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위원회에서 사상전향 공작과 살인적 고문에 맞서 투쟁하다 죽임을 당한 비전향 장기수 3명을 ‘민주화에 기여한’ 의문사로 규정하자 한나라당과 극우 신문인 조중동에서는 벌떼처럼 일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는 지난 7월 5일 배포한 유인물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전복시키기 위해 간첩 및 빨치산으로 암약하다 끝내 미전향 장기수로 복역 중 사망한 자들에 대해 ‘민주화에 기여한 의문사’로 인정한 의문사진상규명위의 결정에 대한민국상이군경회는 개탄하며 분노한다”고 주장했다.
극우 세력들은 “국가가 있고 개인의 양심도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국가적 이해 앞에서 개인의 양심과 신념은 언제든지 말살시킬 수 있다”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극우 집단들은 자신들이 수호하려는 자유민주의 체제의 실체가 사상적 신념을 이유로 수십 년 동안의 형벌을 가하고, 잔인한 고문과 사상전향 공작을 일삼는 인류사에서 가장 야만적인 폭력이라는 사실을 무심코 드러내고 있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심지어 의문사 진상위원회 위원의 과거 정치 활동 경력까지 들먹이면서 조악한 ‘색깔론’으로 신문을 덧칠하고 있다. 이들 극우 세력들은 의문사위의 조사가 박정희 정권과 자신들의 과거가 폭로되는 것 때문에 의문사진상위원회의 의문사 규명을 반대한다. 하지만 그들은 의문사 진상 규명 자체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간첩’들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했다는 사실 자체에 더욱 극단적인 혐오감을 보이고 있다. 이를 볼 때 극우 세력들의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자본가들의 민주주의인 것이다. 실제 민주화 보상법은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한 노동운동 관련자들은 철저하게 배제했다.
의문사위의 결정은 민주주의 투쟁의 성과로 환영할만한 것이다. 하지만 의문사위의 이번 결정과 관련해서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국가는 인권이라는 보편타당한 잣대를 적용해 ‘빨갱이’마저 적극적으로 포용하며 도덕적 우위를 점해야 한다. 체제의 우월성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의 야만적 살인만행과 고문, 정치수에 대한 영겁(永劫)의 시간 동안의 구금은 남한 자본주의의 원시적 축적 기간 동안에 행해졌다. 박정희 정권은 노동자계급을 철저하게 수탈하면서 전사회를 동토의 땅으로 만들었다. 남한 자본은 박정희 정권의 파시즘적 병영 통제를 통해 자본축적을 하고 독점자본의 토대를 만들었다.
남한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면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도 자본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원시적 축적기에 버금가는 야만적 탄압을 자행할 것이다. 자본의 위기 국면에서 노무현 정권이 보이는 노동자 계급에 대한 탄압을 보더라도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의문사위의 결정은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얼마나 끔찍한 체제인가를 보여주고, 민주주의가 ‘그들만의 민주주의’임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