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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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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31 23:31:42, 조회:2,609, 추천: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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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으로 무너져 내릴 박근혜 표 ‘복지공약’
[주: 정책상 ‘복지’로 분류되지는 않더라도 복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공약 전체를 ‘복지공약’으로 포괄하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 1개월 여, 구린내가 진동한다
구린내가 진동한다. 어느 한 놈 멀쩡한 놈이 없다. 위장전입, 투기, 병역면제, 논문위조, 세금탈루, 특혜비리 등 가히 불법 천지요, 비리 백화점이라 할만하다. 서민들이라면 벌써 ‘별’을 서너 개쯤은 달고 있을 법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전과기록이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각종 불법, 비리를 저지르고도 살아남을 정도는 되어야 박근혜 정부에서 한 자리 해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 주어지는 듯하다. 이마저도 저들이 말하는 ‘인사검증시스템’에 의해 걸러진 자들임을 상기할 때, 저들 지배계급 전반의 상태가 어떠할지는 ‘인사청문회’를 통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 국정 운영의 핵심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수장으로 미 CIA ‘간첩’까지 대놓고 모셔올 정도이니, ‘나라 말아먹는’ 것도 모자라 ‘나라 팔아먹을’ 정부라는 비아냥이 허투로 들리지만은 않는다.
출범 1개월 여, 박근혜 정부 내각 인선과정에서 보인 추잡스러운 모습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 조사에서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전국 남녀 1245명 중 44%에 지나지 않았다.(한국갤럽, 2013.03.24) 이는 지난 대선 득표율(51.6%)보다도 낮은 수치로, 1990년 이후 취임한 대통령 중 가장 낮은 지지도를 보이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동아일보조차 사설을 통해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법무부 차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까지 박 대통령이 직접 고른 5명의 고위 공직자가 자진 사퇴하거나 낙마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인사 실패다. 김종훈 후보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전 인사 검증을 소홀히 한 결과다.”라고 하면서 ‘인사 난맥상’을 질타하고 있다.(동아일보, [사설]박근혜 대통령 한 달, 수첩 덮고 귀 열어야, 2013.03.25)
그러나 이러한 ‘인사 난맥상’은 비단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역대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정부 내각의 ‘수장’들이 불법, 비리로 얼룩지지 않은 정부가 없었으며, 사실은 그렇게 불법, 비리를 저질러야만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곳이 자본주의 대한민국이다. 법조계, 학계, 재계, 정관계를 두루 거치는 동안 온갖 특혜를 받고 편법, 불법, 비리를 넘나들면서, 그리고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비자금’을 먹고 자라온 자들이 저들이다. 어쩌면 저들의 불법, 비리 의혹이 몇 개씩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저들이 추잡스럽게 보인다 하더라도 저들의 불법, 비리는 사실은 지극히 표면적인 것, 본질을 은폐하는 것에 불과하다. 위장전입을 하지 않고 불법투기를 하지 않았다면,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세금을 잘 내 왔다면,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향후 정부 정책 역시 ‘도덕’과 ‘양심’을 잣대로 모든 것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포장하는 것, 그렇게 위장하는 것이야 말로 저들 지배계급의 ‘인사 기준’의 본질이고 ‘인사청문회’의 기능이다. ‘재벌’을 위시한 독점자본의 착취와 수탈에 복무하는 것, 미 제국주의를 위해 한 목숨 바치는 것이 결코 ‘불법’은 아니니 말이다.
출범 초기부터 박근혜의 지지율을 추락시키고 있는 원인은 비단 ‘도’를 넘은 인사 난맥상만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인사 난맥상’이 정점에 다다르기 전, 이미 복지공약의 ‘후퇴’ 논란이 박근혜의 공고한 지지 세력을 이탈시켜 온 것이다. 역시 한국갤럽이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전(2013.02.22)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응답자 중 10%가 ‘공약 실천 미흡, 공약에 대한 입장 바뀜’을 이유로 꼽았다. 이는 전 주 3% 응답에 비해 7%가 늘어난 수치다. 결국 당선 이후 3개월 여, 취임 1개월 여 동안 보인 내각 인선 과정의 ‘잡음’과 복지공약의 이행을 둘러싼 논란이 박근혜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과 신뢰’ 이미지에 타격을 주면서 지지율을 끌어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사 문제가 조만간 어떤 방식으로든 마무리 될 문제라면, 박근혜의 복지공약 이행 문제는 두고두고 박근혜 정부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복지공약 실천을 둘러싼 논란
사실 복지공약 실행을 둘러싼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다. 당선 직후인 2012년 12월 20일,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당선인은 선거 기간 국민에게 ‘해주겠다’는 말만 했다. 이제부턴 ‘참아달라’는 말을 함께 해야 한다. 공약은 지켜야 하지만 당장 해야 할 것과 중,장기 과제로 추진할 것을 구분하는 선거공약 아닌 국정(國政)공약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사설] 박근혜 당선인, 겸허하게 온 국민 껴안는 걸로 시작하라)면서 복지공약의 후퇴와 단계적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역시 사설을 통해 복지공약의 변경과 단계적 추진을 주문하고 있다. 심지어 데일리안은 한 발 더 나아가 “국민에게 행복을 주겠다는 것은 선거전략으로는 훌륭했습니다. 국민들에게 피와 땀과 헌신, 봉사, 솔선수범, 동고동락을 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데일리안, [칼럼] 박근혜, 공약 위해 공약 깰 수 있는 대통령돼야, 2012.12.22)라고 주장하면서, 박근혜의 복지공약이 사실은 ‘선거전략’에 불과했음을 고백하고, 더 나아가 이제는 ‘당선이 되었으니’ 국민들에게 ‘희생’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수언론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내에서도, 그리고 박근혜 정부 내에서도 경제위기, 재정상황 등을 이유로 복지공약의 이행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거나, 아예 복지공약이 일정하게 후퇴될 것임을 암시하는 발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3년 3월 6일, 대선 당시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초대 보건복지부 수장이 된 진영 장관 역시 복지공약의 후퇴논란에 대해 “선거 캠페인과 정책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노컷뉴스, 진영 “선거 캠페인과 실제 정책 다를 수 있다”, 2013.03.06)라고 하면서 대선 당시 공약으로부터 일정하게 후퇴가 있을 것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극우, 보수진영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오히려 강경한 입장이다. 추가 증세 없이, 그리고 후퇴 없이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겠다고 확약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1일, 박근혜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첫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복지정책을 둘러싸고 ‘공약과 현실이 다르다’거나 ‘공약에서 후퇴했다’는 지적이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조선일보, 朴대통령 “복지정책, 공약에서 후퇴했다는 지적 다시는 없었으면”, 2012.03.22)고 하면서 자신의 복지공약을 ‘공약 그대로’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공약에서의 후퇴인가, 아니면 선거캠페인을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믿은 것인가. 이도 아니라면 박근혜의 말대로 ‘공약 그대로’ 흔들림 없이 추진될 것인가. 아직은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이 구체화 되지 않아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경제위기로 인해 재정적자가 급격히 누적되는 상황에서 공약 실천 전망이 녹록치만은 않아 보인다.
빈껍데기로 전락한 복지공약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가 내세웠던 복지공약 중 많은 논란이 되어 왔던 것들을 중심으로 박근혜의 대선 공약이 이를 구체화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박근혜의 공고한 지지 세력인 ‘노인층’에 대한 복지공약이었다는 점에서, 또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에 대비한 공약이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제기된 기초연금에 관한 공약부터 살펴보자. 박근혜는 공약 자료집(제18대 대통령선거 새누리당 정책공약, 이하 동일)에서 “기초노령연금은 급여수준(2012년 94,600원)이 너무 낮아 어르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초연금을 도입,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과 중증장애인에게 현재의 2배(A값의 10%) 수준으로 인상하여 지급”하겠다고 공약하였다. 그리고 작년 12월 10일 진행된 2차 대선후보 TV 토론회에서 “기초노령연금을 보편적 기초연금으로 확대해 65살 이상의 모든 어르신한테 내년부터 20만원의 기초연금을 드리겠다.”(오마이뉴스, ‘대선 공약 말바꾸기’ 논란 휩싸인 박 대통령, 2013.03.16)고 하면서 자신의 공약을 다시 확인하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출범 전 제출된 인수위원회의 국정과제를 보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한 국민행복연금을 도입하고, 소득수준과 국민연금 수령 여부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를테면 소득하위 70% 중 국민연금 미수령자에게는 월 20만원을, 국민연금 수령자에게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월 14만원 ~ 20만원까지 차등 지급하되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더 많이 지급하고, 소득상위 30% 중 국민연금 미수령자에게는 월 4만원을, 국민연금 수령자에게는 가입기간에 따라 월 4만원 ~ 10만원까지 차등 지급하되 역시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더 많이 지급하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금액이 약간 증액되긴 했지만, 애초 65세 이상 고령층에게 일괄적으로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에서 크게 후퇴되어 있다. 또한 시행시기 역시 2013년 시행에서 2014년 7월로 늦춰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는 “국민연금에 가입했건 안 했건 지금보다 더 드린다는 것을 더 쉽고 정확하게 알리라.”(조선일보, 朴대통령 “복지정책, 공약에서 후퇴했다는 지적 다시는 없었으면”, 2012.03.22)고 하면서 공약으로부터 후퇴된 사실을 감춘 채 연금이 증액된다는 것만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으로 복지공약 후퇴 논란의 정점에 있었던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 공약을 살펴보자. 공약 자료집에 의하면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환자가 내는 본인부담금액이 선진국 대비 높은 수준(건강보험 보장율이 OECD 30개국 중 27위)”이며, “특히 중증질환은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 건강보험 비급여가 많아 환자의 진료비 부담이 심각”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어서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해 총 진료비(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포함)를 건강보험으로 급여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제출하고 있고, “현재 75% 수준인 4대 중증질환의 보장률(비급여부문 포함)”을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2016년에 100% 건강보험 급여로 보장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공약 역시 인수위원회 국정과제에서는 심각하게 후퇴된 내용으로 제출되고 있다.
4대 중증질환 의료비용 중 가장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선택진료비(특진료), 상급병실료(5인 이상 병실료), 간병비 등의 3대 비급여 부문이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수위원회 국정과제에 의하면 “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 질환 등 환자 부담이 큰 4대 중증질환 치료에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는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16, 100%)”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비용부담이 가장 큰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등에 대해서는 실태조사 등을 통해 실질적 환자 부담완화대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미 4대 질환 중 암, 심장병, 뇌혈관질환은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의 95%를, 희귀난치성 질환은 90%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크고, 심지어 가계파탄에까지 이르게 되는 이유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부담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이 공약에 주목하고 박근혜를 지지하게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박근혜의 핵심적인 복지공약이 사실은 빈껍데기에 불과할 정도로 대폭 후퇴한 것이다. 박근혜는 자신의 공약을 대폭 후퇴시켜 놓고도 마치 인수위원회 국정과제로 제출한 계획안이 원래 공약이었던 것처럼, “복지정책을 둘러싸고 ‘공약과 현실이 다르다’거나 ‘공약에서 후퇴했다’는 지적이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고 하면서 “3대 비급여에 대해서도 단계적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서 국민 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주는 노력이 있어야 된다.”(조선일보, 朴대통령 “복지정책, 공약에서 후퇴했다는 지적 다시는 없었으면”, 2012.03.22)고 뻔뻔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슈가 되었던 또 하나의 복지공약은 ‘반값 등록금’에 관한 것이다. 경제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최근 수년 동안 대학생과 교육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반값 등록금’ 실현에 관한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었고, 이에 정치권 역시 누구 할 것 없이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나서고’ 있던 상황이었다. 박근혜 역시 “2014년까지 대학생 반값등록금(을) 실천”하겠다는 공약을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의 ‘반값 등록금’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보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허위 공약에 불과하다. 소득 수준에 따라 국가장학금을 지원하여 등록금 부담을 절반으로 낮추겠다는 것으로, 등록금 자체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공약이다. 말 그대로 아무런 관련 없는 내용에 제목만 가져다 붙여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설사 국가 장학금을 통해 등록금 부담을 낮춘다고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국가 장학금 시행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장학금 지급 기준 등에 있어 전면적인 제도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마저도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 박근혜의 ‘반값 등록금’ 공약에 대해 줄곧 문제제기와 비난이 이어지고, 등록금 자체를 절반으로 줄여 실제로 ‘반값 등록금’을 실현할 것을 촉구하는 투쟁이 벌어진 것도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이밖에도 장애인에 관한 공약, 가계부채에 관한 공약, 주택 문제에 관한 공약, 임신, 육아, 간병에 관한 공약 등 ‘새누리당이 웬일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많은 복지공약을 제출하고 있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공약의 제목과 실제 내용이 전혀 다르거나, 공약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크게 후퇴하거나, 이도 아니면 말만 늘어놓고 실제로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거나 공약 이행에 필요한 추가 재정을 상정하지 않는 등 사실상 ‘빈껍데기’로 전락하면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공약(公約)이 아니라 사실은 공약(空約)에 불과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쯤 되면, 공약(公約)이 사실은 공약(空約)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누구보다도 냉철하게 꿰뚫고 있던 이명박의 발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2008년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자동차 재협상’ 발언을 두고 했던 말이다. “선거 때 무슨 얘기를 못하나. 그렇지 않은가. 표가 나온다면 뭐든 얘기하는 것 아닌가. 세계 어느 나라든지.”(2008.11.16)
재정(財政)마련 방안에 숨겨진 비수
박근혜의 복지공약 실현에 있어 또 다른 문제는 재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실제 복지공약 실현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 역시 주요하게는 재정 문제에 근거하고 있었다. 악화되는 재정 상태를 이유로 복지공약의 후퇴와 단계적 접근을 주문하거나, ‘부자증세’ 없이 공약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받아 온 것이다. 재량지출(경상비 등 의무지출 비용을 제외한 사업비) 축소 등의 강력한 세출구조조정과 재정지출 효율화, 비과세, 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지만(기획재정부, 박근혜정부 2013년 경제정책방향, 2013.03.28), 이마저도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일관되게 추가 증세 없이 자신의 공약을 실현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박근혜의 ‘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처한 객관적인 상황과 조건에 있다. 즉, 2007년 말에 발발한 세계 대공황, 점점 더 세계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는 경제위기, 그 속에서 함께 수렁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는 한국의 경제상황이 박근혜 정부의 발목을 단단히 옭아매고 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세수는 줄어들고 공황구제를 위한 세출은 더욱 늘어날 것이 예상되는 상황, 복지의 확대가 아니라 오히려 복지를 공격하고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 박근혜 정부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미 올해부터 성장률 저하에 따라 세수가 6조 원 가량 줄어들 것이 예상되고 있다. 또한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세입으로 잡혀 있던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의 정부소유 지분 매각을 정부가 포기하면서 추가로 6조 원 가량의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연합뉴스, 산은, 기은 민영화 백지화 소식에 ‘술렁’, 2013.03.29. *사유화(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경기 침체가 단기간에 극복될 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향후 전망 역시 대단히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박근혜는 대체 어떤 묘수를 써서 자신의 복지공약을 실천하겠다는 것인가. 박근혜 정부 정책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두루뭉술’ 좋은 말만 가득한 공약 자료집을 통해서는 이 이상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지만, 몇 가지 방안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간접세를 올리는 방안이다. 간접세 인상은 세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도 조세저항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역대 정권들이 세수를 늘리기 위해 즐겨 써먹은 방법이다. 담배값 인상, 술값 인상 논란 등이 박근혜 정부의 조세 정책 방향을 암시해주고 있음이다. 간접세 인상은 서민들에게 더 큰 부담을 주는 것으로, 쉽게 말해 서민들 ‘호주머니’를 털어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발상이다. 괜히 정권 초기부터 담배값 인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공공부문을 사유화하는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사유화라는 말 대신 ‘민영화’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국유화된 생산수단을 자본의 사적소유로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관이 운영하던 것을 민에게 돌려주는 것’처럼 위장하기 위함이다. 인용 등의 이유로 ‘민영화’로 표기한 부분들이 있지만, ‘사유화’를 의미한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민영화 정책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하면서 아직은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정부 출범 전 이미 인수위 업무보고 과정에서부터 ‘공기업 민영화’에 관한 계획들이 언급되고 있다.
공공운수정책연구원 산하 사회공공연구소는 ‘공공부문 대선공약-국정과제 비교 보고서’에서 “공약이나 국정과제에는 '공기업 민영화'가 언급되지 않았지만 각 부처 인수위 업무보고 등에서는 철도, 전력, 가스, 공항, 물 등의 사유화 추진이 암시돼 있다. 실제 지난달 22일 지식경제부가 확정한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에서는 신규 발전설비를 건설할 12개 기업 중 공기업은 4개사이고 민간기업은 8개사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사실상 전력산업 민영화 계획이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매일노동뉴스, “박근혜 정부 공공부문 정책 후퇴, 변질, 삭제”, 2013.03.22)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최근 국토부가 발표한 ‘제2 철도공사’ 설립 추진 계획에서 구체적인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국토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된 ‘수서발 KTX 사업’ 자체를 민영화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제2 철도공사’ 설립을 추진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이 역시 다른 방식의 사유화에 불과하다.
민주통합당 박수현 의원실이 공개한 철도공사의 ‘제2철도공사 설립 검토 의견’을 보면 “결국, 제2공사화는 철도 산업 상하 분리를 고착화시키고 운영자의 세분화를 초래, 향후 민간 사업자의 진입을 용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박수현 의원 역시 “제2철도공사 설립은 민영화에 따른 재벌 특혜 시비를 없애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결국 민간 사업자의 진입을 용이하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고, 인천공항 사례와 같이 공사 설립 이후 지분 매각이라는 방법으로 민영화를 시도할 수도 있다”고 하면서 “결국 제2철도공사 설립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철도 민영화로 가는 우회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프레시안, 코레일 보고서 “제2철도공사는 민영화 빌미 조성용”, 2013.03.21. 재인용)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박근혜 정부는 김대중 정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추진해 온 공공부문 사유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유화를 추진하겠다는 속내를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 실천 방안은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거나 공공서비스를 축소하는 방법을 통해 즉, 노동자 인민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가 박근혜 정부 공공복지 축소의 신호탄이 되고 있다.
‘복지’ 이면에 드리운 자본의 그림자
이상을 통해 박근혜의 복지공약과 실천방안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설사 박근혜가 자신의 공약을 실천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빈껍데기’를 실천하거나, 노동자 인민을 위한 ‘복지’가 아닌 자본을 위한 ‘복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인수위원회 국정과제 중 기초연금 공약을 구체화한 내용을 보면,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한 국민행복연금을 도입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것은 국가가 추가적인 재원을 확보하여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국민연금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즉, 국가의 재정지출을 통해 노인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미래를 위해 모아놓은 ‘돈’을 가지고 복지 생색을 내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기초연금에 충당된 국민연금은 ‘재원 고갈’ 분위기를 조성하여 추후에 메우면 그만이다.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 공약은 구체화 과정에서 이미 대폭 후퇴하여 그 자체로 ‘빈껍데기’임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사실 여기에는 민간 보험자본의 시장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박근혜 정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간 공약이 ‘반값 등록금’ 공약이다. 공약 자체가 ‘허위’이기도 하지만, 등록금 자체를 인하하지 않고 ‘장학금’을 통해 등록금을 ‘실질적으로’ 인하하는 효과를 내겠다는 것은, 사실은 국가 재정을 통해 무너져 가는 사학자본의 배를 불려주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향후에 장학금 지원이 축소, 폐지되더라도 안정적으로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박근혜의 복지공약이 노동자 인민을 위한 복지가 아니라 자본을 위한 복지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그리고 재정 마련 방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박근혜 정부는 국가 재정을 투여해 공적 서비스를 확충하고 이를 통해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적 서비스는 축소하고 사적 자본의 배를 불려주는 방향으로 ‘복지공약’을 실천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경제위기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에는 좌초하고 말 것이다.
공황이라는 현실에 부딪힌 복지공약의 운명
사실 박근혜는 물론이고 새누리당 자체가 ‘복지’와는 거리가 먼 세력이다. ‘복지’ 자만 나와도 ‘복지병’을 얘기할 정도로 복지에 대해서는 알러지 반응을 보여 온 것이 저들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작년 총선은 물론 대선까지, ‘진보정당인가’ 하고 의심할 정도로 복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복지 담론을 선도해 왔다. 그러나 이는 결코 저들이 ‘개과천선’해서 그러한 것도, 박근혜가 노동자 인민을 사랑해서도 아니다. ‘복지’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 즉, 경제공황 때문이다.
2007년 말에 발발한 세계 대공황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고 점점 더 세계 경제를 침체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다. 한국 경제 역시 위기가 전면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 등을 통해 공황에 대응해 왔지만, 경제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건설부문을 시작으로 수없이 많은 자본이 무너져 가고 있고 파산할 위기에 처해 있다. 또한 실업자가 속출하고 고용은 불안정해지며, 소상공인은 급격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가계파탄에 이르면서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지경이다. 계속된 경제위기 속에서 노동자 인민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고, 이를 어떤 식으로든 누그러뜨리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폭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박근혜가 복지를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러한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다. 노동자 인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체제 내로 포섭하기 위해, 그리고 국가 재정을 투여해서라도 무너져 가는 자본을 살려주기 위해 복지를 들고 나온 것이다. 복지라는 말만 나와도 ‘복지병’이니 ‘망국병’이니 하면서 게거품을 물었을 극우언론이나 극우세력들이 유독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에 대해서만큼은 점잖은 어투로 훈계를 하는 정도에 그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박근혜 정부의 ‘의지’를 여지없이 배반하게 될 것이다. ‘빈껍데기’뿐인 알량한 복지조차도 실천할 수 없도록 만드는 현실이 박근혜 정부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미 2012년 한국의 국가부채(지방정부 부채와 공기업부채를 포함)는 1,225조에 이르러 GDP(2012년 GDP는 1,103조) 대비 100%를 훌쩍 넘어선지 오래고, 경제위기가 지속됨에 따라 재정적자도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경제성장률은 계속해서 추락해 2.0%까지 떨어졌다. 특히 최근 벌어진 ‘용산개발사업’을 비롯한 전국의 재개발, 뉴타운 사업의 좌초, 표류는 자본과 박근혜 정부를 더한층 위기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국가재정을 투입해 공황으로 인해 무너져 가는 자본을 살려내야 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박근혜로 하여금 복지를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도록 강제했던 경제위기 상황이 역으로 박근혜 정부를 옭아매는 것이다. ‘언감생심’ 복지 확대는 고사하고 오히려 복지를 공격, 축소해야 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약한고리’를 끊어내자!
박근혜 정부가 아무리 재정 효율화를 추구하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더라도 ‘빈껍데기’뿐인 복지조차 실천하지 못한 채 오히려 복지를 공격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박근혜 정부의 본색을 숨김없이 드러낼 것이다.
극우언론을 중심으로, 박근혜의 복지공약을 두고 마치 서유럽 수준의 ‘복지’가 당장이라도 실현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의 복지공약이 사실은 허울에 불과하기도 하지만, 복지공약을 실천하겠다는 자를 대통령으로 뽑아놨다고 해서 복지가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서유럽의 복지가 가능했던 이유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이 혁명적으로 고양되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살육과 파괴, 쏘련을 위시한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이라는 배경 속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고양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체제 존망의 위협을 느낀 서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이 ‘불온해진’ 노동자 계급을 자본주의 체제 내로 포섭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복지를 시행했기 때문에 그나마 높은 수준의 복지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복지는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투쟁의 산물이다. 투쟁 없이 그 어느 것도 쟁취할 수 없다. 투쟁 없이 노동자 인민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자본과 정권의 사기와 기만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 ‘복지’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노동자 인민의 생존권적 요구를 걸고 투쟁할 때 보다 진전된 복지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렇게 투쟁할 때 공황구제와 노동자 인민의 투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박근혜 정부에 파열구를 낼 수 있을 것이다.<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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