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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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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8 23:59:03, 조회:2,834, 추천: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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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그 계급지배의 조건
빙산의 일각
2013년 1월 15일, “회사가 당신의 여자친구를 들여다본다면? 이마트, ‘노조 위험인물’ 찍어 주변인물도 감시”(오마이뉴스)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신세계 그룹의 이마트에서 자행된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과 노동자 감시, 통제 등에 관한 내용이 폭로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을 만들려 했던 주동자 해고, 1인 시위 방해, 위험인물의 주변 인물까지 감시하고 심지어 원‧하청 소속 수만 노동자들의 신상정보를 이용하여 노동조합(민주노총, 한국노총 포함)과 관계된 직원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기까지 했다. 신세계이마트는 여느 때처럼 ‘꼬리 자르기’로 일관하고 있지만,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관계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얼마나 제대로 수사를 할지는 미지수지만...
이것은 비단 신세계이마트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범삼성가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그룹과 기업에서 사실상 동일한 방식으로 자행된 것이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문제다. 노동조합 자체를 설립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물론, 노동조합을 설립할 경우 설립 주동자에 대한 해고, 도감청, 미행, 납치, 회유, 협박, 폭행 등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던 일이다. 세간에 익히 알려진 일들이 또 다시 신세계이마트에서 벌어진 것이고, 금번의 폭로를 통해 빙산의 일각이 드러났을 뿐이다. 어디 이뿐인가!
죽음과 파괴의 현장에 삼성이 있다
제보된 노동자들만 160명, 이들 중 60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삼성의 반도체와 전자제품 생산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과 암, 희귀질환에 의해 생명을 잃었다. 삼성의 이윤을 위해, 이건희 일가와 가진 자들을 위해, 알량한 주식 배당을 위해 죽어간 목숨들이다. 5명의 철거민을 무참히 학살한 용산참사의 이면에는 삼성이 있었고, 현재 제주 강정에서 건설되고 있는 미제국주의의 해군기지에도, 밀양의 송전탑에도 삼성이 있다. 불산 유출도, 서해안 기름 유출도... 그야말로 죽음과 파괴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삼성이 있다.
그러나 어느 누가 보더라도, 산업재해가 분명한데도 삼성은 끈질기게 산업재해 인정을 거부하고 관계당국마저 삼성의 손을 들어 준다. 그리고선 산업재해임을 인정하고 피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하는 노동조합과 유가족마저 탄압한다. 도심 한복판에서 ‘테러리스트’로 몰려 5명의 철거민이 죽어나갔는데도 참사, 학살의 책임은 끝내 삼성을 향하지 않는다. 불산이 유출되었는데도 유출되지 않았다고 금세 탄로 날 사기를 치고, 전 국민을 기름닦이에 나서게 만들었던 사태의 주범인데도 그 피해조차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다.
범죄와 비리의 온상
4조 5천억 원. 삼성이 조성했다는 비자금의 규모다. 밝혀진 것만 그러할 뿐, 은폐된 비자금을 추산하면 1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단위에 이른다고 한다. 삼성은 갖은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비자금으로 정관계, 법조계 인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해 왔다. 이른바 ‘삼성 장학생’을 육성해 온 것이다. 이들 ‘삼성 장학생’들은 삼성에 온갖 특혜를 제공하고, 각종 범죄와 비리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보호한다. 이재용이 이건희로부터 삼성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에버랜드를 물려받고도 고작 16억 원 밖에 안 되는 세금으로 때울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최근 노회찬 의원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삼성 협찬 지시’로 물의를 일으켜 결국 자진 사퇴할 수밖에 없었던 이동흡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의 장차관 물망에 오르는 인물치고 삼성과 연결되지 않은 자들이 없을 정도다. ‘삼성 장학생’들이 정관계, 법조계를 막론하고 전 사회에 틀어박혀 있지 않은 곳이 없다. 또한 삼성의 뇌물을 받아먹은 것은 상층관료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역 곳곳, 특히 삼성의 기업과 공장이 들어선 지역의 관료들 역시 삼성의 ‘떡고물’을 한 몫씩 챙겨왔다. 뇌물을 받아온 이들이 선봉에 서서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삼성의 불법과 비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해 왔던 것이다. 이것이 삼성이다.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2010 참고)
‘삼성 공화국’을 건설하다
“사실 외람된 말씀인데, 저는 그렇게 예상을 했어요. ... 전혀 가당치 않은 그런 이유로 유죄판결을 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 저는 2005년 MBC가 삼성 X파일을 보도한 이후, 그 이전에도 그랬지만 더 불행하게도 삼성을 중심으로 하는 공권력의 마비상황은 더 심화되고 있다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당시 대선 후보, 여야 공히 거의 100억 이상이 아마 지급”
“DJ를 늙은이라고 얘기하거든요. ‘늙은이한테도 뭐 돈이... 감사하다고?’ 그러니까 대선후보들을 수십억으로 돈이 왔다 갔다 하면서 주무르고 있었고 그리고 자기들이 원하는 쪽의 경제정책이 나오도록 로비를 하는 그런 정황이 나옵니다. 기아차와 관련돼서도 얘기가 나오고. 그런가하면 검찰 수뇌부에 대해서 돈질한 게 다 나와요.”
“이를테면 삼성에서 당시에 이회창 후보의 이른바 대쪽이미지를 인공적으로 돈 내서 만들어 준 거예요.”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이상호 前MBC 기자 인터뷰 중, 2013.2.15)
삼성의 힘은 단순히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방어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정도로까지 나아간다. 정관계, 법조계 곳곳에 있는 ‘삼성 장학생’들이 삼성을 위한 정책을 입안, 실행하고 과정에서 발생한 걸림돌을 해치운다. 삼성과 정관계, 법조계 간 활발한 인적 교류가 이루어진다. 삼성은 ‘장학생’들을 위해 ‘안식처’를 제공하고 '장학생'들은 삼성을 위해 복무한다. 사실상 중앙일보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것은 물론 광고를 무기로 언론을 통제하고 여론을 주도한다. 삼성이 소유한 연구소를 통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생산한다. 참여정부 당시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친노 인사들의 활약상을 기억할 것이다. 심지어 참여정부에서 한미FTA를 추진했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삼성전자 법무팀 사장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이렇게 저들은 ‘삼성 공화국’을 건설한 것이다.
삼성은 독점자본 일반을 대표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반사회적 행태는 결코 삼성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규모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본 일반, 특히 독점자본(재벌) 일반의 문제이며, 국내 재벌에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죽어도 노동조합은 안 된다’고 했다는 이병철이 특별히 사악해서도 아니다. 이건희가, 이건희의 자식들이 특별히 선대의 유언을 더 충실히 받들어서도, 그만큼 더 사악해서도 아니다. 자본 자체의 속성, 독점자본 그 자체의 속성일 뿐이다.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이윤축적에 걸림돌이 되는 노동조합을 철저하게 탄압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원청과 하청 노동자 간의 갈등을 유발하여 노동자의 단결을 저해하고, 노동자의 상층을 포섭하여 ‘고분고분한’ 노동자로 길들여야 한다. ‘삼성맨’이라는 ‘마약’을 고안해 낸 것은 그러한 측면에서 탁월한 전략이었다. 최대한의 이윤을 얻는데 발암물질이면 어떻고 독극물이면 어떤가. 어차피 노동자들은 쓰다 버리면 그만인 생산요소에 불과한 존재 아니었던가.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 전자 제품 시장 점유율을 유지, 확대하는데 있어 노동자의 죽음은 필연이었다. 나아가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보다 작은 자본, 심지어 골목에 들어선 소자본까지, 자신들의 종족까지 수탈해야 하는 것이 저들의 운명이다. 재개발을 가로막는 자, 막대한 이윤에 걸림돌이 되는 자야 말로 그저 ‘질서’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이것이, 자본, 독점자본이 주인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지극히 사회적인 사고이고 행동인 것이다.
나아가 자본, 특히 독점자본이 주인인 세상에서 독점자본이 정부와 의회, 법조계까지, 상층 관료에서 말단 관료에 이르기까지, ‘장학생’을 두고 국가를 지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어차피 국가란 자신들의 업무를 처리하는 위원회, 피억압계급에 대한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고 계급지배를 공고히 하는데 복무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한 독점자본 중 삼성이 가장 선두에 서 있을 뿐이다.
기생하는 종자들
삼성의 경제력, 지배력은 이건희 자신과 그 일가의 권력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삼성을 거대 독점자본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최소한의 저들이 말하는 ‘관리노동’, ‘감독노동’(물론 자본가의 관리, 감독노동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노동에 불과하다.)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임금’을 꼬박꼬박 받아가는 것은 물론, 그저 알량한 주식을 매개로 삼성을 지배하고 ‘부유물’을 받아먹을 뿐이다. 그리고 이 ‘부유물’이야말로 삼성의 이건희 일가가 철저하게 다른 ‘신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원천이다.
무려 10억 원짜리 생일파티를 즐기고 수천, 수억 원대의 듣도 보도 못한 명품을 걸친다. 물론 결재는 금고에 쌓아 둔 비자금으로 처리한다. 침구 정리에서부터 우산, 양복 등을 챙기는 일까지, 일거수일투족을 ‘하인’들이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자본가들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선언하곤 하는 경영(자본주의적 경영이라는 것이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본질로 하는 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경영은 저들의 말대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에 있어서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막대한 손해만 끼친다. 1,000억 원짜리 명품 회사를 인수했다가 100만원에 팔아넘긴 일, 다른 명품회사를 인수했다가 ‘말아먹은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자신 소유의 부동산을 늘리고, 훗날 든든한 삼성과 자신들의 ‘방패’가 될 '장학생'들에게 줄 뇌물에는 직접 신경을 쓴다. 물론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김용철, 『삼성을 생각한다』, 2010 참고)
이건희가 삼성을 지배할 수 있게 해주는 원천 역시 자신의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삼성의 시초축적 자체가 일본 제국주의에 빌붙어 기생한 매판자본으로 출발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사카린 밀수와 같은 불법은 물론이고 ‘뇌물’을 매개로 한 정경유착으로 온갖 불법을 자행하고도 무한한 혜택을 누려온 것이 저들이다. 또한 저들이 소유한 주식은 물론이고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데 필요한 자본 역시 사실은 저들의 것이 아니다. 삼성은 물론이고 재벌이라고 하는 독점자본 어느 것 하나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지 않은 자본이 없다. 삼성을 비롯한 독점자본을 살찌우고 저들 자본가들이 그 이윤에 기생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은행의 대출 빚, 즉 은행에 잠자고 있던 ‘남의 돈’에 불과하다. ‘남의 돈’을 가지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고, 철저하게 다른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건희 일가의 배를 채우고 삼성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이윤과 이를 쪼갠 ‘비자금’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다. 아무리 그것이 불법적인 ‘비자금’일지라도 그것은 바로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피와 땀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진실이 이러함에도 오히려 이건희 일가와 삼성 자본이 국민들을 ‘먹여 살린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지배 계급의 사상들은 어떠한 시대에도 지배적 사상들이다. 즉 사회의 지배적 물질적 힘인 계급은 동시에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적 힘이다. 물질적 생산 수단을 제 마음대로 처분하는 계급은 이로써 동시에 정신적 생산 수단도 제 마음대로 처분하며, 그 결과 정신적 생산 수단이 박탈된 계급의 사상들은 이로써 동시에 대체로 지배 계급에 종속된다. 지배적인 사상들이란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들의 관념적 표현, 즉 사상들로서 파악된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들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k.맑스, F.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박종철 출판사)
중앙일보를 보유하고, 광고를 무기로 언론을 통제하며, 수많은 학교와 연구소를 통해 자신들의 착취 체제를 은폐한다. ‘간혹’ 불법을 행하기도 하지만, 결국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것은 삼성이고 삼성의 오늘을 만든 건 이건희라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한다. 이건희 일가와 삼성, 나아가 국가 전체를 살찌우는 것은 결국 삼성의 노동자들, 이와 연관되어 있는 전체 노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일가와 삼성이 ‘먹여 살린다’는 전도된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삼성 공화국’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아무리 불법적이고 부당하다 하더라도, 사실은 지극히 당연한 것,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관계, 법조계와 유착되어 있지 않은 자본이 어디 있겠는가. ‘뇌물’이라는 불법의 굴레를 씌우지 않더라도, ‘합법적’으로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저들 자본, 독점자본이다. 자본이 주인인 세상, 독점자본이 국가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점자본을 살찌우는데 삼성의 ‘장학생’이면 어떻고, 현대의 ‘장학생’이면 어떤가.
이건희와 그 일가가 받아가는 임금도, 삼성이 거둬들이는 막대한 이윤도, 삼성을 떠받치는 비자금도, 정관계로 흘러 들어간 ‘뇌물’도, 주식배당금도, 나아가 삼성 그 자체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된 것,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이병철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노동조합은 절대 안 된다’고 했던 것도 착취의 원리를, 노동자들을 더욱 쥐어짜야만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했기 때문이다.
삼성이 불법, 합법 가리지 않고 극악한 폭력을 동원하여 노동조합 설립을 막고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것은 이병철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병철이 깨우쳤던 그 진실, 착취와 이윤의 관계를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암으로, 각종 희귀질환으로 죽어나가는데도 발암물질을 사용하고 독극물을 사용하는 것도 노동자의 안전보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 한 푼이라도 더 ‘생산비’를 줄이려 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전자 제품 공장에서 죽어나간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로 이룩된 삼성이라는 ‘꿈’의 실체가 사실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착취에 불과했다는 것을 ‘죽음’으로써 있는 그대로 증명해준 것이다.
재벌개혁(해체), 독점자본 ‘합리화’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사회에서 재벌, 즉 독점자본의 지배력은 가공할만한 수준에 올라섰다.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는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착취와 수탈이라는 독점자본 자체의 속성 상, 재벌로 인한 폐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물론이고 골목상권에서도 밀려날 위기에 처해 있는 소자본까지 독점자본에 대한 불만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작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특히 재벌에 대한 문제가 중요한 화두로 제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통합진보당 할 것 없이 경제민주화를 중요한 정책과제로 들고 나왔고, 노동자 대통령 선거투쟁본부 역시 핵심적인 과제로 제기했다. 지난 25일 취임한 박근혜 역시 취임사에서 경제민주화를 주요한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당시 대선상황을 전하면서, 특히 삼성 자본, ‘재벌개혁’을 둘러싼 논쟁(워싱턴포스트, “한국, 삼성 권력을 논쟁하다”)을 소개할 정도였다.
경제위기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특히 작년의 정치권력의 교체기를 맞아 활발하게 논쟁되고 정책과제로 제시되기도 했지만, 사실 ‘재벌개혁 논쟁’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다. 1996년 자본의 ‘경제위기’(사실 당시는 경제위기 상황이 아니었다. 자본의 일상적이면서도 선제적인 공격이었다.) 주장에 대한 대응으로 시민운동단체를 비롯한 ‘진보적’ 지식인들, 일부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폈던 논리가 ‘재벌책임론’이었다. 그리고 이후 ‘IMF 외환위기'라고 하는 공황을 경과하면서 노동운동 진영의 주요한 과제로 ’재벌개혁․재벌해체‘ 주장이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채만수, 『노동자 교양 경제학』, 노사과연, 2011 참고)
그러나 그 주장에 있어 아무리 과격한 언사를 늘어놓더라도 ‘재벌개혁’이든 ‘재벌해체’든, 그것의 본질은 재벌, 즉 독점자본의 합리화 방안에 불과하다. 보수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시민운동단체나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야기하는 재벌개혁, 재벌해체 주장 역시 그러하다. 그들 주장의 핵심은 ‘비효율적인’ 재벌을 해체하여 ‘경쟁력 있는 대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대기업’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업이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은 자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 종족을 밟고 올라서라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기업, 즉 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얻어야 한다는 것, 오직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응당 노동자들을 더욱 더 가혹하게 착취해야 하고, 골목상권까지 파고들어 자신의 종족인 소자본까지 수탈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비자금 조성하지 말고, 불법․편법 동원하지 말고 ‘우직하게’ 한 길로만,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는데 만 집중하라고, 그래서 더욱 독점을 강화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대기업’이라는 말에 그 어떠한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이러한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특히 이들의 주장에서, 노동자 민중의 피와 땀으로, 소상공인의 눈물로 이룩한 오늘날의 재벌, 즉 독점자본을 ‘말로써’(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기에)라도 노동자들이 소유․통제할 수 있도록 돌려줘야 한다거나, 소상공인에게 다시 분배해야 한다거나 하는 최소한의 ‘자비’조차 찾아볼 수 없다. 뭔가 그럴싸한 말로 노동자 민중을 저들의 이데올로기에 종속시킴으로써 오히려 재벌, 즉 독점자본의 이해에 복무하고 있음을 정확히 직시해야 한다.(채만수, 『노동자 교양 경제학』, 노사과연, 2011 참고)
2012년, 그리고 2013년, 지금에 와서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들, 지배계급 스스로 경제 민주화니 재벌개혁, 재벌해체니 하는 헛소리를 운운하는 것은 공황의 파고가 그만큼 깊고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공황, 즉 경제위기의 본질이 자본주의 그 자체에 있음을 은폐하는 것, 그럼으로써 ‘재벌’이라고 하는 독점자본의 한국적 형태에서 비롯된 문제, 혹은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태의 문제로 돌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즉, 노동자 민중으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권력의 문제’
재벌개혁, 혹은 재벌해체의 핵심은 노동자 민중의 소유․통제에 있다. 노동자 민중으로부터 착취하고 수탈한 것이기에, 노동자 민중의 피땀으로, 눈물로써 이룩한 것이기에 노동자 민중이 소유․통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비록 삼성에서 생산되었다는 이유로 삼성의 소유가 되지만, 이미 생산은 삼성의 경계를 넘어 전 사회적인 연관 속에 생산되고 있다.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뒷면에는 삼성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이름이 쓰여 있다. 생산은 이미 사회화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소유의 사회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이다.
지난 대선에서 노동자 대통령 선거투쟁본부 역시 ‘재벌’ 문제를 핵심적인 과제로 제출했다. 재벌(의 자산)을 몰수하여 사회화해야 한다는 것(김소연 선투본이 제출한 내용은 재벌의 자산을 몰수해야 한다는 것으로 ‘재벌 몰수’보다도 후퇴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재벌 몰수’를 제기했다고 하더라도 핵심적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노동자들이 직접 소유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쟁취할지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그저 공허한 이야기로 끝나고 말았다. 아니 오히려, ‘몰수’라는 ‘혁명적’ 언사에도 불구하고 기회주의적으로 흐르고 말았다. 재벌, 즉 독점자본을 떠받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정치권력의 문제를 회피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하여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차례 빼앗고, 모든 생산 도구들을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 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가능한 한 신속히 생산력들의 양을 증대시키게 될 것이다.
(k.맑스, 『공산당 선언』, 「맑스-엥겔스 저작선집」, 박종철 출판사)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정치적 지배를 이용할 때만, 즉 자신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생산 수단을 물수(국유화)할 수 있고, 그때에야 비로소 노동자들이 소유․통제할 수 있게 된다.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생산의 사회적 성격에 맞게 소유의 사회화(국유화)를 실현하는 것. 이는 결국 정치권력의 장악이라는 변혁의 과정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정치권력의 문제, 즉 변혁의 문제를 회피한 채 자본주의 내에서 생산수단을 국유화(사회화) 할 수 있고, 또 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의의를 갖는지는 이미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다. 1920년대 독일에서, 독일 공산당의 변혁과 국유화 주장에 맞서 국가권력의 문제, 즉 변혁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카우츠키를 위원장으로 사회화위원회를 만들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이 사민주의적인 국유화의 대중적 시초였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에는 신자유주의의 도래와 함께 재사유화라는 파산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삼성에 노동조합을 건설하려다 해고된 노동자들과 백혈병 피해 유가족들이 중심이 되어 삼성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삼성의 노동자들 역시 ‘돈의 노예’가 아닌 인간임을 선언하는, 노동자들은 쓰다 버리면 그만인 존재가 아님을 선언하는 투쟁이다. 비록 아직은 거대한 삼성에 비해 보잘 것 없는 힘이지만, 노동자 계급이 역사의 주체로 올라섰듯, 이들 삼성 노동자들 역시 삼성의 탄압을 뚫고, ‘삼성맨’이라는 허위 이데올로기를 뚫고, 머지않아 노동자 계급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젖힐 변혁의 주체로 일어설 것이다. 재벌개혁이니, 재벌해체니 하는 기만과 지배 이데올로기를 분쇄하고 혁명적 사상으로 무장한 노동자 계급으로 일어설 것이다. 노동조합을 무기로 계급 전쟁에 나서게 될 것이다. 변혁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연대하자!<노/정/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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