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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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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7 10:24:14, 조회:8,046, 추천: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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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장하준의 책『나쁜 사마리아인들』과『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보며
철도노동자
1. ‘불온’이 키워 준 경제학
몇 년 전의 일이다. 우리사회의 가장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며, 시대를 거스르는 국방부에서는 금서를 발표했고, 여러 책들 중 장하준의『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반정부, 반미도서로 분류되었다. 이전부터 인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양서들이 금서목록에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금서들의 주가는 치솟았고, 오히려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지난해 10월에는 군법무관이 금서의 반입·소지를 금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소송에서 헌법재판소는 “국군의 이념 및 사명을 해칠 우려가 있는 도서로 인해 '정신전력'이 저하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합헌을 선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21세기 판 분서갱유는 아니더라도, 웃지 못 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게 된 것이다.
그와 같은 금서반포와 헌재 합헌 판결이 오히려 책뿐만이 아니라 장하준의 경제학을 키워주는 일등공신이 되었다.『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성공 후, 지난해 11월 번역, 소개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제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는 서점 계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끊임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런 인기를 업고, 지난 해 말 장하준은 고국을 방문해 대학 특강은 물론, 국회에서 정치꾼들을 모아 강연회를 가졌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경제학적 신념대로 신자유주의의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경제학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굳건히 하는 것임을 역설했다.
장하준은 시쳇말로 엘리트중의 엘리트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그의 초등학교시절(그는 63년생이다)에 TV, 냉장고가 있었고, 군 장성인 삼촌은 미제 과자를 가지고 왔다고 회상하는 것을 보면 자신은 중산층이라 강변 하지만, 누가 보아도 부자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더구나 그의 아버지는 김대중 정부시절 산업부장관과 민주당의 3선 의원을 역임하였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비주류임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세계적인 경제학자이다. 그가 택한 전공은 그를 아직까지 비주류에 머물게 만든 케인즈주의이지만, 어엿한 케임브리지대학의 교수이고, 젊은 시절부터 신고전파경제학의 반대자에게 주는 상과 신케인즈주의자인 레온티예프 경제학상을 수상한 촉망받는 학자이다. 이를 거듭해서 밝히는 것은 그가 현재의 주류를 형성하는 신고전파(신자유주의 경제학파)의 반대편에 서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2.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은 누구인가?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는 장하준 신드롬이 몰고 온 하나의 담론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그가 밝히고 있듯 “곤란에 처한 이를 구제하지 않고 나 몰라라 하는 부류”를 말한다. 책에서 밝히고 있는 ‘그들’은 곤궁에 처한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에게 지원 혹은 자립경제의 길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경제정책을 강요하며 가난의 굴레로 떨어뜨리는 부자 나라, 특히 미국, 영국 등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국가를 말한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부자나라’들이 저개발국에 가혹한 자유무역 정책을 강요하고 있고, 오히려 자신들이 부유해진 방법인 보호무역주의, 높은 관세율 유지, 유치산업보호 등의 정책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실제의 수치와 자료들을 제시하기에 사실감을 더한다. ‘사다리 걷어차기’, ‘내가 했던 대로가 아니라, 말하는 대로 하라’는 등의 말은 부자나라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가난한 나라에 부자나라들이 대놓고 벌이는 행위이자 말이다.
여기에서 ‘그들은’ 바로 자유무역, 개방,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하는 부자나라, WTO, IMF등 국제기구의 집행자들 혹은 이들의 이데올로그들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이 유일한 진리인 냥 말하지만 그들은 사실을 조작하거나 은폐한다. 장하준은 23가지의 사례를 들어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진실의 단지 일부분일 뿐이거나 거짓임을 밝힌다. 자유 시장에 대한 믿음, 경제학의 주체인 인간의 합리성, 이기성에 대한 공격, 글로벌화, 탈산업화에 대한 거짓 등. 장하준은 23가지를 쓰는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자유시장 이론가들이 ‘진실’이라고 팔아 온 사실들이 꼭 이기적인 의도에서 만들어 낸 것은 아닐지라도 허술한 추측과 왜곡된 시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3. 대안인가 대체인가?
“200년 전에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100년 전에 여자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50년 전에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테러리스트로 수배 당했습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니 지금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80쇄 친필 사인 글에서)
자유시장의 신화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신고전파(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한 저주에서 출발하는 장하준의 경제학은 망가진 현실-이러한 현실의 배경에는 90년대의 금융위기와 2008년도의 금융에서 출발한 공황-에 대한 대안 경제학은 케인즈주의임을 분명히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한 지난 30년은 자유시장의 확대, 시장의 물신숭배, 금융자본의 득세, 각종 규제의 완화와 철폐, 작거나 혹은 없는듯한 정부와 그 정책으로서 복지 삭감 등을 ‘잃어버린 30년’ 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신자유주의 30년의 경제성장의 지표, 90년 이후 산업이윤을 넘어선 금융이윤, 신자유주의 30년의 성적표는 그야말로 초라한 것이었다. 그러한 성적은 선진 자본주의국에서는 물론, 저개발국, 극빈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쉽게 인용되는 중남부 아프리카의 경우 80년대 이전 그나마의 빈곤 탈출의 가능성을 가졌던 경제 성장률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한 이후 빈곤의 늪에 빠져 버렸다고 한다.
결국 최근 30년의 성적표는 그전 2차세계대전 이후 30년간의 성적표에 비해 사실적으로 후퇴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장하준은 말한다. “지난 30여 년 동안 자유 시장 경제학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제 실적이 저조해졌다. 성장률 감소, 경제 불안정성과 불평등 악화, 그리고 급기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몰아온 주범이 바로 이 자유 시장 경제학인 것이다”(『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317쪽)
결국 장하준의 대안이라는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학, 신고전학파가 주류로 세계경제의 주름을 잡아온 것에 대한 반비판의 경제학, 즉 케인즈의 경제학이었다. 케인즈의 경제학이 등장하였을 때, 사회주의 경제학과 동일시되며 급진적이고 위험한 사상으로 지목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장하준에 대한 금서조치는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사실 장하준은 케인즈가 그러했던 것처럼 결코 반자본주의의 입장에 서있지 않다. 그는 말한다. “자본주의는 나쁜 경제 시스템이다. 문제는 다른 모든 시스템이 더 나쁘다는 것이지만.(그가 내리는 결론 328쪽)”이라고.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그가 애타게 찾는 대안이라는 것은 공화당과 민주당, 혹은 보수당과 노동당의 선택과 마찬가지로 케인즈주의냐? 고전파 경제학이냐? 반복되어온 자본주의 역사의 연속일 뿐 이다. 구원투수는 위기의 시기에 등장한다. 위기에 등장한 투수는 몇 개의 공에서 바로 그의 실력이 드러난다. 진정한 구원자인지 아닌지.... 인간사회가 야구게임이 아닌 한 30여 년이라는 기간과 그동안 과연 누가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낮은 경제 성장률 속에서 미국의 최고경영자는 70년대까지 노동자 평균 임금의 35배에서 300-400배로 받아 임금의 격차를 벌이면서도 주주를 제외하곤, 기업의 파산위협에 따르는 위험의 몫과 구조조정의 몫은 고스란히 노동자가 담당해 왔다.
4. 목마른 자는 탁한 물이라도 달게 먹는다.
결국, 장하준의 경제학은 잃어버린 30년의 대안을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은 그대로 내버려둔 채, 케인즈주의-고삐 풀린 금융자본 등에 대한 제어, 국가역할의 증대 등-에서 찾는다. 그러는 사이 장하준은 전후부터 70년 중,후반까지의 눈부신 발전을 주도한 케인즈주의가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과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 등 신자유주의 경제가 주도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신고전파의 등장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 자본주의의 자본가 이데올로그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밖에 없었음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황금기를 거쳤지만, 저성장과 꾸준한 인플레이션, 장기불황,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 있었음에도 진정되지 못하는 상황, 평균 이윤율의 꾸준한 하락은 케인즈가 대안이 아닌 신고전파가 등장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주류가 되는 과정에 대해 말을 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소심한 장하준은 혁명 이후 국가의 계획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경제적 성과를 이룬 소련사회주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 소련사회에서의 잉여생산물의 관리와 통제를 누가 했는가의 문제는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담당해야 한단 말인가? 욕심, 이기심 등 합리적인 인간의 욕망-신고전파의 추상화된 인간상-이 이윤에 대한 탐욕이 유일한 동기가 아니라고 비판하면서도 왜 슬쩍 넘어가거나 이윤추구를 제자리에 돌려놓는단 말인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폐해가 세계의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폐해의 주요한 타겟이 노동자 민중들임에도 정치력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는 뒤로 밀리고 있다. 밀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그 몫은 고스란히 노동자가 감내하고 있다. 목마른 자는 탁한 물이라도 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법. 결국 대안제시의 몫을 장하준의 경제학이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반신자유의 전선에서 이데올로기의 몫을 반자본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를 무기로 한 큰국가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대체의 경제학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노동자의 경제학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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