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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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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30 14:04:17, 조회:2,284, 추천: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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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개악법안이 통과된 직후에 우리은행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소식이 발표됐다. 비정규개악법안을 통과시킨 주범인 정치권과 부르주아 언론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이를 환영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당의장은 22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모처럼 막힌 곳이 뻥 뚫리는 소식, 복음”, “이 소식을 올해의 뉴스로 꼽아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이어서 우원식 의원도 “우리당이 주도해서 비정규직 보호 3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우리은행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다른 은행에도 확산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결국 우리가 만들었던 비정규직 보호입법의 큰 성과”라고 자평했다.
뜨거운 관심은 부르주아 정치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각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정규직화’라는 표현만을 듣고 희망을 품게 됐다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사실왜곡이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거창한 타이틀 밑에는 그 추악한 본질이 숨어있다. 우리은행 ‘복음’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번 우리은행의 정규직화 대상이 된 노동자들은 우리은행 전체 노동자의 약 30%에 해당하는 창구담당, 사무지원 업무직, 콜센터에서 일하는 3,1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이번 조치에 따라 출산, 유급휴가, 학자금 지원 등의 복리후생 혜택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복리후생에 들어가는 비용을 어디서 마련하냐는 것이다. 그 재원은 우리은행의 이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동결을 통해서 그 비용을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각종 언론에서는 모든 대공장의 정규직들은 이러한 우리은행의 대대적인 양보를 보고 본받아야 한다고 떠들었다.
“비정규직 문제의 실마리는 민주노총 계열의 맹목적 선전투쟁이 아니라 단위 사업장 내의 기득권 포기와 절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범례를 보여준 것이다.…비정규직을 위한답시고 파업투쟁을 즐기며 경쟁력 추락을 자초하는 현대차 등 대형 사업장의 잘못된 관행을 국민들이 느끼고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쏟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우리은행의 실험은 성공해야 한다.” (12. 21 한국일보 사설 「우리은행의 따뜻한 ‘비정규직 끌어안기’」
이렇게 자본과 정권은 한 마음이 되어서 정규직의 양보만이 비정규직 문제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몰아가고 있다. 또한 이례적으로 민주노총의 세부사업까지 거론하면서 비정규 50억 기금 사업에 완성차 등의 대공장은 동참하지 않았다며 대공장들이 여전히 자기 이기주의에 빠져있다는 기사까지 실었다. 우리은행은 자본과 정권에게는 그야말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대공장 정규직 죽이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안겨다 준 '복음‘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정규직의 양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은행은 이번 조치의 전제로 ‘직무급’을 들고 있다. ‘사이비 정규직화’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은행은 작년부터 ‘직군분리제’를 준비해왔었다. ‘직군분리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업무를 정규직 직제와 분리해서 신설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과 동일 임금을 받을 수 없으며, 자신이 소속된 직군을 벗어날 수도 없다. 한 마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업무의 완전한 분리를 통해서 기존의 차별을 고착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안은 정부에서 올해 8월에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것은 기존의 기간제 노동자를 계약기간을 별도로 정하지 않는 무기계약으로 전환한다는 것으로, 현재 수많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태를 조금도 개선시키지 못하며 오히려 고착화시키는 내용이기 때문에 발표와 동시에 많은 논란이 되었던 최악의 정책이었다.
이번 우리은행의 발표도 무늬만 정규직이지 임금이나 업무에서 여전히 차별을 두고 있기 때문에 실상은 정규직화가 아니라 무기계약 비정규직으로의 전환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정규직화 되었으니까 상대적으로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희망은 한 편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번 조치를 바로보지 못하는 순진한 바람일 뿐이다. 우리은행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정기적인 평가 시스템(사실상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을 통해서 평가 하위등급인 C나 D등급을 3회 받을 경우 해고가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여전히 해고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번 조치로 스타가 된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비정규직 고용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군제’와 ‘성과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처럼 단일 호봉제가 아니라 개인별 연봉제를 적용받고 있었으며 정규직이 되더라도 이러한 임금체계는 그대로 유지되게 되어있다. 우리은행은 이번 기회에 이러한 임금체계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까지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직군제’로 업무 체계를 개악시키는 것은 곧 직군에 따른 임금의 차등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황영기 은행장은 “직무급제는 단순히 비정규직 처우의 차별을 철폐한 것 뿐 아니라 직원들이 생산하는 부가가치에 따른 급여체제를 갖추려는 것 … 앞으로 단순창구 직군의 임금을 끌어올리는 것 뿐 아니라, 다른 직군보다 세분화해 성과 평가와 임금을 그에 걸맞게 조절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임금체계의 개악을 분명하게 예고했다. 이러한 성과급 중심으로의 임금체계 개악은 이후 추가로 발생될 비용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상호간의 경쟁을 가속화시킴으로써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한국노총 관료들은 우리은행의 ‘사이비 정규직화’ 방침에 대대적인 환영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한국노총의 핵심인 금융노조는 내년 산별교섭 때 우리은행식 해법을 적극 개진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노동자가 투쟁을 통해서 쟁취한 성과물이 아니라 자본이 양보하는 척 내어주는 모든 것에는 자본의 음모가 있다. 우리은행 노조는 이번 비정규직 문제에서 단 한 번도 투쟁을 조직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이 투쟁을 하지 않는데 자본이 선뜻 양보할 리 없다.
이번 우리은행식 ‘사이비 정규직화’는 자본과 정권에게 ‘복음’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자본가 정권은 자신들의 비정규법안이 만들어낸 성과라며 자축하고 있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를 강요하고 있다.
현장의 활동가들은 이러한 우리은행 정규직화의 본질을 적극적으로 알려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단순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공장 정규직에 대한 공격과 전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칼날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비정규직 철폐’는 절대로 자본에 의해서 주어지지 않는다. 또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직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 투쟁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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