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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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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3 16:05:07, 조회:2,629, 추천: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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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폭로] 연정(聯政)과 개량주의
왜 지금 연정인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데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을 자랑하는 노무현이 또 다시 연정(聯政)이라는 카드를 던졌다. 탄핵정국의 격랑을 오히려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는 것으로 돌파했던 노무현이 또 다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노무현의 연정카드에 대해서 한나라당은 탄핵정국의 악몽을 떠올리면서 ‘민생카드’를 꺼내들고 거기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몸값을 올리기 위한 정치적 제스쳐라는 분석이 있으나 겉으로는 연정제안에 대해 엄청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반응은 더 복합적이다. 노회찬은 국가보안법 철폐, 비정규 차별해소법안,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는 3가지 전제조건이 받아들여진다면 연정을 검토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조건부 연정수용은 아무리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전제조건이 있더라도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뒤흔들 수 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민주노동당은 공식적으로 연정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연정의 대상인 세 야당이 공식적으로 연정참여 반대의사를 밝히면서 연정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싶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18일 연정을 실무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개혁추진단'을 공식 발족하고 시드는 연정논의에 또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연정논의는 권력구조개편과 선거법개정 논의로 좀더 세밀하게 다뤄지면서 세 야당도 이 문제를 완전히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왜 노무현 정권은 지금 시기 연정을 들고 나왔는가?
노무현 정권은 소수 여당의 한계를 들어서 개혁이 지지부진함을 탓해왔다. 하지만 탄핵 정국 뒤에 다수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부동산 문제 등에서 보듯 한 줌의 자본가, 자산가들과 노동자계급 전반의 삶은 극단적인 양극화를 보이면서 계급적대감이 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권은 파견법 개악을 통해 비정규직을 확대시키려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중의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의 정권에 대한 분노는 깊어지고 있다. 농민은 농산물 개방으로 인해 삶이 파탄 나고 있다. 농민들은 “이제는 세상을 갈아엎자!”고 정권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 영세상인 등의 파산도 늘어나고 있다. 결국 ‘민생문제’의 진정한 의미는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근로인민들의 생존권의 문제다.
깊어지는 계급갈등과 모순으로 인해 노무현 정권의 대중적 지지기반은 점점 더 약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참패했다. 한나라당의 압승은 다른 대안이 없다고 판단한 대중들의 현 정권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지 한나라당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 표현은 아니다. 대의제의 근간을 위협할 정도의 낮은 투표율과 지지정당이 없다는 무당파 층의 확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반면에 자본가들은 전세계적인 자본 간의 경쟁의 격화와 불안정성의 증대로 인해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를 높이고 있다. 자본가들은 파견법 개악과 로드맵을 통해 확실하게 착취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줄 것을 정권에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의 요구로 인해 노사정대표자회의는 ‘타협과 양보’가 아니라 점점 노골적인 자본과 정권의 공세의 장이 되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자신들이 추진하던 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하면서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탈퇴하지 않았다. 단지 타협과 양보의 여지를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자본과 정권에 대해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주의를 하자는 불만을 터뜨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노동부장관의 일방적인 태도를 비난하면서 노동부장관이라는 고위관료 개인의 교체를 통해 또 다시 사회적 합의주의 추진의 정당성과 명분을 찾아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주의와 타협과 협상을 해보자는 것이다. “대화를 기피하는 노동부라면 정말 곤란한 것 아니냐고 해서 노동부장관 교체와 제대로 된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이수호의 말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노무현 정권이 던진 연정은 단지 일회적인 정치적 술수가 아니라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배경 속에서 제기되었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연정 추진기구 앞에 ‘국민통합’이라는 수사를 붙인 이유는 계급모순과 갈등을 무마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지역갈등을 완화하고 국민통합을 기치로 내거는 연정제안은 사회적 합의주의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노사정회의를 통해 노사정이 상생과 협력을 해보자는 취지이고 이것이 정치적 영역에서는 연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주의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하에서 국민내부의 통합은 정치적 수사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계급 간의 화해할 수 있는 모순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계급국가이다. 또한 자본은 이윤확대를 위해서 노동자계급 내부를 여성과 남성, 이주노동자와 국내노동자, 실업자와 비실업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정규직 내부의 1, 2, 3차 사내하청 등으로 분할통치하면서 노동자가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따라서 국민통합이라는 정치적 기치를 내걸고 추진되는 연정은 근본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국가권력은 연정이나 통치형태의 변화, 권력구조 개편 등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경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해오는데 일정 정도 성공해 왔다.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권력,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표적으로 하여 달려드는 대중들의 불만과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체제의 심장을 보호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는 대중들의 요구를 일정 정도 수용하여 변화하고 있다는 환상을 끊임없이 유포한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개혁과 집권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하는 사민주의, 개량주의 정당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급격한 위기로부터 구출하는 구원투수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정권이 추진하는 연정국면에서 또 다시 민주노동당을 들먹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정과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은 김영삼, 김대중 등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넘어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독립적 정치세력화라는 열망을 안고 출발했다. 민주노동당이라는 독자 정당 건설은 남한 노동자계급의 성장의 한 표현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민주노동당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개량주의의 늪에 빠져서 의회주의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정치, 사상적으로 온전하게 자본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조직형식적 독립성은 이러한 정치, 사상적 개량주의 때문에 조직형식적 독립성마저도 끊임없이 흔들리게 하고 있다.
김대중 정권 하에서 민주노동당은 6.15남북 선언이라는 통일문제를 중심으로 끝없이 정권과 입장을 같이 해왔다. 노무현 정권에 들어서는 탄핵정국 당시에 노무현 탄핵을 저지하기 위하여 반한나라당 전선을 쳤다. 이어서 4대개혁입법 과정에서 정권과 열린우리당의 보조자이자 이중대 역할을 수행해 왔다. 최근에는 국방부장관 해임 안을 둘러싸고 열린우리당과 이른바 개혁공조를 통해서 한나라당의 공세를 좌절시켰다. 한나라당은 선거법 위반과 이미 사문화된 제3자개입금지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해있는 권영길, 조승수 의원을 살리는 것을 도와주는 대가로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이 공조를 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과반의석을 상실한 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민주노동당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집권 부르주아 정당답게 파견법 개악,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 등 계급적인 문제 앞에서는 부르주아적 단결과 우애를 가지고 한나라당과 공조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민주노동당은 한라당으로부터도 이중대도 아닌 열린우리당의 ‘이분대’라는 모욕을 들을 정도로 점점 더 독립성과 계급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파견법 개악이나 4대개혁입법 과정에서 보듯 자유주의 정당의 포로가 되어 끊임없이 배신감과 상실감을 느끼면서도 유착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유착관계는 민주노동당이 수구와 개혁이라는 허구적인 전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비판적 지지의 망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우파 세력들이 민주노동당 내 최고위원회를 비롯한 주요 당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개혁적 사안이라면 열린우리당과 얼마든지 공조를 할 수 있다는 개혁공조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민주노동당은 계급 대 계급의 모순을 축으로 하여 혁명이냐 개혁이냐의 전선을 칠 수 없다. 집권을 통해 자본주의를 개혁한다는 의회주의, 개량주의 정당의 기본 원리상 자유주의 정당인 열린우리당과 개혁공조나 개혁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집권당이고 제1당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개혁을 할 수 있는 현실적 조건을 더 갖추고 있다고 보고 열린우리당에게 집착에 가까운 구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천영세 의원 대표는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가 성공해야 민주노동당이 성공할 수 있다”고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 성공을 위해 노무현 정권과 사안별로 공조하면서 ‘운동권 정당’이라는 구태의연한 이미지를 벗고 정책대안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 정당, 정책정당으로 탈바꿈해 지지기반을 확대하고 싶어 한다. 이참에 ‘노동당’이라는 수사와 최소한의 계급적 기반을 떼버리고 대중정당, 국민정당으로 나아가려 한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지지(정확히 말하면 대의원대회)에 이어 한국노총으로까지 지지기반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근간이 되어왔던 노동자계급의 조직적 기반이 이제는 민주노동당에게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끊임없이 이 기반으로부터 탈출을 꿈꾸고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족쇄가 역설적으로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이다. 족쇄를 풀고 날아가자니 핵심적 지지기반으로부터 일탈하고 이 기반에 묶여 있으려니 국민정당으로 발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에 민주노동당은 빠져 있다. 개량주의 정당의 역사는 산술적인 표를 더 획득하기 위해 계급적 기반과 계급성을 탈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이러한 정치적 속성을 잘 알고 있는 노무현은 민주노동당을 연정의 파트너로 삼고자 한다. 직접적으로는 과반수 의석을 잃어버린 열린우리당이 국방장관 해임건의 안 표결공조를 통해서 한나라당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근본적으로는 민주노동당과의 연정이나 사안별 공조를 통해서 민주노동당의 조직적 기반인 노동자계급이 뭔가 지배계급의 통치의 한 부분에 참여하고 있다는 환상을 부여함으로써 계급적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노무현의 연정 제안 이후 민주노동당 내부는 연정참가와 불참, 조건부 연정, 연정시기상조론 등 요동을 쳤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공식적으로 연정 참가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 개편을 가지고 사안별 공조는 언제든 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내부의 연정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민주노동당 내부를 분열시키거나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 있는 핵폭탄과 같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 내부에는 연정을 불참하고서 독립적인 대안을 강조하는 세력들이 더 많이 있다. 그러나 불참을 주장하는 세력들 중에는 연정참가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고, 소수 정당으로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연정을 반대한다는 시기상조론적 세력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연정논의가 좀 더 구체화된다면 이들도 흔들릴 소지가 크다.
개량주의가 자본주의 체제와의 최고의 연정이다!
전진, 다함께, 해방연대는 각자의 강조점은 다르지만 민주노동당을 계급정당, 투쟁정당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믿음과 정치적 판단을 가지고 민주노동당 내에서 혁신파를 자처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다함께는 연정 논란과 관련해서 “지배계급의 우파와 자유주의 분파 모두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대안과 투쟁이다.”라고 독자성과 계급성을 강조하고 있다. 해방연대는 “매우 개혁적인 자본가정권이라고 하더라도 그 내각에 노동자정당, 진보정당이 참여하는 연립정부가 허용되지 않는 것은 노동자정당, 진보정당의 전세계적인 역사에서 기본적인 원칙이다.”라고 좀더 완강한 어조로 연정을 반대하고 있다.
전진도 마찬가지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신자유주의 정당인 열린우리당과의 동거는 진보정당의 비약적인 발전을 위한 발판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진보정당 운동의 종말일 뿐이다. 진보정당이 체제의 개혁자가 아니라 체제의 중간관리자임을 자임하는 순간 그 생명은 다하는 법이다.”라고 연정을 반대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부의 이른바 자주파가 가장 연정제안에 흔들리는 가운데 자주파 내에서도 “민주노동당의 근본목표는 보수정당과의 연정이 아니라 독자적인 집권이다. … 유럽이나 일본의 예만 보더라도 연한이 높아지고 의석이 많아질수록 권력의 유혹에 심하게 흔들린다. 시작이 반이라고 초장부터 기회주의적으로 수정주의와 개량주의의 길을 걸은 민주노동당에게 인생을 걸고 희망을 걸 어리석은 진보주의자나 민중은 없다.”(21세기코리아연구 소장 조덕원, ‘연정은 절대로 안된다’)라며 ‘반통일, 친제국주의’ 세력인 열린우리당과의 연정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밖에 있는 사회당은 7월 11일 성명서를 통해 “정체성 없는 ‘연정’은 정당 질서 및 선거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비민주적 발상이자 ‘상식적 정치’를 실현하는 것일 수 없다.”라고 연정에 대한 반대입장을 밝혔다.
이들도 주장하는 바처럼, 1848년 프랑스 부르주아 2월 혁명 뒤 사회주의자 레드뤼-롤랭의 연립정부 참여, 1899년 프랑스 사회주의 세력을 통합하던 중심에 있던 밀레랑의 노동부장관으로서 부르주아 내각 참여, 1966년 독일 사회민주당의 기독교민주당과의 대연정을 통한 B. 브란트의 외무부장관 입각과 1969년 소수정당이었던 자유민주당과의 연정을 통한 브란트의 수상 취임, 1976년～1979년 사이 ‘역사적 대타협’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내각 바깥에서 내각의 결정을 지지하는 그림자 연정 참여, 일본사회당의 1993년 비자민연립정권 참여 등 수많은 연정의 역사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수호자가 되거나 독립성을 상실하고 명멸하는 등 재앙과 같은 실패를 했다. 이밖에 러시아 혁명 시기 멘셰비키는 임시정부에 참여해서 혁명에 반대하는 반동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들은 민주노동당의 연정 참여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개량주의 정당, 의회주의 정당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와의 최고로 발전한 형태의 연정임을 모르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독자적인 정당으로 집권을 한다고 해도 시장의 압력이나 체제가 가하는 자본주의 체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연정을 통한 내각참여가 부르주아 내각 내에서의 ‘고립된 섬’이라면 독자적인 집권 역시도 자본주의 체제라는 대양 위에 홀로 떠 있는 ‘고립된 섬’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여전히 개량주의 정당은 자본주의 경찰, 군대, 행정, 사법, 의회, 언론, 금융기구 등 반동적인 관료기구에 포위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정과 사민주의 정당의 독자적인 집권은 본질적으로 깻잎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내에서 가장 발전한 통치 형태인 의회공화국일지라 하더라도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부르주아 독재 권력이다. 연정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권력을 분점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연정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급진적인 정치세력과 권력을 나누어가지려 하지 않는다. 이중권력의 시기에 일시적으로 권력을 분점할지라도 그것은 협상과 타협의 산물이 아니라 혁명이 낳은 일시적인 과정에 불과하다. 이 혁명기의 이중권력은 자본가들의 반동적 공세에 의해 반혁명으로 끝나거나 러시아 혁명처럼 혁명의 성공으로 끝나게 된다. 그 중간의 타협은 있을 수 없다.
권력과 연인은 나누어가질 수 없다. “국가권력은 항상 단일한 계급의 정치권력이다” 자본주의에서 국가권력은 자본의 이해를 독점적으로 대변하는 집행위원회에 다름 아니다. 다만 국가권력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자본주의 착취질서를 위협할 때나 자본주의 착취질서를 영구화하고 강화할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법률제정, 복지확대, 임금인상 등 양보조치나 화해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양보는 노동자계급의 힘이 약해질 때 언제든지 대대적인 공격으로 나타난다.
근로대중의 대표들이 공공기관(의회, 시의회)에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강력함의 지표이고, 투쟁 속에서 그들의 조력자로 되며, 그들의 투쟁을 발전시키기 위해 채택되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노동자가 그것에 의해 털끝만이라도 국가권력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마치 국가권력이 다수의 각기 상이한 지역적 또는 개인적 권력으로 나누어지거나 정치적 힘에 따라 계급간에 분할되어 절대적으로 지배계급의 수중에 있지 않게 될 수 있다는 것처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에띠엔느 발리바르, ‘민주주의와 독재)
의회주의, 개량주의 자체가 자본주의와의 협력이고 연정이라면 이들이 주장하는 연정반대가 얼마나 위선적인 구호인지 알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연정에 흔들려서 기회주의와 수정주의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연정이 아니더라도 민주노동당은 자본주의 내 집권을 통해서 개혁을 하겠다는 기회주의적 개량주의 정당에 불과하다. 한나라당을 포함하는 연정제안에 대해 “정당 질서 및 선거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비민주적 발상”이라고 비난하는 사회당은 반동적인 의회주의와 정당질서의 수호자이자 자본주의의 상식적 정치를 구하고자 하는 파수꾼으로 전락하여 사회당의 ‘근본주의’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 지 보여주고 있다.
런닝메이트를 자본가로 하기는 했지만 룰라는 연정이 아니라 PT당의 독자적인 힘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무대 위의 어릿광대처럼 자본의 이해에 따라 춤추는 룰라를 보라! 룰라정부는 집권한 지 몇 년이 채 되지 않아 현재 부패와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개혁조치를 통해 사퇴위기에 빠져 있다. 민주노동당이 미래의 어느 날에 최고로 성공한다 해도 브라질 PT의 오늘의 모습에 다름 아닐 것이다.
연정, 권력구조 개편이 아니라 권력 자체와의 투쟁이다!
연정은 단일한 통합조직과 다르다. 따라서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법률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기업간 결합을 하는 카르텔과 같이 정치영역에서의 카르텔이라 할 수 있다. 단 독점자본간 제휴나 협정을 맺는 카르텔과 다른 점은 세력 규모와 상관없이 연정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카르텔을 노동자와 독점자본간에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연정은 자본가 계급의 통치와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형성되면서도 권력을 양보하고 나누어가진 것 같은 대중기만을 통해 대중들의 체제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가로막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통치의 위임자는 형식적으로는 노무현 정권이지만 실질적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은 독점자본이다. 노무현 정권은 민주화된 권력이라고 말하지만 철저하게 자본가들을 위한 민주주의를 구사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자본이 사법부, 국회, 행정부, 언론, 교육 등 사회 전 영역에서 발휘하는 막강한 힘을 보라!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자본의 이해를 철저하게 대변하지만 특정 자본과 대립하기도 한다. 현재 출자총액제한 같은 재벌개혁을 둘러싸고 대자본과 국가가 갈등을 빚기도 하고 최근에는 기업지배구조를 둘러싸고 공정거래위원회와 삼성이 갈등을 겪고 있다. 국가는 이처럼 특정 자본과 갈등을 빚기도 하지만 그것은 전체 자본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간의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여 자본주의 시장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국가권력은 독점자본과 유착하여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지만 국가는 사회로부터 자신을 소외시켜서 겉으로는 사회 위에 위치하면서 노자간의 대립과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하는 중립자로 위장한다. 국가는 자본의 위기 시에 한층 더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여 노동자를 탄압한다. 노무현 정권은 민주주의와 개혁을 말하지만 노자간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있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부르주아 독재정권임을 과시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자본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을 통해 친자본가적 모습을 과시하는 반면에 노동자계급에 대해서는 물리적 탄압과 더불어 노동법 개악 공세, 반동적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붓고 있다. 최근 삼성의 반노동자적인 노동자탄압과 명백히 증거가 있는 핸드폰 위치추적에 대해 폭로한 노동자들을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시키는 사법부의 작태를 보라! 자본이 요구한 각종 가처분신청서에 대한 판결, 효성 박현정 전위원장의 법정구속, 태광노동자들에 대한 손배가압류 판결, 울산현대중공업 노동자에 대한 위증혐의 구속사건, 미포조선 김석진 동지의 해고사건에 대한 최장의 대법판정 유예 사건 등에서 보이는 파렴치한 판결을 보라! 국가권력의 법률적 보루인 사법기관은 노동자 재판에서는 최소한의 중립성과 보편적인 상식의 틀도 완전히 벗어던지고 자본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여기에 대해 노동자들은 “법과 정의가 죽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러한 항변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국가와 사법기구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와 법률 그 자체는 합리적인 이성의 집행자이고, 법률은 공평무사함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원칙이 무너졌기 때문에 문제라는 국가에 대한 환상이 담겨있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본주의의 착취질서를 유지, 강화하는 법과 정의는 엄연히 살아서 춤추고 있는 것이다.
남한에서 국가는 효과적인 지배와 통치를 위해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로 통치형태를 바꾸기도 했고, 대중들의 저항에 직면해서는 군부독재라는 파시즘적 통치형태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통한 통치방식으로 바꾸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은 연정이나 4년 중임제, 내각제 개헌 등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서 뭔가 근본적으로 다른 권력형태나 통치방식을 만들겠다는 대중적인 환상을 유포하고 있다. 그 동안 노무현 정권은 사법제도 개혁과 정치자금법과 부패방지법 개혁 등 너무나도 많은 개혁 약속을 해왔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삶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사법제도 개혁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반동적 판결로 나타났고, 정치자금법과 부패방지 개혁은 새로운 비리와 부패를 만들어 냈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노동자 계급은 노무현 정권이 벌이는 현란한 약속과 뻘짓에 속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연정과 권력구조 개편에 기대어 헛된 기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반동적, 억압적인 국가기구를 분쇄하는 권력 자체에 대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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