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민주의의 국민정당화에 대한
새로운 대응의 필요성
<편집자 주>
노동자정치신문(이하 ‘노정신’)은 주요 사민주의국가와 정당에 대한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글을 싣는 순서는 독일-프랑스-스웨덴-브라질의 PT당-민주노동당의 순서가 될 것이다. 동지들의 많은 관심 바란다. 이번 호에는 독일에 대한 간명한 글을 실었다.
사민주의는 한 때는 개량주의와 배반과 변절의 대명사였다. 노동자 대중의 전투성이 격렬하게 폭발하던 1980년대, 자신의 온몸을 내 던져서 노동자 사회체제의 수립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던 혁명적 정치운동이 무서운 기세로 일어나던 1980년대,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고 처절한 빨간 영혼이 불타던 1980년대가 그랬다.
그러나 사민주의는 배척과 질시의 대상에서 순식간에 현실운동의 이상이요 모범으로 바뀌었다. 복지국가는 현실운동이 도달할 수 있는 그리고 도달해야 하는 운동의 목적이 되었다. 소련과 동구의 소위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개량주의에 대한 인식의 지각변동을 일으킨 대지진이었다. 혁명운동의 기상은 꺾이고 짓밟혀서 희미한 그림자만을 남긴 채 미약한 심장의 박동을 하고 있었다. 전투적 대중운동의 기상은 꺾이고 좌절과 정체와 부패가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근본적 노동자 사회체제의 대안의 꿈이 사라지고 현실노동자 투쟁의 전투적 기상이 사라지자 눈앞의 자본주의 현실은 갑자기 너무 크고 소중하게 노동운동의 내부로 밀려 들어왔다. 철저한 무권리 상태에서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한 남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국가는 황홀한 현실의 열매였다.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르면서 사민주의는 정치운동과 노동운동에서 대세를 장악했다.
민노당의 제 2야당으로의 원내진출은 남한에서 노조관료들의 정치적 출세의 길을 열어놓았고 남한에서도 복지국가건설이 가능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한껏 부풀려 놓았다. 그러나 남한에서 본격적으로 사민주의가 정당운동, 노동운동의 대세를 장악한 이 때, 세계사민주의 운동은 자본주의 위기의 세계화와 장기불황의 파도에 부딪쳐서 부서지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노동운동과 구조적인 단절을 선언하고 능동적으로 자본의 도구로 작동할 것을 선언했다. 집권을 위해서는 인구의 7% 전후를 차지하는 중간층을 주요기반으로 삼아야 했다. 계급성을 탈피한 사민주의, 국민정당으로 변한 사민주의는 이미 전통적 의미에서 사민주의가 아니다! 노동자와 보수적 자본주의 중간을 뜻하는 이른바 제3의 길은 자본주의로부터의 사민주의의 상대적 독자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능동적으로 자본주의 위기를 타개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자본위기의 세계화, 자본주의 장기불황은 사민주의의 상대적으로 고유한 영역을 허물고 사민주의를 자본위기의 세계화체제로 편입시켰다. 이제 사민주의는 더 이상 복지국가의 모델이 될 수 없다. 자본주의 위기에 의해 버림받은 비현실적 운동이 되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사민주의 실험이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사민주의를 제압할 수 있는 혁명운동세력이 없기 때문에 사민주의는 “그래도 되면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사민주의의 변신이 미칠 영향을 철저하게 분석, 폭로하고 사민주의와 대치전선을 명확하게 그으면서 새로운 노동자 사회체제 건설을 위한 노동계급운동을 정치와 대중운동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의회주의의 전형 독일 사민주의
독일은 우리사회의 혁명세력, 사민주의세력, 노조 모두에게 많은 관심의 대상이다. 맑스와 엥겔스의 고향이자 그들이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가장 큰 기대를 하였던 독일 사민당, 세계사회주의 운동의 중심이었던 독일사민당, 레닌에게도 동경의 대상이자 본받아야 할 대상이었던 독일사민당은 그 기대와는 다르게 개량주의의 중심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혁명세력에게 독일은 비판의 전형이 되었다. 그러나 사민주의세력에게는 거대하게 잘 조직된 사민주의의 모델로 각광을 받았다. 노조는 산별노조의 전형으로 독일의 노조운동을 주목하였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목적에 따라서 독일 사민주의에 대한 판단은 무척 다르다.
독일 사민주의에 대하여 세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이 글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노정신의 독자라면 독일사민당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에서는 독일사민주의를 몇 가지 문제의식으로 압축해서 간명하게 다루고자 한다.
1) 의회주의(국가주의)
독일사민당은 일관되게 국가주의를 추구하여왔다. 독일사민당은 라살레주의 세력과 맑스주의 세력이 통합하여 만들었다. 라살레는 헤겔의 국가주의 사상을 따라서 국가를 절대이성의 현실태로 생각했다. 편협하고 왜곡된 자본주의 국가를 보편적 이성이 지배하는 국가로 바꾸고자 했다. 라살레에게 국가는 운동의 주요한 수단이자 목적이었다.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통일 독일의 건설과 독일 중심의 세계사회의 건설을 주장했던 헤겔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라살레는 이어받았다. 헤겔이 입헌군주제를 이상적 국가로 생각했다면 라살레는 노동자국가를 생각했다.
맑스주의에서도 국가는 운동의 핵심적 지위를 차지한다. 노동자의 국가권력 장악은 사회주의, 나아가서는 공산주의사회 건설에서 핵심이다! 그러나 국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정치적 과도기로서의 노동자 국가이다. 나아가서는 계급자체의 소멸을 촉진하는 계급철폐의 수단으로서의 국가이다. 또 노동자가 필요로 하는 국가는 기존의 국가 즉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의 폐지를 통해 건설된 노동자 국가이다.
이런 점에서 라살레주의와 맑스주의 국가사상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라살레주의를 따르면 보통선거제도는 라살레 사상을 구현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보통선거제도는 운동의 전략적 지위를 차지한다. 노동자가 보통선거제도를 통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맑스주의에서는 보통선거제도는 전술적으로 이용할 대상이자 수단일 뿐 전략적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다. 아니 도리어 전략적 수준에서 보통선거제도는 자본주의 국가와 함께 철폐되어야 할 대상이다.
이런 라살레주의와 맑스주의는 서로 하나의 정당으로 사상적 통일 없이 통합했다. 국가에 대한 중요성을 공유하기는 하였으나 서로 다르게 이해한 상태에서 통합했다. 이후 당 내부의 격렬한 논쟁을 통하여 맑스주의 진영이 사상적으로 승리한다. 이 승리는 에어푸르트 강령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여전히 에어푸르트 강령에는 ‘자유로운 인민의 국가’라는 라살레의 상표가 찍혀 있었다. 이 자유로운 인민의 국가라는 표현은 단순히 라살레파와의 타협의 산물이거나 국가권력의 탄압을 두려워한 전술적 표현이 아니었다. 이 점은 베른슈타인의 맑스주의 수정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로 촉발된 당 내부의 논쟁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제1차 세계 제국주의 전쟁에서 그 실체를 유감없이 비극적으로 드러낸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자본주의의 상대적 번영기를 토대로 전면적으로 맑스주의 수정의 깃발을 들고 나온 베른슈타인은 국가의 문제에서 보통선거제도를 절대적인 운동의 위치에 부각시키려고 하였다. 총파업, 무장봉기, 혁명은 정치적 자유가 없고, 평등한 보통선거제도가 없던 시기, 폭정이 이루어지던 야만적 시기에나 주장될 수 있는 원시적인, 합리적이지 못한 투쟁방법이라는 것이다.
보통선거제도가 확립된 경우에는 보통선거제도를 통하여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그 국가권력에 ‘더 많은 민주주의’를 불어넣으면 사회주의 정치제도가 점진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무장과 폭력은 보통선거제도나 합법적인 정치제도를 부정하고 불법적인 폭력적 방법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위협하고 파괴하려고 할 때만 방어적 차원에서, 정당방위적 차원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맑스주의 교황으로 불렸던 카우츠키 또한 이런 주장을 했다.
“도대체 왜 만인에게 평등한 보통선거제도가 있는데 그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길을 억지로 버리고 불법적이고 파괴적인 길을 가야 하는가?”
이런 문제의식을 맑스주의 국가사상을 향하여 던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고 그 현실성을 얻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안정이 지속적으로 보장되고 착취가 근절되어야 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불황이나 공황이 없어지고 자본주의의 안정적인 번영이 보장되고 양극화 현상이 근절되고 계급간의 격차가 구조적으로 줄어들어 전체 국민의 중산층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즉 실질적 평등과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위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심화되어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 형식적 자유와 실질적 자유 사이에 날카로운 충돌을 일으켰다. 베른슈타인의 주장은 제1차 세계 제국주의 전쟁으로 완전히 파산했다. 사민당은 제국주의 전쟁의 도구가 되었다. 전쟁패배 후에 사민당은 구체제의 군대를 이용하여 치안을 유지하고 스파르타쿠스의 봉기를 진압했다. 독일 혁명운동의 사상적, 실천적 상징인 로자와 리프크네히트는 살해되었다. 이후 1930년대 파시즘이 발흥할 때도 노동자 대중투쟁과 결합하여 노동자대중의 무장을 통하여 파시즘을 격퇴하지 못했다. 부르주아 국가권력에 빌붙어서 그들의 힘으로 파시즘을 견제하고 억제하려 하다가 파시즘의 돌격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당과 대중조직은 철저하게 탄압받고 해체되었다.
전쟁에서 나찌가 패배한 후 사민당은 미국의 마샬플랜에 따른 유럽경제 부흥에 협조하고 그 대가로 미국의 원조에 기대어서 정치적 생존을 도모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 이후 사민당은 의회를 통한 집권과 개혁, 부강한 독일 국가 건설을 자신들의 정치적 과제로 삼는 속물 정당으로 고착화 되었다. 독일 사민당은 그 어떤 독립적인 정치적 비젼을 제시하고 독립적인 노동자의 새로운 대안체제 건설을 위한 투쟁도 조직하지 못하는 끔직한 무능력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이것은 아래로부터 철저하게 노동자대중의 의식화를 조직하여 노동자 대중이 기존의 국가를 파괴하고 새로운 노동자 대중국가를 건설하도록 도모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국가에 철저하게 종속된 국가주의가 체질화되어 나타난 필연적 결과이다.
2) 조합주의
민주노총은 독일산별노조가 산별노조의 전형인 것처럼 홍보했다. 그리고 독일산별노조의 막강한(?) 힘을 부러워했다. 과연 그런가? 독일노조는 철저하게 의회주의 전략 아래서 조직되고 움직여왔다. 노조는 경제투쟁, 정당은 정치투쟁이라는 양날개론에 따라서 움직여왔다. 이 주장은 노조 중립화를 주장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사회주의와 맑스주의를 사민당의 사상으로 주장하던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서도 이 양날개론은 당연한 것으로 주장되고 실천되었다. 의회를 통한 입법활동과 국가 민주화를 통하여 노조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고 노조가 국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왜 노조가 대중적인 정치투쟁을 해야 하는가, 왜 총파업을 조직해야 하는가? 노조는 정당에 힘을 실어주어 정당에 정치적 문제의 해결을 위임하고 노조는 자본과의 단체교섭에만 집중하라는 것이다. 합법적이고 평화적으로 노자간의 경제적, 정치적 타협의 구조와 수단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부정하고 불법적이고 파괴적인 정치적, 경제적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은 ‘무정부주의자’의 행동일 뿐이라는 것이다.
로자는 관료주의적 조직체계와 운영을 통하여 노동자의 자발성과 역동성을 거세하고 노동자는 상층부 관료들의 지시와 통제에 따라서만 행동하라는 독일사민당의 관료주의를 러시아 1905년의 혁명경험의 일반화를 통하여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대중파업론’이 그것이다. 총파업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노동자 대중의 운동양식, 노동자대중의 해방의 행동양식이라는 것이 로자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이 독일사민당의 노조관료주의는 오늘에까지 그 강한 영향을 그대로 남기고 있다. 독일 노조는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추구하지 않고 부문주의를 추구한다. 전국적 단일 산별노조들의 연맹체인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의 중앙본부는 단체교섭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고 산별노조들의 활동을 조정하고 경제기능, 교육기능, 조사연구를 담당한다. 그리고 독일 사민당과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단위노동조합은 단체교섭의 주체가 아니다. 기업단위의 ‘공동결정제도’에 참가하는 것을 주된 업무로 한다. 경영평의회는 단체교섭권이 없다. 파업의 주체가 될 수도 없다. 경영평의회는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노사협의회’의 성격을 지닐 뿐이다. 철저하게 위로부터 관리되고 현장의 역동성이 통제되는 조직체계이다.
파업은 어떤가? ‘파업’은 엄격하게 위로부터 통제되고 관리된다.
“파업은 1) 단체협약이 종료되었을 때에, 2) 경제적 보호와 개선에 관한 사항에 국한하여 3) 일체의 평화적 수단이 다 사용된 후에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익숙한 연대파업, 정치적 파업 등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고, 위의 조건을 충족하는 파업도 1) 중앙조직이 승인하고 2) 비밀투표에서 75%(!)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 부대조건이 따른다.”<산별노조론, 임영일 외>
끔찍하게 조직화된 노조관료주의다! 이런 노조관료주의는 자본주의의 평화와 안정의 시기에는 일정하게 노동자의 요구를 노조와 사민당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성을 가지고 유지될 수 있다. 노동자의 불만을 어느 정도 무마할 수 있는 경제적, 정치적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3년 이후 장기 불황과 동서독의 통일로 인한 경제적 부담 가중과 높은 실업률, 1990년 이후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자본위기의 세계화는 안정적인 정치적, 경제적 타협과 교섭의 구조를 토대로부터 뒤흔들고 있다. 현실사회주의 붕괴는 고삐 풀린 자본의 미친 질주를 가속화했다.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노동자 대중은 사회복지예산 삭감, 민영화, 고용불안, 임금삭감에 시달리고 있다. 사민당은 신중간층에 기초한 중도노선을 내세워 노동운동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사민당과 노조관료주의에 의존하던 노조로서는 험난한 시련에 부딪친 것이다. 이제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의 독립적인 행동-총파업을 포함한-이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새로운 정치적 대안과 선택, 만성적이고 관성적인 관료주의와의 단절, 독립적 행동의 조직화 요구에 직면한 것이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3) 신중도노선-국민정당화
사민당은 현대적 경제정당화를 추진한다. 경제적 지구화를 옹호하고 재정안정과 조세부담경감을 수용하고 케인즈주의 복지국가를 거부하고 노동운동과 단절을 추구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본위기의 세계화를 냉혹한 현실로 인정하고 자본의 장기불황을 자본의 입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여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총수요관리가 아닌 공급중심의 정책, 결과가 아닌 기회균등을 중시하는 정책을 채택한다.
케인즈주의 복지국가는 자본의 세계화 앞에, 장기불황 앞에서 더 이상 현실성을 갖지 못하고 경쟁력 약화와 경제불황의 주범으로 취급되고 있다. 여기에는 자본의 진실이 있다. 계급 타협 모델은 계급이 타협할 수 있는 경제안정과 번영,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힘의 관계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자본의 세계화와 장기불황은 계급타협의 구조를 뿌리에서부터 파괴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사민주의는 낭만이고 공허한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사민당은 보수적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신중간층(엄밀하게 계급분석을 하면 신중간층은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에 판매하면서도 경영자 층에 가까운 집단이나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가 집단을 의미한다. 하지만 독일 사민당은 맑스주의의 계급분석을 거부하면서 사무직 노동자와 공무원 노동자들을 허위적인 신중간계급으로 분류하여 자신들의 국민정당화를 합리화 했다. 하지만 점점 더 계급적대가 깊어지면서 신중간층이라는 허위적 의식에 빠져 있던 사무직 노동자와 공무원 등도 자본주의 경영합리화 공세에 의해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임금이 삭감되면서 적극적인 노동자계급 대오로 편입되고 있다.)을 당의 주요기반으로 설정했다.
“1999년에는 생산직노동자와 연금생활자의 비율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가정주부의 비율도 일정하게 줄어든 반면, 사무직 노동자와 공무원 및 학생의 비율이 크게 증가하였다.” <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 김수행, 안삼환, 정병기, 홍태영 공저>
“사민당이 겨냥하는 ‘신중도’와 그 지지층은 이른바 30대에서 50대 사이 연령의 정규취업자들 가운데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새로운 수혜자에 속하는 층이다. 주로 신중간층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비정규직과 실업의 위협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된 사회계층으로서 재산세나 소득세의 변동에 민감한 ’시민계층‘이라 할 수 있다” <같은 글>
독일 사민당은 자본의 현실을 인정하고 이 바탕 위에서 집권을 추구했다. 슈뢰더는 블레어와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제3의 길에 동행할 것을 공표했다. 독일사민당과 기민당의 경제 정책의 차이가 거의 없어진 상태에서 독일사민당은 집권을 위해 7%에 해당하는 ‘신중간층’을 조직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을 새로운 사민당의 주요기반으로 삼았다.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이미지 조작과 마케팅을 통하여 총리의 상대적 참신성을 부각시켜 여론을 조직하여 선거에서 승리하는 극단적인 국민정당화와 선거주의가 결합되고 있다.
2004년 독일 사민당은 임금인하, 연금개악, 복지후퇴, 해고요건 완화 등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 프로그램인 ‘아겐다 2010’으로 인해 유럽 의회 선거에서 참패했다. 독일 동부 최대의 공업도시인 라이프치히에서는 지난 해 8월 수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독일 자본가 단체인 독일산업연맹(BDI)는 “우리는 슈뢰더 총리 편”이라면서 위기에 처한 ‘슈뢰더 총리 구하기’에 나섰다.
독일사민당의 신중간층에 기초한 신중도 노선은 자본의 세계화와 자본의 장기불황에 철저하게 무기력한 독일사민당 노선의 반정립의 결과다. 독일사민당의 신중도 노선은 계급갈등을 심화시키고 노동자를 사민주의의 환상으로부터 서서히 깨어나게 하고 있다. 또한 파업을 비롯한 노동자의 독립적 행동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하고, 새로운 정치세력과 정치적 전망에 대한 노동자의 열망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의 불만을 집단적인 힘으로 조직하는 혁명적 정치세력이 부재한 결과로 인해서 금속노조(IG메탈)은 자본의 생산시설 이전 협박에 굴복하여 주 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노동시간 연장, 임금삭감, 실업급여 축소, 노동의 유연화를 합의하고 말았다. 최근 다임러-크라이슬러, 폴크스바겐 등에서도 자본의 대대적 정리해고 공세에 굴복하여 노조에서는 노동자의 일방적인 양보와 희생을 의미하는 ‘일자리 보장에 대한 합의’를 체결하고 있다. 남한의 자본가들도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독일을 배우자”는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자본주의 내에서의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사민주의 노선의 필연적인 결과로 독일 사민당은 완전히 파산했다. 독일 사민당은 자본가 정당인 독일기독교민주동맹(기민당)과 이념, 정책적으로 한 몸이 됐다. 따라서 노동계급 운동의 역사성, 기풍은 다르지만 이미 사민당이 집권을 한 독일과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으로 집권을 추구하는 남한에서 당면한 노동자계급의 과제는 동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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