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사(3)]‘87-89’까지 노동자투쟁-
현대중공업 노동자 투쟁을 중심으로
지난 호까지 우리는 85년 대우차와 구로동맹파업, 그리고 영국과 미국의 80년대 중반 총자본의 공세에 대한 사례를 다뤘다. 이번에는 87-89년 노동자대투쟁을 현대중공업 노동자 투쟁을 중심으로 그 의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한마디로 87년 노동자투쟁은 노동현장에서 인간적인 취급도 받지 못하고 통제 당하는 끔찍한 현실과 그에 대해서 누적되어온 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는 점, 6월 항쟁을 시작으로 형식적 민주주의가 열렸다는 점, 그리고 70년대와 80년대 중반까지 노동운동 내에서 축적되어온 의식적 현장활동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정부 통계상으로도 3,300여건의 파업이 발생했고, 130여개의 노동조합이 건설되는 등 노동조합운동이 일반화되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은, 우선, 최소한의 요구도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통로가 부재했으므로, ‘선파업-후협상’이라는 전투적 투쟁기풍을 특징으로 했다.
둘째, 지역의 틀을 중심으로 연대하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특히 자기 사업장의 문제가 해결되어도 이웃 사업장들과 연대하여 성공 사례를 배우면서 투쟁전술을 공유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셋째, 70년대 이래 국가가 지원하면서 중공업 부문 대기업 생산직 남성노동자들 주도로 노동운동이 확대되었고, 이들이 지역투쟁을 선도하면서 비제조업 부문과 사무직으로 확산시키는 성과를 낳았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넷째, 자발적인 현장투쟁으로서 폭발적인 투쟁과 의식적으로 준비해온 세력들이 동시에 존재했고, 기본적인 권리 보장(노동조합 건설과 인정,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투쟁이었다는 특징을 갖는다. 당시에는 그 정도로도 자본의 탄압과 공권력에 맞서야 하므로, ‘민주노조 사수’가 그 자체로서 정치적인 성격을 갖는 요구이자 투쟁이었다.
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은 그 거대한 투쟁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선거 활동으로 중심을 이전시키자는 주장에 의해서 의회주의 활동으로 매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거대한 투쟁은 이후 현장노동자들에게 계속 현장투쟁와 연대투쟁을 촉발시키게 되었다. 87년 12월부터 사무노협, 마창노협 등의 업종노협과 지역노동조합협의회라는 연대투쟁체들이 결성되었고 88년에도 임투를 거치면서 지노협 결성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연대의 흐름은 88년 하반기 노동법개정투쟁본부와 전국노동자대회를 거치면서 현대중공업 128일 투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현대중공업 노동자 투쟁의 출발- 87년 민주노조 건설 투쟁까지
현대중공업은 이미 74년 9월 현장시위가 경찰에 의해 진압당하고 18명이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73년부터 회사가 ‘위임관리체제’라는 형태로 도급제로의 전환을 추진하면서 노동조건이 크게 저하되었다. 또한 기능조장 1인을 해고하면서 노동자들이 작업거부와 투쟁 대표를 선출하고 ‘위임관리제 철폐, 차별 철폐, 임금 인상, 상여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투쟁이 시작되었다.
당시는 호화로운 관리자 숙소와 광산촌 같은 엉성하게 지어진 생산직 노동자 숙소라는 두개의 세계가 존재했다. 특히 자고 나면 누가 갑판 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뿐이고, 여럿이 일하다 뒤돌아보면 갇혀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가스에 중독되어 시체가 되는 지옥 같은 현장이었다. 그렇기에 당시의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은 외국인 숙소와 관리자 숙소를 박살낼 정도로 시위형태도 격렬했다. 이에 당황한 정주영이 직접 현장의 요구를 수락했지만, 곧 그 약속을 파기하고 침묵으로 일관했을 뿐만 아니라 공권력으로 현장투쟁을 진압했다.
그 후로도 80년 노동조합 결성 시도(좌절되었고 그 후 85년 10월 ‘2.4회’, ‘동력회’ 결성) 등 꾸준한 노조 결성 움직임들이 지속되면서 87년 노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졌다.
87년 7월 현대엔진의 민주파 노동자들이 노사협의회를 장악하는 최초의 집단행동을 조직했고, 80년대 초부터 운영해온 소모임 주체들이 중심이 되어 현대엔진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이에 힘입어 현대중공업에서도 몇몇 소그룹들이 노조를 준비하던 차에 현대중공업 자본이 먼저 어용노조를 만들었다.(당시 노사협의회 노측 부위원장 등 회사의 자가용과 목욕탕운영권, 상가운영권 등 특혜를 누리던 자들이 노조를 결성했다.) 이에 대해서 민주노조 준비팀들은 소조직들을 통합하여 ‘현대중공업 노조개편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들어갔다. 민주노조대책위(‘11인 대책위원회’)는 중식시간에 어용노조를 폭로하고 3천명이 넘는 현장 서명을 받아내 ‘어용노조 즉각 퇴진과 민주노조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을 선언했다.
11인 대책위는 회사와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회사는 ‘노노 당사자 해결’과 ‘불법집회 불가’ 입장으로 일관했다.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에서 11인 대책위와 노동자들은 현장을 순회하면서 삽시간에 투쟁대오를 확산시켰다. 몇 분 만에 대오가 수천 명으로 불어났고 사내 행진을 통해 이미 17,000명의 노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즉각적인 회사와 대책위의 협상과 합의가 이뤄졌다.(합의는 모든 사태의 책임을 묻지 않고, 공권력 개입 불가, 오늘 집회를 유급 인정, 노조 신고필증을 어용이 아닌 현 대책위원회에 주고, 노조 지도부로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투쟁대오는 그 정도의 소극적인 합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현장 노동자들이 오히려 ‘임금 인상과 상여금 차등제 철폐’를 추가한 재투쟁을 요구하고 타협적인 지도부를 강제했다.
결국 다음날 자본은 11인 대책위를 무시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로써 휴가 3일 확대와 식사의 질 향상, 산재자 생활보장 및 하도급의 직영화, 생산직 임금격차 해소와 작업 전 체조 자율화, 두발 자율화 등을 쟁취했다. 하지만 다음날도 파업대오는 집결하였고 11인 대책위는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 투쟁에 어느덧 사무직과 여사원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 투쟁의 심각성을 인식한 회사가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면서 임금과 상여금 차등지급제를 폐지시킨다는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대책위의 소극적인 태도와 합의에 대한 노동자들의 문제의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현장에 복귀하고 직접 내려와 훈시하는 정주영회장이 있는 체육관 주변에 500여명의 노동자들이 몰려들어 출입을 차단시킨 채, 임금 인상과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어느새 2만 노동자들이 모여 힘을 보여주었고 그날 회사는 전면 휴업조치와 함께 불순세력 조종 운운하면서 대책위와의 대화 불가를 선언했다.
그러나 며칠 뒤 사측의 방해(포크레인과 바리케이트)에도 불구하고 열화와 같은 참여 속에서 노조 선거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1대 집행부는 99%의 불신임으로 내려오고 위원장 직선제로의 규약 개정과 함께 민주노조가 탄생되었다. 당시 대의원대회(간선제)였지만 사실상의 총회가 이뤄졌고 회사가 인정하지 않자, 지도부도 막을 수 없는 조합원들의 분노는 시청으로, 본관으로 들어가 불 지르는 등 거센 항의로 표현되었다. 경찰이 투입되고 지도력이 공백상태가 되면서 직무대행과의 ‘합의’(임원개선 명령을 받은 ‘한심한 합의’였음)로 당시 투쟁이 정리되었다.
88년 12월, 128일 투쟁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민주노조 건설투쟁은 88년에도 현장에서 비공식 소모임들이 지속적으로 운영되면서 민주노조 사수투쟁으로 이어졌다.
88년 4월 임투 과정에서 타협적으로 임하는 집행부의 교섭태도에 문제제기하는 현장 선전물들이 현장 노동자들의 정서를 대변했다. 또한 부서를 뛰어넘어 학습과 초보적 현장활동으로 조직역량을 강화해가던 소모임들이 현장의 분노를 조직해갔다.
집행부 내에도 문제의식을 가진 민주세력이 형성되었다. 이들 민주파는 88년 11월 노동자대회에서도 방위산업부분의 합법파업 봉쇄 상황을 뚫고 노동법개정과 연대의 필요성을 자각하여 사업부별로 보고대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내부투쟁을 조직했다.
당시 ‘구속동지 석방환영대회’에도 1만 여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해고자 복직 요구 등에 대해서 토론했고, 집행부를 압박하는 기조를 논의했다. 이런 현장의 열기에 못이긴 집행부는 단체협상 과정에서 마지못해 파업을 결정했다. 이에 현장조합원들은 단협과 해고자 복직을 같이 요구했다. 하지만 현중 노조 집행부는 열성조합원들을 서울상경투쟁에 보내고 조합원들을 설득시키는데 실패하자, 결국 ‘현장복귀’에 직권조인 했다(88.12.18). 이것으로 128일 투쟁이 시작되었다.
1만2천명의 파업대오는 운동장에 모여 농성과 사내 집회를 진행했다. 많은 방안들이 조합원 앞에 제시되었다. 집행부 임원이건 대의원이건 조합원이건 모두 파업투쟁전선에서 대중에 의해 검증되고 심판되었다. 집행부의 ‘현장복귀 선언’은 파업대오에 의해서 즉각 거부되었다. 원직복직과 단협쟁취를 내건 파업지도부를 새롭게 구성했다(12.20).
하지만 파업지도부는 이 투쟁이 지닌 계급적 의미에 대해서 의식하고 방향을 잡지 못했다. 당시 현대계열사 대부분의 임투가 총회를 통해 파업이 결의되어 파업에 돌입해도 위원장의 일방 합의와 집행부 불신임투쟁으로 이어지는 형태들이 일반적이었던 상황에서 정권의 탄압과 자본의 회유를 이겨내는 투쟁으로서 현대중공업 투쟁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파업지도부는 이 투쟁에서 공권력과의 투쟁을 피해가려 했다.
현대중공업 자본은 정권의 ‘민생치안 확립을 위한 특별지시’에 힘입어 조업중단을 선언했다. 또한 전 어용집행부와 야합하여 안기부, 울산경찰서, 어용대의원들과 함께 파업파괴를 준비했다.
물론 현장에서는 공권력 개입에 대한 불안감과 파업지도부의 대표성 부인 등의 우려가 없지 않았지만 파업대오는 투쟁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어용세력들의 명단과 공권력과의 야합에 대해서 폭로했다. 이와 동시에 지도부의 대표성을 확보하고 총회를 통해 합법적 지도부를 탄생시켰다.(95%의 압도적 찬성으로 기존 집행부 불신임과 새로운 집행부 선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행정적, 법적인 호소로 탄원하지 않고 현장 조합원들 스스로에게 호소하고 그 힘에 근거하여 지도부를 재조직했다. 또한 현장의 분노와 요구를 제한시키는 지도력에 오히려 문제제기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제약하는 규약까지도 개정하는 등 계급적 민주주의를 강화시켜갔던 것이다. 투쟁 속에서 ‘합법=반노동자적인 올가미’와 ‘불법=노동자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획득했다. 이런 점에서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였다.
1월 6일 투표로 새로운 집행부가 탄생하자, 이틀 뒤에 어용세력들은 정상조업을 선전하고 정권은 배후조정세력 운운하면서 투쟁에 개입하려 했고, 이들이 새벽에 해고자 사무실에 난입하며 각목테러사건이 이어졌다.
각목테러 이후 파업투쟁에 ‘단협쟁취! 원직복직!’에서 ‘공권력 개입중단!’ 요구까지 추가되었다. 파업노동자들은 매일 운동장에 모여 ‘폭력테러만행 규탄집회’를 개최했고 사내 시위와 집단퇴근 및 시내가두행진과 경찰서 항의집회 및 구속자 석방촉구 등으로 실력행사를 했다. 게다가 ‘불법집행부’는 이제 ‘불법대의원’들까지 선출하여 노동자 군단을 강화시켜 나갔다.
폭력테러를 계기로 강화된 투쟁대오는 오히려 대정부투쟁까지 확대시켜 가두로 진출했다. 현대계열사 노동조합들의 ‘연대투쟁본부’가 결성되고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의 ‘파업투쟁지원대책협의회’가 구성되어 각 현장에 선전물이 뿌려졌다.
파업이 두 달쯤 되어가자 노동자들의 경제적 압박을 이용하여 자본은 조업재개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에게는 연월차수당을 지급하겠다면서 미끼를 던졌다. 그러나 파업노동자들의 요구인 단협 쟁취와 해고자 복직 및 지도부 인정은 해결되지 않았던 터라, 파업대오는 오히려 각 문 봉쇄와 지역 집회 등의 실력으로 조업을 저지시키면서 교란세력들을 소탕해갔다.(교란시키는 미꾸라지를 저지하고 가족이 참여하는 집회를 열어 파업대오를 확대시켰다.)
그런데 89년 2월 21일, 관리자들과 경비대로 구성된 2천명의 구사대와 경찰 10개 중대가 파업노동자들을 식칼로 찌르고 쇠파이프와 각목을 휘두르는 만행이 일어났다. 이에 즉각적으로 식칼테러 규탄대회가 부서별로 열렸고, 가족까지 결합한 농성이 계속되었다. 정권과 자본은 계속 ‘정상조업 후 협상’을 주장했고 이에 결렬선언을 한 파업대오는 서울상경결사대를 조직하여 서울 시내를 누비고 본사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이제 파업투쟁의 요구는 ‘단협 쟁취! 해고자 복직! 공권력 중단!’에 ‘폭력 책임자 처벌! 무노동 무임금 폐기! 구속자 석방!’으로 확대되었다.
3월에 들어서자 현대중공업의 파업은 ‘현대자본 폭력테러 규탄’의 전국적 투쟁으로 확산되었다. 계속되는 공권력 투입의 위협과 현장에서 구사대와의 충돌, 협상결렬 등 투쟁 양상은 격렬해졌다. 현대자본은 정식으로 공권력 개입을 요청했고(3.14) 전국적인 공권력 투입 반대, 파업 지지성명과 모금, 연대집회가 이어졌다. 파업대오는 공권력투입에 대비한 현장사수투쟁을 준비했다. 결사항전의 전야에 운동장에는 민주박격포, 원통강관에 볼트와 너트를 넣고 토치불로 가열하는 박격포 시험발사도 있었고, 종이컵에 신나를 부어 랩을 씌운 ‘커피탄’과 스프레이통에 솜을 감싸 신나를 부은 ‘민주꼬냑’, 용접봉을 휘어 화살로 쏘는 ‘M17’를 선보였고, 정문에는 대형유조차와 가스통 25개, 산소아세탈렌통 30여개, 날카로운 쇳조각을 바닥에 깔면서 대형 철구조물 바리케이트가 쳐졌다.
3월 30일 공권력이 투입되었지만 그 후 10여일간 격렬한 지역 가두투쟁이 이어졌고 현장에는 현장조직들이 결성되었다. 특례자 모임, 청장년층 모임, 부서별 모임 등 수백 개의 파업동지회 조직들이 생겼다. 이 조직들은 후에 90년 골리앗 파업의 원동력이 되었다. 오히려 힘 있는 128일 파업의 성과로 파업기간의 임금을 파업 참여한 일수에 비례하여 지급 받았고 폭력 경찰에 의한 파손물품들도 보상받았다. ‘파업에 참여해 절대 손해는 안본다’는 투쟁의 자존심을 챙겼고 직반장들도 참여한 것에 대해서 불이익이 없었다. 파업 불참자들은 어용세력들을 비롯해서 제명되거나 불참한 반장들도 현장에서 지휘력을 상실하는 등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주도권은 상당부분 강화되었다.
바로 이어진 임투에서도 노조 집행부의 지시가 없이도 자발적인 현장투쟁이 전개되었다. 특히 해고자 복직의 미온적 추진에 항의하는 집단조퇴투쟁 등 다양한 투쟁이 벌어졌고 드디어 8월 해고자 복직이 합의되었다. 해고기간의 임금지급과 해고기간의 근속연수 인정 및 해고자의 파업기간 임금지급까지 합의했다. (그러나 일부 이면합의와 함께 개량주의적 노조 집행부가 들어서고 있었다.)
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
현중 자본은 128일 파업 이후 테러자들을 속속 복귀시키고 현장을 제압하기 위한 노조 침탈, 도발도 서슴지 않았다.(90년) 이러한 상황에 대해 현대자동차노조까지 결합한 연대투쟁이 결의되었다. 당시 KBS노동자 파업과 연행자 석방에 힘을 얻은 현중 조합원들은 집행부 구속 수배 철회를 요구하면서 텐트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몇 명의 활동가들이 투쟁을 감당할 자신이 없음으로 비대위 의장직을 사임했고 투쟁지도부가 다시 세워졌다.
회사는 즉각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을 정도로 현대중공업의 파업투쟁은 특히 임투시기에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새벽의 진압작전을 저지시켜 공권력 투입이 지연되기도 했다.
90년 4월 28일, 120명의 노동자들이 최후의 항전을 위해 골리앗투쟁을 시작했다. 하루가 지나면 밤새 20명이 내려가 버리는 힘든 투쟁이었다. 식당아주머니들의 음식배급투쟁과 가두투쟁이 힘이 되었지만, 지도부의 방관적 자세와 흐트러진 규율로 초기의 문제점이 지적되었고 남은 80명의 골리앗 농성대오는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연대총파업을 선언한 지역노동자들의 격렬한 가두투쟁이 계속되었다.
5월 4일을 기점으로 현대자동차 노조가 파업을 중단하고 지역 대오는 줄어들었지만, 동시에 전노협이 5월 1일 전국총파업을 선언했고 마산창원지역 등 전국적으로 투쟁은 확산되고 있었다.
현대자본은 가두시위 종결과 골리앗 투쟁 종결을 종용하면서 골리앗 투쟁대오를 교란시켰다. 5월 10일 골리앗에서 내려온 골리앗 대원들은 스스로의 결의에 부끄러워했고, 곧바로 32명의 핵심간부들이 구속됨으로써 현장 조합원들에게 패배의 상처를 남겼다.
당시 골리앗 점거를 중심으로 한 현대중공업 투쟁과 현대계열사, 그리고 전국적인 동맹파업으로의 확산은 그전 128일 파업 보다 훨씬 투쟁의 정치적 성격, 계급적 성격을 인식하고 조직적으로 투쟁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투쟁 주체들의 불철저한 계급의식은 연대투쟁에 결합했던 노동조합들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불법파업’ 유도 압박 속에서 파업 계속을 외치며 현장에서 비상대책위를 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임단협을 구실로 골리앗 연대파업을 종료시켰다. 아래는 이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의 제기를 ‘민주’라는 이름으로 왜곡시켰던 현대차 이상범 위원장이 한 말이다.
“민주라는 이름 아래 잘못되어 가는 관행은 무리가 있더라도 바로 잡아야 하며, 대중의 요구대로 무작정 따르는 것이 민주는 아니다”
하지만 골리앗 투쟁대원들은 자신들의 불철저했던 의식과 준비와 패배로 종결시킨 골리앗 투쟁에 대해서 반성하면서 노동자 투쟁의 방향과 과제를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서지 않는다고 다짐했던 우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앞으로 투쟁에서 더 이상 우리의 요구를 노동력 상품 인상에만 한정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노동자들을 임금노예로 만드는 억압과 착취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분쇄하기 위한 투쟁에 나설 것입니다. 노동해방이라는 목표를 위해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현대중공업 노동자가 전국의 1천만 노동형제에게 보내는 호소’)
(다음 호에서 현대중공업 노동자 투쟁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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