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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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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2 14:05:50, 조회:3,439, 추천: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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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자정치협회(노정협) 홈페이지 : http://lmagit.jinbo.net
TEL : 02-6414-1917 / E-mail : labor04@jinbo.net
노동자정치신문54호(통합 66호)입니다.
우리는 이번 기사에서 쌍용차 투쟁 평가를 세 가지로 싣는다. 첫 번째 평가는 쌍용차 투쟁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이후 투쟁의 과제를 중심으로 다뤘다. 두 번째 기사는 쌍용차 생존권 투쟁이 국가권력과의 투쟁이 되면서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폭력적, 반동적 본성을 폭로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다뤘다. 세 번째는 쌍용차 투쟁 평가를 둘러싸고 미리 자본이 받을 만큼 확실한 양보를 하지 않아서 이 투쟁이 깨졌다면서 양보교섭과 합리적 노동운동을 외치는 세력들에 대한 비판과 우리의 입장을 담았다.(편집자 주)
77일간의 전투는 패배했지만 노동자투쟁은 위대했다!!
- “쌍용차 사태는 1987년식 전투적 노동운동의 무덤이 돼야 한다.”(‘쌍용차 사례의 평가와 과제’,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폭력 노조원이 구제받는 쌍용차 합의 비정상이다.(8월 11일 동아일보 사설)
- ‘파업만능주의’를 파업하라
투쟁 중심 노동운동 염증… 노조, 이념보다 실용 택하다.(8월 10일 문화일보)
- 쌍용차노조식 막장파업, 이젠 사라져야 (8월 7일 동아일보 사설)
- “불법-억지와 타협 안해” 정부-사측 원칙 대응이 주효했다 (8월 7일 동아일보 기사)
- 쌍용차 노조 그대로 두고 회사 장래 없어 (8월 7일 조선일보 사설)
- 정부·사측 강경입장 통했다 (8월 7일 국민일보)
쌍용차 노동자들의 77일간의 대전투가 일단락되자 각종 부르주아 언론에서 쏟아낸 기사제목들이다. 이들은 쌍용차노동자들이 거점파업을 풀고 구조조정을 부분 수용하기로 하자 일제히 자본과 정권의 승리를 경축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이제 파업의 시대는 종식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 언론들의 이러한 반응은 역으로 쌍용차 파업투쟁이 그만큼 위력적이었으며, 공황시기 자본과 정권의 심장을 강타한 투쟁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평균연령 40세가 넘는 쌍차 노동자들은 1000명이 안 되는 대오로 자본과 정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며, 다시금 공장점거파업투쟁의 위력을 증명해냈다. 실로 이번 77일간의 쌍용차 파업투쟁은 남한 노동운동사에서 자동차 사업장으로 가장 긴 파업투쟁이었으며, 자동차 금속 업종을 넘어 전체 노동운동에서도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노동계 내부에서도 쌍용차 투쟁의 평가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정작 투쟁 주체들은 파업 종료 후 더욱 거세게 몰아치는 자본의 공세 속에서 민주노조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공식적인 평가서를 내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투쟁 주체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지만 우리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번 쌍용차 투쟁을 평가하고자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쌍용차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 제출되고 있는 모든 평가는 현재진행중인 쌍용차 투쟁에 계급적으로 복무할 때만이 의의가 있을 것이다.
경제공황과 쌍용차 투쟁
쌍용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철회, 분사 철회, 총고용 보장’이라는 생존권 요구를 건 투쟁이 77일간이나 장기간 지속된 데에는 경제공황이라는 자본의 위기가 노동자의 위기와 중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경제공황은 산업 전반을 뒤흔들었고 자동차 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 세계를 호령했던 GM이 파산했고 GM을 포함한 크라이슬러, 포드 등 미국 빅3가 몰락했다.
이들은 완전한 파산을 피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의 목에 구조조정의 칼을 들이댔다. 이미 지난 3년 동안 6만 5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한 GM은 더 이상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을 구조조정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았다. GM은 미국 재무부에 2000년 기준 19만 5천 374명의 노동자를 2012년에 7만 2천 650명으로 줄이겠다는 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했다.
벼랑으로 내몰린 건 미국 자동차산업만이 아니었다. ‘도요타 신화’라고 불리면서 승승장구하던 일본의 도요타가 이미 작년에 20년 만에 최악의 판매량을 기록하자 국제 신용평가 회사인 피치는 작년 11월 18일 도요타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자본주의 시장의 신대륙으로 평가받던 중국도 공황의 탈출구가 되지 못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폐기하고 자본주의 경제 질서로 뛰어들면서 공황의 소용돌이에서 함께 허우적댔다. 자동차산업 컨설팅 회사인 JD파워 상하이 지사의 애널리스트 마이클 던은 “시장 상황이 악화하면서 중국 차 업계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산업은 공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었으며, 그 폐해는 고스란히 노동자계급에게로 떨어졌다.
이번 쌍용차 사태의 근본 원인은 이처럼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경제공황에 있다. 무정부성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은 자동차산업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미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자동차들이 400만대 초과 생산되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은 곧 시장에서의 퇴출을 의미하기에 자동차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생산경쟁에 나섰다. 따라서 폭주하던 자동차 산업이 공황의 직격탄을 맞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쌍용차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취약하고, 자동차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었기 때문에 독점자본의 공황기 생존전략에서 냉정하게 버려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제공황에 대한 분석 없이 단순히 상하이 먹튀자본과 기술유출에만 초점을 맞추고 마치 쌍용차를 인수한 상하이차가 먹튀자본이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구조조정이 자행되었다고 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을 설명할 수 없다.
이명박 정권의 대응 또한 철저하게 경제공황 시기 자본의 생존을 위한 것에 맞추어졌다. 이명박 정권은 독점 자본가들에게는 5년간 96조원의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올해에만 11조 원이 넘는 감세를 시행하고, 자본시장통합법, 독점자본들에게 은행을 소유지분을 대폭 늘려주는 금산분리 완화를 시행하는 등 자본의 이해에 철저히 복무하면서도 노동자들에게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노동자투쟁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민주노총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이데올로기적으로 노동운동 죽이기에 나섰고, 실제로는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경제위기 고통분담론을 설파했다. 특히 100만 실업자 시대가 도래 하자 일자리 나누기라는 명목으로 정규직노동자들의 임금삭감을 강요했다.
비정규 법안 개악 정세에서도 화살의 초점을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렸다. 노동자들의 철저한 희생을 토대로 경제공황 최악의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언제라도 유린할 수 있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을 무력화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과 자본에게 쌍용차노동자들의 소박한 생존권 요구는 기필코 분쇄해야하는 대상이었다. 더구나 비록 지금은 많이 쇠약해졌지만 금속 완성차 대공장노조를 굴복시키는 것은 일개 단사노조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과의 대리전에서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이들은 더욱 악랄하게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짓밟은 것이다. 전 세계적인 경제공황시기에 전개된 이번 쌍용차 투쟁은 자본과 노동 모두 생존을 건 투쟁이었다. 생사를 가늠하는 투쟁에서 자본과 정권은 한 몸이 되어 은폐되어 있던 폭력성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나 노동 측의 대응은 극히 미약했고, 총노동의 전선을 만들어내는데도 실패했다.
관료주의와 조합주의에 질식당한 쌍차 투쟁
헤럴드경제는 쌍용차 파업이 끝난 직후인 8월 11일부터 ‘고개 숙인 민노총’시리즈를 실었다. 그 첫 기사 제목은 ‘올해 성적 노히트 노런’이었다. 말 그대로 한 것도 없고 성과도 없다는 것이다. 쌍용차 파업투쟁이 장기화되고 자본과 정권의 폭력이 더해갈수록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홈페이지에는 연대투쟁을 호소하고, 지도부의 결단을 요구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부르주아 언론들의 조롱을 받을 만큼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는 투쟁을 방기하고 쌍용차 투쟁을 지지 엄호하는데 전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일반 국민들의 지지까지 얻어낼 만큼 처절한 투쟁이었고, 두 달을 넘긴 투쟁이었기에 위력적인 총파업을 조직할 시간은 충분했다. 쌍용차 투쟁 초기부터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위원장은 ‘공권력 투입하면 총파업 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그러나 정작 공권력이 투입되고 난 이후에도 제대로 된 총파업투쟁은 없었다. 지금까지 총파업투쟁은 곧 전면파업을 의미해왔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총파업투쟁은 2시간이든, 4시간이든 전체 조합원이 참여하는 파업투쟁으로 변질되었다.
이번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이 그러했다. 또한 ‘무기한 총파업’은 바라지 않더라도 공권력 투입으로 촉발되는 총파업투쟁이라면 공권력 철수 때까지 전개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은 1회성 생색내기 식으로 전개되었으며 투쟁 양상 또한 쌍용차 정문 진입도 하지 못한 채 공권력의 살수차에 쫓기고 구사대에 쫓겨서 여기저기 도망만 다니는 굴욕적인 상황의 연속이었다. 금속노조 게시판에는 “우리 조합원들이 죽어가고 있다”, “제대로 된 투쟁을 전개하자”는 글들이 빗발쳤다. 또 비록 소수지만 전국의 활동가들은 헌신적으로 연대했다. 그러나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지도부는 현장 동력을 핑계로 대면서 쌍용차 동지들의 투쟁을 고립시키는데 일조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부르주아 언론인 한국일보는 8월 7일에 “[쌍용차 협상 극적 타결] 강경 정부에 밀린 강성 노조… "투쟁" 목소리 줄어들듯 / 불개입 관철… 노동계 극한 행동 안먹혀 / 노조·민노총, 장악력 약화·위상 추락 할 듯”이라는 기사를 실은데 이어 다음날인 8월 8일에는 “개인, 실리주의 빠진 ‘철의노동자’ … 연대파업 사라져간다. [쌍용차 협상타결 이후] "내가 잘리는 것도 아닌데 누가 동조파업 하겠나" “쌍용차 노조 나홀로 사투… 산별노조 근간 '흔들'”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물론 이들 부르주아 언론이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을 공격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러한 공격을 통해서 총노동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지만,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이러한 부르주아 언론의 비난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는 것은 지금의 뼈아픈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르주아 언론마저 지적한 바와 같이 관료주의의 극치를 보여준 것은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지도부만이 아니었다. 현대차, 기아차, GM대우차 집행부는 쌍용차투쟁을 자신의 투쟁으로 받아안지 않았다. 현대차 윤해모집행부는 무책임하게 사퇴해버렸고, GM대우는 임금동결에 합의했다. 기아차는 그나마 금속노조 파업에 동참했지만 사실상 임협 일정에 시기를 맞춘 것이었다.
대공장 노조는 실제로는 금속노조 단일노조의 조합원임에도 불구하고 공장 울타리 안에 있는 조합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투쟁에 함께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번 쌍용차투쟁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금속, 민주노총, 대공장 지도부의 관료주의와 조합주의의 폐해가 그대로 자본과 정권에게 노출된 계기가 되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관료주의, 조합주의가 점차 현장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미 공권력이 투입된 상태에서 열린 금속노조 임시대대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쌍용차 투쟁과 같은 상황이 전개되면 적어도 금속노조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비록 현실화되지 못하고 결의에 그치는 한이 있더라도 만장일치로 총파업 투쟁이 결의되었다. 그러나 이번 금속노조 임시대대에서 즉각적인 총파업 안은 부결되었다. 임시대대에 참가한 일부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쌍용차 투쟁 지지엄호를 위한 총파업 투쟁에 반대의견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공권력과 용역깡패들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연행을 각오하며 임시대대에 참가하기 위해 공장을 나온 쌍용차 대의원들은 허탈과 분노를 표현했고, 가대위 동지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평가하면서 마치 이것이 노동조합 질서의 생래적인 한계인 것처럼 지적하기도 한다.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은 왜 보수적으로 행동하는가 - 칼 마르크스는 노동조합은 그 한계가 무엇이든지 간에, 노동자들이 함께 단결해 싸울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무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시에 노조는 착취의 원인이 아니라 착취의 결과에만 반대한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 자체를 철폐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조건을 개선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다.(레프트 21, 쌍용차 노동자들의 77일간 영웅적 파업이 보여준 것)
그러나 노동조합 질서 자체가 관료를 양성해내는 것은 아니다. 과거 남한의 전투적 노동운동은 민주노조에 의해 이끌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대중이 참여하는 대중조직인 노동조합의 일상적인 활동이 경제적 요구에 중심이 되었다고 해서 그 목표가 착취의 결과에만 반대하는 것에 맞추어지지 않았고, 민주노조운동의 정권 퇴진, 악법철폐라는 정치적 요구를 걸고 파업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동자 대중운동의 역동성을 두고 마르크스는 노동조합의 목표가 ‘조건을 개선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먼저 자본과 노동 사이의 게릴라전투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임금노동과 자본의 지배제도 그 자체의 폐지를 위한 조직된 힘으로서 훨씬 더 중요하다. … 노동조합은 그 목표가 결코 좁디좁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억눌리고 있는 수백만의 사람의 전반적인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는 확신을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새겨주지 않으면 안된다.(칼 마르크스, 노동조합 - 그 과거, 현재, 미래)
이번 쌍용차 투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관료주의, 조합주의의 문제가 소수 지도부만의 문제가 아닌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조합 운동이기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고 볼 수도 없다. 평의회가 조직된다고 하더라도 관료주의의 문제는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관료주의 조합주의가 자본과 정권에 기생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공황의 심화는 이들의 존재까지 위협해 들어올 것이다. 이명박 정권과 자본은 당장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하반기 핵심 노동의제로 추진하고 있으며, 해당 조합원의 경제적 요구에만 천착하는 조합주의 역시 생존권투쟁마저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말살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자본과 정권에게 능멸당하며 관료주의와 조합주의가 말살당하기 전에 현장으로부터 관료주의와 조합주의를 척결하는 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것이 제2의 쌍용차를 막아내는 길이며 노동운동의 생존을 지켜내는 길이다.
공황시기 생존권투쟁이 보여준 폭발력
지난 8월 20일 산업노동정책연구소와 새세상연구소 주최로 쌍용차 투쟁 평가의 자리가 있었다. 이 날 이종탁은 ‘쌍용차 투쟁의 평과와 과제’라는 제목의 발제문을 발표하였다. 이 발제문에서는 쌍용차 투쟁을 ‘단위 사업장 문제만 부각된 투쟁’이라고 평가했다.
쌍용차지부가 …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모습에 머물렀다는 점은 아쉽다. … 한 사업장의 투쟁과 그것에 대한 연대를 통해 자본과 정권에 맞서는 총노동의 대자본 전선을 형성하려는 발상은 매우 순진한 것이다.(발제문 중)
쌍용차지부가 정리해고 분쇄 투쟁에 전력을 기울인 것을 두고 ‘자기’문제라고 폄하하는 이종탁은 자본과 정권이 왜 그토록 쌍용차 투쟁을 진압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다. 정리해고가 쌍용차 동지들만의 문제였던가? 쌍용차 투쟁의 승패가 전체 노동자계급의 생존권과 직결되기 때문에 자본과 정권이 총공세로 나섰던 것이다. 쌍용차 투쟁은 한 사업장 노동자들과 총자본과의 대격돌이었다. 공황 시기 ‘정리해고’는 쌍용차 동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에게 불어 닥칠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쌍용차 투쟁에 주목했던 것이다. 이종탁은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을 ‘자기’ 문제로 폄하하면서 개별단사가 아니라 총노동의 관점을 가져야 했다고 충고한다. 그가 말하는 총노동의 관점에 입각한 투쟁은 다음 글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투쟁은 새로운 대안을 제기했던 초기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정리해고의 처리 문제로 점점 좁혀졌다. 이것은 무급휴직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순환휴직을 요구했던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자본의 고통전가를 무력화하는 일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면 무급휴직을 전격적으로 요구하면서 고용관계는 유지하는 한편, 사회안전망을 재구축하는 투쟁을 고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고부가가치로의 산업재편과 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던 이종탁의 반노동자적 입장은 현실의 투쟁과 맞닥뜨리면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종탁은 ‘고용관계를 유지’하고 ‘사회안전망을 재구축’하기 위해서 쌍용차 동지들이 ‘무급휴직을 전격적으로 요구’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급휴직이 곧 자본의 고통전가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요구하는 것이 자본의 고통전가를 무력화한다는 앞뒤가 안 맞는 말까지 하고 있다. 이종탁은 생존권 투쟁을 폄하하더니 ‘고용유지’라는 명목으로 가장 극단적인 양보교섭을 강요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경제주의의 극한이 아닌가? 또한 이 말은 정갑득 위원장이 ‘기한 없는 무급휴직안’이라는 비공식적 중재안을 가져왔을 때, 이에 분노하면서 단호히 중재안을 거부했던 쌍용차 동지들의 결단을 비웃는 것이다. 즉, 이종탁은 노동자들에게 무급휴직이던 순환휴직이던 고용관계만 유지된다면 자본에게 백기항복하고 무기를 들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종탁의 비폭력 굴종주의는 쌍용차 동지들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다.
다시 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자는 이야기는 시대의 코드에서 한참 벗어난다. 거리를 행진하면서 경찰에게 맞는 모습을 연출할 수는 있어도 경찰을 무장해제시키고 시내 곳곳을 마비시키는 방식은 검토되지도 않았고, 시도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경찰과 맞서는 일은 시도되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규정하는 이종탁의 말은 마치 자본과 정권의 말을 듣는 것 같다. 얼마나 많은 동지들이 경찰과 구사대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는지 투쟁의 현장에 함께 있지 않았던 이종탁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부르주아 언론마저 과잉진압 운운할 정도로 공권력과 구사대의 폭력은 광기와도 같았다. 그런데도 경찰에게 맞는 모습을 연출하라는 이종탁의 말은 쌍용차 동지들과 연대세력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짓이다.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만 몰두하고 있는 이종탁류의 세력들은 왜 그토록 지옥과도 같은 상황에서 쌍용차 동지들이 투쟁을 이어갔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쌍용차 동지들은 당시 기한 없는 무급휴직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민주노조 말살을 의미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투쟁을 사수하고 있던 동지들이야말로 이후 자본과의 투쟁에서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현장장악력을 되찾아오는 준비된 투사들이었다. 그런데 이 투사들이 기한 없이 공장 밖으로 쫓겨난다면 현장은 자본에 의해 장악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더구나 쌍용차 동지들은 이미 자신들의 투쟁이 단사의 울타리를 넘어선 정권과 맞서는 투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1700명의 노동자들이 현장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이 완강히 정리해고를 고수하는 것은 쌍용차 투쟁이 단지 경제적인 이유를 넘어서 정치적 투쟁의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쌍용차 구조조정 모델을 제시한 삼정KPMG 마저 보고서에서 3~4년 안에 1000명에 가까운 인력이 필요하다고 적시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수십억을 들여 용역깡패를 사면서도 비용의 문제를 이유로 정리해고를 강행하겠다는 것은 경제적 이유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가 곧 정권의 위협으로 간주되는 것은 지금이 공황국면이기 때문이다. 자본이 살기 위해서 노동자의 죽음을 요구하는 자본과 정권에게 “우리 노동자도 살아야 겠다”고 선언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정치적 성격을 띠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공황시기에는 비타협적인 생존권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더욱 많은 노동자들을 투쟁의 대열로 조직하게 하고 자본과 정권을 위협하는 정치적 투쟁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공적자금 투입, 국유화 요구를 걸 때만이 정치투쟁인 것처럼 주장했다.
실제 현실은 어떠했는가?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조차 폭력적으로 짓밟는 이명박 정권은 국가권력의 폭력적 본성을 스스로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파업투쟁은 일단락되었지만 수천억의 영업손실을 가져왔다는 이유로 일반 조합원마저 대량 구속시키는 사법기구들은 자본가계급의 이해에 복무하는 국가기구의 계급적 본질을 전체 노동자 민중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키고 있다.
이처럼 공황시기 생존권 투쟁은 국가권력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릴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쌍용차 동지들은 노동자 투쟁의 폭발력을 다시금 증명해냈다. 기본적인 생존권 투쟁마저 국가권력이 나서서 진압하는 과정 속에서 쌍용차 동지들은 더욱 분노했고, 이러한 계급적 분노는 77일간의 투쟁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비록 쌍용차 투쟁은 패배했지만 공황이 지속되는 한 이러한 투쟁은 언제 어디서든 다시 전개될 수 있다. 노동자도 먹고, 입고, 자고, 살아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종탁은 쌍용차 동지들의 생존권 투쟁의 의의를 폄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옥쇄파업이라는 투쟁전술까지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쌍용차 지부가 투쟁의 거점을 평택으로 한정하고 옥쇄파업을 선택하면서 대정부 사회투쟁의 동력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 단사 투쟁이 중요했고, 단사의 승리를 얻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던 시대에는 옥쇄파업이 매우 중요한 전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단위 사업장 노동자들의 힘을 바탕으로 해당 사업장 자본과의 투쟁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서 이데올로기 투쟁과 정책 제시, 사회적 여론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옥쇄보다는 거리와 지역을 더 중시하는 전술을 선택했어야 한다. … 공장을 지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쌍용차 동지들이 자본과 정권의 예상을 뒤엎고 장기간 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이 동지들이 투쟁의 거점을 확고하게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종탁의 평가와는 달리 오히려 다른 사업장의 활동가들조차 옥쇄파업이 가지는 폭발력에 대해서 다시금 되새기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노동자의 파업투쟁이 생산시설을 마비시키고 자본가계급의 이윤에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선에서 최소한의 생산량을 유지시키는 식으로 전개되었던 것을 반성해야 한다. 쌍용차 동지들은 이러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파업투쟁이 아니라 진짜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그럼으로써 생산의 주인이 노동자임을,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는 것이 노동자임을 입증한 것이다.
이종탁이 말하는 사회적 여론화는 바로 이러한 옥쇄파업 투쟁을 통해서 가능했다. 만약 쌍용차 동지들이 공장 장악이 아니라 거리와 지역에서 언론플레이에 집중했다면 노무현의 죽음과 연이어 터지는 사안에 묻혀서 소리 소문 없이 정리됐을 수도 있다. 모든 부르주아 언론과 방송매체들이 쌍용차 공장 정문 앞에서 진을 치고 취재경쟁을 벌였던 것은 쌍용차 동지들의 강력한 옥쇄파업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종탁은 더 이상 단사에 갇힌, 협소한, 시대착오적인 옥쇄파업 운운하면서 투쟁을 교란시키지 말고 부르주아에게 투신하여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맞는 선택을 하라.
쌍용차 현장은 소리 없는 전쟁 중이다!
쌍용차 동지들은 말 그대로 영웅적인 투쟁을 전개했지만, 그 결과는 참담하기까지 하다. 물론 쌍용차 투쟁이 패배한 데에는 주체의 문제보다는 자본과 정권의 폭압적 탄압, 연대의 부재 등 외부적인 요인이 더욱 결정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합의의 내용은 정리해고를 수용하고 투쟁주체들까지 대량 구속되는 등 예견된 후폭풍을 가져오게 했다. 이미 투쟁 초기에 대폭적인 양보안을 제출한 것도 치명적인 오류였다. 노동조합은 마지노선이라고 했지만, 자본과 정권은 노동조합의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자체를 말살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그 정도의 양보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종탁이 말하는 것처럼 애초에 더욱 많은 양보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지금 지도부가 대량 구속됐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77일 투사들도 없었을 것이며 자본은 보다 신속하게 보다 파괴적으로 현장을 접수했을 것이다.
비록 금속노조가 주축이 되어 작성했던 이종탁 입장인 ‘신모델’안은 자체 폐기되기는 했지만 이미 중재단은 그것을 기본으로 더욱 낮은 수준의 중재안들을 제출하면서 대폭적인 양보안은 오히려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했다. 또한 최종합의의 과정에서도 공식적으로 언론을 통해서 보도된 이외에 지부장과 법정관리인 간의 구두합의(구속자, 입원자 우선 배려, 비해고자에 대한 보복성 인사 금지, 농성자들에게 우선 선택권 부여 등)가 있었지만 이것을 문서화하지 않으면서 자본은 철저하게 구두합의 내용을 무시하고 있다. 공권력 투입이 목전까지 치밀어왔고, 그 전날 대대적인 파업대오 이탈 등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었지만 마지막까지 최대한 계급적 원칙을 견지했어야 한다. 한상균지부장은 합의사항 이행을 요구하면서 구속된 이후에 단식투쟁을 전개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77일간의 파업투쟁은 끝났지만, 쌍용차 현장은 여전히 전쟁 중이다. 노조 집행부 대부분이 구속 수감된 상태에서 정리해고자들은 현장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각 문마다 용역깡패들이 배치되어 파업 시기 때처럼 노동자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비정리해고자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며칠이라도 파업에 참여했거나 그동안 사측의 통제에 저항했던 노동자들은 8월 말까지 또는 무기한 대기발령 통보를 받았다. 이미 통상적인 생산직 대 관리자의 비율을 훌쩍 넘긴 거대한 관리자 집단들은 그동안의 분풀이라도 하듯이 병영식 현장통제에 앞장서고 있다. 출근 통보를 받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작업지시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격적인 모욕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너 아니어도 출근 통보 기다리는 사람은 많으니 싫으면 나가라”는 식이다. 이유일, 박영태 법정관리인들은 지난 20일 평택, 창원, 구로A/S, 서울사무소를 직접 방문한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이들 관리자들의 현장통제를 치하하고 있다.
파이낸셜 뉴스는 8월 20일자 ‘쌍용차 살길은 노조의 민노총 탈퇴’ 제목의 사설에서 “실제로 불법파업 과정에서 지도부가 구속된 쌍용차의 경우 ‘빨간조끼 노조 간부가 빠지니 생산성이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파업 전 생산직 근로자 5000여명이 2교대(하루 16시간)로 3800대를 생산했으나 조업 재개 이후 2800명이 8시간 근무로 2600대를 생산하고 있다.”면서 노동조합 지도부가 없는 상태에서 살인적인 노동강도로 내몰린 현장노동자들의 실상을 폭로하고 있다.
자본도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쫓겨나있는 현장 공백기를 틈타서 완전한 현장 장악을 위해 직접적인 현장탄압과 함께 체제정비에 나섰다. 지난 8월 18일 쌍용차와 협력업체 간담회에서 박영태 공동 법정관리인은 "자율적 합의로 노사 협상이 타결됐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등을 (유도)해보겠다. … 그간 노사 관계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일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노사 규약도 실질적 내용을 바꿔 새로운 노사 문화의 모범 사례가 되겠다"고 했다. 또한 복지부분이 중단된 상태에서 단협의 일방적인 개악까지 준비하고 있다. 박영태 관리인은 노사 협약의 문제점을 찾아서 법률 검토까지 마쳤다면서 노조가 경영권에 간섭할 수 있는 조항은 과감히 빼겠다고 했다.
이처럼 자본은 보다 주도면밀하게 현장을 장악해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하는 지점이 있다. 현장정서는 이들의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벌써부터 불만들이 조금씩 터져 나오고 있다. 민주노조의 부재가 직접적인 현실로 닥쳐오면서 피부로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3자 매각설이 나오면서 추가 구조조정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77일 투쟁주체들도 정원투로 발 빠르게 재조직되고 있다. 부족하지만 체제를 정비하고 재반격에 나설 준비를 해야 한다. 합의를 파기하고, 현장통제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자본을 폭로하고, 민주노조 사수의 깃발로 모일 것을 호소해야 한다. 소위 ‘산 자’들의 목숨 또한 온전한 것이 아니며 민주노조가 없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그들이 ‘죽은 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선전선동해야 한다.
77일간 끝까지 투쟁했던 460여 명의 동지들을 주축으로 초기에 투쟁에 함께 했던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다시금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77일간의 투쟁은 이들을 이미 투사로 성장시켰다. 그러하기에 자본 또한 더욱 이들을 고립, 배제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현장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지금부터의 투쟁이 77일간의 투쟁보다 더욱 길고 완강한 투쟁이 될 것이다.
아직 쌍용차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본격적인 진검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쌍용차 동지들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투쟁을 전개했다. 이제 우리가 쌍용차 동지들과 함께 본격적인 2라운드를 시작할 때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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