차로 그 역할을 줄이게 될 것이다.<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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